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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정가 화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숨겨진 여인이라 주장하는 이경선씨

“젊은 시절 사랑으로 낳은 우리 딸 인정하고 나에 대한 냉대를 거두어주시오”

기획·최호열 기자 / 글·감명국‘일요신문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선데이저널(www.sundayjournalusa.com) 제공

2005. 11. 16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숨겨진 여인이라 주장하는 이경선씨가 YS를 상대로 위자료 청구소송을 내 화제다. 둘 사이에서 태어나 비운의 삶을 살고 있는 딸 주씨를 YS의 호적에 올리고 자신에게는 정신적 고통에 대한 피해보상을 해달라는 이씨의 주장과 이에 대한 YS 측의 입장을 취재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숨겨진 여인이라 주장하는 이경선씨

오래 전부터 숨겨진 딸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던 김영삼 전 대통령.


지난9월 말 김영삼 전 대통령(이하 YS)의 숨은 여인으로 그의 딸까지 있다고 주장하는 이경선씨(70)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YS를 상대로 ‘위자료 청구소송’을 낸 사실이 최근 뒤늦게 밝혀졌다.
이씨는 소장에서 “그동안은 YS의 사회적 입장을 고려해서 양육비를 받고 함구해왔으나 이제는 딸 주○○(43)이 호적 입적이 안됐다는 이유로 결혼을 미루고 있어 더 이상 기다릴 수만은 없다”며 위자료 청구소송 이유를 밝혔다. 그동안 일부 언론에서 간간이 제기했던 ‘YS의 숨겨진 딸’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른 셈이다.
이씨 측의 입장은 단호하다. “YS가 눈앞에선 딸임을 인정하면서도 밖으로는 우리 모녀의 존재를 부정한다”며 “그렇다면 DNA 친자 감식을 통해 딸임을 떳떳이 밝히자”는 것.
반면 상도동 측의 반응은 애매하다. 비서진들은 “딸에 대해서 (YS에게) 들은 바도 없고, 확인해줄 입장도 아니다”라는 반응이고, YS는 철저하게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다만 상도동 측은 이씨에 대해 “그 여자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돈이다. 비서들이 시달리고 있다. 딸을 빙자해서 돈을 얻겠다는 70세 노인에게 연민의 정을 느낀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씨의 법률대리인인 용태영 변호사는 “YS 측이 이제 와서 딸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그야말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라며 “이씨에 따르면 YS 측에서 그동안 23억원의 생활비를 지원한 것으로 안다. 이 모녀와 아무 상관도 없다면 그 많은 돈을 전달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씨 측의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정작 위자료 청구소송과 함께 제기될 것으로 예상됐던 친자확인소송은 제기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용 변호사는 “친자확인소송을 하려면 당사자인 딸 주씨의 위임장이 필요한데, 주씨가 현재 여기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며 “모녀의 관계가 지금 그리 원만치 못한 듯하다”고 덧붙였다.

YS와는 5·16 군사혁명 직후 만나 사랑 키워
김영삼 전 대통령의 숨겨진 여인이라 주장하는 이경선씨

60년대 초 김영삼 전 대통령과 사랑을 나눠 둘 사이에 딸을 낳았다고 주장하는 이경선씨.


과연 이번 소송의 진실은 무엇일까. 4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 이씨와 YS 측이 이렇게 험악한 모양새로까지 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또한 이씨와 딸 주씨는 왜 사이가 나빠졌을까.
이에 대해 답을 줄 수 있는 당사자는 이씨 모녀와 YS, 세 사람이다. 하지만 YS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고,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딸 주씨 또한 전혀 나서지 않고 있다. 그나마 입을 열고 있는 사람은 이씨뿐이지만 그마저도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는 일체 거절하고 있다. 따라서 그가 제출한 소장과 여기에 첨부한 자신의 편지, 그리고 지난 3월경 가진 재미교포사회 언론매체인 ‘선데이저널’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그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씨는 인터뷰에서 자신과 YS의 관계, 딸 주○○씨에 대한 부분을 비교적 상세히 밝히고 있다. 그가 YS를 알게 된 것은 61년 5·16 군사혁명이 발발한 직후로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전화를 걸어와 “내 애인의 아주 절친한 친구가 있는데, 넷이서 함께 만나지 않겠느냐”고 제의해 함께 만난 것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당시 20대였던 이씨는 나이 많은 기업가의 후처로 있다가 헤어진 상태였는데, “30대의 젊고 야심찬 정치인을 만나게 된 나는 곧 그에게 빠져들었고, 그 뒤 내가 살고 있는 익선동 집을 그가 매일 같이 드나들면서 열정적 사랑을 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당시 우리들은 사람들이 알아볼까 두려워 밖에서 그 흔한 영화 구경 한번 해본 적 없이 내 집에서만 데이트를 즐겼다”면서 “가정이 있던 그 사람은 단 한번도 우리 집에서 자고 간 적은 없으나, 부인에게 들켜서 부부싸움을 크게 하는 소리를 전화통화를 통해 듣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YS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주씨가 태어난 것은 1962년 11월. 이씨는 YS도 이씨와의 사이에서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반겼다고 말한다. “서울 종로의 한 산부인과에서 딸을 낳자 YS가 친구와 함께 찾아와서 아들이 아닌 딸이라 다소 서운해하기는 했으나 자신과 꼭 닮았다며 안아주었고, 이후 우리 집에 자주 찾아와 딸을 안아주고 갔다”는 것.

김영삼 전 대통령의 숨겨진 여인이라 주장하는 이경선씨

이경선씨의 젊었을 때 모습.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63년 계엄령이 해제되고 YS가 정치활동을 본격적으로 재개하면서 멀어졌다고 한다. YS가 국회의원 신분으로 바쁜 와중에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 집을 찾아왔지만 이런 생활에 회의를 느낀 이씨가 그와 헤어져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주씨보다 6세 위)과 딸을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64년 2월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것.
이씨는 일본에서 재일교포 사업가 윤씨를 만나 결혼, 잠시 행복한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남편 윤씨의 사업이 부도나고 뒤이어 사망하는 바람에 빚을 떠안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소장에서 딸 주씨에 대한 가슴 아픈 사연을 털어놓기도 했다. YS의 호적에 입적되기를 바랐지만 받아주지 않아 호적도 없이 스님이 지어준 이름인 김○○이란 이름으로 외할머니와 함께 6년간 살았다는 것. 이를 참다못해 이씨가 평소 알고 있던 주씨 성을 가진 대만인의 호적에 딸을 입적시켜 일본으로 데려갔기 때문에 현재 딸의 성이 주씨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몇 년 후에는 딸이 일본 여성의 양녀가 돼 가○○ ○○○로 또다시 이름이 바뀌는 등 기구한 인생을 살게 되었다고.
74년경 이씨는 딸을 미국으로 보내기 위해 처음으로 YS에게 손을 내밀었다고 한다. 당시 YS가 직접 찾아와서 미국행 비행기표와 경비 3천 달러를 쥐어주며 딸에게 “미국에서 공부 열심히 하라”는 당부를 하고 돌아갔는데, 이때 딸 주씨는 외할머니를 통해서 YS가 자신의 생부임을 처음 들었다고 한다. 이씨의 주장에 따르면 YS가 딸을 이때 한번 만난 것을 마지막으로 그 후로 한번의 만남도 없었다고 한다.
이씨는 소장에서 “당시 YS는 신민당의 요직자로 있으면서 장차 대통령 후보가 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었고 이러한 사정과 장차의 정치적 입지를 내세워 출생 직후 여식에 대한 인지를 지체하면서 오랜 세월을 버텼고, 호적 입적을 요구하는 내게 그때마다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달래면서 93년 마침내 14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때 원고의 딸은 이미 31세의 노처녀 신세가 되어 있었으니 그간 30년 이상을 사생아 신세로 서러움을 씹어 삼켰다” 주장했다.
또한 “딸은 지금 43세의 중년 노처녀가 되었고 독신녀로 인생의 반절을 보내게 되었는 바, (YS는) 입으로는 딸임을 인정하면서도 친자 확인이나 호적 입적을 요구하면 전혀 딴사람이 되어 동문서답은 물론 언제 내가 딸로 인정했었더냐는 투로 남의 일처럼 냉랭하였다”며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법의 힘으로써만 딸의 생부를 밝힐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소송 이유를 밝혔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면 대통령이 되도록 모든 고통을 참으면서 무정세월을 흘려보낸 원고와 딸에 대해서 대통령이 된 후, 그리고 그 임기가 끝난 지 7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는 어째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냐”라며 “여전히 친생자임을 부인한다면 DNA 유전자 감식으로 염색체 감정을 통하여 딸이 피고의 자식임을 준엄하게 밝힐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씨와 딸 주씨 관계 악화돼 친자 확인 가능할지는 의문
끝으로 이씨는 “그간 피고의 도움으로 딸을 양육하고 교육을 시켰으나 원고는 이제까지 딸을 돌보는 생활로 피고로부터 받은 도움은 모두 소비되고 원고 자신도 70세 고령으로 활동불능인 바, 위자료 30억원 가운데 일부금으로 우선 1억원을 청구한다”고 덧붙였다.
용 변호사는 “이씨에 따르면 그동안 YS 측으로부터 23억원이라는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돈은 딸의 양육비와 교육비조로 지급된 것이라고 볼 때 이씨 자신이 당한 피해와 고통에 대한 위자료는 받을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하지만 23억원에 대한 부분은 현재 이씨에게 상당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23억원이나 되는 돈을 지급했다면 YS 측으로서도 할 만큼 한 것 아니냐. 그 많은 돈을 모두 탕진한 이씨에게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비난 여론이 만만찮게 제기된 것. 또한 결과적으로 이 돈이 계기가 되어서 현재 딸 주씨와의 관계가 무척 소원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씨 측에 따르면 지난 2000년 당시 친자확인소송을 준비할 때만 해도 이씨와 딸 주씨의 관계는 원만했다고 한다. 당시 주씨는 미국에서 위임장을 써주기도 했다는 것. 하지만 당시는 소송까지 전개되지는 못하고 흐지부지되었다. 그런데 다시 소송을 준비하자 이번엔 주씨가 응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들 모녀는 최근 1년여 이상을 서로 연락도 하지 않고 지낼 정도로 사이가 극도로 나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용 변호사는 “아마도 금전적인 문제 때문인 것 같다”고 밝혔다. 즉 생모 이씨가 그동안 YS 측으로부터 23억원이나 되는 돈을 받았으면서도 그 돈을 자신을 위해서 쓰기보다는 일본에서의 빚 청산과 오빠의 사업자금으로 모두 탕진한 데 대해 서운함을 갖게 됐다는 것.



이씨 역시 이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있다. 그는 “딸을 만나기 위해 미국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으나 내 전화는 아예 받지도 않고 있다. 딸 친구를 통해서 안부를 전해들었을 뿐”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런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어머니 이씨와는 달리 딸 주씨는 이번 소송을 그리 탐탁지 않게 보고 있다는 것. 즉 “굳이 생부의 명예를 욕보이는 소송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입장이라는 전언이다.
현재 이씨 모녀의 소원해진 관계와 입장 차이는 이번 친딸 논란을 여전히 평행선으로 치닫게 할 가능성을 낳고 있다. 용 변호사는 “당초는 친자확인소송과 위자료청구소송을 병행할 예정이었으나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인 주씨가 협조를 하지 않고 있어 좀 김이 빠진 것은 사실”이라며 “그래도 위자료청구소송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씨 또한 이번 소송을 제기하기 직전까지 YS 측의 수용 가능성에 대해 일말의 희망을 버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계속 냉대가 이어지자 “이렇게 나온다면 친자확인소송을 하겠다”고 밝혔고, 상도동측에서도 “마음대로 해보라”고 했다는 것.
용 변호사는 “전직 대통령이기에 앞서 남자로서, 아버지로서 금전적인 도움 외에 마음으로나마 조금의 성의라도 보였더라면 이렇게까지 갈 이유도 없었다”며 “막판에 몰린 이씨로서는 이 방법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상도동 측은 이씨 측의 정식 소장 제기 사실에 대해 “그에 대해서는 우리(비서진)는 아무것도 모른다. 어른(YS)도 아무 언급이 없으셨다”는 기존 입장만 계속 되풀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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