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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인 미술 인생 담은 에세이 ‘나는 낮에 죽고 싶다’ 펴낸 설치예술가 안필연

“여자라는 굴레, 가슴의 상처를 예술로 표현하려는 욕구가 용솟음 쳤어요”

■ 글·최호열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5.02.11 10:44:00

조각과 공간조형, 행위예술 등 다방면에서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는 작가 안필연. 대학교수이자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그를 만나 남다른 그의 작업과 아이들의 창의성을 키우는 미술교육법에 대해 들어보았다.
열정적인 미술 인생 담은 에세이 ‘나는 낮에 죽고 싶다’ 펴낸 설치예술가 안필연

설치예술가 안필연(45). 대중들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따져보면 누구나 한번쯤 그의 숨결과 마주한 적이 있을 법하다. 그는 2002년 한일월드컵 개막식 연출에 참여했으며 과천시 관문체육공원의 ‘새천년의 문’, 용산전쟁기념관의 ‘시간을 여는 소녀’, 울산 문수월드컵축구장의 ‘후세를 위하여’, 신촌 아트레온극장의 ‘포옹’ 등의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영국과 이탈리아, 홍콩 등에서도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인정받고 있는 그는 현재 홍콩 포시즌호텔 조형물을 비롯한 서구룡반도 대규모 문화단지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그가 최근 자신의 미술인생 15년을 돌아본 에세이 ‘나는 낮에 죽고 싶다’를 펴냈다. 책에는 그의 작품세계, 우리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파격적인 퍼포먼스 등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초년병 작가시절의 애환 등 그의 예술을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들이 섬세하게 녹아 있다. 죽을 때도 세상과 삶과 예술을 또렷이 분간할 수 있도록 ‘쨍쨍한 햇살이 있는 대낮’에 죽고 싶다는 그를 만났다.
유치원 때부터 평생 미술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그에게 “왜 미술을 선택했냐”는 우문을 던지자 “그건 내게 왜 태어났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고 대답했다. 미술 작업을 할 때 가장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작가 초년병 시절, 전시회에서 한 작품도 팔리지 않는 비애를 맛보면서도 미술에 대한 열정을 한번도 잃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제가 내성적인 성격이라 표현을 잘 못해요. 그래서 미술을 통해, 퍼포먼스를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마음껏 풀어놓았죠.”
그가 풀어놓고 싶은 이야기 중 하나가 ‘여성’이다. 그는 ‘더 이상 계집애는 그만’이라는 뜻으로 마칠 필(畢)에 고울 연(姸)으로 지어진 자신의 이름에서부터 우리 사회에 뿌리박힌 남아선호 사상을 절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이름 덕분인지 밑으로 남동생이 태어났는데 동생이 누워 있을 때 실수로라도 동생을 타넘고 지나간다든지 머리 위로 지나간다든지 하면 ‘그건 바로 죽음을 의미’했다고.
그런 차별을 받았다면 남자에 대한 적개심을 쌓았을 법도 한데 그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결혼을 했다. 위로 두 언니들이 시집갈 생각을 하지 않자 셋째 딸마저 시집을 못 갈 것을 걱정한 아버지가 예식장을 먼저 잡아놓은 채 대학 4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강제로 맞선을 보게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체험의 유무와 상관없이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여자는 다 페미니스트예요. 저도 당연히 여자라는 굴레와 불이익을 예술로 표현하려는 욕구가 자연스럽게 생긴 거죠.”
그는 자기처럼 남아선호 사상으로 설움과 상처를 받았던 이 땅의 여자 이름들, 필연, 말연, 종희, 후남, 필남, 끝순이들을 위한 예술 작업을 했다. 이 이름들로 도장을 새겨 종이에 찍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웃지 못할 일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동네 도장집을 돌아다니며 각기 다른 이름의 도장을 여러 개씩 파달라고 하다 낙관을 위조해 동양화 사기를 벌이려는 사기꾼으로 오인받아 경찰서까지 끌려간 것.
또한 그에게 빼놓을 수 없는 작품 소재는 가위다. 가위는 담벼락에 쓰여진 소변금지라는 붉은 글씨 옆에 가위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남성성’의 거세라는 의미가 강하다. 그런데 그는 가위를 창조의 매개로 인식, 단절보다는 생성의 의미를 살려냈다.
“가위는 남성에게는 거세의 위협을 느끼게 하는 파괴적인 도구이지만 여성에게는 창조의 순간에 항상 수반되는 도구이기도 해요. 옷을 만들 때도, 종이를 오려 어떤 모양을 만들 때도, 머리를 자를 때도 사용하죠. 심지어 탯줄을 끊어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킬 때도 가위로 자르고요.”

열정적인 미술 인생 담은 에세이 ‘나는 낮에 죽고 싶다’ 펴낸 설치예술가 안필연

93년 화제를 불러일으킨 가위 퍼포먼스를 하는 안필연씨(왼쪽 사진). 용산 전쟁기념관에 있는 ‘시간을 여는 소녀’(가운데). 홍콩 국제금융센터Ⅱ 정원에 있는 ‘밀물’.


가위는 기능이 다른 두 가지 성이 합쳐져 기능을 발휘한다. 그래서 그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협력을 상징하는 게 가위라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가위가 여자들의 손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생산의 도구라는 것 외에 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찾아보니까 좋은 의미가 많더라고요. 집이 안 팔리면 3대째 흉한 일이 없는 집안에서 쓰는 가위를 집안에 걸어놓으면 팔렸다고 해요. 시집 안 간 딸이 있으면 대문 밑에 가위를 묻어두어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게 하면 시집을 가게 된다는 풍습도 있었고요.”
여성차별이라는 묵은 때를 씻어내는 ‘살풀이’ 퍼포먼스로 주목받아
열정적인 미술 인생 담은 에세이 ‘나는 낮에 죽고 싶다’ 펴낸 설치예술가 안필연

요즘 안필연씨의 관심은 빛이다. 빛을 소재로 한 신촌 아트레온 작품 앞에서.


그는 또한 퍼포먼스를 통해 그의 페미니즘 사상을 표현하기도 했다. 93년엔 여성의 굴레를 잘라버린다는 의미로 관객들로 하여금 가위로 자신의 머리를 자르고 옷을 찢게 하는가 하면 99년엔 덕수궁이라는 역사적인 공간, 그것도 분수대라는 공공의 장소에서 여성들이 빨래를 하는 퍼포먼스를 연출하기도 했다. 그건 여성차별이라는 오랜 역사의 묵은 때를 씻어내는 살풀이였다.
이처럼 그의 페미니즘은 전투적이지 않지만 강한 울림을 주었고, 그로 인해 진보적 미술계뿐 아니라 보수적인 화단으로부터도 예술성과 독창성을 인정받았다.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한 후 지난 20여 년 동안 그의 작업세계는 변화의 폭이 무척 큰 편이었다. 재료도 나무에서 시작을 해 돌, 흙, 유리로 넘어갔고 규모도 단순한 조각품에서 설치미술로, 공간조형으로 점점 커져갔다. 이런 변화는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예를 들어 98년 신축 중인 주상복합건물 전체의 환경 디자인을 해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도 그는 공간조형에 대한 지식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날 밤부터 공부를 하기 시작해 작업을 완성했다. 또한 경관조명을 해달라는 제안을 받고는 조명의 기초부터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작품을 만들었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다.
“저는 컵을 만들 때 이미 만들어진 컵들을 보지 않고 물을 보며 컵을 디자인했어요. 그게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저만의 독창성을 갖게 한 것 같아요.”
그런 노력의 결과 그의 명성은 외국에까지 알려져 홍콩의 관문인 빅토리아항을 내려다보는 초고층 건물인 국제금융센터 정원에도 그의 조형물 ‘밀물’이 설치되었고, 서구룡반도 문화단지 개발 프로젝트에까지 참여하게 됐다.
요즘 그의 주제는 다각형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다른 작품을 만드는 것.
“꽃병에 꽃이 꽂혀 있는 그림을 보면 누구나 다 똑같은 것을 보았다고 느끼잖아요. 이전 세대에는 그것이 가능했지만 요즘 똑같은 그림을 보며 같은 경험을 반복하라고 하는 것은 관객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생각한 게 다각형이에요. 다각형은 볼 때마다 각도에 따라 느낌이 다르니까요.”
그는 작업을 하면서 어려움도 많았다고 한다. 95년에 큰 교통사고를 당해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났죠. 그 충격으로 당시 부분기억상실증을 앓기도 했어요. 문병 온 사람의 얼굴도 이름도 분명 아는데 누군지를 모르겠는 거예요. 정말 답답했죠. 그때 몸도 절반이 마비될 정도로 크게 다쳤어요. 지금까지도 완치가 안 돼 모기가 다리를 물면 가려워야 하는데 아파요.”

열정적인 미술 인생 담은 에세이 ‘나는 낮에 죽고 싶다’ 펴낸 설치예술가 안필연

그는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딸은 올해 스무 살이고, 아들은 초등학교 6학년이다. 경기대 환경조각과 교수이기도 한 그는 아이들의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 어떻게 예술교육을 시켰을까.
뜻밖에도 그는 아이들을 미술학원을 보내거나 미술지도를 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림 그리는 기술 위주로 가르치는 우리나라의 미술학원 교육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았어요. 그랬더니 둘째 아이의 경우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에 갔는데, 담임선생님이 교실 뒷벽에 붙어 있는 그림들을 가리키며 ‘아드님 그림을 찾아보라’고 하더군요. 노란색으로 졸라맨을 그려놓은 게 있어 ‘설마 저게 우리 아들 그림일까’ 했는데 그렇다고 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유전자 감식을 해봐야 한다며 웃을 정도였죠. 그래도 아이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도록 가만 놔두었는데, 요즘은 아주 신통하게 그려요. 사물을 보는 시각이 여느 아이들과 달라요.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아이의 그림이 미숙하다고 하지만 전 그 다듬어지지 않은 ‘야생의 그림’이 좋아요.”
그는 부모들에게 아이들을 자꾸 가르치려고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예술은 기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환경만 조성해주는 것이 아이들의 미술과 창의성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제가 생각하는 미술교육은 좋은 작품을 접할 기회를 자주 제공하고, 자기가 본 것을 스스로 표현하게끔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것이라 생각해요. 또한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선 책을 많이 읽는 습관을 갖도록 하는 게 정말 중요해요.”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환경조각을 하면서 터득한 빛(조명)의 조화를 더욱 깊이 연구할 계획이라는 것.
“지금까지의 작업은 어느 정도 일단락된 것 같아요. 이젠 지금까지와는 다른 걸 하고 싶어요. 요즘 조명에 대한 매력에 푹 빠져 있는데, 빛을 이용한 설치작업을 할까 생각 중이에요. 저는 많은 아이들이 제 작품을 직접 만지고 그 환상적인 빛과 조명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어렸을 때부터 그런 바탕이 있어야 우리 사회가 문화적으로 크게 성숙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시간이 흐른 뒤 빛의 설치로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올 그를 기대해본다.

여성동아 2005년 2월 4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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