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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명문대 합격생의 공부 노하우 2

미국 프린스턴대 합격한 반휘민

조기유학 후 찾아온 슬럼프 극복하고

기획·송화선 기자 / 글·조정현‘자유기고가’ / 사진·박해윤 기자

2008. 05. 14

최근 프린스턴대 경제학과에 합격한 반휘민군은 호주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귀국한 뒤 한국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더 넓은 세계를 만나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성실히 노력한 끝에 합격의 영광을 안은 그를 만났다.

미국 프린스턴대 합격한 반휘민

올해 한국외국어대부속외고를 졸업하고 미국 명문 프린스턴대 경제학과에 합격한 반휘민군(19)은 원어민 수준의 영어 실력을 자랑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러시아특파원 발령을 받은 신문기자 아버지를 따라 현지에서 살면서 영국 학교에 1년간 다닌 것이 실력의 바탕이 됐다.
“러시아에서는 겨우 학교에 적응하고 영어에 익숙해지기 시작할 무렵 떠나야 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영어공부를 한 건 우리나라에 온 다음부터였어요. 영어를 잊지 않으려고 집에 늘 CNN이나 AFKN 같은 미국 방송을 틀어놓았고, 외국인 강사가 있는 학원에 다녔죠.”
마침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호주로 연수를 가게 되면서 그는 다시 한 번 외국 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번엔 4년간 우리나라에서 갈고닦은 영어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많은 호주 친구들을 사귀었고, 덕분에 영어에 한층 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아버지의 연수가 끝나면서 1년 만에 한국에 돌아오게 됐다.
“어머니가 초등학교 선생님인데, 한국에 돌아올 때 제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중학교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 거라고요. 처음엔 그게 무슨 말씀인지 몰랐는데 또래들이 공부하는 내용을 보니 저와는 수준이 다르더군요.”
휘민군은 호주에서 수학·과학 과목 성적이 상위 1% 안에 들 만큼 뛰어난 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교과서 내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문·사회 등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할 것 같아 한 달간 개인 공부를 한 뒤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그러고도 한동안 적응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수학공부는 가장 쉬운 문제집을 푸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수학의 개념원리를 익힌 뒤엔 한 단계 어려운 문제집을 찾아 풀었고요. 그렇게 하다 보니 조금씩 실력이 쌓여갔죠. 수학은 기본 개념을 이해하는 게 가장 중요한 과목이잖아요. 기초가 부족하면 어떤 문제도 풀 수 없으니까 좀 늦는 것 같아도 학교 공부 위주로 탄탄하게 중요 원리를 깨쳐나가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사회와 과학도 자신만의 비법으로 공부했다. 교과서를 외우려 하지 않고 내용이 이해될 때까지 반복해 읽은 것. 그는 “처음에는 중요한 부분만 외우는 것에 비해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책을 반복해 읽으면 두 번째는 좀 빨라지고 세 번째는 더 빨라진다”며 “그렇게 소설 읽듯 계속 읽어가는 과정에서 내용에 대한 큰 틀이 잡히면 모든 내용이 훨씬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1학기 기말시험에서 60점을 받았을 정도로 최악의 수준이던 한문은 교과서를 무조건 외우는 방법으로 공부했다고 한다.

교과서에 충실하면서 성실하고 꼼꼼하게 공부해 슬럼프 극복
휘민군이 가장 자신 있는 과목이던 영어도 초반에는 그를 힘들게 했다. 일상생활에서 말하기·듣기 위주로 공부한 그에게 문법은 새로운 분야였던 것. 게다가 주관식 문제의 경우 교과서 내용과 똑같은 답을 쓰지 않으면 문법적으로 맞는 것조차 틀린 것으로 간주돼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주관식 문제를 꼭 한두 개씩 틀리곤 했죠. 처음엔 그게 너무 억울했는데, 나중엔 그 부분에도 적응됐어요. 그래서 중학교 2학년 때부터는 전교 10등 밖으로 벗어나지 않을 만큼 성적이 많이 올랐죠.”
그는 중학교 졸업 뒤 한국외국어대부속외고에 진학했다. 어린 시절 러시아와 호주에서 생활하면서 미국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는 꿈을 키웠기 때문. 휘민군은 귀국 초기 슬럼프에 빠졌을 때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려면 지금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미국 프린스턴대 합격한 반휘민

“처음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도 쟁쟁한 실력을 갖춘 친구들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며 공부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힘들 때면 늘 제 꿈을 생각했죠.”
그는 고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학교 수업과 교과서에 충실하면서 성실하게 공부했다고 한다. 수업을 마치고 저녁밥을 먹은 뒤엔 늘 책상에 앉아 공부를 했다. 평소에는 수업내용을 예습·복습하는 데 집중하고, 시험은 2주일 전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했다고 한다. 먼저 가장 어려운 과목을 공부하고, 그다음에는 두 번째로 어려운 과목을 공부하는 식으로 순서를 정해 책을 읽은 뒤 모든 과목을 한 번 끝내면 역순으로 다시 한 번 반복하는 방식이었다.
“평소에 그날 배운 건 그날 꼭 알고 넘어가려고 했기 때문에 시험공부를 할 때 상대적으로 편했어요. 가끔씩 공부 계획을 어기고 친구들과 논 적도 있지만, 그럴 때도 대비책은 꼭 마련해뒀죠(웃음). 제가 좋은 성적을 받은 건 매일매일 꾸준히 한 복습 덕분인 것 같아요.”
그는 공부하는 틈틈이 과외활동도 열심히 했다. 특히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네팔에서 한 달간 자원봉사를 한 경험은 그에게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해줬다고 한다. 국제기아대책기구 자원봉사자로 활동한 휘민군은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했는데, 6~7세 어린이들이 하루 종일 벽돌을 나르는 등 궂은 일을 하면서 겨우 미화 1달러 정도를 버는 모습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고. 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일하면서도 가난을 극복하지 못하는 이들의 삶을 보며,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휘민군은 재학 중 모의 유엔대회에 수차례 참가해 세계 각국의 청소년 대표들과 사회·경제 현안들에 대해 토론했고, 유엔을 비롯해 세계 곳곳으로 발송되는 북한인권 전문계간지 ‘생명과 인권’에 수록되는 각종 보고서를 번역하는 자원봉사도 했다.
“아버지가 신문기자여서 어릴 때부터 뉴스를 많이 접하면서 세상의 다양한 모습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저와 다른 환경에서 사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떠났던 네팔 봉사활동에서 제가 해야 할 일을 찾게 됐죠. 프린스턴대에서 개발경제학을 전공한 뒤 경제 관련 국제기구에서 일하며 사회갈등의 원인인 극빈을 줄여나가는 일에 앞장서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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