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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의 18세기 명작 소설을 역동적인 카메라로 담아낸 ‘오만과 편견’

글·김동희 기자 / 사진제공·UIP코리아

입력 2006.09.18 15:15:00

영화 ‘오만과 편견’은 로맨스, 결혼의 전제조건에 대한 풍자, 유머 감각 등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원작의 장점을 그대로 살린 작품. 거기에 덧붙여 역동적인 카메라로 강조된 젊은 남녀의 화학반응이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제인 오스틴의 18세기 명작 소설을 역동적인 카메라로 담아낸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의 18세기 명작 소설을 역동적인 카메라로 담아낸 ‘오만과 편견’

젊은 남녀의 밀고 당기는 사랑 이야기를 보는 건 즐겁다. 사랑과 결혼에 알게 모르게 전제된 조건에 관한 풍자와 유머가 곁들여진다면 금상첨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러브 액츄얼리’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등을 제작한 로맨틱 코미디의 명가 워킹 타이틀의 영화 ‘오만과 편견’은 제인 오스틴 소설의 매력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영화만의 개성을 더해 즐거움을 준다.
사랑에 빠지는 건 화학 반응이다. 시골 마을에 새로 이사 온 젊은 신사 빙리와 딸만 다섯인 베넷가의 큰딸 제인은 첫눈에 반한다. 빙리의 친구 다시는 베넷가 둘째 엘리자베스에 대해 “참아줄 만은 하지만 관심을 끌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의 생기발랄함에 빠져든다.
결혼은 화학 반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다시가 빙리를 제인에게서 떼어놓으려고 한 건 품위 없고 돈 좋아하는 처가 식구들에게 시달릴 친구가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똑같은 결격 사유를 지닌 제인의 동생 엘리자베스에게 그 또한 청혼을 하고만다. 그런 이유들을 물리칠 만큼 사랑이 갖는 위력이 크기 때문이다.

제인 오스틴의 흥미진진한 스토리에 감각적 영상 더해
18세기 말에 유효했던 결혼의 조건은 21세기라고 다르지 않다. 제인 오스틴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는 로맨틱한 감정을 다루면서도 현실 감각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조 라이트 감독은 원작의 뼈대와 주요 대사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으로 원작에 경의를 표한다.
감독은 대신 역동적인 카메라와 드라마틱한 배경을 통해 ‘그럼에도 사랑에 빠지는’ 젊은 남녀의 모습을 매력적으로 담아낸다. 남녀의 자연스러운 접촉을 이끌어내는 무도회장은 로맨스가 피어나는데 최적의 장소. 역동적인 카메라는 휘몰아치듯 돌아가는 군무의 물결 속에서 서로를 찾는 시선, 상대에 들뜨고 반하는 순간순간을 눈부시게 잡아낸다.
다시가 엘리자베스에게 구애하는 장소도 원작의 안락한 응접실이 아닌 폭우 속의 정자로 바꾸어 이들의 감정을 훨씬 강렬하게 드러낸다. 실컷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을 퍼붓고도 키스를 할 듯 머뭇거리는 입술은 전적으로 현대적인 각색이다. 엘리자베스가 셔츠 앞섶을 풀어헤친 다시와 안개 낀 들판에서 다시 만나는 장면은 ‘폭풍의 언덕’과 착각한 게 아니냐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영화는 18세기 말 영국 시골 저택의 분위기를 재현하는데도 충실하다. 영화 도입부, 산책을 즐기고 돌아오는 엘리자베스 주위로 마당에 놓아기르는 닭과 오리 소리가 시끄럽고 흰 빨래들은 빽빽이 널려 바람에 나부낀다. 시끌벅적한 건 저택 안도 마찬가지. 부엌과 응접실은 어수선하고, 어린 처녀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와 퉁탕거리며 복도를 달리는 소리가 집안을 채우고 있다.

제인 오스틴의 18세기 명작 소설을 역동적인 카메라로 담아낸 ‘오만과 편견’

책을 읽으며 산책중인 베넷가 둘째 엘리자베스.

제인 오스틴의 18세기 명작 소설을 역동적인 카메라로 담아낸 ‘오만과 편견’

베넷가의 큰딸 제인과 순진한 신사 빙리는 무도회에서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관객들은 유연한 카메라 동선을 따라 집안 분위기와 등장인물들의 개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경박하고 수선스러운 베넷 부인, 그런 부인을 놀리는 걸 낙으로 삼고 있는 듯한 노신사 베넷씨, 우아한 금발 미인인 큰딸 제인, 총명하며 말괄량이 기질이 엿보이는 둘째 엘리자베스, 고상한 체하는 셋째 메리, 발랄하고 철없는 넷째 키티와 다섯째 리디아.
영화 속에서 웃음을 자아내는 재치 넘치는 대사와 설정들은 대부분 제인 오스틴의 원작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2백년 가까운 시간의 간격이 무색할 만큼 낡지 않은 유머 감각은 ‘오만과 편견’이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또 다른 이유다. 감독은 거기에 딸 시집보내는 이야기를 하던 베넷 부인이 지나가는 돼지의 생식기를 바라보는 의뭉스러운 시선이라든지, 수줍음 탓에 팔을 내주지 않는 첫째 제인 때문에 안타까이 스커트 뒷자락을 잡고 따라가는 빙리의 손을 보여주는 식으로 자신만의 유머를 덧붙였다.

18세기 말 영국 시골 풍경 속에 펼쳐지는 생기발랄한 로맨스
‘슈팅 라이크 베컴’에서 소녀 축구 선수로 등장, 보이시한 매력을 과시하며 세계 영화팬들에게 얼굴을 알린 키이라 나이틀리는 원작에 묘사된 ‘검은 눈의 아름다운 표정 때문에 유난히 총명해 보이는’ 엘리자베스에 맞춘 듯이 어울린다. 조 라이트 감독은 ‘캐러비안의 해적’ 등 대작에서 활약한 그가 ‘지나치게 매력적’이라는 게 탐탁지 않았지만 직접 그를 만나보고 말괄량이 기질을 지닌 엘리자베스에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차가운 표정으로 신랄한 말을 던지지만 사랑 앞에서 부드럽고 소심해지는 다시는 왕립연극학교 출신 매튜 맥퍼든이 맡았다. 해외 영화팬들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국 첩보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시리즈의 주연을 맡으며 인기를 얻었으며, 풍부한 표현력으로 주목받는 배우다.
우유부단한 빙리 역의 사이먼 우즈는 소년 같은 천진한 미소와 어리숙한 행동으로 웃음을 준다. 영국 TV 드라마에서 주로 활동해왔으며 조 라이트 감독의 역사물에서 조연을 맡은 인연으로 영화에 합류했다. 제인 역의 로자문드 파이크는 옥스퍼드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재원. ‘007-어나더 데이’의 본드걸에서 180° 이미지 변신, 감정을 조용히 안으로 삭이는 연기를 보여준다.
베넷 부부역의 브렌다 블리신과 도널드 서덜랜드는 안정감 있는 연기로 극의 무게 중심을 잡아준다. 마이크 리 감독의 ‘비밀과 거짓말’에서 입양 보낸 흑인 딸과 재회해 혼란을 겪는 백인 노동자 계층 여성 역으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브렌다 블리신은 푼수기 있는 베넷 부인 역을 능청스럽게 소화해냈다. ‘바늘구멍’에서 냉혈한 독일 스파이, ‘분노의 역류’에서 미치광이 방화범 등으로 인상적인 악역 연기를 선보여 온 도널드 서덜랜드는 일흔 살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는 정정함을 과시하며 날카로운 유머 감각과 따뜻한 부성애를 동시에 갖춘 아버지상을 그려냈다.

18세기 말 남자 쪽 집안의 반대로 결혼이 좌절된 한 영민하고 아름다운 여성이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며 써내려간 이야기는 젊은 감독의 손을 거쳐 영상 세대에 어울리는 로맨틱 코미디로 재탄생했다. 원작을 읽어보지 않아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으며 영화를 본 뒤 원작을 찾아 낭만적인 가을밤의 벗으로 삼아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제인 오스틴(1775~1817)은 영국 햄프셔 주 스티븐턴에서 교구 목사의 6남2녀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16세부터 희곡을 쓰기 시작했고, 신분과 재산 차이 때문에 연인과 헤어진 이듬해 그 경험을 바탕으로 서간체 소설 ‘첫인상’을 집필한다. 그러나 당시엔 출판을 거절당하고 후일 ‘오만과 편견’으로 개작해 출간 후 독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이성과 감성’‘맨스필드 파크’‘에마’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호평을 받았으며 42세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둘 때까지 독신으로 살았다.



제인 오스틴의 18세기 명작 소설을 역동적인 카메라로 담아낸 ‘오만과 편견’
조 라이트 감독(34)은 난독증으로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마치지 못했으며 전문학교에서 미술과 영상을 공부했다. TV 미니시리즈‘찰스 2세: 파워 앤 패션’으로 영국영화ㆍTV예술아카데미상(BAFTA)을 수상했으며 ‘네이처 보이’와 ‘상해(傷害)’ 등 다양한 TV 시리즈를 연출했다. ‘오만과 편견’은 그의 첫 번째 장편 극영화.


여성동아 2006년 9월 5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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