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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아톤’에서 모자로 출연하는 두 배우 김미숙·조승우

■ 글·구미화 기자 ■ 사진·김형우 기자

입력 2004.11.11 14:15:00

우아한 중년 여인에서 철없는 엄마까지 폭넓은 연기를 선보인 김미숙과 스크린과 뮤지컬 무대를 오가며 활동중인 조승우가 만났다. 이들은 지난 9월 크랭크인한 영화 ‘말아톤’에 엄마와 자폐증을 앓는 아들로 출연한다. 평소에도 서로를 ‘엄마’ ‘아들’이라 부를 정도로 친근해진 두 사람과의 더블 인터뷰.
영화 ‘말아톤’에서 모자로 출연하는 두 배우 김미숙·조승우

“안맞아요. 안 맞아요. 주사 안 맞아요.” 마라톤 경기 중 탈진해 쓰러진 한 청년이 수액 주사를 놔주려는 의사에게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때 어디선가 달려온 한 여인이 “엄마야, 엄마” 하며 어린아이를 달래듯 하자 청년은 그제야 안정을 찾는다.
허공을 가르는 손짓과 초점 없는 눈, 그리고 벗어나려는 필사적인 몸부림. 지난 10월10일 영화 ‘말아톤’ 촬영 현장에서 만난 영화배우 조승우(24)는 감독의 ‘액션’이라는 외침과 함께 완전 딴사람으로 변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20대 청년이지만 다섯 살 어린이와 지능이 같은 자폐증 환자를 연기하고 있는 것. ‘말아톤’은 엉뚱하고 순수한 스무 살 자폐증 청년 ‘초원’의 마라톤 완주기를 그린 영화로 지난 2001년 춘천마라톤대회에서 42.195km를 2시간57분7초의 기록으로 완주한 2급 정신지체 장애인(자폐증) 배형진씨(22)와 그 어머니 박미경씨(46)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 탤런트 김미숙(45)이 조승우의 엄마로 오랜만에 스크린 나들이를 했다.
“영화 출연 욕심은 늘 있었지만 선뜻 출연작을 고르지 못했어요. 그런데 직접 아들을 낳아 기르는 엄마로서 자폐아 아들을 돌보는 엄마의 이야기가 감동적이어서 영화 출연을 결심했죠.”
올 초 영화 ‘하류인생’에서 고교생부터 아이 셋을 둔 아버지의 모습까지 폭넓은 연기를 선보인 데 이어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쏟아내며 관객몰이를 했던 조승우는 자폐증을 앓는 역할이 부담스러웠지만 시나리오의 감동이 한 달 넘게 이어져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평생 한 번 맡아볼까 말까 한 역할이죠. 좀 일찍 찾아왔다는 생각도 했지만 시나리오를 읽고는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판단했어요. 전 작품을 선택할 때 시나리오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시나리오를 읽고 한 달이 지난 뒤에도 장면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로 감동적이었거든요.”
이번 영화에서 조승우는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주인공이 앓고 있는 자폐증을 실감나게 연기해야 하고, 마라톤 실력을 뽐내야 하는 것. 촬영에 들어가기 전 자폐아들이 모여 있는 보호시설을 방문했다는 그는 “자폐아들에게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저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며 “자기 감정을 있는 그대로 뿜어내는 순수한 자폐아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나만의 캐릭터를 찾아가는 과정이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엄마와 아들이 아닌 연인 사이로 만났어도 좋았겠다…” 농담 던져
지난 8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공연 이후 몸무게가 10kg이나 줄었던 그는 달리기를 좋아하는 주인공 초원 역을 위해 두 달 전부터 집 근처 양재천을 달리며 체력을 단련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얼마 전 강화마라톤대회에 출전해 10km 코스를 완주하기도 했다.
“원래 500m만 달려도 헉헉대는 약골인데 마라톤 연습을 한 뒤로 체력이 많이 좋아졌어요. 마라톤을 하다 보면 몸 안의 노폐물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더라고요. 앞으로 마라톤 풀코스는 어렵더라도 하프 코스는 도전해볼 생각이에요.”
얼마전 종영한 MBC 주말연속극 ‘사랑을 할꺼야’에서 그동안의 고상하고 우아한 이미지를 벗고 자유분방한 중년의 여류 만화가를 연기해 화제를 모았던 김미숙은 이번 작품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들을 마라토너로 변신시키기 위해 헌신적으로 매달리는 어머니 역할을 맡았다. 말을 배울 나이가 지났는데도 도통 입을 떼지 않는 아들을 빗속에 세워놓고 기어이 ‘비’ 라는 글자를 가르치고, 초코파이로 한 걸음 한 걸음 유인해 산 정상에까지 오르게 하는 강인한 엄마를 연기하는 것.

영화 ‘말아톤’에서 모자로 출연하는 두 배우 김미숙·조승우

자폐증을 앓고 있는 스무살 청년과 그 어머니 역할을 맡은 조승우(맨 오른쪽)와 김미숙.


“자폐증인 아들을 자립시키기 위해 때로는 인정머리 없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냉철하고 모질게 구는, 한마디로 ‘독종’ 엄마죠. 처음엔 감정 몰입이 안돼 힘들었어요. 감독님도 표정이 너무 부드럽다고 걱정하셨는데 촬영 횟수가 거듭될수록 정말 초원이 엄마가 된 것처럼 자연스러워졌어요.”
그는 매번 촬영을 마치고 나면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금세 다음 촬영이 기대돼 마음이 설렌다고 한다. 특히 조승우가 어엿한 청년이지만 “너무 귀여운 아들”이라며 “진짜 아들과 엄마 같은 유대감이 생겨 영화 촬영 내내 행복하다”고 말했다. 조승우 역시 “처음엔 ‘선생님’이라고 불렀는데 이제는 ‘엄마~’ 하며 어리광을 부릴 만큼 편해졌다”며 “얼굴에 뭐가 묻어 있으면 손수 털어주시고, 내 손에서 담배 냄새가 나면 ‘담배 피웠구나’ 하고 나무라시는 모습이 정말 엄마 같다”며 허허 웃었다.
‘말아톤’에서 처음 조승우와 호흡을 맞춘 김미숙은 영화 촬영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 8월, 조승우가 출연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관람하고 한참 어린 후배지만 그의 연기에 매료됐다고 한다.
“‘지킬 앤 하이드’를 보면서 무대 위에서 쏟아내는 에너지에 깜짝 놀랐어요. 그동안 보았던 깨끗하고 조용한 이미지는 간 데 없었죠. 뮤지컬이 끝나고 대기실로 찾아가 ‘어쩜 그렇게 잘하냐’면서 ‘작품에서 엄마와 아들이 아닌 연인 사이로 만나도 좋았겠다’고 농담을 했어요(웃음).”
옆에서 듣고 있던 조승우는 “류승범씨와 이미숙씨가 출연했던 드라마 ‘고독’처럼 연상의 여인과의 사랑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내년 초 개봉을 목표로 남다른 파트너십을 자랑하며 영화 촬영에 임하고 있는 두 사람은 “‘말아톤’이 우리 사회에 한줄기 따뜻한 빛이 되기를 바란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실제 두 아이의 엄마로 촬영장에 아들 승민이와 딸 승원이가 응원차 방문해 눈길을 끌었던 김미숙은 영화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실제 자폐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부모를 만나보고 새삼 저와 제 주위 사람들이 모두 건강하다는 점이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됐는지 몰라요. 자폐증 환자의 부모가 겪는 심적 고통을 제가 어찌 다 보여줄 수 있겠어요. 다만 이 영화를 통해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끼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가졌으면 하고 바랄 뿐이죠.”
조승우 또한 “이번 영화를 통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버리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하고 바란다”고 말했다.

여성동아 2004년 11월 4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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