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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황금돼지해 福 받으세요!

작가 한승원의 구수한 돼지 이야기 여섯마당

2007. 02. 16

예로부터 사람들은 참으로 간사스럽다. 돼지면 다 같은 돼지이지, 황금(黃金) 돼지, 은(銀) 돼지, 동(銅) 돼지, 돌(石) 돼지, 목(木) 돼지가 따로 있겠는가. 돼지들은 올해가 자기들의 해라는 것을 알까. 그들은, 인간들이 올해가 ‘황금돼지해’이므로 돈벌이가 제법 쏠쏠하게 잘 될 것이라고, 황금 대박이 터질 것이라고 호들갑 떨어대는 것을 알고 있을까. 어쨌든 오랫동안 돼지들과 삶을 함께 해온 사람들의 말, 동물학자들의 말을 빌어 돼지의 흉을 좀 보기로 하자.

돼지 밥그릇 이야기
작가 한승원의 구수한 돼지 이야기 여섯마당

pig in love, 35×35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2006, 홍지연


내 어린 시절에는 마을의 집집에서 뒷간이나 외양간 옆에 사각의 우리를 짓고 한두 마리쯤의 돼지를 키우곤 했다. 집 안에서 나오는 음식 찌꺼기와 보릿겨·쌀겨를 받아 물에 타서 먹이고, 들풀을 조금씩 베어다가 주면서 키우는 것이었다. 돼지의 밥그릇은 대개 반 아름쯤의 기다란 통나무 토막 한쪽에다가 타원형의 구덩이를 판 것을 사용했다. 새로 분가한 젊은 부부들도 돼지새끼 한 마리씩을 사다가 키우는데, 그들은 통나무로 된 밥그릇을 마련하지 못하고, 판자를 잘라서 직육면체의 통을 만들어 밥그릇으로 썼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통나무로 만든 밥그릇에 밥을 받아먹는 돼지는 잘 자라는데, 직육면체의 밥그릇에 밥을 받아먹는 젊은 부부의 돼지는 잘 자라지 않았다. 근처의 중학교 농업 선생이 와서 보고 젊은 부부에게 조언을 했다. “돼지 밥그릇은 시울이 낮은 타원형의 통을 써야지 저렇게 시울이 깊은 직육면체 밥그릇을 사용하면 안 된답니다. 음식물을 주면 찌꺼기들이 이 구석 저 구석에 박혀 있게 되므로, 돼지는 그것을 혀끝으로 파먹으려고 무진 애를 씁니다.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필요 없는 일로 인해 애를 쓰게 되면 이미 올랐던 살이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돼지의 지능
흔히 컴퓨터의 지능을 돼지의 지능 정도라고 말한다. 씨받이용의 우량 수컷 돼지를 키우는 사람이 한 이야기를 그대로 전하겠다.암퇘지를 소규모로 백 마리쯤을 키우는 사람들은 씨받이용 수퇘지가 시원찮을 경우에, 이웃 대규모 양돈장의 우량 씨받이용 수퇘지를 빌어다가 접을 붙이는 수가 있다. (요즘은 인공수정을 한다. 나무판과 돼지털들을 이용하여 암퇘지 엉덩이를 제작해놓고, 수퇘지로 하여금 그것에 올라타고 사정하게 하면서 정액을 받아내어 주사기로 암퇘지의 질 속에 인공수정을 하는 것이다. 그러기 이전에는 암수의 접붙이는 방법을 썼다.) 씨받이용 수퇘지는 원정을 갈 때 사람들이 손으로 끄는 리어커를 타고 가야 하는데, 그놈이 처음 원정을 갈 때는 리어커에 오르지 않으려고 하므로, 데리고 가려 하는 주인은 그놈을 리어커에 태우려고 많은 고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한 번 원정을 가서 재미를 보고 온 씨받이용 수퇘지가 이상한 짓을 했다. 주인은 씨받이용 수퇘지에게서 건강한 정자를 생산하기 위하여 수시로 그놈을 운동장으로 내보내 운동을 시키곤 했다. 한데, 운동 끝낼 시간이 되어 그 수퇘지를 우리 안으로 들여보내려는데 그놈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아니, 이놈이 어디엘 갔을까. 둘러 살펴보니 운동장 문이 열려 있었다. 실수로 잘못 잠가 놓은 것이었다. 운동장 밖을 내다보니, 원정 다녀온 경험이 있는 그 수퇘지가 마당 가장자리에 세워 놓은 리어커 위에 올라가 주인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돼지들의 유희
중쯤 되는 돼지들을 운동장으로 내몰아 운동을 시키는 수가 있다. 늘어난 몸의 무게를 지탱하려면 다리와 발목이 튼튼해야 한다. 돼지들이 군집해 생활할 때 희한한 일이 일어나는 수가 있다.돼지들의 꼬리는 대개 오른쪽으로 꼬부라졌는데 그 가운데 기형이 있어 왼쪽으로 꼬부라진 것이 있다. 그 기형인 꼬리를 개구쟁이 돼지들이 가만 놔두지 않는다. 한 돼지가 이빨 끝으로 기형의 꼬리를 물어 잡아당긴다. 당하는 돼지는 놀라 몸을 외튼다. 몸을 외튼 그 돼지의 꼬리를 다른 돼지가 또 물어 잡아당긴다. 이놈이 물어 잡아당기고 저놈이 잡아당기고…. 그리하여 그 기형인 꼬리에서 피가 나오기 시작한다. 돼지들은 기형인 돼지 꼬리에서 피 나오는 것을 신기하게 여겨 앞을 다투어 공격한다. 마침내 기형의 꼬리를 가진 돼지는 더 많은 피를 흘리면서 이리저리 도망다니는 신세가 된다. 돼지들은 도망다니는 그 돼지를 쫓아다니면서 괴롭힌다.

작가 한승원의 구수한 돼지 이야기 여섯마당

pig in love, 35×35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2006, 홍지연


돼지의 행복
돼지들 앞에, 동화책이나 시집이나 소설책이나 ‘논어’나 ‘명심보감’, 가령 한승원의 ‘차 한 잔의 깨달음’이라는 책을 놓아주면 그들은 어찌할까. 그것을 주둥이로 걷어 밀어보다가 외면하고 잠을 즐길 뿐 그것들을 읽으려 하지 않는다.

돼지와 비단이불, 진주목걸이, 보석반지
돼지의 우리 한쪽 구석에 비단이불을 깔아주면 그들은 그 위에 대변 소변을 갈기지 않는다. 용변은 정해 놓은 어느 한구석에 하고 그 비단이불 위에서는 잠을 잔다. 돼지의 밥그릇에 사료와 더불어 진짜 진주목걸이와 보석반지를 주면, 그들은 사료만 먹을 뿐 진주목걸이와 보석반지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돼지는 깨끗함과 사치를 싫어하지 않는다. 진주목걸이와 보석반지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할 뿐이다.)



살찐 돼지와 늘씬한 돼지
똑같은 양의 사료를 주고 똑같은 조건에서 두 마리의 돼지를 키워본다.한 돼지는 살이 퉁퉁 찌는데 다른 한 마리는 늘씬하다. 살찐 돼지는 영원히 살 것이라고 생각하며 삶을 즐기며 사는 돼지인데,
늘씬한 돼지는 왜 나를 이렇게 편히 배불리 먹이는 것일까, 하고 의심하는 것이고, 왜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철학적으로 궁구하는 것이다.

이 글을 읽으신 사랑하는 당신, 우리들은 어떤 점에서 돼지들과 같고 어떤 점에서 다를까요?

글쓴이 한승원 1939년 전남 장흥 출생. 61년 서라벌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해 고 김동리 선생에게서 소설을 사사했다. 66년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가증스런 바다’로 입선했고, 68년 대한일보에 ‘목선’이 당선돼 등단했다. 고향 바닷가 마을을 배경 삼아 민족적 비극과 한을 형상화한 작품들로 독자적인 소설세계를 구축했다. ‘해변의 길손’으로 이상문학상, ‘소설 원효’로 김동리 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흑산도 하늘길’ ‘아제아제바라아제’ ‘초의’ ‘차 한 잔의 깨달음’ 등이 있다.
그린이 홍지연 1971년 서울 출생.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와 같은 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96년 첫 개인전 ‘낯설은 풍경’ 등 네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4월 11일 인사아트센터에서 다섯 번째 개인전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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