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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극복하고 인터넷 상담가로 활동하는 여고생 김혜민

“가족간 대화로 학교 생활의 고민 나눠야 왕따 피해갈 수 있어요”

■ 글·구미화 기자 ■ 사진·홍중식 기자

입력 2004.11.11 09:57:00

7년간 동료 학생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면서 심각한 자살충동에 시달리던 여고생이 자신의 문제를 완전히 극복하고 왕따 전문 상담가로 변신했다. 지난 9월 제6회 전국중고생자원봉사대회에서 친선대사상을 받은 김혜민양이 그 주인공. 김혜민양을 만나 왕따 문제의 심각성과 이를 극복하는 실질적인 요령에 대해 들어봤다.
‘왕따’극복하고 인터넷 상담가로 활동하는 여고생 김혜민

지난 9월말 전국중고생자원봉사대회에서 왕따 학생들을 도와주는 여고생 인터넷 상담가 김혜민양(19)이 최고상인 친선대사상을 수상했다. 경남 김해 한일여고 3학년에 재학중인 혜민양은 2002년부터 인터넷카페 ‘학교 가기 싫어’(cafe.daum.net/smillingschool)에서 ‘초록천사’라는 아이디로 집단 따돌림과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학생들을 상담해왔다. 지난 2년여 동안 혜민양이 인터넷 카페를 통해 ‘왕따’ 고민을 상담한 건수는 4백50여 건. 1백30여 명의 학생들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학교 생활의 어려움을 위로하고 있다. 이러한 인터넷 상담을 통해 70~80명이 왕따에서 벗어났고, 그중엔 상담원을 자처하는 학생들까지 생겨났다.
지금은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며 어엿한 ‘또래 상담가’로 활약하고 있지만 혜민양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무려 7년간 반복적으로 따돌림을 당하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많은 여고생들이 큰 키와 날씬한 몸매를 선망한다지만 혜민양은 한때 키가 크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했다. 혜민양의 키는 현재 172cm.
“초등학교 3학년 때 잘 어울려 다니는 아이들 무리 중 제 키가 가장 컸어요. 어느 날부턴가 키가 크고 말랐다는 이유로 친구들이 저를 따돌리기 시작했죠.”
친구들의 따돌림은 학원에까지 이어져 쉬는 시간에 피구 놀이를 할 때 아이들이 ‘왕따 맞추기’를 한다며 혜민양을 가운데 놓고 공을 던지기도 했다고.
혜민양은 그러나 “단지 키가 크다는 점이 왕따를 당한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어느 한 아이에게 우연찮게 반복적으로 실수를 저질러 미움을 사기도 하고, 선배에게 잘못 보였다가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고.
“원래는 성격이 활발했는데 친구들이 함께 잘 놀다가도 어느 순간 저만 따돌리니까 점점 자신감을 잃었어요. 그래도 초등학교 때는 그나마 나았어요. 아이들이 어리니까 따돌림의 정도도 심하지 않고 한번 토라졌다가도 금세 친해졌으니까요. 또 밖에서 뛰어노는 시간이 많고, 수업도 여러 사람이 함께 어울려 진행하는 때가 많아 정신적 고통이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죠.”

키가 크다는 이유로 따돌림 당하기 시작해 7년 동안 왕따의 고통 겪어
문제는 중학교 때부터였다. 중학교 생활은 초등학교 때와는 확연히 달라서 실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각자 학업과 과외 활동으로 바쁘다 보니 같은 반이라 하더라도 누군가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기 때문.
“학급 전체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해야만 왕따는 아니에요. 대개의 경우 아이들은 네다섯 명씩 친하게 지내는 무리가 있잖아요. 제 경우 다섯 명이 자주 어울려 다녔는데 어느 날부터 저를 뺀 네 명만 몰려다니기 시작했어요. 밥 먹을 때도 그렇고요. 그럴 경우 다른 무리의 아이들은 제 상황에 대해 잘 모를 뿐더러 관심도 없죠.”
점심시간은 특히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수업을 받는 동안은 그나마 아이들이 선생님을 의식해 아무런 해코지를 하지 않았지만 점심시간엔 함께 밥을 먹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혼자 밥을 먹고 있는 혜민양을 비웃고 악담을 퍼붓기도 했던 것. “더럽다” “지저분하다”며 마음에 상처를 주는 날도 있었다. 그렇다고 혜민양의 복장이 불량했던 건 아니다. 말끔하게 차려입고 간 날도 가해학생의 기분이 언짢으면 지저분하고 더럽다고 비난받을 수 있고, 부스스하게 하고 가더라도 가해학생의 기분이 좋으면 이야기도 나누고 함께 어울리기도 했다고.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혜민양은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 학교에서 돌아오면 교복을 입은 채로 잠드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방학 때면 개학하는 게 두렵기까지 했다고. 스트레스가 심해지자 혜민양은 급기야 스스로 몸에 상처를 입히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왕따’극복하고 인터넷 상담가로 활동하는 여고생 김혜민

쉬는 시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김혜민양. 혜민양은 교사들이 쉬는 시간 동안 학생들이 지내는 모습에도 관심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먼저 말도 걸고, 인사도 건넸지만 계속해서 따돌림을 당했어요. 한 가지 이유가 아니라 이런저런 이유들로 왕따를 당하는 일이 반복되자 ‘나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자책감이 생기더라고요. 저 하나만 없어지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았죠. 그때는 ‘자해’라는 말도 모를 때였는데 그저 제 몸을 상하게 하고 싶었어요.”
시간이 흐르고 모든 시련을 극복한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혜민양은 당시 수면제를 먹어야 할지 아니면 농약이 나을지를 고민할 정도로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했고, 죽을 용기가 나지 않아 회초리와 칼로 몸을 상하게 할 만큼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혜민양이 지긋지긋한 왕따를 벗어날 돌파구를 찾은 건 중학교 2학년 때 ‘죽고 싶다’는 내용을 적어놓은 혜민양의 수첩을 어머니가 우연히 발견하면서부터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것과 자살을 생각했다는 사실이 들통 나자 혜민양은 어머니에게 혼쭐이 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어머니는 혜민양을 위로하며 용기를 심어주었다.
“엄마가 그러시더라고요. 친구들이 다가오지 않으면 제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고. 제가 변하지 않으면 친구들도 마음을 열지 않는다고요.”
어머니의 조언에 용기를 얻은 혜민양은 위축되고 움츠렸던 마음을 열고 친구들이 괴롭혀도 미소로 대하고, 먼저 말을 걸었다고 한다. 물론 친구들은 그런 혜민양을 더욱 무시하거나 냉소적으로 대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머니가 먼저 “오늘은 얼굴 표정이 좋네” 하며 관심을 보이고, 용기를 준 것이 큰 힘이 됐다고 한다.
“처음엔 ‘괜히 친한 척한다’며 비웃던 친구들도 점차 마음을 열더라고요. 제가 괴로워하는 것을 즐기던 아이들은 제가 밝게 지내자 저를 따돌리는 것에 흥미를 잃었고, 알게 모르게 따돌림을 당하던 아이들이 편지를 보내 ‘나도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며 도움을 청하기도 했어요.”
부단히 노력한 결과 중학교 3학년 2학기 무렵 혜민양은 스스로 왕따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 만큼 학교 생활이 즐거워졌다고 한다. 그런데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갑자기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동안 계속됐던 왕따의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되살아나며 밤에 가위에 눌리고 손떨림 증상까지 생겨났다. 새로운 환경, 새 친구들에게 잘 적응하지 못하고 또다시 따돌림을 당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컸던 것. 다행히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을 정도로 안정을 찾았다.
고1 때인 2002년 말 혜민양은 우연히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학생들이 고민을 털어놓는 인터넷 카페 ‘학교 가기 싫어’를 알게 됐다. 그후 ‘초록천사’라는 아이디로 자신이 경험했던 것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들을 위로하고 해결 방안을 함께 모색하기 시작했다. 혜민양이 학생들에게 상황과 원인에 따른 대처요령을 알려주자 도움을 요청하는 학생들이 늘어났고 전화로 상담하는 학생들도 생겼다.
혜민양은 그동안 상담한 학생들 중 “학교폭력에 시달려 자살충동을 느꼈지만 상담을 한 뒤로 복서의 꿈을 키우고 있는 남학생과 자식의 얘기를 하다 함께 펑펑 울었던 왕따 학생의 부모, 왕따를 반드시 극복해 상담가가 되겠다고 한 여학생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혜민양이 모든 왕따 문제에 대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저랑 한번 상담하면 모두가 왕따에서 극복되는 줄 아는데 전 저희 어머니께서 제게 그랬던 것처럼 지속적으로 덕담을 해주는 것밖에 없어요. 초·중학생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잘 해결될 거라는 긍정적인 이야기를 반복해 들려주면 처음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더라도 점차 용기를 얻고 친구들에게 다가가더라고요.”

아이가 친구들과 잘 지내기 바란다면 표 나지 않게 처리하는 부모의 지혜 필요
혜민양은 “어른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학교폭력이 피해자에겐 인생이 걸린 절실한 문제”라며 “피해자의 아픔을 이해하고 말문을 여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더군다나 요즘 ‘은따(은근한 따돌림)’ ‘반따(반에서 따돌림)’ ‘전따(전교에서 따돌림)’를 넘어 사이버 공간에서 사이버 캐시를 요구하거나 안티사이트를 운영하는 등 ‘사이버 왕따’까지 등장하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왕따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왕따’극복하고 인터넷 상담가로 활동하는 여고생 김혜민

혜민양(가운데)은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뒤 학교폭력 전문 카운슬러가 되고 싶다고 한다.


“상담을 하던 중 학생들에게 부모님께 먼저 알리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하면 ‘부모님이 너무 바쁘세요’ 하는 대답이 가장 많아요.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이는 날은 화목한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 말을 못하겠다고 하고요. 과거엔 부모님께 미안해서 말을 못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부모님이 너무 바빠서 어차피 해결해주지 못할 거라며 지레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혜민양은 평소 가족간에 대화를 자주 해 아이들이 부담 없이 학교 생활의 문제점을 털어놓는 것이 왕따를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또한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를 수시로 살펴야 한다고. 혜민양은 “집에 돌아온 아이가 우울해하는 것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밝은 것도 학교 생활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신호”라며 아이들과 대화를 시도해볼 것을 권했다. 왕따를 당하는 학생들 대부분이 자신의 처지를 부끄럽게 여기고 학교와 집에 애써 감추려고 하기 때문.
“자기 아이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지 혹은 왕따를 시키는지 모르는 부모가 대부분이에요. 인터넷으로 만난 한 부모는 아이가 집안에서 예의 바르고 공부도 잘하는데 어느 날 학교에서 연락이 와 가봤더니 아이가 친구를 집단 따돌림 시키는 가해학생이었다며 어쩔 줄 몰라 하더라고요. 평소 부모가 아이들과 자주 대화를 나눠 어떤 얘기든 편안하게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혜민양은 주말에 아이들과 봉사 활동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봉사 활동을 하는 동안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도 생기고, 또래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는 훈련을 할 수 있어 훌륭한 교육이 된다고.
혜민양은 자녀가 왕따를 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의 대처 요령에 대해서도 들려줬다. 그는 우선 모든 책임을 학교나 교사의 탓으로 돌리는 태도는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화가 치밀어 가해학생이나 담임교사에게 항의를 하기도 하는데 그 심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아이가 친구들과 잘 어울려 지내기를 바란다면 되도록 표가 나지 않게 처리하는 게 좋아요. 상황을 담임교사에게 반드시 알려야 하지만 직접 학교로 찾아오는 것보다 전화를 이용하는 것이 좋죠. 그러면 교사는 가해학생이나 피해학생을 따로 부르지 말고, 반 전체 아이들이 허물없이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왕따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요.”
혜민양은 “왕따를 당하는 학생들 대부분이 보복이 두려워 학교에 알리기를 꺼린다”며 왕따 피해학생과 가해학생만을 지목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학급 전체가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친밀하게 지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혜민양은 또 교사들이 특히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동안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에 관심을 기울일 것을 당부했다.
“왕따를 당한 건 지금 생각해도 창피한 일이에요. 하지만 제 경험과 그것을 극복해낸 이야기들이 다른 친구들에게 위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용기를 내서 말하는 거죠. 저에 대한 이야기가 언론에 소개된 뒤로 수백 통의 이메일이 왔어요. 가해자였는데 이제 피해학생과 화해를 하겠다는 경우도 있었고, 왕따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친구들도 많았죠.”
“왕따를 당하는 학생들이 그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며 “왕따를 당하는 학생들은 혼자서 고민하지 말고 인터넷 상담가나 부모에게 사실을 알리고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는 혜민양은 스스로 왕따를 이겨낸 경험과 수많은 상담 사례를 통해 여느 심리 상담가 못지않은 지혜와 분석력을 갖춘 듯했다. 앞으로 학교폭력 전문 카운슬러가 되고 싶어 현재 명지대 청소년지도학과 등 4개 대학의 수시모집에 지원한 혜민양은 대학에서 청소년 심리 관련 학과를 전공하며 청소년 또래 상담가를 양성하고 싶다고 한다.

여성동아 2004년 11월 4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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