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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유쾌한 그녀

데뷔 25년 만에 처음으로 코믹연기 도전하는 배우 이혜영

“엄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이제 편안~해요”

글·김명희 기자 / 사진ㆍ홍중식 기자|| ■ 의상 & 소품협찬ㆍPARASUCO 뱅글 THE SHOE 폴리폴리 ■ 장소협찬ㆍ보나세라

입력 2006.07.24 17:25:00

‘배우 이혜영’ 하면 우선 카리스마가 떠오른다. 한국 여배우 가운데 드물게 강렬한 눈빛을 지닌 그를 만나러 가는 길, 사실은 좀 긴장됐다. 하지만 이런 긴장은 그를 만나자마자 이내 풀어졌다. 그는 두 아이를 둔 주부로서, 배우로서, 유명 영화감독의 딸로서 살아가는 자신의 일상을 진지하지만 유쾌하게 들려주었다.
데뷔 25년 만에 처음으로 코믹연기 도전하는 배우 이혜영

“남편이 연예계에 친분이 있는 사람들한테 ‘배우 이혜영의 이미지를 어떻게 가져가는 게 좋을까’ 하는 조언을 받아오기도 하는데, 말하는 걸 들어보면 딱 장미희 선배예요(웃음). 고상한 배역만 맡고 말 많이 하지 말고,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하지만 어떡하죠? 전 그런 성격이 아닌걸….”
영화배우 이혜영(44)이 7월 초부터 방영되는 KBS 일일시트콤 ‘웃는 얼굴로 돌아보라’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81년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데뷔한 이래 연극 ‘사의 찬미’, 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 드라마 ‘개벽’ ‘미안하다 사랑한다’ ‘패션 70S’ 등에서 강한 캐릭터를 맡아 색깔 있는 연기를 보여준 그에게 과연 코믹연기가 어울릴까. 이혜영은 그런 자신에 대한 선입견을 한번쯤 깨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시트콤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를 잘 아는 지인들도 “너의 갈 길은 코미디다. 이제 본모습을 보여줄 때가 됐다”며 출연을 부추겼다고.
“저는 대본을 읽고 미리 생각하고 정해진 틀에서 연기하는, 말하자면 ‘옛날식 연기’를 하는 사람이라서 상대방이 대본대로 하지 않으면 당황하거나 화를 내기도 해요. 그런 면에서 코믹연기는 모험이죠. 아마 10년 전에 제의가 들어왔더라면 안 했을 거예요. 그런데 요즘 들어 그 벽을 한번 넘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보다 마음이 열렸다고 할까, 편안해진 것 같아요.”
‘웃는…’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화해, 사랑을 담은 시트콤. 그는 전직 여배우 출신의 라디오 DJ 역을 맡아 이덕화와 중년의 로맨스를 엮어간다. “이덕화 선배 덕에 처음 하는 코믹연기에 대한 부담을 조금은 덜 수 있었다”는 그는 이덕화와는 드라마 ‘개벽’과 광고 등에 함께 출연하며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고.
“덕화 선배요? 아휴, 카리스마 하면 난 댈 것도 아니지. 그래도 전 10여 년 전에 함께 CF를 찍으면서 그 카리스마가 무너지는 걸 봤어요(웃음). 뗏목을 타고 급류를 내려오다가 제가 물에 빠지면 안고 나오는 역이었는데 아마 수십 번은 넘어졌을 거예요. 그때 제 몸이 지금의 두 배였거든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가족에게 소홀했던 아버지를 용서하게 됐어요”
인터뷰에 앞서 사진을 찍으며 문득 생각난 듯, 그는 “요즘 내가 아버지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외모도 그렇지만, 아이들을 안을 때 숨이 막힐 정도로 꽉 끌어안는데 아버지도 나를 그렇게 절절하게 안아주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 영화계의 거장 고(故) 이만희 감독. ‘돌아오지 않는 해병’ ‘만추’ ‘흑맥’ 등 50여 편의 작품을 남긴 그는 75년 간경화로 작고했다.
“얼마 전 아버지의 작품 두 편이 새로 발견됐어요. 베트남전쟁 때 현지에 가서 찍은 전쟁영화였는데 직접 연기를 하셨더라고요. 이미 건강이 많이 악화돼서 몸이 왜소해지고, 눈에는 황달기가 가득했지만 연기만큼은 전문배우 못지않게 잘하셨더라고요. 미국배우 버트 랭커스터를 좋아하셨던가봐요. 그 스타일로 연기하신 걸 보니….”
거장의 딸이라는 배경은 그에게 복합적인 영향을 미쳤다. 아버지는 그에게 자부심이자 열등감의 대상이기도 했던 것. 한동안 그는 영화에 빠져 가정을 돌보지 않았던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다고.

데뷔 25년 만에 처음으로 코믹연기 도전하는 배우 이혜영

“아버지는 영화에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고 열정을 쏟아부었지만 그런 만큼 가족에겐 소홀했죠. 방치되다시피 했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떠올리기 싫어 아버지를 잊으려고도 했어요. 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같이 작업했던 여배우들이 저보다 아버지를 더 잘 아는 것처럼 이런저런 말들을 하는 것도 싫었고요.”
“일찌감치 공부에는 흥미를 잃었고 영화 보기 외에는 다른 취미가 없었던” 소녀는 이제 많은 후배들이 선망하는 중견배우가 됐다. 영화에 대한 열정을 대물림했으니, 그 성공의 상당부분은 아버지의 몫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아마 아버지가 살아계셨더라면 배우를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머니도 젊은 시절 연기를 했는데 아버지가 반대해서 그만뒀어요. 가족에게는 무조건 희생을 강요했죠. 결국은 그 문제로 두 분이 갈라섰어요. 아마 아버지는 제게도 똑같이 하셨을 거예요.”
그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졌다고 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하나씩 낳을 때마다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점점 더 애틋해지더라고요. 특히 아들 원이가 아버지를 많이 닮아서 원이를 볼 때마다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요.”

“아이들은 유기농 음식만 먹이며 아~ 주 특별하게 키우고 있어요”
이혜영은 프랑스 파리에서 만난 남편과 99년 결혼, 딸 하연(9)과 아들 원(3)이 남매를 두고 있다. 아이들은 어떻게 키우느냐고 묻자 그는 “특별하게, 아~ 주 특별하게 키우고 있다”며 크게 웃었다. ‘특별’이란 단어를 두 번이나 강조한 데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다고 한다. 자신은 아이들을 평범하게 키우고자 하지만 남편과 시어머니는 그게 아니라는 것.
“저희는 시어머니가 지방에서 직접 농사를 지어 보내주시는 유기농 채소만 먹는답니다. 상추 하나도 마음대로 사다 먹질 못해요. 닭도 직접 키워서 냉동해서 보내주실 정도죠. 남편도 아이들 과자 먹이지 마라, 인스턴트 식품 먹이지 마라, 날마다 잔소리해요. 남편이 잔소리를 하면 일단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그렇게 깔끔을 떠니까 우리 아이들 면역력이 떨어지는 거야’라고 혼잣말을 하곤 하죠(웃음). 부부싸움을 하는 이유도 숨겨 놓았던 과자를 들키는 걸 빼면, 다른 거 없어요. 그런데 어떡해요. 전 과자 없이는 아이들을 휘어잡지 못하는걸요.”
데뷔 25년 만에 처음으로 코믹연기 도전하는 배우 이혜영

시트콤을 통해 코믹연기에 도전하는 이혜영. 그는 강한 카리스마 만큼이나 따뜻한 인간미가 돋보이는 배우다.


라면을 먹어도 되는 집안에서 자란 엄마와 라면이라는 단어가 아예 사전에 없는 집안에서 자란 아빠 사이에서, 딸은 현명하게도 생존방식을 터득했다고 한다.
“아빠나 할머니가 있을 때는 얌전하게 ‘웰빙 음식’만 먹는 척하다가 저와 단둘이 있을 땐 ‘지금은 모녀~ 타임’ 하면서 숨겨둔 과자를 찾아와요.”
그는 스스로를 ‘원칙이 없는 엄마’라고 평했다. 자신의 기분에 솔직하다 보니 아이들 키우는 데 일관성이 없다는 것. 가끔은 그런 자신보다 딸이 더 어른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고.
“얼마 전에 우리 딸이 “엄마 아까 화냈잖아, 그런데 지금 왜 웃어?”라고 말하는 걸 듣고는 반성 많이 했어요. 태닝을 하러 가서 비키니 수영복을 입겠다고 했더니‘너무 섹시해서 안 된다’고 말릴 정도니, 우리 딸이 이제 다 컸나봐요.”
이혜영은 얼마 전 SBS 오락 프로그램 ‘야심만만’에 출연, 건강관리에 집착하는 시어머니에 대해 살짝 불평을 하기도 했다. “집안일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시어머니와 내가 너무 달라서 한때 결혼생활에 위기를 맞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던 것.

데뷔 25년 만에 처음으로 코믹연기 도전하는 배우 이혜영

“어머니 연세가 지금 70대인데, 뒷모습만 보면 40대 같아요. 아마 제 몸매가 부럽지 않으실걸요(웃음). 그만큼 자신이나 가족의 건강관리에 철저하신데 결혼 초에는 그런 문제로 약간의 갈등이 있었어요. 그런 얘기를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처음으로 했죠. 그리고 방송이 나가기 전에 미리 어머니께 ‘어머니, 제가 방송에서 어머니 얘기를 한 게 있거든요. 화내지 말고 보시고 모니터해주셔야 돼요’라고 말씀드렸더니 나중에 “솔직하게 말 잘했네”라며 오히려 좋아하셨어요.”
그가 방송에서 그렇게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던 건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좋아져 모녀처럼 지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시어머니는 ‘배우 이혜영’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하다.
“지금은 어머니 말씀이 다 옳다고 생각해요. 아직 몸이 따라주진 않지만…(웃음). 또 어머니가 그렇게 남편이나 아이들을 챙겨주는 덕분에 제가 연기에만 전념할 수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죠. 또 어떤 작품에 출연제의가 들어왔을 때 ‘화장을 너무 진하게 해야 한다’ ‘캐릭터가 강하다’는 이유로 남편이 반대해도 어머니는 오히려 ‘소신껏 밀어붙이라’고 격려해주시죠.”
이혜영은 마치 오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듯 편안하게 자신의 일상을 들려주었다. 강한 카리스마보다 넉넉하고 따뜻한 인간미가 더 돋보이는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삶이란 게 특별한 계획이 있다고 해서 그대로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다만 아내로, 엄마로, 딸로서, 배우로서 제게 주어진 일들을 모두 잘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여성동아 2006년 7월 5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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