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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SEX TALK

40대가 20대보다 섹시한 이유는…

나이도 多多益善!

글 신동헌 || ■ 사진제공 REX

2009. 12. 16

남자라고 해서 누구나 젊은 여자와의 섹스를 최고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여자의 섹시함은 숫자가 아닌 연륜에서 나오는 법. 40대 몸으로 20대를 꿈꾸기보다 나이에 맞는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하는 게 침대 위에서 행복해지는 최고의 비법이 아닐까.

40대가 20대보다 섹시한 이유는…

오스트리아 출신 화가 에곤 쉴레의 회화 작품. ‘엎드려 있는 여인의 누드’



내 나이 서른다섯이던 해 어느 주말이었다. 여느 주말처럼 모터사이클 투어를 나서기 위해 현관 신발장에서 라이딩 부츠를 꺼냈다. 부츠 끈을 제대로 묶기 위해 허리를 숙이는데 나도 모르게 ‘에구구구’ 하는 소리가 나는 게 아닌가. 그러고 보니 얼마 전부터 다리를 높게 들어올려 모터사이클 시트 너머로 옮기는 작업도 수월치 않았다. 언젠가부터 장판이 깔린 식당에서 양반다리를 할 때도 신음도 애교도 아닌 이상한 소리가 입에서 새어나오곤 했다. 낙천적인 성격을 지녀 그냥 혼자 웃으면서 ‘나도 늙어가고 있구나’하고 별일 아닌 걸로 받아들였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충격을 받아도 이상할 게 없는 일이었다. 머릿속은 여전히 열일곱 소년인데 몸은 늙어서 퇴화해가고 있다는 얘기 아닌가.
그러고 보면 내 주변 남자친구들은 어느새 배가 나오고 머리가 벗겨지면서 절대로 ‘학생’하고 불릴 걱정(?)이 없는 아저씨가 돼가고 있다. 대학생 때 여자 꽤나 울린 신성우를 닮은 친구 녀석은 이미 대머리에 몸무게가 80kg을 넘어서서, 녀석의 대학생 때 별명이 ‘신성우’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20대 후배 녀석들은 배꼽이 빠져라 웃고 만다. 그럴 때 머리를 긁적이면서 짓는 녀석의 미소도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탓인지 전성기 때처럼 빛이 나질 않는다. 내가 찍었던(?) 여자친구가 녀석의 미소에 넘어가는 바람에 소주를 몇 병이나 마셨던 기억이 있는데 말이다.

40대가 20대보다 섹시한 이유는…

주름진 미소도 아름다웠던 만년의 오드리 헵번.


여자친구들은 사태가 더 심각하다. 대부분은 만사 포기하고 “나이 들면 어쩔 수 있니?” 하면서 아이 키우는 ‘아줌마’가 돼버렸다. 어떤 아이들은 늘씬한 20대 여자들이 주변을 지나갈 때마다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내쉬면서 절대로 다시 못 올 시절을 그리워하곤 한다. “너 대학생 때랑 똑같아”라는 선의의 거짓말에 속으면 다행인데, 그게 거짓말인 줄 꿰뚫어보는 친구들은 의학의 힘을 빌려 젊음을 되찾으려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들은 어느 선에서 멈춰야 할지를 모르는 바람에 대부분은 나이 든 얼굴에 수술로 인한 어색한 표정까지 더해져 상황만 더 악화시키곤 한다.
내 작위적인 조사 결과에 따르면 누구나 정신연령은 20대 초반쯤에서 멈추는 것 같다. 남자나 여자나 그 시절의 자신을 기억하고 추억하면서, 그때와 현재의 자신이 다름을 깨달을 때마다 좌절하고 낙담한다. 그 낙담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가사가 가슴에 와 닿을 무렵부터 가속되기 시작해서 뭔가를 포기하거나 아등바등 발버둥치게 만든다. 모든 비극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나이를 먹는다’는 건 포기할 일도 아니고, 발버둥칠 일도 아니다. 두 가지 모두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 아니 캡틴이 말했던 것처럼 ‘카르페디엠’, 즉 ‘현재에 충실하라’는 게 어쩌면 정답일지도 모른다. ‘카르페 디엠’은 흔히 ‘현재를 즐겨라’로 오역되곤 하는데, 그건 놀고먹으라는 얘기가 아니다. 과거나 미래보다도 지금 당장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말이다. 과거는 추억해야지 집착할 대상이 아니다. 집착하다가는 미래에도 지금과 똑같은 과거만 그리게 될 뿐이다.
섹스 칼럼에 이런 철학적인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만약 불로초라거나 그와 비슷한 묘약이 있어서 우리를 갓 스무 번째 생일이 지난 청춘 남녀로 되돌려놓았다고 치자. 우리는 그 또래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을까? 그 아이들과 같은 찬란한 젊은 시절을 즐길 수 있을까?

주름의 깊이와 지방의 두께는 섹스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40대가 20대보다 섹시한 이유는…

에곤 쉴레의 누드 드로잉 작품. ‘거울 앞의 누드 드로잉’


요즘 20대는 섹스에 무척 익숙하다. 성인이 된 이후로 10년 이상 성생활을 해온 내 또래 세대보다도 훨씬. 시청각 자료가 워낙 좋아서인지 그들은 서툴지도 않다. 우리보다 훨씬 버라이어티한 성생활을 즐기고 있다. 남자들뿐 아니라 여자들도 꽤나 즐길 줄 알 뿐 아니라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일 때문에 여대생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프로젝트의 부상으로 주어지는 여러 가지 경품 중에서 ‘호텔 숙박권’을 두고 수많은 여대생이 다툼을 벌이는 걸 보고는 놀란 적이 있다. 너무 대놓고 숙박권을 원하기에 무안해진 나는 “친구들끼리 파자마 파티 하려고 그러는구나~”하고 더듬수를 놓았는데, 그녀들은 아무 거리낌도 없이 “아뇨. 남자친구랑 가려고요”하고 답했다. 그녀들은 소개팅으로 만난 지 3일 만에 처음 잤다거나, 섹스가 별로 안 맞아서 헤어지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매우 쉽게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해도 그 또래는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때는 어땠을까? 먼저 그런 이야기를 쉽게 하는 여자도 없었고, 남녀 불문하고 섹스를 쉽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아마도 내 또래 여자가 스무 살의 몸으로 되돌아가 요즘 20대 사이에 낀다면, 컬쳐 쇼크 때문에 머리가 이상해지거나 너무 흥분해서 오버하는 바람에 몸이 만신창이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결국에는 ‘우리 때가 좋았다’면서 다시 우리 또래들에게 돌아오고 싶어질 것이다. 남자를 ‘늑대’로 보는 사람들은 우리가 성에 개방적인 20대 여자아이들 덕분에 행복해할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별로 매력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요즘 20대 여성의 발육은 서양 여성 못지않게 좋지만 생각이 너무 어리고, 우리가 어렸을 때보다 훨씬 어수룩하고 덜 여문 남자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런 애송이들을 ‘남자’로 인식한다는 건 제대로 성숙한 ‘여자’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섹스를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의식 있는 남자라면 그녀들에게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할 거다. 그런 점에서 나는 좀 더 세상을 잘 알고, 깊은 이야기도 나눌 줄 아는 30대 이상의 여자가 훨씬 섹시하다고 생각한다. 눈가에 주름이 좀 잡히더라도, 피부 아래에 지방이 좀 있더라도 별로 문제가 될 건 없다. 주름의 깊이와 지방의 두께가 섹스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니니까.
20대 시절의 몸매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무시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건강한 몸을 유지하겠다는 정도로 목표를 낮추는 게 더욱 긍정적이다. 20대 여자가 되고픈 40대 여자는 절대로 20대 여자를 이길 수 없지만, 자신의 나이에 맞는 매력을 갖춘 여자는 태어난 이후 몇 해를 살았건 간에 여전히 매력적이니까. 여자들 스스로 20대 ‘쭉빵녀’ 대신 오드리 헵번을 목표로 삼아보면 어떨까?



신동헌씨는 … 라틴어로 ‘카르페디엠’, 우리말로는 ‘현재에 충실하라’는 좌우명대로 하고 싶은 건 다 하면서 살고 있다. 결혼 3년째로 죽을 때까지 아내를 지루하지 않게 할 자신에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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