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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그때 그 사람

재즈가수로 변신, 고국 공연 가진 징검다리 멤버 정금화

글·구가인 기자 / 사진·지호영 기자, 정금화 제공

입력 2007.05.18 10:32:00

70년대 말 ‘여름’ ‘뭉게구름’ 등의 히트곡을 발표한 그룹 징검다리의 멤버 정금화가 오랜만에 콘서트를 가졌다. 10여 년 전 이혼 후 독일로 건너가 현재 독일에서 재즈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그를 만나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재즈가수로 변신, 고국 공연 가진 징검다리 멤버 정금화

인터뷰가 있던 날은 봄비가 왔다. 약속된 장소 앞에서 기다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택시에서 족히 175cm는 될 듯한 큰 키의 여자가 내렸다. 청바지에 부츠를 신고, 긴 머리를 풀어내린 그는 빗속을 뚫고 긴 다리로 껑충껑충 뛰어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30대 후반? 40대 중반?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분위기다.
“58년 11월생이니까…, 한국 나이로는 쉰인가요?! 벌써?! 끔찍해… 아이고….”
징검다리의 정금화. 그 이름은 익숙지 않지만 “이 땅이 끝나는 곳에서 뭉게구름이 되어~”라든지, “여름은 젊음의 계절~ 여름은 사랑의 계절~” 같은 노래만은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결코 낯설지 않다. 정금화는 78년 TBC 해변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한양대 중창단 징검다리의 멤버였다. 현재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왕영은 등과 함께 징검다리로 가수생활을 시작했지만 연예계 활동을 금세 접었던 그는 지금 독일에서 ‘정금화 앙상블’이라는 재즈그룹을 이끌며 가수로 활약하고 있다. ‘정금화 앙상블’은 독일 국회에서 공연을 가질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는 팀. 오랜만에 한국에 온 것도 지난 3월 말 국립극장에서 열린 ‘정금화 앙상블’의 콘서트 때문이었다.

재즈가수로 변신, 고국 공연 가진 징검다리 멤버 정금화

“부모님의 반대 때문에 음악활동을 계속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음반을 내지 않았을 뿐이지 저는 계속 음악활동을 했다고 생각해요. 늘 노래를 부르고 지냈으니까요. 제대로 활동을 한 건 독일로 건너가서 좀 지난 후인 2003년부터예요. ‘레이디스 토크’라는 그룹으로 활동을 했고, 지금은 ‘청 킴(정금화의 독일 이름) 앙상블’로 활동하고 있고요. 독일에서는 반응이 좋아요. 일부 팬들은 그냥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같은 콘서트에 열 번 넘게 보러 와주기도 하고요. 동양여자가 자기네 서양음악인 재즈를 하는 게 거기서는 흔치 않은 일이거든요. 그래서인지 제가 ‘꿈꾸는 백마강’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 ‘아침이슬’ 같은 우리나라 곡을 재즈로 편곡해 부를 때면 ‘한국말로 해달라’고 하고, 참 좋아하더라고요.”
그는 93년에 이혼한 뒤 곧 독일로 떠났고 지금까지 14년간 딸과 함께 독일에서 살고 있다.
“처음부터 독일로 이민을 갈 생각은 없었어요. 가정적인 문제 때문에 힘들어하다가 머리를 식히기 위해 떠난 거죠. 전 남편과는 처음부터 잘 맞지 않았어요. 10년 가까이 살다가 결국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제가 먼저 이혼을 하자고 했는데, 저희 부모님은 큰딸이 이혼했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시더라고요. 제가 이혼할 당시만 해도 이혼은 집안의 수치였거든요. 주변에서 ‘나는 더한 상황도 참고 지냈는데’ ‘아이도 있는데 그냥 살지’ 같은 이야기만 줄곧 듣다 보니 날 사랑하는 사람들이 날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에 많이 힘들었어요. 결국 친한 친구가 있는 독일의 한 시골마을로 여행을 갔다가 그곳 사람들의 순박한 삶에 반해서 아예 자리 잡고 살게 됐어요.”

마흔한 살에 음악학교에 들어가 본격적인 음악 공부
홍익여고에 다니던 시절부터 왕영은과 함께 ‘영과 화’를 결성해 활동했고, 결혼 후에도 동네 아이들을 모아 영어연극을 가르치는 등 “끊임없이 사람들을 모아서 일을 벌이는 걸 좋아했다”는 그는 그곳에서도 시골마을 합창단을 꾸려 지휘자 겸 반주자로 활동했다고 한다. 주민수가 9백 명인 마을에서 처음엔 한두 명으로 시작한 합창단은 45명이 모여 나중에는 지역의 명물로 떠오르게 됐다고. 그렇게 7년이 지났고 그의 나이도 마흔을 넘겼다. 본격적으로 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 즈음이었다.
“어느 날 뒤돌아보니까, 제가 한 번도 내가 사랑하는 음악에 충분히 몰두한 적이 없더라고요. 징검다리 때도 얼마 안 돼 결혼하면서 그만뒀고, 독일에 와서도 다른 데 시간을 투자하느라 그냥 살았고요. 음악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흔한 살에 시골을 떠나 뮌헨에 있는 재즈학교에 들어갔죠.”
하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타국생활이 주는 외로움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현재 모델로 활동하며 뮌헨대학 경영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딸은 그때마다 그의 독일 생활에서 큰 힘이 돼준 존재다.
“(딸은) 가장 친한 친구죠. 속 깊은 이야기를 다 하고, 이해해주고요. 물론 사춘기 때는 이혼한 엄마에 대한 원망도 많이 했죠. 그때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하고 원망하고 미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살 순 없다, 행복한 척하는 게 아니라 진실로 행복해지고 더 나아지기 위해 이혼한 거고 그 선택은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며 솔직히 말했어요. 딸도 남자친구도 가져보고 시간이 지나니까 이해를 하더라고요.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힘들었어요. 뮌헨에 나와서는 방한 칸으로 시작했는데 이것저것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리고 딸이 고등학교 때부터 모델하면서 많이 벌었죠(웃음).”
그렇게 음악을 시작해, 이제는 독일 내에서 인정을 받는 뮤지션이 됐다. 정금화는 지금 자신 있게 ‘행복하다’고 말한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주변에서 ‘그 나이에 왜 타국에서 음악을 시작해서 그렇게 고생하냐’는 말을 해요. 그런데 사실 나이는 아무런 문제가 안 돼요. 오히려 ‘그 나이’에 음악을 하기 때문에 좋은 게 얼마나 많은데요. 노래는 입으로만 하는 게 아니거든요. 전체적으로 그 사람의 삶이 배어나오는 노래가 진짜죠. 제가 20대였다면 지금과 같은 노래를 못 불렀을 거예요. 자신의 느낌과 욕구에 솔직하고 원하는 것을 하면서 만족하고 사는 게 가장 중요한 거 같아요. 저는 지금 어느 때보다 좋아요. 노래만 해도 살 수 있을 정도로 삶이 좋아졌고, 나를 사랑해주는 남자친구도 있고, 한동안 딸을 탐탁지 않아 하셨던 부모님께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고, 무엇보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음악을 해서 참 행복해요.”
3월 말 한국에서 가졌던 콘서트는 성공리에 치러졌다고 한다. 당분간은 독일에서 활동할 예정이라는 그에게 한국에서의 활동 계획에 대해 물었다.
“아까 택시를 타고 오는데 기사분이 제가 전화하는 소리 듣고는 ‘징검다리 그분 아니시냐’고 묻더라고요. 기사님이 그러니까 정말 좋던데요. ‘자주 와야겠다’고 맘먹었죠(웃음). 많은 관객을 좀 더 가까운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공연을 자주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여성동아 2007년 5월 5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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