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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시련을 딛고

뇌경색으로 2년간 재활치료, 방송 복귀한 개그맨 이태식

글·김수정 기자 / 사진·조세일‘프리랜서’ || ■ 장소협찬·홍대 스패뉴

2007. 12. 24

2005년 뇌경색으로 연예활동을 중단했던 개그맨 이태식이 재활치료를 마치고 방송에 복귀했다. 그를 만나 다시 일어서기까지의 과정과 무대에 오른 소감을 들었다.

뇌경색으로 2년간 재활치료, 방송 복귀한 개그맨 이태식

개그맨 이태식(35)은 2년 전 갑작스레 찾아온 뇌경색으로 왼쪽 팔과 다리가 마비돼 방송활동을 중단해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혹독한 재활치료를 받은 끝에 몸의 신경이 되살아났고 지난 11월 초부터는 MBC ‘개그야’ 무대에 올라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있다.
“뇌경색 판정을 받기 전에 전조 증상이 있었어요. 어지럽고 왼쪽 팔다리가 조금 저렸거든요. 하지만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어요. 한 방송사 PD로부터 ‘말투가 어눌해졌고 몸이 불편해 보인다’는 말까지 들었는데도 ‘피곤하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그냥 지나쳤죠.”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그는 자신의 왼팔과 왼쪽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길로 병원에 갔으나 결과는 뇌경색. 뇌혈관 일부가 막혀 안면을 포함한 한쪽 손발이 마비된 것이다.
“어머니가 뇌경색으로 고생하다 돌아가신데다 고혈압이라는 위험인자를 갖고 있음에도 하루에 세 갑 이상 담배를 피우고 1주일에 서너 번 이상 술을 마신 탓이었죠. 평소 콜레스테롤이 높은 음식을 즐겨 먹으면서도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았고요. 매주 아이디어 회의를 하면서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지만 ‘이 정도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냐’ 싶어 스트레스를 풀 생각도 안 했어요.”
병원에 입원한 그는 휠체어를 잘 타지도 못할 만큼 심각한 상태였다. “약물과 재활 치료를 병행하면 곧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줄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그때 김형곤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태식아, 내가 먼저 뇌경색 겪어봐서 알잖아. 그거 별거 아니야. 내가 너한테 맞는 식단 짜줄 테니까 퇴원하면 나랑 같이 운동하자’고 하셨죠. 하지만 그로부터 1주일 뒤 선배가 뇌출혈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고, 저는 자기관리를 꾸준히 해도 뇌질환이 재발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절망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더라도 개그계로 반드시 돌아오라’는 형곤 선배의 말이 유언처럼 느껴졌어요. 하지만 석 달간의 입원치료가 끝나고 나니 기다리고 있는 건 끝을 알 수 없는 재활치료였어요. 계단 오르내리기, 줄 맞춰 똑바로 걷기, 나사 조이기, 구슬 옮기기… 일반인에게는 쉬운 일이지만 뇌질환 환자들에게는 정말 어려운 일이죠. 환자들 중에 나이가 가장 어리다 보니 함께 치료받는다는 게 멋쩍었는데, 재활치료사가 ‘참 잘했다. 다들 박수쳐주라’고 칭찬하면 ‘해냈다’는 성취감이 들어 어린아이처럼 신이 났어요. 그렇게 재활치료를 7개월 정도 했을 무렵 비로소 왼손에 힘이 실리더라고요. 마비됐던 얼굴에도 감각이 돌아왔고요.”

뇌경색으로 2년간 재활치료, 방송 복귀한 개그맨 이태식

건강을 회복해 무대에 설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는 이태식.


하지만 무대 복귀는 멀게만 느껴졌다고 한다. 고정수입 없이 병원비가 지출돼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손놀림이 불편하다는 사실에 자신감을 잃은 것. 또 자신을 본 사람들이 웃지는 않고 안쓰럽게 보지는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그는 결국 강원도의 한 마을로 들어가 개그뮤지컬 시나리오를 쓰면서 제작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런 제 마음을 돌린 사람이 컬투의 정찬우 선배예요. ‘무대에 올라 사람들에게 건강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의미가 있다. 개그뮤지컬은 활동하면서 나와 함께 준비하자’면서 설득했죠. 마음 한편에 복귀하고 싶은 소망이 있던 저는 서울로 돌아왔고 후배들과 함께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풍자 개그 코너를 준비했어요. 제가 복귀 의사를 밝히자 누나는 ‘막둥이가 다시 마음을 잡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는지 눈시울을 붉히더라고요.”

아프고 난 뒤 개그에 대한 애착 더 커져
이태식은 4남 1녀 중 막내, 그것도 바로 위 누나와 여덟 살 차이 나는 늦둥이로 태어나 온갖 귀여움을 받고 자랐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연예인의 꿈을 키운 그는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안양예고·서울예대에 진학했고 지난 92년 KBS 10기 개그맨으로 데뷔, ‘개그콘서트’에서 김준호·김대희와 ‘바보 3대’ 코너를 히트시키며 얼굴을 알렸다.
“데뷔한 지 15년이 됐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은 없어요. 잘나가는 선후배 주위에 맴돌면서 ‘개그맨으로서 자질이 부족한 게 아닐까’ 낙심한 적도 있고요. 하지만 병을 앓으면서 전보다 개그에 대한 애착이 더 커졌어요. 무대에 오르면 온몸에 전율이 느껴져요. ‘더 열심히 하라’는 팬의 문자메시지에 가슴이 설레고 방청객 한분 한분의 미소에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그는 “아프고 나니 배려가 동정으로 느껴질 때가 있어 속상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 99년, 서울 대학로에서 공연을 하다 일어난 일을 말해주었다.
“장애우를 위한 특별공연을 했는데 평범한 분들보다 반응속도가 늦다 보니 웃음 포인트를 찾느라 애를 먹었어요. 공연을 하다 ‘바보’ ‘병신’ 같은 욕을 할 때는 그분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고요. 결국 공연을 중단하고 같이 노래 부르고 춤추는 행사 형식으로 바꿔 진행했죠. 그런데 나중에 자원봉사자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장애우도 정상인과 똑같은 돈을 내고 공연을 보러 온 것이다. 배려해준 건 고맙지만 섣부른 행동이 오히려 상처를 줄 수 있다’고요. 아프고 나니 그 일이 떠오르고 그 말도 이해가 돼요. 저를 측은하게 보거나 배려한다는 생각에 과잉보호를 하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그러지 않으면 좋겠어요. 몸이 조금 불편할 뿐이지 특별한 건 아니거든요.”
아직 미혼인 그는 투병생활을 하는 동안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지만 자칫 건강을 잃어 상대방을 고생시킬까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응급실에 갔을 때 소변통 붙잡기가 힘들어 조카 도움을 받았는데 그 일을 가족에게 맡기는 것도 쉽지가 않더라고요. 2년 동안 병간호를 해준 여자친구가 있기는 한데…. 우선은 결혼보다 건강관리에 더 힘쓰려고 해요.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꾸준히 운동을 하고, 균형 잡힌 식단을 짜서 잘 챙겨 먹어야죠.”
그는 조만간 뮤지컬 배우에도 도전장을 던질 계획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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