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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유있는 변신

이순의 작가, 이경자

여성의 몸, 그리고 성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다

글·김명희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2008. 10. 21

작가 이경자가 ‘야한 소설’을 펴내 화제다. 신작 ‘귀비의 남자’에서 그는 결혼이라는 제도와 통념을 넘어선 남녀의 근원적인 사랑을 그린다. 그는 그동안 이혼을 하고, 성의 현장에서도 물러나는 변화를 겪으며 훨씬 자유로운 입장에서 결혼과 사랑, 성을 조망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이순의 작가, 이경자

귀비는 샤워를 했다. 젖은 머리와 몸을 수건으로 닦으며 거울 앞에 섰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자신의 몸과 마주했다. 싱긋 웃었다. 저 몸… 귀비는 미소를 머금고 생각했다. 풍성해도 결코 둔하지 않은 자신의 몸과 마주할 때면 언제나 기쁨이 샘솟았다. 눈가 아래쪽 여린 살갗이 살짝 늘어져 그 곁에 세월이 고여 있었다. 귀비는 입술을 꾹 다물고 숨 한 번 크게 쉰 뒤에, 좋아, 속으로 말했다. 살아낸 세월도 자신의 재산이고 자랑이라 여겼다. - ‘귀비의 남자’ 본문 중

작가 이경자(60)의 신작 소설 ‘귀비의 남자’ 첫 장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귀비는 의료사고 후 정신분열 증세를 보여 요양원에 머물고 있는 의사 남편을 대신해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며 시어머니와 두 아이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40대 여성이다. 일단 자신의 몸에 자부심을 느끼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여름의 열기가 다 가시지 않은 날,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작가에게 이에 대해 묻자 그는 “여성은 누구나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꽃이다. 미운 꽃이 어디 있나. 여성들에게 ‘당신은 더없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혼과 나이듦이 억압의 틀에서 벗어나게 해
귀비는 남편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의기소침해하지 않는다.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들과 관계를 즐기면서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더 나아가 삶의 무게에 눌려 남성으로서의 본능을 잃어가는 남자들을 구원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귀비라는 이름은 당 현종을 사로잡은 여자 양귀비에서 “성은 버리고 이름만 따온 것”이라고 한다.
“중국 드라마 ‘양귀비’를 여러 번 보면서 현종이 양귀비에 사로잡힌 원인을 연구한 결과 그녀가 제도화되지 않은, 자연에 가까운 여성이기 때문이란 결론을 내렸어요. 어머니처럼 무한한 사랑을 베풀기 때문에 남성들이 종국에는 머물고 싶어 하는. 아무리 뜨겁게 사랑하던 연인도 결혼이라는 제도, 또는 이해관계로 묶이면 사랑의 감정이 시들해지기 마련이잖아요.”
이순의 작가, 이경자

귀비는 거슬거슬한 거웃과 거무튀튀한 생식기와 허벅지 안팎과 주름이 펴진 무릎과 낡은 종아리와 발목과 발등과 열 개의 발가락에 입을 맞췄다. 천천히, 샅샅이, 축축하지만 질척이지 않는 따뜻함으로 … 한 남자의 … 찔리고 물리고 베이고 긁히고 데였을 생의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흔적들에 입을 맞췄다. - ‘귀비의 남자’ 본문 중

작품에는 남녀 간 사랑의 장면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작가는 “화가도 어느 시점이 되면 춘화를 그리지 않나, 이 소설은 잘 그린 춘화 같은 작품이다.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 여성의 질과 성기를 어떻게 묘사했나, 귀비가 남자의 몸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어떻게 더듬나 같은 부분을 눈여겨 봐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100% 밀도 있는 성관계를 그리고 싶었어요. 몸에 스며드는 비처럼 부드러운. 혹자는 통속소설이라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통속이란 개념은 제도가 만들어낸 것이지, 남녀 간 사랑에 근원적으로 존재하는 개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는 이 소설을 탈고한 후 비로서 가슴 속에 묵혀두었던 오랜 숙제를 푼 듯한 홀가분함을 느꼈다고 한다.
“여성으로 태어나 남성과 만나 아이를 낳고 결혼생활을 하면서 느낀 건,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기본적이고 생물학적인 욕구가 왜곡돼 있다는 점이었어요. 하지만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은 이 문제를 드러내기 어려웠죠. 그런 숙제를 풀지 못한 채 나이를 먹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고, 남자와 신체 접촉을 한 지도 몇년이 흘러, 이제 무심히 그곳을 들여다 보고 말할 수 있게 됐죠.”

이순의 작가, 이경자

이혼 후 젊어지고 우울증도 없어져
이경자 작가는 80년대 말 장안의 화제를 모은 소설 ‘절반의 실패’를 통해 페미니스트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선 공격적인 페미니즘 성향이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남성에 대한 애틋한 시선이 엿보인다.
“‘절반의 실패’를 집필할 당시는 누군가가 여성의 편에서 도전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야만 했어요. 저 역시 딸 많은 집의 맏딸로 때어나 종갓집 맏며느리로 살면서 두 딸을 낳아 기르는 동안 가부장제와 가족제도, 남녀 차별의 모순을 온몸으로 느꼈고 분노에 차 있었죠. 누군가가 투쟁을 하지 않으면 남성우월주의를 뒤집을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었잖아요. 이제는 그런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의 이경자로 받아들여주면 좋겠어요.”
그는 2003년 30년 가까운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자신을 얽매던 결혼제도에서 벗어나니, 젊어진 듯하고 우울증도 없어졌다고 한다.
“결혼생활을 할 때는 제가 가진 시간과 노력의 70%를 작품활동에 할애하면서도 늘 무언가에 쫓기는 듯했는데 이제는 90%를 쓰면서도 생활에 여유가 있고 마음이 편안해요.”
결혼했을 때는 소설 쓸 시간이 아쉬워 마치 소설과 불륜을 저지르는 듯했는데 이혼을 하니, 소설과 결혼한 것 같아 행복하다는 작가 이경자. 그는 재능을 타고난 작가일 뿐 아니라, 글쓰기를 열정적으로 사랑한다. 강원도 양양여고 재학시절 숙명여대에서 실시한 고등학생 소설 공모전에 응시한 그의 글을 본 심사위원 김동리·강신재 선생이 “이경자를 꼭 만나봐야겠다”고 했다고 한다. 진짜 고등학생이 쓴 글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던 것. 심사위원들의 고집(?)으로 뜻하지 않게 생전 처음 서울 나들이를 했던 그는 지금도 글쓰기를 위해 체력을 키우고 일과를 조절한다고.
“심사위원들이 ‘글 쓰는 재주는 있으나 작가로서의 기본적인 소양이 부족하다’는 평을 하셨더라고요. 제가 원고지를 묶지 않고 그냥 낱장으로 제출했는데 그게 선생님들께는 성의 없어 보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저는 원고지를 묶어서 제출해야 한다는 것조차 몰랐어요. 누구한테 글쓰기를 배운 적도 없을뿐더러, 그전까지 한 번도 소설이란 걸 써본 적이 없었거든요.”
둘째 딸과 함께 서울 길음동에 살고 있는 그의 하루는 새벽 5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오전엔 아침밥을 먹고 낮 12시까지 작품을 쓰다가 오후엔 북한산에 올라 저녁 무렵까지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 등산은 집필활동의 연속이다.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친다는 것.
“전에는 낮에 산에 오르는 남자들이 주뼛주뼛 부끄러워했는데 요즘엔 당당하더라고요. 명예퇴직이나 실직이 일상적인 일이 됐으니까요. 저희 집 앞에 아파트 재개발 현장이 있는데 철거 때부터 유심히 관찰했어요.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일용직 노동자들일 텐데, 저 공사가 다 끝나면 그들은 또 어디서 일할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회사에서 시달리고, 집에서도 치이고, 대한민국 남자들 참 불쌍해요. 불쌍해서 연민이 생겨요.”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딸들 보며 다행이란 생각 들었어요”
글쓰기, 등산과 함께 그의 삶을 지탱하는 또 다른 큰 축은 두 딸이다. 큰딸은 대일외고·서울대를 거쳐 미국 워싱턴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고, 둘째 딸 역시 정보기술 관련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다. 자녀교육에 성공한 비결을 묻자 “아이들에게 어떻게 살라고 강요한 적은 없다. 무엇이든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하게 했다”고 말했다.
“언제나 선택은 아이들의 몫이었죠. 선택에 대한 책임도 자신들이 지도록 했고요. 아이들에게 ‘공부 잘해서 성공하라’는 식의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일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여성도 자신의 삶을 책임지려면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은 것 같아요.”
그는 또 “늘 책을 가까이한 점도 아이들 교육에 도움이 됐다. 아이들이 지금도 그 점에 대해 고맙게 여긴다”고 말했다.
이순의 작가, 이경자

“서점에 다닐 땐 늘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어요. 제가 항상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책과 가까워진 게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두 딸은 어느덧 결혼할 나이가 됐다. 그는 이혼한 자신의 영향으로 딸들이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면 어떡하나 걱정됐다고 한다. “다행히” 딸들은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저 자신이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잘못한 부분도 많을 거예요. 그래서 결혼이 불행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까봐 걱정되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렇진 않은 것 같더라고요. 아이들에게는 네가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하라고 말했지만 내심 ‘배우자감을 잘못 고르면 어떡하나’ 걱정되기도 해요.”
그래서 그가 아이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쌀과 밥’ 이론이다. 오늘 아침에도 둘째 딸에게 그 이론을 ‘세뇌’하고 나왔다고.
“연애는 쌀이고 결혼은 밥이에요. 아무리 좋은 쌀을 골랐다 해도 좋은 솥과 적당한 물, 불, 정성 등이 어우러지지 않으면 좋은 밥을 지을 수 없는 것처럼 결혼생활도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 외에 주변의 여러 환경이 맞아야 행복할 수 있죠.”
하루에 원고지 15~20장의 글을 쓴다는 작가는 더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도 다음 날의 짜릿한 즐거움을 위해 아껴둔다고 한다. 조만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을 낼 계획이라는 그의 열정이 놀랍고 존경스럽다.
“암탉의 배를 가르면 아직 밖으로 내보내지 않은 알들이 꽉 차 있는 것처럼 제 안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요. 그 이야기들을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풀어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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