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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긍정의 힘

자기 허용과 자기 용서의 미덕

글·박미라 ‘작가·치유글쓰기 강사’

입력 2007.08.10 11:25:00

가끔은 뒷덜미에 심한 통증을 느끼곤 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너무 긴장을 하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긴장해서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뿐인가요? 심장이 쪼그라든 듯 가슴도 늘 답답했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는 휴우우~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어깨를 이완시키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해봤습니다. 왜 이렇게 긴장을 하고 있지?
손을 뒤로 돌려 잔뜩 굳은 제 어깨를 주무르거나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도대체 왜 이렇게 움츠러든 채 살고 있을까 생각하던 시간들이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마음공부를 하면서 제가 얼마나 세상에 대해 긴장하고 살았는지 알게 됐습니다. 그 긴장감이란 사실 이런 생각들을 밑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어디서든 유능하고 열심히 해야 해. 그렇지 않다면 성과가 나지 않을 거고 낙오자가 될 거야. 남들보다 뒤처지면 무시당할 거야. 직업이 없다면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지도 몰라. 살림을 엉망으로 하면 시부모에게 비난받을지도 몰라. 아이들을 잘못 키우면 주위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을 거야. 무슨 일이 잘못됐다면, 누군가 나를 비난한다면 그건 내게 잘못이 있기 때문일 거야…. 제 긴장감의 저 아래에는 이런 여러 불안감이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도대체 저는 왜 그렇게 불안에 떨었을까요?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해서 큰소리치며 야단한 상사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엄격한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신 뒤였습니다. 그런데도 제 안엔 언제나 야단맞을까 가슴을 졸이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아이에게 전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속삭여주었습니다. 먼저 아이에게 확인시켜줄 것은, 이제는 제가 힘없는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자, 봐. 너는 이제 어른이야. 너를 야단칠 사람은 별로 없어. 만약 누군가 부당하게 야단친대도 너는 너 자신을 방어할 수 있어. 넌 어른이 됐거든.”
그리고 그다음은 내가 너무 지나치게 긴장해서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소심한 완벽주의자라는 사실도 함께 말이지요.
“그렇게 조바심치며 일하지 않아도 돼. 너 자신과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살아도 돼. 너를 위해 여유를 가져도 너는 여전히 유능해. 아니, 정말 힘들다면 유능하지 않아도 돼. 유능하고 불행하다면 아무 의미가 없잖아.”
그 외에도 내 인생에는 ‘해야 하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저는 그것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반대로 ‘해도 되는 것’과 ‘안 해도 되는 것’들의 이유를 찾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허용과 자기 용서를 위한 노력을 시작한 것이지요. ‘초라해도 괜찮아. 가끔씩 초라해진다는 건, 화려함을 유지하기 위한 부담에서 벗어나는 거야’.

“초라해도, 이기적이어도, 무능해도 괜찮아”라고 자신에게 말해주는 순간 시작되는 새로운 자유
우리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짐을 내려놓지 않은 채 새롭게 떠맡게 된 짐까지 짊어집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떠안은 짐들 때문에 살아갈수록 숨이 막히고, 힘이 듭니다. 그래서 가끔은 내려놓아야 할 인생의 짐은 없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초라해지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 영광의 짐이거나 혹은 애착의 짐일 때 그렇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번듯하지만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장을 떠날 때,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이들을 떠나보낼 때 그렇습니다. 그럴 땐 마치 내 생명이 끊어지는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실제로 생명이 끊어지지는 않습니다. 단지 불안감이 우리에게 ‘죽을지도 모른다’고 협박할 뿐이지요. 그리고 협박과는 달리 훨씬 몸이 가벼워진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유난히 비난을 견디지 못했던 저는 사람들에게 칭찬받기 위해 타인에 대한 배려를 최우선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사람이 저를 좋아했고, 따랐으며 어딜 가나 칭찬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하나, 남을 배려하기 위해서 나 자신은 배려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가 불만을 터뜨릴까 무서워 오랜 세월 입을 틀어막고 살았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됐을 때 저는 이기적인 제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사람들은 그런 나도 좋아해줬습니다.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니 오히려 대하기 편하다고 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부작용도 있었지만 결국은 사람들이 저를 참아줬고, 저는 그들에게서 진정한 우정을 느끼게 됐습니다.

바보같이 나 혼자만 사랑을 꿈꾸는 경우가 있습니다. 친구든 연인이든, 내 편에서만 호감을 느끼고 친해지기를 기대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거절당할까봐, 그래서 결국은 내 미숙함이 드러날까봐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며 망설일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나이 들어보니 거절당해도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집니다. 거절당했는지, 거절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인연이 내 인생에 존재했습니다. 거절당한 그가 그렇게 한심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도 나이 드니 알겠습니다. 또 미숙하면 어떻습니까? 인생의 미숙함이 흉이 되지 않는 나이가 오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면 미숙하더라도 더 많이 도전해서 그걸 극복할걸 그랬다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자 부모에게는 아이의 학교 성적이 가장 큰 화두가 됐습니다. 내 아이만은 공부를 잘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하자 슬슬 속이 타기 시작합니다. 나도 아이에게 ‘공부보다 자신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말해주는 멋진 부모가 되고 싶었는데 성적이 좋지 않은 아이는 부모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부모는 전전긍긍, 노심초사합니다. 일주일에 몇 번씩 아이와 언성을 높여 싸우고,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치다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가만 있자. 아이의 미래 행복을 위해서 지금 부모 자식 관계가 이렇게 불행해도 되는 걸까? 억지로 공부시켜 성적이 올라갔다고 해서 정말 아이 인생이 행복해질까? 내가 억지로 아이를 변화시켜서 우등생이 되게 한들 그 아이가 반드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우리 삶의 경험으로 미루어보건대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래, 못난 부모라도 할 수 없지. 어쩌겠어? 하면서 성적에 대한 집착을 탁 놓아버렸습니다.
생각보다 아이는 성적이 떨어지지 않았고 막나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누가 뒤에서 한심한 부모라고 손가락질한대도 구체적으로 제 인생에 불편한 일은 없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잘 먹고, 잘 살고, 사람들과 잘 지내니까요.
젊은 사람들을 만나면 ‘한심한 자기’에 대한 죄책감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요즘 젊은이들이 버릇없고 냉정하다 말하지만 그들에겐 그들 나름대로 심각한 고민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에게 제대로인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아빠와 엄마가 격렬하게 싸울 때, 저는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어요. 저는 부모에게 죄인이에요.” “저는 미움이 너무 많아요. 절친한 친구에게조차 질투심을 느끼고, 걔가 나보다 못나기를 바라요.” “아직도 과거의 엄마에 대한 원망에서 벗어나지 못해요. 저 너무 집착이 심한 거죠? 이런 제가 너무 한심해요.”
그래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며, 자신에게 그렇게 인색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그들의 속마음을 알게 되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마음의 짐들 때문에 그토록 냉정하게 보이고, 늘 화가 나 있는 것처럼 보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고민은 한결같이 착하고 싶고, 용서하고 싶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욕구에서 옵니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이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고, 사랑스러운 존재라고 칭찬해주고 안아주고 싶습니다.
인간이 먹고살기 위해선 일정량의 쓰레기가 늘 배출되듯이, 마음도 똑같습니다. 공동체를 위해서, 선량하게 살기 위해서는 같은 비율의 어두운 감정이 생겨나게 돼 있고,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단지 생각이 나빴다고 자신을 처벌하려 하다니요. 나쁜 생각을 할 수 있는 자유조차 인간에게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아마 모두 정신병원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 외에도 나를 허용하는 목록은 끝도 없이 깁니다. 저는 매일매일 나를 허용하고 용서하는 리스트에 새로운 항목을 추가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나를 허용하고 용서하니 행복하고 자유로운 상태가 될 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더 선해지고 너그러워지는 것입니다. 그러고도 억울한 감정이 별로 없습니다.
아마도 저는 부모나 사회가 억지로 주입한 기준대로 착해지거나 성실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주체적으로, 완전히 자발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나 봅니다.
박미라씨는…
자기 허용과 자기 용서의 미덕
패미니스트 저널 ‘이프’ 초대 편집장으로 일했으며 현재는 치유글쓰기 강사, 마음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에서 심신치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최근 심리상담 칼럼을 모은 책 ‘천만번 괜찮아’(한겨례출판)를 펴냈다.


여성동아 2007년 8월 5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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