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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이색 수집가

국내 첫 성박물관 문 연 원명구

“성에 대한 전시물 보는데 그치지 않고 성문화를 충분히 즐기는 열린 공간으로 꾸릴 겁니다”

글·최호열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2005. 09. 12

서울 시내 한복판에 희귀한 성 관련 유물을 전시하는 이색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단순히 성 유물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치 않고 열린 성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만들겠다는 설립자 원명구씨를 만나 성 박물관 개관 뒷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국내 첫 성박물관 문 연 원명구

최근 서울 시내 한복판에 이색 박물관이 문을 열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신촌 현대백화점 근처에 들어선 ‘서울 성 역사 박물관’이 그것. 설립자 원명구씨(50)에 따르면 “과거에도 성과 관련한 전시공간은 있었지만 문화재청의 정식허가를 받은 본격적인 성 박물관은 최초”라고 한다.
건물 3층과 4층 두 개 층으로 이루어진 박물관엔 국내는 물론 중국과 일본, 티베트, 동남아, 아프리카, 남미 등지에서 가져온 희귀한 성 유물 5백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세계의 다양한 성문화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3층에 들어서면 우선 다양한 모양의 남근 조각들이 호기심을 자아낸다. 또한 4층에 올라가면 옛날 양반들이 베개 속에 보관하며 몰래 즐겨보던 남녀의 적나라한 체위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춘화와 성행위하는 모습을 새겨놓은 도자기 등이 눈길을 끈다.
이색적인 전시물도 많다. 성적으로 억압받던 조선시대 여성들의 욕망을 해결해주던 자위기구인 남근 모양의 도자기는 고려청자 기법으로 만들어져 무척 아름다운데, 원씨에 따르면 2백 년 전쯤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또한 처녀가 시집을 못 간 채 요절했을 때 그 한을 풀어주기 위해 시신에 넣었던 남근 모양의 조각, 얼굴이 남자의 성기 모습을 닮은 태국의 고대 인형, 엽전 모양의 놋쇠에 각종 성 행위 체위를 새겨놓은 것으로 시집가는 딸을 성교육시키는 데 쓰였다는 별전, 서양에서 남자가 전쟁터에 나갈 때 승리를 기원하며 자신의 말안장에 걸어두었다는 남근 모양의 조각, 성이란 남자의 지혜와 여신의 자비가 합쳐져 완벽한 우주가 되는 것이라 주장하는 티베트 밀교의 불상 마하킬라 금동합환상 등도 그가 어렵게 소장한 희귀 유물들이다.

20년 넘게 모은 성 유물 1천여 점 가치 1백억원 넘어
그런데 원씨는 왜 하필 성 관련 유물을 수집했을까.
“22년간 여행사를 운영하면서 전 세계를 돌아다녔는데, 그때 호기심에 성과 관련된 유물들을 수집하기 시작했어요.”
성은 누구에게나 관심 있는 소재여서 호기심에 한두 개 수집을 하지만 이내 싫증도 나고 남의 이목도 있어 그만두게 마련이다. 하지만 원씨는 수집 열정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평소에도 부부동반 모임이나 여행객들과의 술자리에서 성에 대한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풀어놓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속으로는 성을 밝히면서 겉으로는 초연한 척하는 이중적인 삶을 살면 스스로도 자기 삶에 만족을 못하게 돼요. 결국 누적된 욕망을 절제하지 못해 타락하는 거죠. 전 성은 솔직하게 드러내야 오히려 건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성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가 본격적으로 성 유물을 수집하게 된 계기가 있다고 한다. 어느 시골에 갔다가 남근석 하나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걸 본 것.
“엄연히 문화적 가치가 있는 유물인데 성을 표현했다는 이유만으로 괄시당하는 걸 보며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다음부터는 돈을 버는 족족 여기에 쏟아부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1천 점이 넘게 모이더라고요.”
그 많은 유물을 수집하기까지 제법 많은 돈이 들어갔을 터. 하지만 그는 계산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주로 구입 당시 제가 가지고 있던 모자나 시계 등 물건과 바꿨어요. 우리나라 천원짜리 지폐와 바꾼 경우도 있고요. 탐이 나는 물건은 1천 달러(1백만원)를 줘서라도 샀죠. 이렇게 모은 유물들을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1백억원은 넘을 거예요. 물론 사람마다 인정하는 값어치가 다르겠지만.”

국내 첫 성박물관 문 연 원명구

(사진 왼쪽부터) 성을 묘사한 아프리카 유물 작품, 조선시대 자위기구, 별전, 인도 시바신 조각상, 티베트의 금동합환상.



유물을 모으면서 애로점도 많았다고 한다. 특히 외국에서 구입한 물건을 가지고 들어올 때마다 세관 통과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평범한 물건이 아니니까 일단 세관원들이 무척 까다롭게 조사를 해요. 유물을 꺼내놓고 세관원들과 실랑이를 하다 보면 사람들이 저를 변태 보듯이 쳐다 봐요. 그러면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얼굴이 화끈거리곤 했죠.”
그의 색다른 수집열에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그는 “진귀한 성 유물들을 거실에 진열하지 못하고 창고에 쌓아두어야 했다”며 웃었다.
“처음에 아내가 성 유물 모으는 걸 극력 반대했어요. 하지만 가치가 있는 물건을 모은다는 걸 아니까 끝까지 막지는 않더라고요. 대신 집에 친구나 손님이 왔을 때 집안에 성 유물이 가득한 걸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걱정이 있었나 봐요. 저에게 ‘물건을 모으는 것은 당신 자유이지만 그걸 집안에 전시하고 싶지 않은 건 내 권리’라고 하더군요. 저도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해요. 그래서 서로 양보를 했죠.”
유물이 어느 정도 쌓이자 그는 ‘나 혼자 보고 즐길 것이 아니라 전시관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단순히 전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성문화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박물관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일본, 미국, 스페인, 네덜란드 등에 있는 세계적인 성 박물관들을 볼 기회가 있었어요. 그만큼 성이 개방되어 있는 나라들이라 할 수 있는데, 역설적으로 그런 나라들일수록 성 범죄율이 낮아요. 성 박물관이 그 사회의 성문화 수준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걸 알면서 박물관 설립에 대한 생각이 더욱 강해졌어요. 그래서 6억원을 투자해 개관하게 된 거예요.”
박물관을 만들겠다는 그의 말에 처음부터 반대를 했던 아내는 지금도 박물관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개관식 날 와서 “수고했다”는 말을 하며 지금은 많이 누그러진 상태라고.
국내 첫 성박물관 문 연 원명구

원씨는 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말할 때 성은 건강해진다고 말한다.


박물관은 아직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홍보가 덜 돼 하루 방문객이 20명 정도에 그치고 있다.
“지금은 방문객이 적지만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고 확신해요. 그만큼 이곳엔 성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자료들이 많다고 자부하거든요.”
그는 이곳이 단순히 흥미 위주의 전시공간으로 머물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음지에 묻혀 있는 성을 공개적으로 끌어내 건전한 성 담론을 나누는 열린 문화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 이러한 취지에 걸맞게 3층에 강의공간도 만들고, 성 관련 서적들도 비치해 학습과 토론의 공간으로 꾸며놓았다.
“지금까지는 사람들이 모여 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없었어요. 카페나 술집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여 심도 깊은 섹스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잖아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입장료를 1만원으로 조금 비싸게 책정한 것도 유물만 구경하고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무료로 음료도 마시고, 책도 마음껏 보면서 성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예요. 모임을 가질 수도 있고요.”

박물관을 열린 성문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
그는 또한 개관식 때 마광수 교수를 초청해 ‘성과 카타르시스’를 주제로 강연회를 연 것을 시작으로 최소한 매달 한 번씩 강좌를 열어 성문화 확산에 주력할 것이라고 했다.
“청소년 성교육도 중요하지만 부모의 성교육이 더 급해요. 기성세대의 잘못된 성의식 때문에 아이들이 잘못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예를 들어 아이의 방문을 열었는데 아이가 자위행위를 하고 있었다고 해요. 이럴 경우 부모의 반응은 크게 ‘방해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공부하는 학생이니까 너무 많이 하지는 마라’고 하는 경우와 ‘공부는 안 하고 나쁜 짓만 한다’고 면박을 주는 경우로 나뉠 거예요. 첫 번째 부모의 아이는 부끄럽기는 하지만 자위행위 자체에 대해 죄의식을 갖지 않아요. 그래서 나중에 성에 대해 부모와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요. 반면 두 번째 부모의 아이는 자위행위에 대해 죄의식을 갖게 돼요. 하지만 생리적인 욕구 때문에 죄의식을 느끼면서 몰래 하죠. 정서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거예요.”
그는 앞으로 성 관련 유물들을 수입해 부산, 인천 등에도 성 박물관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자신처럼 성 유물에 관심을 갖고 수집해온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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