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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명문대 총장의 조언

중앙대 박범훈 총장이 들려주는 ‘폭넓고 쓰임새가 큰 인재로 키우기’

글·김명희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2007. 04. 06

중앙대는 종합대 중 최초로 연극영화과를 설립하고 수많은 연예인을 배출하며 국내 문화예술을 선도해왔다. 국악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종합대 수장에 오른 박범훈 총장을 만나 아이를 창의성과 인성을 두루 갖춘 인재로 키우는 교육법에 대해 들어보았다.

중앙대 박범훈 총장이 들려주는 ‘폭넓고 쓰임새가 큰 인재로 키우기’

요즘 중앙대에는 활기가 넘친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유치를 목표로 지은 법학관이 올해 초 완공됐고 서울 캠퍼스 바로 옆에 위치한 중앙대병원도 확장공사가 진행 중이다. 지난해 대학교육협의회의 종합평가 결과 전 영역에서 ‘최우수’ 판정을 받은 이후 학생과 교직원들도 무척 고무돼 있다.
올해로 개교 89주년을 맞는 중앙대가 이처럼 활기를 띠는 데는 2005년 국악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종합대 수장에 오른 박범훈 총장(59)의 힘이 크다. 중앙대 음대(작곡 전공)를 졸업하고 일본 무사시노음대에서 석사, 동국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박 총장은 지난 88년 서울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무대음악 총감독을 맡았을 만큼 한국을 대표하는 국악 작곡가이자 지휘자다. 임기 초에는 ‘예술인 출신 총장’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박 총장은 서울국악예고 이사장을 역임하면서 교육 행정가로서의 경험을 쌓고 중앙대 부총장 재임 시절 병원 행정일을 하며 흑석동 중앙대병원 개원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얻은 경험들이 학교 전체를 조망하고 인력과 자원을 배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총장의 ‘총(總)’자는 원래 ‘꿰맨다’는 뜻을 지니고 있어요. 총장의 역할은 사람과 조직을 아우르고 부실한 곳, 해진 곳을 아름답게 꿰매는 일입니다. 중앙대에는 각 단과대학, 대학원, 2개의 병원에 3만여 명의 교직원과 학생이 있는데 이 인력을 효과적으로 이끄는 게 가장 중요해요. 2005년 입학정원을 축소하고 일부 학과를 통폐합하는 등 사립대학 가운데 처음으로 구조조정을 실시한 이유도 조화로운 발전을 이루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죠.”

“다양한 경험과 지식 갖춘 인재가 국제경쟁력 지닌 문화 콘텐츠 생산할 수 있어요”
구조조정의 핵심은 선택과 집중을 통한 특성화. 국내 최초로 4년제 연극영화학과와 국악대학을 만들고 관련 분야 교수를 가장 많이 배출할 만큼 공연영상 분야에서 노하우를 축적한 중앙대는 지난해 예술대학의 연극학과와 영화학과, 정경대학의 신문방송학과를 통합해 미디어공연영상대학을 신설했다. 지난해 한국 영화로는 유일하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부문에 올라 화제를 모은 ‘용서받지 못한 자’는 윤종빈 감독의 중앙대 졸업작품이다. 박 총장은 “학과 통폐합을 통한 융합교육을 통해 ‘제2, 제3의 윤종빈’ 같은 차세대 공연영상 전문인력을 양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연영상산업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감성·장르·기술을 비롯, 다양한 형태의 융합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폭넓은 분야의 경험과 지식을 가진 인재를 배출하는 게 중요해요. 국제적 경쟁력을 가진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은 기계가 아닌, 사람의 머리로 하는 것이니까요.”
중앙대는 비예술 분야에도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다. 로스쿨 유치와 산학 협력을 통한 기초학문 분야의 경쟁력 강화 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
“카이스트, 포항공대와 같은 대학과 종합대학이 무턱대고 겨루려고 한다면 달걀로 바위 치기가 되겠죠. 어떤 분야든지 특성화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전통적으로 강한 면모를 보여온 예술대학 중심으로 특성화를 하는 한편 기초학문 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어요. 특히 예술분야와 함께 명문으로 손꼽히는 법과대학의 내실을 다져 로스쿨을 꼭 유치하려고 합니다. 국내 대학 중 최대 규모인 14층짜리 법대 건물을 신축한 것이 외형적인 준비라면 교수진을 강화하고 교재 개발을 위해 프로젝트팀을 만든 것은 내부적인 준비에 해당하죠.”

중앙대 박범훈 총장이 들려주는 ‘폭넓고 쓰임새가 큰 인재로 키우기’

자신이 개발한 스물다섯 줄 가야금을 제자에게 지도해주고 있는 중앙대 박범훈 총장. 국악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종합대 수장에 오른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국악 작곡가이자 지휘자다.


박 총장을 만난 날은 마침 그가 서울고등법원에서 판사들을 대상으로 ‘우리 음악의 맛과 멋’에 대해 강연을 하는 날이었다. 그 스스로가 교육가인 만큼 강연의 대부분은 국악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그가 국악교육에 남다른 열정을 기울이는 이유는 국악을 통해 인성을 기를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99년 국악예고 이사장으로 재직하며 국악유치원을 설립할 때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우리나라에 국악유치원이라는 것을 처음 만들었을 때의 일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국악’이라는 말을 빼고 그냥 ‘예술’ 유치원으로 하자고 하더군요. ‘국악’이 들어가면 부모들이 보내지 않을 거라는 게 이유였죠. 하지만 저는 ‘국악’이라는 말을 꼭 넣어야 한다고 고집했어요. 원아모집 광고에 ‘국악인을 만드는 게 목표가 아니라 국악을 통해 기본적인 인성을 기르는 게 목표’라는 글도 썼어요. 그랬더니 청바지 입은 부모들이 자녀를 꼭 넣어달라며 달려오더군요(웃음). 우리 고유의 소리, 우리 고유의 몸짓 등 예술행위를 통해 인성교육을 시킨다고 하니까 부모들이 공감을 한 것 같습니다.”
음악교육을 제대로 잘 받은 사람은 타인과의 조화 능력, 준법정신이 뛰어나고 예의도 바르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연주를 하려면 악보를 봐야 하고 지휘자의 요구에 따라야 합니다. 악보는 법이고 지휘자의 요구는 명령이죠. 그걸 익히는 과정에서 준법정신을 갖추게 되고 다른 사람들과 합주를 하면서 어울림을 배우게 되죠. 악기를 다루면서 사물을 존중하는 마음을 기르고 무대 매너를 통해 바른 몸가짐을 익히는 겁니다. 사실 그런 교육들은 초·중등학교의 기초교육 과정에서 갖추어지는 게 가장 좋아요. 그것만 갖춰진다면 예술교육은 길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초등학교까지만 하고 재능이 있다면 계속 가르치고 그렇지 않다면 그 수준에서 그만둬도 좋아요.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게 꼭 피아니스트로 만들기 위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음악, 특히 국악이 아이들의 인성교육에 도움이 되는 이유에 대해 그는 “우리 음악은 격하지 않은데다가 맺고 푸는 과정으로 구성돼 있어 반복적으로 듣고 연습하는 과정을 통해 감정을 순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대로 음악교육 받은 아이는 준법정신, 타인과 조화를 이루는 능력이 뛰어나요”
“119 구급차 소리 음계가 ‘시솔시솔’이에요. ‘시’는 ‘도’로 가기 위한 불안정한 소리인데 그게 갑자기 ‘솔’로 떨어지니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요즘 우리 주변에서 접하는 소리들이 다 그렇게 불안한 경향이 있어요. 그에 반해 국악은 차분하게 시작해 절정으로 치닫고 맺은 다음에는 꼭 풀어주는 대목이 있어요. 예를 들어 ‘아라리가 났~네~에~에~에’에서 ‘~에~에~에’가 풀어주는 대목이죠. 씻김굿, 살풀이도 한(恨)을 달래고 풀어주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거고요. 교육도 마찬가지예요. 옛날 어른들은 아이들을 야단치고 나서 항상 어르고 풀어주시곤 했는데 요즘은 그런 게 부족해요. 야단을 치면 그걸로 끝이지, 풀어주는 맛이 없어요. 따돌림, 공부 스트레스 등 아이들이 감당해야 할 몫은 점점 느는데 맺힌 걸 풀 데가 없으니 자해를 하고 가출을 하는 겁니다.”
그러나 국악의 교육효과가 아무리 높다 해도 아이들이 지루하게 여겨 멀리하면 소용이 없다. 박 총장은 “음악교육의 기본은 즐거움을 찾는 데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국악은 여럿이 해야 흥이 납니다. 국악 가족이 많은 게 그런 이유 때문이죠. 식구들이 각기 다른 악기를 배워 사물놀이를 한다든지, 부모와 아이가 판소리를 같이 배워 주고받는 대목을 나누어 부르든지 하면서 아이가 재미를 느껴 스스로 하게끔 유도해야 해요. 그건 서양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피아노를 장만해서 아이가 즐겁게 연주를 하고 있는데 엄마가 뒤에서 음정이 틀렸다는 등, 박자가 맞지 않는다는 등 잔소리를 하면 아이는 금방 흥미를 잃게 되죠. 그럼 비싸게 구입한 피아노는 영원히 고물로 남을 수밖에 없어요. 예술교육의 실패는 즐겁게 하지 못하는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제대로 된 인재로 키우기 위해서는 전공과 인성교육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하는 박 총장은 이번 학기부터 캠퍼스 내에서 ‘대학문화 바꾸기’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캠페인에는 먼저 인사하기, 칭찬하기 등 기초적인 것부터 긍정적인 사고 갖기, 서로 높여주고 배려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우며 살자는 취지의 ‘추임새 운동’ 등이 포함돼 있다.
“대학이 최근 취업난 등으로 인해 지식을 채우는 곳, 기업이 원하는 맞춤형 교육을 하는 곳으로 전락하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대학(大學)은 말 그대로 큰 가르침을 하는 곳이지, 기업이 10~20년 기계처럼 쓰다가 버리는 기계를 양성하는 곳이 아닙니다. 쓰임새가 큰 사람이 되려면 일단 폭넓은 인성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걸 대학에서 가르치자는 거죠.”

박범훈 총장이 들려준 가족이야기
“아내의 칭찬 덕분에 세 딸이 모두 예술인으로 자랐어요”

중앙대 박범훈 총장이 들려주는 ‘폭넓고 쓰임새가 큰 인재로 키우기’

박범훈 총장의 세 딸은 모두 예술인의 길을 걷고 있다(위). 중앙국악관현악단을 이끌고 공연을 하고 있는 박범훈 총장(아래).

“내리 딸 셋을 낳고 나서 아내가 어머니께 불려가 혼이 많이 났던 모양입니다. 그것 때문에 아내가 마음고생을 많이 했지요.”
박범훈 총장은 지난 80년 장순희씨(54)와 결혼, 슬하에 세 딸을 두고 있다. ‘한때 어머니의 마음을 섭섭하게 했던’ 세 딸은 모두 예술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아버지의 대를 잇고 있다. 가야금을 전공한 큰딸 혜리나씨(25)는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음악교육 방법론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둘째 딸 두리나씨(23)는 중국 베이징중앙음악원에서 중국 전통악기인 얼후(二胡)를 공부하고 있다. 무용에 소질이 있는 막내 세리나양(15)은 올해 국악예고에 진학했다. 소리와 함께 한평생을 살아온 그의 호는 ‘서민의 소리’라는 의미의 ‘범성(凡聲)’. 아이들 이름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그가 소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준다. “일본에서 유학하던 시절 큰딸을 얻었는데 한국의 소리가 그렇게 그리울 수 없었어요. 그래서 ‘소리나’라고 이름을 지었다가 집안 어른들의 반대로 바꾸었습니다. 둘째, 셋째 이름을 지을 때는 ‘형평성을 맞추느라’ 석자 이름을 지었고요. 아이들이 어려서는 특이한 이름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받는다고 항의도 했지만 오히려 지금은 특이해서 좋다고 하더군요.”
그의 집 가훈은 ‘일로매진(一路邁進)’이다. 그는 “한길로만 가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라도 제대로 하라는 의미에서 만든 가훈인데 우연인지, 가족들이 모두 예술 분야에서 한길만 파게 됐다”며 웃었다. 딸들이 예술과 인연을 맺은 건 어려서부터 보고 접한 환경의 영향이라고 한다.
“집안에 악보가 널려 있고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며 공연하는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아이들 귀가 열린 것 같아요. 딸들이 요즘도 ‘그때 우리 집에 놀러 와 노래를 하던 분이 유명한 그분이 맞느냐’고 종종 물어보곤 하죠. 큰딸의 경우는 말을 못하던 두 살 무렵부터 잘 조율된 피아노로 음계를 쳐줘 절대음감을 익히게 했어요.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둘째나 셋째는 첫째보다 청음이 좀 떨어지더군요.”
박 총장은 음악에 대한 재능은 자신이 물려주었지만 아이들을 음악인으로 키운 건 “아내의 칭찬”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이 연주를 하면 제 귀에는 틀린 게 먼저 들어와요. 반면 음악에 문외한인 아내는 아이들이 연주를 하면 무조건 ‘잘한다, 잘한다’ 하고 칭찬을 해주었죠.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지금도 엄마 앞에서 연주하는 걸 좋아해요. 제가 들어가면 하던 연습을 멈추고 딴전을 부리고요(웃음).”
박 총장은 자신의 예술 세계를 인정해주고 딸들을 반듯하게 키워낸 아내에 대한 고마움이 크다고 한다.
“아내는 공연이 있는 날이면 항상 제일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앉아 조용히 공연을 보고 끝난 후에는 멀찍이서 손을 흔들어주고는 그냥 가요. 한 번도 자신을 내세운 적이 없죠. 그렇게 그림자처럼 조용하게 내조를 해주던 아내가 요즘엔 가끔 ‘당신이 너무 바빠 섭섭하다’며 서운한 마음을 내비치기도 해요(웃음). 총장직을 마치면 아내와 조용히 고향인 양평으로 돌아가 창작활동을 하며 지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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