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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유인경의 Happy Talk

괜찮아, 나이 들어도 재미있는 일은 많아!

입력 2008.03.18 14:01:00

괜찮아, 나이 들어도 재미있는 일은 많아!

금동원, 사유의 숲-꽃 이야기(좌) 금동원, 아름다움의 시원-꽃 이야기(우)


요즘 본의 아니게 자원봉사거리가 생겼다. 중년 남성들의 상담을 들어주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골프나 와인 경험담으로 잘난 척하거나 “돈 많고 섹시한 과부 있으면 소개시켜달라” 등 철없는 농담을 하던 아저씨들이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아내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주변 남성들의 부인들이 ‘갱년기 우울증’ 증세를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증세는 참으로 다채로우면서도 비슷했다.
대학교수인 남성은 부인과의 잠자리가 아니라 잠드는 시간 차 때문에 괴롭다고 했다.
“난 주로 밤이 돼야 머리가 맑아지고 집중이 잘돼요. 새벽 2, 3시까지 책을 읽거나 원고를 쓸 때가 많죠. 서재에서 혼자 음악을 듣거나 DVD를 보기도 하고요. 그런데 1, 2년 전부터 집사람은 초저녁에 잠들기 시작해 새벽 2, 3시에 일어납니다. 내가 일을 마치고 잠들기 시작할 때 깨어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더니 최근엔 꺼이꺼이 울기까지 해요. 난 피곤하고 졸리고, 다음 날 활동을 하려면 서너 시간이라도 잠을 자야 하는데 귀신처럼 집안을 돌아다니고 하염없이 우니 잘 수가 있나요. 처음엔 무슨 일이냐, 내가 어떻게 해줄까 등 말을 건네고 안아도 줬지만 ‘다 필요 없다, 죽고 싶다’란 말만 해요. 병원에 가보자고 하면 ‘나를 정신병자로 몰고 가냐?’고 화를 내고, 저녁 8시 정도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해 함께 저녁식사를 하거나 친지들과 즐겁게 외식을 하기도 힘들어요. 요즘은 나까지 불면증이 생겨 몸과 마음이 지치는데 대체 어떡해야 합니까?”

갱년기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아내들
사업을 하는 한 남성의 아내는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사소한 일에도 벌컥 화를 내는 ‘시한폭탄’처럼 변했다고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애교만점에 살림도 야무지게 했던 사랑스런 부인이 50세가 되더니 고양이에서 호랑이로 변해 숨이 막힐 정도라며 하소연이다.
“전엔 외출도 자주 하던 마누라가 요즘은 하루 종일 누워 있어요. 집에 들어가도 인사도 하지 않고, 밥 달라고 하면 마구 짜증을 내면서 그릇에 덜지도 않고 반찬통째 대충 상을 차려요. 텔레비전도 뉴스나 스포츠를 보려고 하면 드라마로 채널을 돌려요. 그래서 거실에 있는 텔레비전을 보려고 방을 나가려 하면 ‘그렇게 잠시도 내 옆에 있기 싫냐?’고 울먹거려요. 신문을 보면 신문지 바스락거리는 소리 거슬린다고 시비를 걸어서 궁리 끝에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만화책을 잔뜩 빌려다 보기 시작했어요.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해야 하는지 숨이 막혀요.”
직장에 다니다 명예퇴직을 한 부인을 둔 남성은 얼굴에 병색이 완연했다.
“아내가 회사 다닐 때는 명랑한 성격이었어요. 업무 능력도 인정받고 직장 동료들과도 잘 지낸 걸로 알아요. 명예퇴직도 본인이 결정한 거예요. 제법 많은 퇴직금을 받고 그만뒀죠. 퇴직 후 몇 달 동안은 그간 만나지 못한 동창들도 만나고 가족여행도 다녀오고 했는데 요즘은 마치 자폐증 환자 같아요. 통 말도 없고 혼자 낮술을 마시는지 집에 가보면 취해 있는 날이 많아요. 그래서 문화센터라도 다니라고 했더니 그것도 싫답니다. 걱정을 넘어 이제는 무서워요.”

괜찮아, 나이 들어도 재미있는 일은 많아!

금동원, 아름다움의 시원-꽃 이야기


중년남성들은 대부분 아내의 갱년기 우울증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저러냐?”며 자신은 가해자가 아니라며 억울해했다. 물론 꼬박꼬박 돈도 벌어주고, 바람도 피우지 않는 남편들로서는 아내의 그런 변화와 행동이 황당하고 혼란스러울 거다. 하지만 갱년기 우울증을 겪는 아내들은 다 이유가 있다.
“30여 년을 지긋지긋하게 한 생리가 어느 날 끝났을 때, 시원한 게 아니라 너무 서글프더군요. 여성이 끝난 폐경이 아니라 여성으로 완성된 ‘완경’이란 표현을 쓰라고도 하지만 더 이상 여자가 아니란 느낌이 들며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았어요. 생리도 안하고, 주름살은 늘고, 돋보기 없이는 화장품 설명서도 못 읽는 낡고 추한 몸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게 서글펐어요. 그럼 예쁘고 찬란한 시절엔 뭐하고 살았나, 내가 해놓은 게 뭔가란 허망함도 크고요. 남편과 아이들은 각자 바쁘고 나만 외딴섬 같아요.”
“예전엔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가슴 떨리는 일이 많았는데 이젠 그게 없어요. 다 가지고 다 이뤄서 그런 게 아니라 모두 부질없고 속절없다 싶어요. 아들이 서울대에 합격했을 땐 올림픽 금메달이나 훈장을 받은 것보다 더 자랑스러웠는데 그 아들은 대학생이 되고부터는 얼굴 보기도 힘들고, 남편은 잔소리가 심해진 영감으로 변해가고…. 예쁜 커피잔 하나를 사고 며칠 동안 행복했던 시절이 언제였는지, 남편의 손길에 온몸이 떨리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나요. 더 늙기 전에 죽고 싶어요.”

비난은 금물, 다정한 위로와 수다가 약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청소년기에 사춘기를 앓듯 갱년기엔 우울증을 앓는다. 다만 남들이 보기에도 안쓰럽고, 자신도 불행하게 만드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이들은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자아가 강하고, 완벽주의자에, 모범생 타입이란 것이다. 자신에 대한 기대가 크고, 자신의 역할에 대한 자부심이 큰 이들일수록 현실이 배반할 때 커다란 상처를 받고 우울증 증세를 보인다. 나처럼 평소에 대충대충 살고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에 관대한 여성들은 자신이 망가지거나 허물어져도 ‘그럴 수 있지 뭐’라고 받아들인다. 흰머리, 주름살, 뱃살, 노안, 어깨 결림, 관절염 등이 패키지로 닥쳐와도 누구나 경험하는 통과의례로 여기거나 다른 친구에 비해 내 똥배는 덜 나왔음을 행복해한다.
그러나 그게 어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성격인가. 40~50여 년을 “아님 말고” 등의 낙천적 유전자로 살아오거나 초년에 천둥 벼락같은 엄청난 시련을 겪어 내공이 다져져야 가능한 일이다. 혹시 우울증에 시달리는 친구나 선배가 있다면 “뭐가 부족해서 그러니? 호강에 겨워 난리구나” “네가 배가 불러서 그렇다” 등의 비난이나 “힘내라” 등의 대책 없는 말은 오히려 독약이 된다. 곁에서 해줄 수 있는 말은 “괜찮아, 괜찮아”란 위로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또 주변의 다정한 위로와 한줌의 햇살, 그리고 약간의 수다가 갱년기 우울증을 이겨내는 약이다. 나는 아직 갱년기 우울증 증세를 보이지 않지만 미리 스스로에게 예방약을 먹여준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괜찮아, 나이 들어도 재미있는 일은 많아. 괜찮아, 할머니가 돼도 난 유쾌하게 살 거야.

괜찮아, 나이 들어도 재미있는 일은 많아!

유인경씨는… 경향신문사에서 선임 기자로 일하며 인터뷰 섹션을 맡아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직장 여성에 관한 책도 준비 중으로 성공이나 행복을 위한 가이드북이 아니라 웃으며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는 실수담이나 실패담을 담을 예정이다. 그의 홈페이지 (www.soodasooda.com)에 가면 그가 쓴 칼럼과 기사를 읽어볼 수 있다.





여성동아 2008년 3월 5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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