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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정윤숙 기자의 Shopping Essay

섹시하고픈 욕심이 빚어낸 속옷 사냥

|| ■ 일러스트·정윤숙

2008. 04. 09

섹시하고픈 욕심이 빚어낸 속옷 사냥

요즘 여자 연예인들이 속옷 사업으로 높은 수익을 올린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옵니다. 어떤 연예인은 속옷 사업으로 ‘억’소리 나게 벌었다 하고, 어떤 연예인은 패션 사업에서 시작해 속옷 사업으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린다고 하더라고요. 평소 ‘속옷이야 뭐 대충 편한 것만 입으면 되는 거 아닌가’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저는 이런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었어요. 속옷 사업이 어떻게 그리 큰돈이 될까 싶기도 하고, 입어보고 살 수 없는 속옷을 방송만 보고 누가 살까 싶어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지요.
그런데 “나이 드니 빨간색이 좋아진다”는 말처럼 이제 만으로 따져도 더 이상 20대가 되지 않는 30대가 되고보니, 속옷에 은근히 관심이 쏠리더라고요. 항상 속옷은 편한 게 최고라는 생각에서 살색 누드브라와 누드팬티만 입던 제가 갑자기 화려한 레이스 속옷을 입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 뭐예요. 집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던 어느 날, 홈쇼핑 채널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던 중 눈에 번쩍 들어오는 아이템이 있었으니 바로 평소 스타일리시하기로 소문난 연예인 L모씨의 속옷 방송이었어요.(홈쇼핑 방송이 생긴 지 얼마 안 돼 호황을 누리던 시절, 대량생산과 묶음판매의 허와 실을 그대로 느끼게 해준 국내 한 브랜드의 속옷을 세트로 구입한 이후로는 홈쇼핑 제품을 사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귀엽고 깜찍하면서도 섹시한 느낌이 드는 컬러풀한 레이스 속옷들을 보고 있노라니 갖고 싶다는 사심이 드는 것은 물론, 곧 매진된다는 쇼핑호스트의 음성은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해야 할 정도로 손에 땀을 쥐게 만들더라고요. 그러는 사이, 거짓말처럼 거의 전 사이즈가 매진되어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단계에 이르고 말았죠. 군침을 흘리다가 입맛만 다시는 꼴이 되고만 저는 갑자기 놓친 속옷이 아깝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대박세일을 하는 것도, 그렇다고 공짜로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홈쇼핑의 위력은 바로 이런 ‘보이지 않는 경쟁심 유발’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밤, 또다시 홈쇼핑 채널을 돌리던 저는 맘에 쏙 드는 속옷을 발견하고는 살까 말까를 다시 한 번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입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구입하지? 저게 과연 잘 맞을까? 가슴 부위가 들뜨거나 와이어가 딱딱하면 어떡하지? 생각보다 조잡한 디자인이면 어떡하지?…’ 등등의 걱정거리는 어느새 사라지고 쇼핑호스트의 멘트가 귀에 쏙쏙 들어오면서 저는 자신도 모르게 전화기의 버튼을 누르고 말았답니다. 물론 이제 홈쇼핑 방송도 오래됐으니 질도 개선됐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심리도 한몫했죠. 며칠 후 드디어 고대하던 속옷이 배달되어 왔습니다. 세트로 묶여 있어 어쩔 수 없이 함께 온, 매끈한 실크인 ‘척’ 하는 파자마 팬츠와 레이스가 잔뜩 붙어 있어 마땅찮았던 톱까지 들어있더라고요.
하나씩 풀어보는 데만 해도 시간이 꽤 걸릴 정도로 한번에 구입한 것치고는 많은 양이었지만, 이번 것은 성공적인 쇼핑이라고 결론지었답니다. 일단 가장 걱정했던 질 부분에서 나쁘지 않았고, 사이즈나 디자인이 몸에 잘 맞는 것도 좋았어요. 무엇보다 예전 같으면 절대 사지 않았을 레이스와 화려한 프린트가 흐드러진 이 속옷이 여성스럽게(?) 변해가는 제 취향을 반영한 첫 번째 속옷이 된 것에 합격점을 주고 싶었어요. 이 속옷을 입고 외출한 이후로는 겉옷처럼 속옷도 어떤 스타일을 입느냐에 따라 스스로 행동거지가 달라진다는 걸 느끼게 되었어요. 예전에 심플한 디자인만 입었을 때는 느끼지 못하던, 좀더 여성스러운 느낌을 갖게 됐다고나 할까요? 아무리 봐도 섹시함과는 거리가 먼 제가, 섹시하고픈 욕망에 사로잡혀 구입하게 된 레이스 속옷. 언젠가 프린세스 탐탐이나 빅토리아 시크릿 매장에서 구입한 온통 레이스로 된 아름다운 속옷을 입게 되는 그날까지, 이 속옷을 입을 때마다 주문처럼 ‘나는 섹시하다’라는 착각에 빠져 지내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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