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지(40)는 한때 남자들의 로망이었다. 리본 달린 의상에 장갑을 낀 채 노래하는 그를 질투하는 여성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청소년·군인 등 남성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고, 뒤이어 등장한 가녀린 외모의 한 가수는 “강수지를 벤치마킹했다”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이지연씨 이후 소녀 같은 이미지의 가수가 없었어요. 그때는 이선희, 이상은씨처럼 여자 팬이 많은 중성적인 이미지의 가수가 사랑받았고, 그들이 부러웠어요. 다행히 데뷔하자마자 좋은 반응이 나왔고 1집이 10만~20만 장, 2집이 40만 장 팔렸어요. 남자 가수로 치면 밀리언셀러급이었다고 해요.”
강수지는 90년 ‘보랏빛 향기’로 데뷔할 당시 프로듀서였던 윤상과 손잡고 최근 디지털 싱글앨범을 발표했다. 2002년 이후 7년 만이다. 앨범 타이틀곡 ‘잊으라니…’는 탱고풍 노래. 또 다른 곡 ‘길고 긴 하루’는 전형적인 윤상 표 발라드곡이다.
“앨범을 준비하다가 미국에서 유학 중인 윤상씨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바쁜 와중에도 흔쾌히 곡을 줘 고마워요. 윤상씨는 녹음 디렉팅을 할 때 무서운 편이에요. 그 때문에 예전에는 운 적도 있었죠. 발전된 모습으로 노래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신인 때처럼 긴장되더라고요(웃음).”
19년 전 가냘픈 소녀의 이미지가 여전하다는 말에 그는 “나는 오래전 가족을 살리겠다는 신념 하나로 1백달러를 들고 비행기 타고 와 서울에 몸을 던진 여자”라며 “나를 이슬 먹고 사는 여자로 보는 것은 편견”이라고 말했다.
전영록의 팬이던 강수지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가수가 꿈이었다고 한다. 쇼 프로그램을 볼 때면 ‘내가 저기에 서야 하는데’라는 생각에 TV를 끄곤 했다고. 그는 하남석의 노래 ‘밤에 떠난 여인’, 전영록의 ‘나그네길’에 대한 감상을 일기장에 적을 정도로 감성이 풍부했다고 한다. 그는 기타를 배웠고 단순한 멜로디의 곡도 습작했다. 중학교 졸업 후인 82년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갔지만 꿈은 외길이었다.
“지난 88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MBC ‘대학가요제’의 동부 예선에 참가했고, 이 대회에서 금상을 탔어요. 심사위원이던 송승환씨는 당시 미국 한인방송 라디오 DJ였는데,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친분을 쌓았죠. 제게 ‘가수가 되고 싶으면 서울로 와 연락하라’고 했어요. 89년 귀국해 전화를 걸었고 그 인연으로 2집까지 앨범을 제작해주셨어요.”
송승환의 주위에는 작곡가들이 많았는데, 그중 한명이 윤상이었다.
“윤상씨는 1집 때 노래 4곡을 줬어요. ‘흩어진 나날들’ 등 윤상씨가 쓴 곡은 지금 들어도 편곡이 세련됐어요. 전혀 촌스럽지가 않아 신기해요.”
강수지는 93년 4집 앨범 발표 후 일본으로 건너가서도 활동했다. 본격적으로 일본에 체류한 건 97년, 8집을 마친 후. 그곳에서 싱글앨범 두 장을 내고 예능 프로그램, 뮤지컬에도 출연했다.
“데뷔 때부터 일본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5년만 활동하면 자리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3년을 못 채우고 2000년에 돌아왔죠. 얼마 후 한류 바람이 불더라고요. 좋은 경험이었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그는 “다양한 음악 장르와 중견 가수를 수용하는 일본이 부러웠다”며 “국내에는 20년 된 가수의 공연을 기획해 줄 사람도 없고 출연할 방송 프로그램도 한정돼 있다. 요즘 활동하는 후배 가수를 보면 20년 후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아이 자라는 모습 곁에서 지켜보고 싶어 공백기 가져
공백이 길어진 데는 지난 2006년 이혼 후 일곱 살배기 딸 비비아나를 키우는 것이 이유가 됐다. 그는 “아이에게 시간을 많이 투자했다”며 “가수 김혜림씨가 ‘어머니(가수 나애심)가 어린 시절 내가 크는 걸 못 봐서 아쉬워하셨다’는 말을 듣고 연예인 엄마로서 그런 후회를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세 살 무렵까지는 단것을 안 먹이고 이유식에 소금도 안 넣었어요. 얼마 전까지 ‘이래라, 저래라’ 했는데 요즘은 ‘웬만큼 해야지, 너무 욕심 부린 게 아닐까’ 하고 생각이 변하더군요. 아이의 인성이 키워지는 시기인 만큼, 자립심을 갖도록 세 번 말할 것 두 번 하면서 아이에게 맡겨보려고요.”
딸이 가수가 된다고 하면 적극적인 지원을 해줄 것이냐고 묻자 “2~3년 전부터 내가 가수라는 걸 딸이 안다”며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딸이 휴대전화 벨소리 등을 통해 듣고는 ‘보랏빛 향기’를 불러 놀랐다. 노래에서 장조, 단조로 바뀌는 부분까지 잘 파악해 부르는 걸 보니 음치는 아니더라”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가수는 안 시키고 싶어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요를 안 들려줬어요. 음악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추억으로 남기려면 모르겠지만 평생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죠. 한동안 아이의 꿈이 가수였는데 요즘엔 곤충인 나비가 되고 싶대요(웃음). 수시로 딸의 꿈이 변하니까 좀 더 지켜본 뒤 지원해주려고요.”
딸에 대한 질문에 환한 표정으로 많은 얘기를 풀어놓던 그에게 조심스레 “이혼한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인생에서 몇 번의 위기는 찾아오죠. 이혼 후 많은 걸 느끼고 배웠어요. 삶을 바라보는 눈도 깊어졌고요. 후회할지는 앞으로 10년 더 있어봐야 알 것 같아요.”
앞으로의 음악활동에 대한 바람도 털어놓았다.
“걸레질도 못할 것 같은 이미지 때문에 ‘강수지와 여자로서 인생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갖는 분들이 많아요. 아이를 낳은 지금은 주부 등 중장년층 여성과 공감대가 많이 형성될 것 같아요. 공연을 열어 노래와 대화를 통해 많은 여성들과 시대를 공유하고 싶어요.”
그는 5월께 미니앨범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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