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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선종 1주기, 김수환 추기경 하늘에서 보낸 편지

글 김명희 기자 자료제공 PBC 평화방송 평화신문

입력 2010.02.17 15:46:00

지난해 2월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에 남긴 메시지가 최근 ‘하늘나라에서 온 편지’라는 이름의 책으로 출간됐다. 종교에 관계없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잠언 성격의 글에서 구도자로서의 고독과 끊임없는 자기성찰, 그리고 김 추기경의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책에 수록된 김 추기경의 글을 발췌, 소개한다.
밥이 되어 주세요

선종 1주기, 김수환 추기경 하늘에서 보낸 편지


한때 크리스마스 카드에 ‘밥이 됩시다’ ‘제가 밥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라는 문구를 즐겨 써서 부쳤습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영혼과 육신이 허기진 이들을 위해 ‘밥’이 될 만큼 자기 자신을 내놓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어수룩한 사람을 얕잡아보고 “ 저 사람은 내 밥이야!”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을 한없이 낮추고 비워 우리 모두에게 ‘밥’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십자가 죽음으로 당신의 모든 것을 내놓으셨습니다.
현대인들은 오늘도 “나는 결코 너의 밥이 될 수 없다”며 치열한 경쟁을 벌입니다. 그뿐 아니라 타인을 ‘내 밥’으로 삼기 위해 혈안이 돼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인간다운 사회가 되려면 타인에게 밥이 되어주는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웃의 고통과 슬픔을 조금이라도 나눠서 지려는 마음도 밥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나눌 것이 없다면 함께 울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이기주의와 약육강식 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많은 부부가 혼인 당시 서약한 대로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사랑하지 못하고 헤어집니다. 사랑의 감정이 식었다는 이유를 댑니다.
그러나 사랑은 감정이나 느낌이 아닙니다. 의지에 속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결심에서 출발해 그 결심을 지키는 의지로써 지속됩니다.
나치에 저항하다 순교한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본 회퍼는 “혼인에 있어서 사랑이 서약을 지켜주기보다는 서약이 사랑을 지켜준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부부에게 위기가 찾아오더라도 ‘사랑의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면 식어가던 사랑이 자연스레 되살아난다는 뜻입니다.
부부는 자유의사로써 사랑하기로 결심하고 맺어진 사람들입니다.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할 때나 병들 때나 죽을 때까지 사랑한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약속을 지키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귀한 보석일수록 다루기 까다로운 것처럼 훌륭한 배우자일수록 소중하게 여겨서 상처주지 말아야 하고, 자주 사랑의 마음으로 정성스레 손질해서 윤이 나도록 보살펴야 합니다.
있을 제 함께 늙고 죽어서 한데 간다는 것이 부부입니다. 어찌 하찮은 일로 눈을 흘기며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다정한 미소로 무언의 말을 걸기만 해도 서운한 감정이 봄눈 녹듯 풀리는 게 부부 사이 아닙니까?
마더 테레사 수녀님은 생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정은 모든 사랑의 출발점입니다. 가정에 사랑이 없다면 어떻게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행복은 속이나 불행은 속이지 않는다
세상살이란 게 고르지 못하고 뜻대로 안될 때가 많습니다. 불의의 시련에 괴로워할 때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럴 때는 “행복은 그대를 속이나 불행은 그대를 속이지 않는다”는 말을 곱씹어보십시오.
물질적 풍요가 주는 행복은 우리를 속일 뿐 아니라 내적 성장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불행이든지, 설사 감당키 어려운 큰 시련일지라도 마음을 굳게 먹고 용기 있게 맞서면 우리 마음은 굳건해지고 한층 성장합니다. 더욱이 그것이 진선미를 추구하는 데서 비롯된 시련이라면 인간을 고귀하게 성장시켜줍니다.
이는 삶의 희로애락을 통해 터득할 수 있는 진실이지 책에서 배울 수 있는 지식이 아닙니다. 인류를 빛낸 위인들은 모두 시련과 고통을 이겨내고 출현했습니다. 모두 칠흑 같은 절망의 어둠을 이겨낸 분들입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오늘도 인류의 앞길을 밝혀주는 빛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모두 위대한 빛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가치관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악한 사람들이 오히려 잘산다고?
악한 사람들이 오히려 편안하게 잘 먹고 잘사는 것에 회의를 품는 아삽의 시가 구약성경 시편 73장에 나옵니다.
악인들에게 아픔이라고는 없으며
그들의 몸은 건강하고 기름졌네.
인간의 괴로움이 그들에게는 없으며
다른 사람들처럼 고통을 당하지도 않네.
그래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며
폭행이 옷처럼 그들을 덮었네.
… …보라, 바로 이들이 악인들!
언제까지나 걱정 없이 재산을 늘려가네.
왜 의롭게 사는 사람들은 고생을 하고, 오만불손하고 악을 범하는 자들이 편안히 잘사는 불합리한 일이 일어납니까?
쉽게 대답하기 곤란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밝혀지기 마련이고 정의는 반드시 이룩됩니다. 불의와 부정, 거짓은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현세가 아니면 내세에서라도 반드시 받습니다.
또한 호의호식하는 악인들을 보고 평화롭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평화는 물질적·육체적 평안을 배제하지 않지만 그보다 훨씬 더 높은 차원의 마음과 정신의 가치입니다.
평화는 근본적으로 모든 인간이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상태입니다. 빈부격차와 남녀차별, 지역감정 없이 모두가 사랑하고 화해할 줄 아는 공동체를 이룰 때, 우리는 그 상태를 가리켜 평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너 어디 있느냐?

선종 1주기, 김수환 추기경 하늘에서 보낸 편지


어릴 때 친구랑 싸우거나 큰 잘못을 저질러서 아버지께 꾸중을 들을 것 같아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움츠리고 있던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걱정이 되어 “얘야, 어디 있느냐?” 하며 자식을 찾아 나섭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찾는 이유는 단지 벌주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벌은 벌이고, 해 떨어지기 전에 데리고 들어와 밥을 먹여 재워야 하기에 그러는 것입니다. 자식이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밖으로 내치지 못하고 품어 안는 게 부모 마음입니다.
“너 어디 있느냐?”(창세3,9)
이 또한 인류의 조상 아담이 명을 거스르고 죄를 지은 뒤 부끄럽고 두려워 숨어 있을 때, 하느님이 그를 찾는 소리였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뱀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 있었습니다.
이는 두 사람의 잘못을 문책하려는 물음입니다. 동시에 잘못을 저지르고 숨어버린 아담을 구하고자 찾는 자비의 소리입니다. 자비의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물음은 지금 이 시간 우리 각자의 마음에도 들려옵니다. 이는 우리가 있는 장소를 묻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윤리적으로 어떤 처지에 있는지, 또 어떤 가치관을 갖고 사는지 묻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생 좌표에 대한 물음입니다.
인생길을 흔히 인생항로라고 합니다. 험한 바다 건너 멀리 떨어져 있는 어느 항구를 찾아가는 배와 같다는 뜻이겠지요. 배가 목적하는 항구에 잘 도착하려면 악천후와 싸우면서도 항로와 배 위치를 잘 체크해야 합니다.
인생을 올바르게, 그리고 값지게 살려고 한다면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또 내가 어디로 가는지 멈춰 서서 생각해봐야 합니다.

냉장고 속에 갇힌 ‘나’
사람이 사람들 물결 속에서 살아가는데도 점점 더 고독해집니다. 그래서 모두가 자기를 더 알아주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내 옆에 있는 사람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가정에서, 버스에서, 직장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이런 외로움에 지쳐 있습니다. 모두가 고독병에 걸려 있습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병에 걸렸으니 서로 더 측은한 마음씨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모두가 자기만 고독하고, 자기만 소외되고, 자기만 인정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오해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을 믿지 못하고, 남을 알려고도 아니하고 남의 입장이 되어 보려고도 노력하지 않습니다.
마음의 문을 꼭꼭 닫고 스스로를 자아 속에 유폐시킵니다. 그래서 인간은 점차 ‘자아’라는 냉장고 속에서 얼어붙어갑니다. 마음도, 정신도, 인간성 자체, 생명까지 얼어붙습니다.
구제책은 마음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나뿐만 아니라 남도 고독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남도 나와 같이 이해와 동정과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아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 부모 자식 간에, 형제 사이에, 직장 동료 사이에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러면 해빙기가 찾아와 모두의 마음 안에 따뜻한 봄기운이 움트기 시작할 것입니다.

여성동아 2010년 2월 5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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