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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희망일기

희귀병으로 실명위기 이동우 Smile Again!

글 문다영 사진 조영철 기자|| ■ 의상협찬 헤리스톤, 프라이언(02-548-2036) ■ 코디네이터 박성연 ■ 장소협찬 충정각

입력 2010.01.19 15:46:00

얼마 전 방송을 통해 시력을 거의 잃었다고 밝힌 이동우. 지팡이를 두드리며, 매니저의 부축과 설명에 따라 움직이는 그의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하지만 담담하게 그간의 일들을 들려주는 그는 어느 때보다도 밝았다. 마음의 짐을 한 번, 슬픔을 두 번, 원망을 세 번…그렇게 버리고 또 버려온 이동우의 마음은 지금 희망의 빛으로 가득하다.
희귀병으로 실명위기 이동우 Smile Again!


개그맨 이동우(39)는 최근 한 방송에 출연, 5년 전부터 망막색소변성증을 알아 현재는 시력을 거의 잃었다는 다소 충격적인 소식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방송 후 만난 그는 해묵은 일을 해치운 듯 시원한 얼굴이었다. 오히려 “제가 출연한 날 프로그램 시청률이 역대 최고였다는데 기록 하나 세웠다”며 싱글벙글이다. 깊숙이 곪기만 했던 상처가 터지고 아물기까지 걸린 시간이 너무 아깝다며 “할 일이 많다”고 말하는 이동우. 현재 그는 숨 쉬고 있는 1분 1초가 소중하다고 한다.

한때는 지금의 상황 받아들이기 힘들어 극단적인 생각도 해
“사실 몸을 많이 움직이기 어려워 포기해야 할 게 많았어요. 지금은 4개 라디오 프로그램 게스트로 출연 중이고 1월에는 ‘틴틴파이브’ 앨범을 발매해요. 요즘 기도확장제까지 먹고 있죠. 이번에 내는 앨범은 댄스는 아니고, 미디엄 템포예요. 앨범 취지 자체가 재밌게 활동하자가 아니라 어려운 사람들 돕자는 거니까. ‘과부 마음 홀아비가 안다’고 힘든 사람들에게 뭘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앨범을 내는 거거든요.”
그는 이번 일을 통해 늘 자신의 곁을 지켜주는 틴틴파이브 멤버들에 대한 고마움을 새삼 느꼈다고 말한다. 93년 SBS 공채개그맨으로 데뷔한 이동우는 이듬해 표인봉·이웅호·김경식·홍록기와 함께 틴틴파이브를 결성, 지금까지 끈끈한 정을 이어오고 있다. 누구보다 이동우를 잘 아는 멤버들이지만 병을 알리기 전까진 멤버들로부터 구박을 많이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시력이 점점 나빠지는 탓에 안무는 물론 이동할 때도 늘 뒤처졌기 때문. 이동우는 “언젠가는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예기치 못한 순간 말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안무 연습을 하다가 멤버들이 화를 냈어요. 그래서 ‘오늘인가보다’싶어 연습 끝나고 10분만 얘기하자고 붙잡았죠. 마룻바닥에 둥그렇게 앉아 상황을 얘기하다 다 같이 울었어요. 제 눈물의 의미는… 그냥 형제들에게 의지하고픈 약한 눈물이었고, 멤버들은 충격과 미안함의 눈물이었던 것 같아요. 전부 저를 안아주면서 ‘네가 변해도 우린 안 변한다. 얼마든지 기대고, 의지하고, 우리로 인해 힘을 냈으면 좋겠다. 뭐든 맡겨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제가 먼저 입을 열기 전까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어요. 입이 가벼운 친구들인데 그 비밀만큼은 지켜줬죠(웃음).”
세상에 자신의 병을 얘기할 시기를 정해놓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스스로 병을 받아들이고 이겨낸 후에 말하고 싶었던 것. 그런데 그전에 넘어야 할 벽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어머니였다. 멤버들에게 고백한 지 2년이 지나서야 겨우 어머니에게 사실을 털어놓은 이동우는 “병명을 알게 된 날보다 훨씬 더 악몽같은 날이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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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어머니와 밥을 먹다가 물잔이 앞에 있는데도 엉뚱한 곳에 물을 따르고, 국물을 코로 가져가기도 하니까 어머니가 역정을 내셨어요.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냐’ ‘눈이 안 좋으면 빨리 약을 먹어라’…. 순간 ‘엄마가 나에 대해 뭘 알아!’라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는데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더라고요. 깜짝 놀라 아무 말도 않고 계시다가 ‘실명’이란 단어를 듣고는 주저앉으셨어요. 심장이 안 좋으셔서 걱정이 컸죠. 그런데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내 눈을 빼주마’ 하시더라고요. 참,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맞는 게 그날부터 어머니가 태릉선수촌 선수들보다 더 열심히 운동을 하셨어요. 제 병 고치기 전까지 절대 당신은 죽지 않겠다는 의지인 거죠. 그런 어머니를 보며 ‘상대방을 위해 내가 변화하고 노력하는 게 진짜 사랑’임을 깨달았습니다.”
중도장애인은 패닉 상태, 병에 대한 거부 상태, 분노, 그리고 수용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그 역시 이 과정을 밟았는데 가장 위험하고 불안한 ‘분노’단계에서 3년간 정체했다. 그런데 안으로 삭인 분노는 우울증이 되어 돌아왔다. 베란다에 서서 밑을 보는 일이 많아졌고, 밖에 나가면 차도를 보고 걸었으며, 달리는 차 안에선 문을 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사형수 같은 느낌이 들었다. 최후의 시간을 앞당기고 싶다는 생각에 부엌에서 포크를 들고 한 시간가량 부들부들 떨고 있기도 했다”고 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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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곁을 지키고 응원해 주는 이들 덕분에 더욱 힘을 낼 수 있었다는 이동우.



하지만 힘든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옆에서 그를 지켜보는 아내 김은숙씨에게도 큰 고통이었다. 더욱이 아내 역시 몇 년 전 뇌종양 판정을 받고 힘든 시간을 견뎌야 했다. 당시 병원에서는 ‘반신불수가 될 수도 있다’고 했지만 다행히 건강을 회복했다. 다만 후유증으로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아 두피관리숍을 운영하면서 불편을 겪기도 한다고. 게다가 친정아버지마저 암투병 중인데도 늘 굳건한 모습으로 묵묵히 자신의 곁을 지키는 아내를 보면 매 순간 감동을 받는다고 한다.
“어느 날 ‘내가 아내라면’하고 몇 번을 생각해봤어요. 결혼을 후회했을 것 같았죠. 그래서 하루는 ‘나에게 바라는 게 뭐냐’고 물었어요. 아내가 아무 푸념도 하지 않는 이유가 혹시 체념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거든요. 그랬더니 ‘집에 이러고 있지 말고…’라고 운을 뗐어요. 그 순간, ‘뭐라도 빨리 해’ ‘답답해’ 등등의 답을 생각하고선 ‘그래 당신도 다를 바 없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좀 나가서 놀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제가 암흑 속에 갇히게 되면 그 이후 삶은 많은 걸 추억하며 살아야 하는데 보고 싶은 거 다 보고 가고 싶은 데 다 갔다왔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제가 사십 평생 동안 가장 잘한 게 뭐냐 물으면 주저 없이 ‘아내를 만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아내 김은숙씨는 이동우에게 무한한 믿음을 주는 존재다. 나쁜 짓 빼고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 그런데 딱 한번 그가 하는 일을 반대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병을 받아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 이동우는 ‘어떤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아닌 ‘뭐라도 해야 하는데’란 심정에 하모니카를 배웠다는 것. 그의 책상에 놓인 하모니카와 악보를 본 아내는 처음으로 화를 내며 울었다.
“전 외국처럼 실력 있는 뮤지션이 행인들에게 기쁨을 주고, 행인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돈을 주는 멋진 장면을 생각했는데 아내는 구걸을 생각했나봐요. 지금은 뭐, 제 딸 지우의 장난감이 됐죠.”
그에게 힘을 주는 또 하나의 존재는 바로 35개월 된 딸 지우다. 겨우 네 살이지만 아빠에게 투정 한 번 부리지 않는 기특한 아이다. 언제 가장 사랑스럽냐고 묻자 크게 한숨을 쉰 그의 눈이 아련해졌다. 줄곧 담담하기만 하던 그의 목이 처음으로 메었다. 그는 자신의 병이 아이에게 유전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2세 계획을 포기하려 했던 게 너무나도 미안하다고 한다.
“아이고, 똥 싸는 모습도 사랑스럽죠…. 지우가 20개월도 되지 않았을 때 함께 놀다가 ‘아빠가 아파서 공놀이를 못해주네. 앞으로 살면서 더욱 그럴 거고, 아빠가 창피할 날도 올 거야’라고 말했어요. 지우가 부산하고 활동적인 아이인데 미동도 하지 않고 절 바라보더니 그 작은 팔로 저를 껴안더라고요. 꼭…철든 대학생 딸이 ‘아빠, 내가 있잖아. 괜찮아요’라면서 안아주는 느낌이었어요. 이런 걸 기적이라고 하나 싶을 정도로 잊을 수 없는 날이에요. 참, 아내와 딸 덕분에 행복해요. 정말로 행복해요.”

“잃은 만큼 채워지는 게 삶, 나눔 실천하며 살고 싶어요”

희귀병으로 실명위기 이동우 Smile Again!


그의 투병생활이 알려졌을 때 많은 사람이 받은 충격과 걱정은 위로와 응원이 되어 이동우에게 되돌아가고 있다. 그런 팬들의 반응이 놀랍고 신기했던 이동우는 이제 ‘어떻게 갚아야 하나’라는 걱정에 휩싸였다.
“멀리서 절 보는 분들이 있을 줄 몰랐어요. 직접 제 앞에 와서 뭐가 재밌고, 이런 건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눈앞의 사람들 말만 믿었죠. 멀리서도 항상 바라보고 기억하고 생각해주는 사람들의 마음이 더 절실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전혀 못해서 정말 죄송했어요. 격려의 댓글에 많이 울었어요. 전 한때 사랑 아니라 동정이라도 받고 싶었는데 갑자기 많은 위로를 받게 돼서 ‘내가 무슨 자격으로 이런 사랑을 받는 걸까’ 생각도 했어요. 몇 주 지나고 나니 이젠 어떻게 갚을까만 생각하고 있어요. 아, 정말…. 허송세월한 5년이 너무 아까워요.”
팬뿐 아니라 재활과정에서 만난 장애인들 덕분에 그에겐 분명한 목적의식도 생겼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로 장애인들을 돕고 싶다는 것. 그래서 그의 꿈은 대한민국 실명 연예인 이동우만이 보여줄 수 있는 단 하나의 공연을 만드는 것이다. 벌써 극작가와 의기투합해 열심히 아이디어를 짜는 중이라고 한다.
“10년 후, 저는 무대 위에 있을 것 같아요. 이를테면 ‘난타’처럼 절 찾아와야 볼 수 있는 그런 공연을 만들고 싶어요. 어떤 장르와 형식의 공연이 될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제 노래도 들어갈 겁니다. 전용관을 만들어 낮에는 글을 쓰고 여행을 하고, 밤에는 공연을 할 거예요.”
넘을 수 없다 생각했던 벽을 부수고 세상으로 뛰쳐나온 이동우는 그 어느 때보다 왕성한 의욕을 보인다. 늘 손에서 놓지 않았던 책을 읽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만 빼면 “별로 낙천적이지 못한 성격”이라는 그의 말과는 달리 너무도 긍정적인 모습이다. 어떤 한 가지를 잃고 나니 다른 부분이 넓어지더라고 말하는 이동우는 어느새 마음으로 세상을 품고 있었다. 소리 없이 울며 기나긴 고통의 터널을 지나온 그는 이제 더없이 큰 목소리로 밝게 웃는 법을 배웠다.

여성동아 2010년 1월 5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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