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할머니가 돼야죠.”
할머니? 40대 중반이란 사실도 겨우 믿을까, 말까 한 그가 “곱게 늙은 할머니”를 머지않은 장래 희망으로 꼽다니…. ‘너무 먼 일이 아닐까’라는 질문에 견미리(45)는 “큰딸이 대학교 1학년”이라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아이 셋 뒷바라지하며 정신없이 살다보니 나이드는 것도 몰라
그는 “덜 망가진 것”이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나이보다 더 젊어 보이는 건 누가 봐도 분명한 사실. “정신없이 살다보니” 나이 먹는 것도 잊게 된다는 그의 말엔 공감이 갔다. 배우임을 떠나 “딸 둘에 아들 하나 둔 엄마”란 점만 놓고 봐도 눈코 뜰 새가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돈 잘 버는 엄마니까 역할 분담을 해줄 만한 누군가는 있겠거니 했는데 “천만에”였다.
“밖에 있다가도 집에 일이 생기면 뛰어 들어가야 해요. 사실‘워킹맘’이라고 해서 가족이 양해해주는 경우는 별로 없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한 예로 견미리는 초등학교 4학년인 막내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예전에 비해 손이 많이 간다며 참관수업 등 이런저런 일화를 들려줬다.
유명인이니까 한두 번 빠져도 되지 않을까란 생각은 그저 기대일 뿐. 그는 “알려진 사람이기에 오히려 안 가면 자리가 더 비어 보인다”며 워킹맘으로서 고충을 토로했다.
그동안 쉼 없이 달려온 그는 지난해 드라마 ‘이산’ 종영 후 고3이 되는 큰딸 뒷바라지를 위해 한동안 전업주부로 살기로 다짐했다. “하느라고 했지만” 그래도 입시생을 둔 엄마로서 “가슴에 사무칠 일은 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쉬면서 엄마 역할에 ‘올인’하던 어느 날 한 편의 시나리오를 받았다. 그 작품이 최근 개봉된 영화 ‘거북이 달린다’다.
올해는 무조건 일 안 한다는 약속을 결국 깨고 만 데는 연출자의 집요한 설득도 한몫했지만 상대역을 맡은 배우가 김윤석이라는 게 결정적이었다.
“영화 ‘추격자’를 봐서 그런지, 김윤석이란 이름을 듣고 마음이 흔들렸어요. 게다가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형사라잖아요. 그가 무슨 마음을 먹고 또 형사를 하려는 걸까….”
세상의 엄마들이 살면서 자신의 이름을 잃어가듯 ‘거북이 달린다’에서 그가 맡은 인물도 형사 조필성의 아내 혹은 딸 옥순의 엄마로만 불린다. 그는 이름도, 성도 모르는 그 ‘무명씨 엄마’가 욕심이 났다고.
영화에서 견미리는 생활력 강한 대개의 엄마들처럼 ‘부끄러움을 잊은 채 숭숭 구멍난 사각팬티 바람’으로 초반부터 기선 제압에 나선다.
“형편의 문제가 아니랍니다. 내 것 하나 사느니 아이들, 남편 것 하나 더 사는 게 엄마들의 마음이거든요. 그래서 문득 보니 팬티에 구멍도 나 있고 그런 거예요, 엄마는.”
그에게 영화 ‘거북이 달린다’는 20년 만에 스크린 복귀라는,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 작품. 장황한 소감을 대신해 견미리는 “먼 훗날 아들과 함께 웃을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줬다”는 솔깃한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은 우리 아들이 이번 영화에 단역으로 두 번 출연해요. 간단한 대사도 있었는데 그게…, 잘렸더라고요(웃음). 조금은 실망하겠지만, 엄마도 처음엔 회당 출연료 5천원 받고 ‘지나가는 처녀1’로 나왔다고 알려줘야죠.”
그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나. 견미리는 MBC 공채 탤런트로 연예계에 데뷔한 84년을 떠올렸다. 동기생 김도연, 허윤정 등은 공채로 발탁되자마자 스타덤에 올랐다. 그에 비해 견미리는 1년 전속 계약기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처녀1’ 혹은 ‘가사 도우미’역으로 출연했다. 남들에 비해 출발은 화려하지 못했지만 당시 경험은 살면서 큰 밑거름이 됐다.
“별 욕심 없이 주어진 일을 꾸준히 한 것이 이제껏 연기를 하는 힘이 됐어요. 일에 지치지 않는 게 중요하고요. 오래 버티는 자가 결국엔 승리하는 것 아니겠어요(웃음).”
사실 그는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했다. 데뷔 계기를 물어보니 미스코리아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엄마가 다니는 미용실 원장이 원서 한번 내보라고 했던 게” 이 자리에 이르게 된 것이다.
“어머니가 ‘우리 딸이 설마 되겠어?’란 장난 반, 설렘 반의 심정으로 서류를 접수시킨 게 저를 배우로 만들었죠.”
욕심 없이 주어진 일 꾸준히 한 것이 성공 비결
그와의 인터뷰에는 특별한 손님들이 함께했다. 홍콩에서 온 그의 열성 팬들이었다.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3명의 여성은 인터뷰 내내 먼발치에 앉아 조용히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해외 팬들이 종종 찾아와요. 그러면 일정도 같이하고, 우리 식구하고 밥도 같이 먹고 그래요. 저보다 절 더 사랑하는 팬들이 있다는 게 참 행복한 일이죠.”
견미리가 많은 해외 팬을 확보하게 된 계기는‘대장금’ 덕분이었다. 한류열풍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1주일에 한 번꼴로 해외 이벤트에 참석했을 정도. 그는‘대장금’이 “연기자 생활의 전환점이 된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연기에 대한 책임감을 많이 느껴요.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한류는 제게 큰 자극제가 됐어요.”
견미리는 “요즘이 가장 연기하기에 좋은 나이”라고 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오랜 경험으로 얻은 것들을 마음껏 풀어놓을 수 있는 위치라는 것이다.‘거북이 달린다’에서도 역시 엄마를 맡았지만 “어쨌든 중견들의 설 자리가 점점 늘어나는 것은 고무적인 일 아니겠냐”며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거북이 달린다’ VIP 시사회 당시 제작사 측은 그에게 표 20장을 건네며 초대하고 싶은 사람을 부르라고 했다. 그는 소녀처럼 양 볼에 홍조를 띠우고는 “시사회를 하던 순간 창피했다”고 말했다.
“깜깜하게 불 꺼놓고 집중해서 보는 그 상황이 저로선 참 진땀나는 일이었어요. 20대 초반 TV에 나왔을 때 그 쑥스러움하고는 많이 다르더라고요. 냉정하게 평가받는다는 느낌?”
영화의 매력에 푹 빠진 견미리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엄마가 아닌 다른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예로 든 작품이‘마파도’. 할머니들 이야기가 아닌가. 견미리는 “실은 너무 하고 싶었던 영화다. 욕 걸쩍지근하게 하는 것도 자신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영화 개봉 후 그는 다시 엄마 노릇에 충실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바람일 뿐. 시청자와 관객들이 그를 집에 있도록 가만둘 리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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