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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긍정의 힘

북한산 계곡 오리 가족이 준 교훈

글·권혜수‘작가’

2008. 01. 10

국민 레포츠가 된 등산을 아파트 뒷산 정도나 오르며 부러워하다가, 지난 4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장비를 갖추고 남편 등산모임을 따라 매주 토요일 산 순례에 나선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처음엔 정말 힘들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가파른 호흡이 온 산을 흔들었다. 한번 쉬자면 허리를 90도로 꺾고 목젖까지 차오른 가쁜 숨을 내쉬어야 했다. 중간에 주저앉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자일을 잡고 곡예하듯 오르내려야 하는 가파른 암벽 앞에서는 도저히 못 올라갈 것 같아 속으로 주춤주춤 물러선 것도 여러 번이었다. 그때마다 당신도 할 수 있다는 남편의 응원과 격려가 큰 힘이 됐지만, 그보다 내게 힘이 된 것은 지금 능숙하게 산을 오르는 저 사람들도 ‘첫걸음’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 처음에는 그들도 나처럼 겁내고 힘들었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자기 안의 두려움을 극복한 사람들이었다.
더워지면서는 숨이 턱턱 막히고, 땀이 그야말로 머리꼭지에서 물을 붓기라도 하듯 줄줄 흘렀다. 아주머니며 아이들까지 뽀송뽀송한 얼굴로 가뿐가뿐 오르는 것을 볼 때는 부러움을 넘어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한 아주머니에게 ‘어떻게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그렇게 잘 오르세요?’ 했더니 ‘나도 속은 다 젖었어요. 힘도 들고요’ 한다. ‘아, 그렇구나. 겉보기에는 편안하고 수월해 보여도 저 사람들도 나름대로 다 힘들고 버겁구나’. 인생의 가장 단순한 진리를 새삼 깨닫는 순간이다.
등산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정상에 오른 뒤의 장쾌함과 성취감일 것이다. 갑자기 기적처럼 탁 트이는 시야, 온몸으로 맞이하는 바람의 상쾌함, 포기하지 않고 뭔가 인생의 어려운 한 단계를 극복해낸 것 같은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 그 가운데서 엉덩이를 깔고 앉아 마시는 한 잔의 막걸리나 뜨거운 커피, 오이 몇 조각은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환상적이다.

“고통은 우리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영원히 불공평하고 불합리한 괴물”
산은 오를 때와 내려올 때의 모습이 많이 다르다. 산을 내려올 때면 비로소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산의 많은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 올라갈 땐 저게 없었는데. 저건 보지 못했잖아. 내려오는 길이 생각보다 머네….’ 산이 감추고 있는 풍성한 속살과 아기자기한 솔기가 비로소 온몸으로 느껴지고 보인다. 위태로운 길목에 서서 수많은 사람이 붙잡은 손 때로 반들반들 닳은 나무의 감촉을 접할 때는 특히 감동이 크다. 비록 볼품은 없지만 이 나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안전을 지켜주었을까? ‘나무야 고맙다!’ 절로 등을 한 번 두드려주게 된다.
북한산 백운대를 다녀오던 날이다. 산을 거의 내려온 길가에 수십 명의 사람이 웅성웅성 서서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해서 우리 일행도 고개를 디밀어보았다.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며 시선을 잡고 있는 것은 오리 가족이었다. 어미 오리 한 마리와 새끼 오리 세 마리였다. 자그마하고 군살 없이 날렵한 몸이 집오리 같지는 않고 야생인 것 같았다. 우리나라처럼 보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나라에서 그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계곡에 야생 오리가 살아 있다는 자체가 신기했다. 처음에는 그 신기함 때문이려니 했는데 조금 보니 그게 아니었다. 운동선수들의 발짓, 몸짓 하나에 일희일비 하듯 사람들은 오리 가족의 행동 하나하나에 환호와 탄성을 짓고 있었다. 디카에, 휴대전화 촬영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계곡 끝자락이라 물이 얼마 되지 않았다. 그 물길을 따라 앞선 어미와 달걀보다 조금 더 큰 새끼 세 마리는 종종종 내려오다가 조그만 웅덩이를 만나면 빙그르르 돌았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앙증맞고 귀엽던지 정말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때 갑자기 오리 가족의 행동이 민첩해졌다. 어디선가 나타난 까치 두 마리가 오리 새끼를 노리고 공격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어미는 새끼들을 보호하며 까치를 쫓았다. 게다가 계곡 앞길은 번번이 낭떠러지였다. 사람에게는 별것 아닌 높이였지만 오리에게는 천길 단애였다. 낭떠러지가 나타날 때마다 오리 가족이 어떻게 할까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그때마다 오리들은 정면 돌파였다. 어미가 새끼들을 격려하듯 한 번 돌아보고 가차 없이 낭떠러지 아래로 뛰어내리면 새끼들도 거침없이 어미를 따라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뒤뚱, 한 번 하고는 어느 한 놈도 다치거나 뒤처지지 않고 씩씩하게 행렬을 이루어 어미를 따라 또 앞으로 나아갔다.
무려 세 번이나 오리 가족은 우리에게 감동적인 곡예를 선보였다. 곡예라고 했지만 오리에게는 생사를 건 전진이었을 것이다. 공중에는 까치가 호시탐탐 새끼를 삼키려 위협하고 앞은 천길 낭떠러지. 어미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지르며 순간순간 까치 쫓으랴, 낭떠러지 앞에서 새끼들 인도하랴, 그야말로 사투를 벌였다.

결국 까치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날아가버렸다. 더 이상 낭떠러지가 없는 웅덩이에 안착해 오리 가족이 안도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사람들은 자리를 떴다. 어미의 모성애와 그 어미를 믿고 따르는 새끼들, 그들 앞의 장애를 과감하게 극복하는 광경은 한 편의 감동적인 드라마였다.
지난 가을 나는 오래고 간절한 소망 하나를 이루었다. 한 방송사의 특집드라마 공모에 응모해 드디어 당선된 것이다. ‘드디어’라고 한 것은 몇 년 전부터 드라마와 시나리오에 관심을 돌려 여러 번 응모를 했지만 번번이 실패의 고배를 맛보아서였다.
이번에 응모한 극본은 ‘할매꽃’이란 작품이었는데, 이미 네 번이나 떨어진 전력이 있는 작품이었다. 소재도 아깝고 그간 들인 공력도 아깝지만 안 되는 작품인가보다 싶어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보고 싶지도 않던 공모 안내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가슴이 뛰었다. 그러나 이미 실패를 학습한 나는 이번에도 안 될 거야, 하는 생각 때문에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볼까? 또 떨어지면 어떡해? 그래도….
그때 무슨 예시처럼 북한산 계곡에서 보았던 오리 가족의 사투가 떠올랐다. 그래, 나도 정면 돌파다. 오리 가족의 그 치열한 행렬은 낭떠러지를 극복하고 까치까지도 물리치지 않았나. 정면 돌파하리라 각오하고 작품을 다시 읽으니 여러 군데 허점이 보이고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디어들이 떠올라 딴에는 재미나게 개작을 했다. 내 작품을 몰라주는 것 같아 원망스러웠는데, 떨어진 것이 당연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보다 좋은 작품으로 고칠 수 있어서 여러 번의 실패가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정면 돌파를 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좌절의 학습효과만 되씹고 있었을지 모른다. 내 작품을 몰라준다고 세상을 원망하며, 요즘 심사위원들은 노인만 등장해도 싫어한다는 왜곡된 편견을 가졌을지 모른다.
지금 나는 다시 정면 돌파를 해야 할 출발점에 섰다. 8백여 편의 응모작 중 네 편이 선정됐는데 나를 제외한 세 명의 수상자가 이십대와 삼십대였다. 그처럼 요즘은 모든 게 너무 젊다. 나처럼 좀 나이 든 사람들이 발붙일 공간이 거의 없다. 그래도 나는 주눅 들지 않으려 한다. 젊은 작가들과는 다른 내가 쓸 작품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분명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에. 문제는 열정이고 치열함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냥 쳐다보면 위압적인 산도 그 안의 속살과 솔기들, 작은 능선들은 우리를 얼마나 즐겁게 하고 감동케 하는가. 고통에도 그런 속살들이 있다. 그리고 고통은 우리 스스로가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는 영원히 불공평하고 불합리한 괴물이다.
어제 가톨릭 서점에 갔다가 눈에 쏙 들어오는 책 제목을 보았다.
‘매일 매일을 선물을 푸는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권혜수씨는…
1956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났다. 1983년 ‘소설문학’ 공모로 등단했으며, 1987년 ‘여왕선언’으로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됐다. 2007년 SBS TV 문학상 공모에서 ‘할매꽃’으로 우수상을 받으며 방송작가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주요 작품으로 ‘그네 위의 두 여자’ ‘내 안의 먼 그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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