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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용기있는 고백

미혼모의 딸로 자라 결혼 6일 만에 이혼한 굴곡진 삶 털어놓은 김청

“우리 모녀 이야기가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 글·최호열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4.11.30 18:01:00

미혼모의 딸로 자라 탤런트가 되자마자 어머니가 사기 당해 진 빚 30억원을 대신 갚느라 10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고, 두 명의 남자로부터 배신을 당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산 탤런트 김청. 그가 처음으로 자신이 겪은 인생의 시련과 이를 극복하기까지의 힘겨웠던 과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미혼모의 딸로 자라 결혼 6일 만에 이혼한 굴곡진 삶 털어놓은 김청

탤런트 김청(43)을 만나러 가는 날은 차가운 바람이 코끝을 빨갛게 만드는 추운 날씨였다. 하지만 바람이 멈춘 사이 내리쬐는 햇볕이 참 따뜻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가 최근 펴낸 자전 에세이 ‘철부지 모녀의 세상나기’를 읽은 느낌도 그랬다. 그를 수없이 좌절하고 절망하게 하는 세상의 추위(시련)들과 이를 견디게 해주는 햇볕(어머니와 지인들의 사랑과 희망)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똑 부러지는 당당함과 한없이 나약한 모습이 공존하는 그의 이미지가 외모 때문이 아니라 그의 파란만장한 삶에서 기인한 것임을 그는 책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했다.
일산 정발산공원 근처에 있는 그의 집에 도착했을 때 김청은 그의 귀여운 아이들(?) 쿠키, 산초와 함께 정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참이었다. 덩치 큰 개가 낯선 방문객에게 달려와 꼬리를 치며 살갑게 굴자 “우리 집 아이들은 이렇게 집도 못 지켜요” 하며 웃는다.
그의 집은 여러 잡지에 소개되었을 만큼 실내와 실외가 모두 예쁘다. 유리창이 크고 많아 실내는 밝고 화사하고, 정원은 여러 사람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넓다.
“처음 이 집을 짓고 이사 왔을 때 별의별 이야기들이 많았어요. 유리창을 크게 하니까 ‘저 집은 뭘 보여줄게 많아서 저렇게 활짝 오픈을 하냐’고 수군거리더라고요. 만약 거꾸로 벽돌로 꼭꼭 싸서 지었다면 ‘저 집은 뭘 그렇게 숨길 게 많냐. 남자 숨겨놓으려고 그러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왔을 거예요(웃음).”
처음엔 연예인이어서 공주처럼 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일 없는 날이면 항상 고무장갑 끼고 나와 개 집 치우고, 정원 청소하는 것을 보더니 동네 사람들 생각이 차츰 바뀌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젠 애완견 이름을 따서 ‘호두 엄마’로 통한다고.
“요즘은 영화 ‘신석기 블루스’를 끝내고 ‘여고생 시집가기’를 촬영하고 있어요. 일이 없는 날이면 오늘처럼 이 아이들과 놀거나 친하게 지내는 여자 연예인 7명(모임 이름도 서로 만나면 좋다고 해서 ‘아이조아’라고 한다)과 수다를 떨어요. 종종 영화 ‘바람의 전설’의 박정우 감독과 그 친구들이 찾아와 고구마를 구워 먹을 때도 있고요. 그렇게 좋은 사람들과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해요.”
부모 결혼 전 아버지 교통사고로 사망하며 미혼모 딸 돼
아직은 우리나라 나이로 마흔셋. 젊다면 젊은 나이에, 아직은 감추고 싶었을 아픈 생채기들을 솔직하게 드러낸 자전 에세이를 펴낸 이유가 궁금했다.
“제 이야기가 흥밋거리로 회자되게 하려고 글을 쓴 게 아니에요.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제 이야기를 읽고 ‘화려해 보이는 연예인도 저런 삶을 살았구나, 나도 열심히 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용기를 냈어요.”
그가 책을 쓰게 된 것은 지난 여름 출판사로부터 제안을 받으면서였다고 한다. 처음엔 “이 나이에 무슨 책이냐”며 거절을 했는데, 그 무렵 방영된 미혼모 문제를 다룬 시사 프로그램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미혼모들이 너무 쉽게 아이를 지우거나 내버리는 것을 보며 화가 났어요. 제 어머니도 미혼모인 셈인데, 저를 이렇게 삐뚤어지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오도록 키워주셨거든요.”

미혼모의 딸로 자라 결혼 6일 만에 이혼한 굴곡진 삶 털어놓은 김청

김청이 자식처럼 여기는 애완견 쿠키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김청과 그의 어머니는 나이가 17세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열여덟 나이에 그를 낳은 것. 고등학교 1학년 때 알게 된 열두 살 많은 군인과 사귀다 덜컥 임신을 했는데, 두 사람은 서로 사랑했지만 양가 부모들의 자존심 싸움으로 인해 김청이 태어난 후까지도 결혼식을 올리기는커녕 제대로 만나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속상한 마음에 매일 술을 마시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미혼모의 삶은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아이를 두고 시집가라는 양가 부모를 피해 강원도로 들어가 숨어 살기도 하면서 혼자 힘으로 김청을 키웠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어머니와 때론 친구처럼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고, 때론 밥상을 앞에 두고 앉아 어머니가 자랑스럽게 내놓은 반찬에 대해 ‘음, 맛있는데’ ‘음, 이건 별로야’ 하면서 부부같이 지내기도 한다고.
“고맙죠. 임신했을 때 저를 지웠다면, 태어난 후에라도 힘들다고 저를 버렸다면 오늘의 저는 이 세상에 없는 거잖아요. 우리 엄마의 꿋꿋한 삶이 후회와 두려움에 지쳐 있을지도 모를 미혼모들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단 한사람의 미혼모라도 이 책을 보고 아이를 지우거나 버리지 않고 우리 엄마처럼 낳아서 키울 수 있다면 전 만족해요.”
그는 또한 어머니가 사기당해 생긴 빚 30억원을 갚기 위해 10년 동안 갖은 고생을 해야 했던 일, 화려한 배우 생활 뒤의 애환, 두 명의 남자로부터 배신을 당하는 시련을 겪고 지금은 홀로 당당하게 서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삶을 담담하게 고백하고 있다. 좌절해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힘들게 산 나도 지금 잘 살고 있다. 당신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래서일까, 책엔 열아홉 살 때 순결을 준 첫사랑의 남자 이야기부터 정말 감추고 싶었을 은밀한 사생활까지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만나 대학 1학년 때까지 사귄 첫사랑의 남자는 김청보다 세 살 많았다고 한다. 철없이 깊은 관계까지 갔지만 남자 집에서 아버지가 없다는 걸 알면서 반대해 결국 헤어지게 되었다고.
“그때 아이가 생겨 저도 미혼모가 되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어요(웃음). 만일 그런 사태가 온다면 엄마 인생의 재방송이 되니 아마 하느님도 별로 재미없었을 거예요.”
그 즈음부터 그의 파란만장한 시련이 시작되었다. 남자친구와 헤어진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친자매처럼 지내던 사람으로부터 당시 돈으로 30억원이라는 거액의 사기를 당하고 충격으로 쓰러진 것. 그 사람은 김청 모녀의 전재산을 가로챈 것도 모자라 거액의 빚까지 안긴 채 몰래 미국으로 도망을 갔다.
때마침 우연히 참가한 미스MBC 선발대회에서 2등으로 입상하며 연예인이 된 그는 10년 동안 1년 3백65일 쉬지 않고 일해 어머니의 빚을 대신 갚아 나갔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대전으로, 대구로 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뛰어다녔다.
“그래도 빚은 쉽게 줄어들지 않았어요. 갚아도 갚아도 끝이 없는 빚, 어쩌면 평생 동안 그 빚을 갚으며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막막함에 절망하기도 했죠. 처음엔 자다가도 억울한 마음에 벌떡벌떡 일어나 찬물을 들이켰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마음을 비우고 갚아 나갔죠.”

미혼모의 딸로 자라 결혼 6일 만에 이혼한 굴곡진 삶 털어놓은 김청

그는 최근 ‘저축의 날’에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지으며 빌린 대출금도 아직 남아 있고, 마이너스통장도 있는 그가 저축상을 받게 된 것은 탤런트 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저축을 해왔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저축상을 안겨줄 정도로 몸에 익은 저축 습관이 사실은 거액의 빚 때문이었던 것이다.
빚을 다 갚고 나니 어느덧 서른이었다. 밝고 즐거웠어야 할 20대의 추억이 없다는 상실감이 밀려왔다. 게다가 방영 당시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던 ‘사랑과 야망’에서 은환 역을 맡아 MBC 연기대상 우수상과 백상예술대상 최우수 연기자상을 수상한 것을 정점으로 인기가 조금씩 떨어져가고, 연기력에 어떤 한계 같은 걸 느끼게 되면서 심한 우울증이 찾아왔다.
“비 오는 날, 잠이 안 올 때마다 한 알씩 먹던 수면제를 한꺼번에 입 속에 넣고 삼켜버렸어요. 그런데 죽을 운명이 아니었던지 때마침 아는 언니가 약속도 없이 집으로 찾아왔어요. 그 언니 덕분에 살아날 수 있었죠.”
그 무렵 한 남자를 만났다고 한다. 생각지도 않았던 선배의 소개로 선을 본 것.
“소개받을 때부터 결혼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처음부터 양가 부모가 참석해 언약식 비슷한 의식까지 치렀어요. 전 당연히 그와 결혼할 것으로 여기고 있었죠. 그렇게 두세 번 만난 후 그 남자가 사업 때문에 미국으로 떠났고, 우린 거의 매일 전화통화를 했어요.”
전화는 보통 남자가 먼저 걸어왔고, 한없이 다정하게 사랑을 속삭여주었다. 그러다 하루는 김청이 먼저 미국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그 남자의 말투가 이전과는 전혀 달랐다. 그와 전화통화를 하기 거북스럽게 하는 상대가 옆에 있구나 하는 여자의 직감이 느껴졌다. 그 뒤 그 남자가 이미 한 후배 탤런트와 선을 봤다더라, 심지어 이혼남이라는 기막힌 소문까지 들려왔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조용히 그 남자와의 인연을 끊는 것이었어요. 전화가 와도 받지 않았죠.”
그런데 몇 달 후 기자들이 집으로 몰려왔다. 그는 사실대로 이야기를 했지만 언론엔 그가 후배 탤런트에게 약혼자를 빼앗겼다는 식의 황당한 보도가 이어졌다고 한다. 그로 인해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아야 했다고.
그는 결혼한 지 6일 만에 이혼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서른일곱 살 때였다.
“제가 살아온 날들 중 가장 힘든 시기였던 것 같아요. 마흔이라는 나이가 내 앞으로 성큼 다가오고 방송국에서 나를 찾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고, 더구나 사귀던 남자친구와도 헤어졌을 때거든요. 축구선수였는데, 지금도 종종 생각나는 따뜻한 사람이에요. 자상하고 부드러워서 저의 급한 성격을 잘 이해하고 컨트롤해주었죠. 정말 그와는 새벽 동이 터올 때까지 그저 같이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서 헤어질 땐 마음으로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그로 인해 상실감에 시달리던 중 한 남자를 알게 되었다. 간혹 들르는 골프장 주인이었다. 나이가 열두 살이나 많았지만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그에게 금방 빠져들었다. 한 달 만에 그 남자는 청혼을 했고, 그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전 행복에 들뜨고 싶었어요. 만약 제가 잘나가고 있었다면 그런 일이 없었을 거예요. 저는 일이 없으면 사고를 친다니까요. 그래서 그 이후로는 일이 없으면 무조건 해외여행을 다녀요.”

미혼모의 딸로 자라 결혼 6일 만에 이혼한 굴곡진 삶 털어놓은 김청

김청은 책에서 자신의 은밀한 사생활 얘기를 거침없이 털어놓았다.


그런데 결혼식이 하루하루 가까워오자 ‘노름을 좋아한다’ ‘바로 얼마 전까지 어떤 여자랑 동거했다’ ‘골프장이 다 빚이다’ 하는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 말을 믿고 싶지 않았지만 그 남자가 어머니를 찾아와 사업자금을 융통해달라고 해 돈이 없다고 하자 그럼 집을 담보로 맡기면 되지 않겠냐고 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불안했다. 하지만 언론에 이미 결혼 날짜를 발표한 상태라 결혼식을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결혼식을 마치고 필리핀 수비크로 신혼여행을 가서야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소문으로만 듣던 그 남자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된 것. 그는 도착하자마자 그를 카지노로 데려갔다. 처음엔 즐거운 마음으로 따라나섰지만 그 남자는 그를 팽개쳐둔 채 혼자서 게임을 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 남자는 카지노에서 살았다.
그는 짐을 싸서 혼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3일 동안 음식 대신 후회와 두려움만 먹고 살았던 그는 결국 병원에 입원해야 했고 신경안정제가 듣지 않아 마취제를 맞고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남자는 이미 세 번인가 네 번 결혼한 경력이 있었다고 한다.
퇴원 후 삶의 의욕을 잃은 그는 다친 마음과 몸을 추스를 생각으로, 무엇보다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있고 싶어 무작정 강원도의 한 암자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새벽에 일어나 종일 밭을 매고 저녁엔 폐인처럼 소주를 마시다 밤새도록 울고, 다음날 잠이 깨면 또 밭에 나가 일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얼마쯤 지나자 몸은 술살로 망가지고 얼굴과 목은 볕에 까맣게 그을렸다. 손바닥은 금이 가서 갈라지고, 입술은 바닷바람에 메말라 터져 있고, 눈동자는 희망 없이 초점을 잃어갔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인생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보니까 그렇게 마신 술이 소주만 6궤짝이 넘었더군요. 얼마나 창피하던지. 거긴 쓰레기차도 못 들어오는데 그 술병들을 어떻게 치웠는지 몰라요(웃음). 그땐 술이라 생각하고 마신 게 아니었어요. 그냥 마신 거지. 뇌에서 생각할 수 있는 세포는 다 빠져나간 것 같았어요. 몸만 움직였지 아무 생각 없이 살았죠.”
그러기를 반년, 문득 ‘이렇게 주저앉기엔 아직 젊다. 내겐 엄마가 있고 친구들이 있고 또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로 돌아온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머니로부터 독립을 하기로 하고, 일산으로 이사했다. 하지만 난생 처음 혼자 생활하면서 외로움에 시달렸다. 그런 그에게 삶의 이유를 만들어준 건 애완동물들이었다. 애견 호두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마음의 방황을 끝낼 수 있었다. 호두는 그에게 쓸쓸함을 떨치게 해주었고, 술을 덜 먹게 해주었고, 웃을 수 있게 해주었고,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의욕을 불러일으켜주었다. 그 뒤로 고양이들과 시베리안 허스키인 쿠키도 새 식구가 되었다.
“우리 집은 새들도 와서 밥을 먹고 가고, 도둑고양이들도 와서 쉬었다가 가요. 버려진 개들도 꼭 우리 집으로 와요. 심지어 동네 개들이 제 집 드나들듯 와서 집을 지키기도 해요(웃음). 산초도 떠돌이 개인데 지금까지도 우리 집에서 떠나질 않아요.”
녀석들과 씨름하고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에게 애완동물들은 친자식이나 마찬가지였다. 또 다른 의미의 미혼모가 된 셈이다. 그런데 몇달 전 호두가 갑자기 죽었다고 한다. 그 말을 하는 그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그에겐 서른 살과 서른 일곱살에 남자가 다가왔다. 이제 마흔셋이니 새로운 사랑이 나타날 때가 되지 않았냐고 하자 “점을 봤더니 45세 이후에 좋은 사람이 둘이 나타나는데 결혼하지 말고 연인처럼 여행도 같이 다니며 지내는 게 좋다고 했다”고 말한다.

미혼모의 딸로 자라 결혼 6일 만에 이혼한 굴곡진 삶 털어놓은 김청

김청은 최근 누드 촬영 제안을 받았다며 웃었다.


“마음을 안 주려고 해요. 남자를 한번 믿으면 확 넘어가거든요. 젊을 땐 상처가 나도 빨리 치유되지만 나이가 드니까 시간이 더 길 것 같고 무서워요. 솔직히 좋은 연기자가 되는 것이라면 자신 있지만 결혼은 자신이 없어요. 물론 엄마에게 제가 낳은 손자를 안겨드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죠. 그런데 45세에 결혼해서 허니문 베이비를 갖는다고 해도 46세에 아이를 낳는데, 환갑에 아이 도시락 쌀 생각 하면 자신이 없어요(웃음). 다만 늦게라도 내가 누군가와 인연이 닿는다면 그땐 정말 최선을 다할 생각이에요.”
그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입양을 해서 아이를 잘 키워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 독신은 입양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남자친구를 한 명 꾀어서 법적으로 혼인신고만 할까 생각중이라며 웃었다.
이상하다 싶을 만큼 그는 그동안 동료 연예인과의 소문이 한 번도 없었다. 그 이유를 묻자 워낙 서로 친하게 지내다보니 그런 생각을 할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같은 식구처럼 느껴지지 남자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들어요. 오빠들은 제 앞에서 훌러덩 옷을 갈아입는데요 뭘. 덕화 오빠는 가발 들고 와서 저에게 핀 꽂아달라고 할 정도예요. 그런데 어떻게 남자로 보이겠어요.”
책의 인세 중 일부는 유니세프에 기부할 생각
올해로 방송 생활 24년째인 그의 연기에 대한 욕심은 유명하다. 신인 때부터 술집 작부 역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 집에다 맥주를 몇 박스나 갖다놓고 양푼에 부어 마시는 연기 연습을 하는가 하면 연륜이 깊은 골초 흉내를 내기 위해 담배를 두 보루나 사다놓고 거울을 보며 담배 피우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전보다 오히려 요즘 연기의 맛과 재미를 느낀다고 한다.
“PD들이 저보다 어리니까 일을 하면서도 더 겸손해지고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일한다는 자체가 즐거워요. 돌이켜보면 여우처럼 적당히 타협도 하고 살았어야 하는데…. 그러면 제 삶이 조금은 덜 고달프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가 ‘좀더 타협을 할걸’ 하고 후회하는 것 중 하나가 노출신이다. 젊었을 때도 수영복 사진 한 장 찍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영화 ‘성 이수일전’에서 속살을 보일 수 없다며 속치마를 두 개나 입어 당시 감독이 두 손을 들었을 정도로 그는 노출을 꺼려했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가 최근 두 곳의 기획사로부터 경쟁적으로 누드 촬영 제안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각각 계약금 3억원과 3억5천만원에 러닝개런티 15%라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그를 설득하고 있다고 한다. 연예인 누드를 보는 주 소비층인 40대 이상의 남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그가 누드를 찍으면 반드시 보겠다는 사람이 50%가 넘는 등 충분히 상업성이 있다는 분석에서다.
“잘만 하면 최고 10억원까지 수익이 가능하다며 끈질기게 전화를 해요. 그냥 누드가 아니라 영화처럼 스토리가 있는 누드라고 컨셉트까지 자세하게 설명을 하며 설득을 하더라고요. 마흔이 넘은 여자 뭐 볼 게 있다고 왜 이렇게 저를 벗기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옛날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을 텐데 솔직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어요.”
요즘 연예인들이 부업을 갖는 게 유행이지만 다른 곳에 눈길 한번 돌리지 않고 연기에만 열중하고 있는 그는 앞으로 꿈이 하나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작은 예술인 마을을 조성하는 것이다.



미혼모의 딸로 자라 결혼 6일 만에 이혼한 굴곡진 삶 털어놓은 김청

“아일랜드에 갔을 때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을 봤는데 참 보기 좋았어요. 한 집에선 도자기를 굽고, 다른 집에선 그림을 그리고…. 제가 아는 사람들 중에 예술가들이 많거든요. 그들과 정말 재미있게 살 수 있는 마을을 만들고 싶어요. 아이들이 강아지들과 마음껏 뛰어놀고, 동네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 바비큐 파티도 하고…. 집 없는 아이들과 노인들도 쉬어갈 수 있는 공간도 만들 거예요. 머릿속에 구상은 다 되어 있어요. 이제 마을을 만들 돈만 벌면 돼요(웃음).”

다시 책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이번 에세이에는 김청의 인생사뿐 아니라 어머니의 속살 같은 이야기들도 많이 나와 있다. 어머니가 싫어하지 않았냐고 하자 그렇지 않다고 한다. “죄 안 짓고 살았고, 누구를 만나도 고개 못 들고 다닐 일을 안 했고, 내 인생에 당당한데 뭐가 부끄럽냐”고 했다는 것. 오히려 글을 쓴 자신이 아직도 못다 한 이야기가 많다고 한다.
“시간이 더 지난 다음에야 할 수 있는 이야기들도 많아요. 나이가 더 들어 다시 글을 쓰게 된다면 그땐 그런 이야기까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이번 책도 나름대로 솔직하게 쓰려고 했지만요.”
그가 책을 쓰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역시 6일 만에 파경으로 끝난 결혼 부분이었다고 한다.
“그 사연을 낱낱이 다 쓰면, 그것만 가지고도 책 한 권이 되어 베스트셀러가 될 거예요. 그런데 그걸 쓰면 그 남자가 왜 자기 이야기를 썼냐고 난리를 칠 텐데, 그게 두려운 게 아니라 다시 그와 연결이 되고 싶지 않아서예요.”
그는 이 책을 만들며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아팠는지 글로 표현하는 게 어렵다는 걸 절실하게 느꼈다고 한다.
“책이 팔리면 인세의 일부를 유니세프에 기부할 생각이에요. 돈을 버는 이유가 다 같이 나누어 쓰기 위해서잖아요. 점을 보면 항상 재물은 많이 모이는데 그게 쌓이는 게 아니라 제 손을 거쳐가는 팔자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만족해요.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잖아요.”
나눔의 즐거움. 그것이 그가 세상의 혹독한 시련을 견뎌낼 수 있었던 햇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동아 2004년 12월 4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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