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만나고 싶었습니다

여성의 시각으로 황진이를 새롭게 조명한 소설 펴낸 전경린

“황진이는 몸에 대한 집착이나 편견을 버린 자유로운 영혼이었어요”

■ 기획·최호열 기자 ■ 글·박윤희 ■ 사진·지재만 기자

2004. 09. 10

올해로 등단 10년을 맞은 소설가 전경린이 ‘황진이’를 다시 살려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남성작가들이 그렸던 ‘악녀’의 이미지가 아니라 ‘이타적 자유혼을 가진’ 여성으로 새롭게 조명한 것. 그가 생각하는 황진이의 참모습과 소설을 탈고하기까지의 뒷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여성의 시각으로 황진이를 새롭게 조명한 소설 펴낸 전경린

시대를 초월한 자유혼의 상징 ‘황진이’가 작가 전경린(42)의 글을 빌어 다시 태어났다. 올해로 등단 10년째를 맞은 그가 장편소설 ‘황진이’를 두 권의 책으로 펴낸 것. 그동안 현대 여성들의 집단무의식을 도회적인 감수성과 특유의 문체로 짚어내 많은 여성 독자들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주었던 그가 역사소설을 썼다고 하니 다소 의외이긴 하지만 소설의 주인공이 황진이인 것을 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무엇보다 황진이는 흘려보내야 할 과거의 여인이 아니라 ‘미래의 여성상’이란 점이 그의 예민한 오감을 한껏 자극하지 않았을까.
“황진이의 ‘생애’가 저에게 많은 소설적 영감을 주었어요. 소설 ‘황진이’를 쓰는 지난 7개월 동안은 황진이를 위해 저를 바친 시간이었다고 할까요? 자기 결정에 혹독할 만큼 충실한 삶을 살고 간 황진이의 모습이 참 귀하게 여겨졌어요.”
황진이는 조선 중종 때 개성에서 진사의 서녀로 태어났다. 황진이가 15세 무렵 한 선비가 자신을 연모하다 상사병으로 죽자 자발적으로 기생이 되어 제도 밖으로 나와버렸다. 기생 명월이라 불린 황진이는 미색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시(詩), 서(書), 음률(音律)에 능해 많은 유생, 문인들과 교류하며 자유혼의 삶을 살았다.
특히 이사종과 6년간의 계약동거에 들어가는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면면을 보여줬다. 또한 ‘살아 있는 부처’라 불리던 지족선사를 유혹해 파계시켰고, 당대의 대학자 서경덕을 유혹하려 했으나 실패한 뒤 사제관계를 맺었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진 일.
이처럼 조선 양반사회를 뒤흔들며 가부장제도와 신분차별을 조롱했던 ‘스캔들메이커’ 황진이였기에 소설의 옷을 입고 부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이태준, 최인호, 김탁환, 홍석중 등의 남성작가들이 황진이를 소설적 공간으로 불러들였다. 하지만 여성작가가 황진이 소설을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작가 박완서는 그가 소설 ‘황진이’를 쓴다는 소문을 듣고 “황진이가 임자를 제대로 만났다”며 그의 집필을 독려하기도 했다.
“남자를 상사병으로 죽게 할 정도였으니까 황진이의 미색이 대단했겠죠. 그래서 대부분의 남성작가들은 미를 악으로 규정하고 황진이를 악녀로 표현해요. 남성들에게 미에 대한 독성을 강조하고 공포감을 주는 것이죠. 남성들이 미에 의해 한순간 무너지면 모든 것을 잃고 마니까요.”
그렇지만 그는 황진이야말로 “이 세계와 타자를 향한 진정한 사랑과 실제적 삶을 실현한 인물”이라고 강조한다. 그가 황진이의 자유로운 영혼을 부각시키기 위해 특유의 문체를 포기하면서 최대한의 절제를 한 이유가 여기 있다.
소설 ‘황진이’의 말미에 서경덕이 유랑을 다녀온 황진이에게 ‘진아, 네게서 몸은 무엇이더냐?’ 하고 묻는 장면이 나오는데 황진이의 답이 압권이다.
‘제게 몸은 길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길을 밟으면서 길을 버리고 온 것처럼 저는 한 걸음 한 걸음 제 몸을 버리고 여기 이르렀습니다. 사내들이 제 몸을 지나 제 길로 갔듯이 저 역시 제 몸을 지나 나의 길로 끊임없이 왔습니다. 길이 그렇듯, 어느 누가 몸을 목적으로 삼고 누가 몸을 소유할 수 있으며 어찌 몸에 담을 치겠습니까? 길이 그렇듯, 몸 역시 우리 것이 아니지요. 단지 우리가 돌아가는 방법이지요.’
‘나’라는 경계가 무너져버린 황진이의 몸, 마음, 영혼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또 작가가 집요하게 추적한 자유혼의 실체가 무엇인지 확연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여성의 시각으로 황진이를 새롭게 조명한 소설 펴낸 전경린

몇몇 남성 독자들은 새롭게 조명된 황진이의 담대한 인격에 집중하기보다는 “황진이의 정사 장면이 적다”며 아쉬워한다고 한다. 예전에 그가 여성들의 섹스를 소재로 쓴 장편소설 ‘열정의 습관’이나, 산문집 ‘나비’ 등에 중독된 독자라면 그 정도 투정은 귀여운 애교일 수도 있지만 그는 정색을 한다.
“황진이가 보통 여자도 아니고 직업이 기생인데 일일이 그런 장면을 나열할 필요가 있나요. 다만 황진이가 사랑한 이사종과의 정사장면은 사랑의 궁극, 슬픔의 극한을 보여주기 위해 공들여 표현했어요.”
그동안 황진이는 ‘요부’ ‘육감적인 명기’로 남성을 사로잡은 것처럼 알려졌지만 그는 황진이가 남성들의 사랑을 얻은 가장 강력한 무기는 ‘누구에게나 진심을 줄 줄 아는 용기’인 점을 새롭게 발굴해 강조했다.
‘이사종은 느리게 밀며 오래 들어왔다. 들어올수록 길은 전에 없이 길어져 마침내 전혀 새로운 곳까지 밀고 들어왔다. 꽃을 지난 꽃자루까지, 진은 그곳이 몸의 끝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중략) 마침내 바위를 터뜨리는 듯 이사종이 비명을 지르며 사정했을 때, 진은 천둥 치는 하늘 가운데로 날아오른 듯했다. 진의 몸은 내부에서 일어난 폭발의 진동으로 격렬하게 솟구치다가 마침내 몸 안을 가득히 채운 파동을 이겨내지 못하고 단말마의 비명을 내질렀다.’
요즘 젊은 세대가 인스턴트 사랑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일까. 일각에서는 이사종을 향한 황진이의 ‘이타적인 사랑’을 두고 ‘지나치게 퇴행적인 것 아닌가?’ 하는 지적도 한다.
“남녀간의 깊은 사랑이 퇴행적인 시대는 어디에도 없어요. 다만 깊은 사랑에는 불가항력이 있게 마련이죠. 사랑의 기회를 박탈당한 여성들의 피해의식이 사랑을 ‘퇴행’이나 ‘처세’로 몰고 가는 것은 아닐까요.”
순수한 몰입이 가능한 영혼만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고 이것이 인생을 진행하는 힘이 된다고 믿는 그.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사랑의 궁극적인 모습은 어떤 것일까.
“사랑의 목적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느 것을 좋다,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겠죠. 그렇지만 사랑의 궁극적인 모습은 ‘희생양’이죠. 황진이가 경남 산청을 유랑할 때 나병환자들을 목격하고 그들을 살리기 위해 몸을 팔아 곡식과 약을 사잖아요. 자기를 참혹하게 버리고 철저히 희생양이 되는 것, 그것이 사랑의 궁극인 것 같아요.”
철저히 자기 희생한 황진이의 새로운 모습 그려
10년. 그가 사랑의 희생양 황진이에게 도달하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그에게 작가의 이름을 갖게 한 중편소설 ‘사막의 달’이 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당선되면서 그가 낳고 길러낸 숱한 여주인공들은 늘 어떤 ‘경계’를 넘나들었다. 손바닥에 모든 삶을 전소시켜 버릴 성냥을 얹고 있는 여자, 비 오는 날 검은 염소를 몰고 집을 나가는 여자…. 불행한 여자들이 치마폭을 뒤집어쓰고 삶 ‘밖’으로 훌쩍 뛰어내려버렸다.
‘언제까지 벼랑 끝에 배를 붙이고 심연을 내려다보고 있을 수는 없다. 나아가기 위해서는 끊긴 길 앞에서 두 눈을 감고, 두 귀도 닫고 자신의 본질을 향해 어느 순간 훌쩍 뛰어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뛰어내려본 사람은 알게 될 것이다.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의 심연 속에 현실보다, 현실의 현실보다도 더 강한 구름의 다리가 있다는 것을. 자신의 숲을 향해 가는 구름처럼 가벼운 구름의 다리….’(‘염소를 모는 여자’ 중에서)

여성의 시각으로 황진이를 새롭게 조명한 소설 펴낸 전경린

이제 그 불행한 여주인공들은 ‘구름처럼 가벼운 구름의 다리’를 지나 황진이의 치마폭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리고 타자와 자기의 경계를 없애버리고 황진이의 영혼에 기대어 연꽃처럼 부활했다. 이런 소설 속 여주인공들은 작가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인데 작가 전경린 역시 ‘뛰어내려본 사람’이다.
그는 몇 년 전 이혼했다. 오래 연애했고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제도’와 ‘관습’이 사랑을 질식시켜버렸다.
“결혼 전에 남들과 다른 창의적인 결혼생활을 하자고 남편과 약속했어요. 충분히 그 약속을 이행할 수 있는 남자였지만 그게 그 사람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더군요.”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그는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마산 등지에서 줄곧 살았는데 남편이 부엌에서 설거지 정도만 해도 시집 식구나 괄괄한 기질의 남편 친구들이 “사내자식이 지금 뭐 하노?” 하는 통에 집안이 뒤집어지기 일쑤였다.
“제 일이 없으면 계속 그렇게 이런저런 집안일에 얽혀들면서 살게 될 것 같았어요. 방송작가로도 일해보고 이런저런 모색을 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의 몸에도 황진이의 피가 흐르는 것일까. 결혼에 대한 생각도 일반 사람들과 사뭇 다르다.
‘이제 결혼에도 세부적인 매뉴얼이 필요하다. 5년을 사는 결혼, 10년을 사는 결혼, 15년을 사는 결혼, 혹은 아이를 낳는 결혼과 낳지 않는 결혼, 물론 재산 정리에 대한 논의도 미리 이루어져야 한다. 결혼의 세부 디테일도 매뉴얼마다 달라지게 된다. 여행을 함께 하는 결혼, 맛있는 것을 함께 만들어 먹는 결혼, 운동을 함께 하는 결혼, 컴퓨터 게임이나 등산이나 낚시를 함께 하는 결혼….’(산문집 ‘나비’ 중에서)
그래서 그는 여성작가의 기원을 황진이와 같은 기생에게서 찾기도 한다.
“조선시대 기생만큼 전문적인 직업이 또 있을까요. 기생학교에서 노래, 춤 등을 전문가로부터 교육받잖아요. 또 조선시대 시, 서, 화에 능한 사람이 기생말고 누가 있나요.”
그는 소설 ‘황진이’를 쓰는 동안 작업실 벽면에 규장각에서 소장하고 있는 개성 전도를 붙여놓았다. 그리고 황진이가 언제 누구와 어떤 차림으로 개성 골목을 오가는지, 어떤 모습으로 사랑에 빠지는지를 상상했다. 마음 같아선 황진이의 행적을 다 밟아보고 싶었지만 개성은 갈 수 없는 땅이다. 대신 지난 4월 금강산에 올랐다.
“금강산을 둘러본 후 한 바위에 대고 기도했어요. 무사히 소설을 마치게 해달라고 빌었죠.”
이 무렵 공직에서 물러난 그의 아버지는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상태였다. 고향집 경남 함안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아버지께서 오늘 돌아가실 것 같다”는 전화가 왔다.
“고향집에서 별 소식이 없으면 ‘아버지가 오늘 또 하루 주셨구나’ 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글을 썼어요.”
그는 지난 7월17일 가까스로 소설 ‘황진이’를 탈고했고 그의 아버지 안상규씨는 향년 74세로 7월23일 눈을 감았다. 마치 딸 안애금(전경린의 본명)의 탈고를 위해 죽음을 미뤄두었던 듯 수차례 위험한 고비를 넘기면서도 “너는 소설이나 열심히 써라” 하시며 딸의 병문안을 한사코 말렸다고 한다.

여성의 시각으로 황진이를 새롭게 조명한 소설 펴낸 전경린

소설가 박완서는 전경린이 황진이를 소설로 쓴다고 하자 ‘황진이’가 제대로 임자를 만났다고 격려했다고 한다.


“저는 서울에서 소설을 쓰느라 자주 못 내려가고 매일 아버지 곁에서 병 수발을 했던 건 어머니와 형제들이었는데 임종은 저만 지켰어요.”
그는 아버지 초상을 치르면서 급기야 실신을 했고 아버지가 입원해 있던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7개월 동안 1천6백 매의 원고를 쓰느라 거의 탈진 상태였어요. 위염도 심했고 두통도 상당했어요. 너무 심각해서 뇌 정밀진단도 받아봤는데 별 이상은 없어요. 요즘 침을 맞으면서 건강을 추슬러가고 있어요. 예전에는 러닝머신 위에 올라 달리기도 하고 그랬는데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부터는 저 혼자 살기 위해 무슨 운동을 한다는 것이 참 죄스러워요. ‘자식은 다 죄인이다’라는 말뜻을 이제야 알겠어요.”
이미 세상의 경계를 넘어선 아버지. 그의 눈은 아버지를 잃어서 슬프고, 마음은 아버지에 대한 추억들로 쓰라리다.
“아버지가 갑작스레 안 돌아가셔서 다행이었어요. 죽음의 과정을 서서히 보여주시면서 아버지 몸을 많이 만져볼 수 있는 기회를 자식들에게 주셨거든요. 극도의 고통으로 저를 못 알아보기도 하셨어요. 한번은 병문안을 갔는데 ‘아가씨는 누구세요?’ 그러시는 거예요. 또 동생과 제가 병실을 오가니까 ‘너희들 원래 하나인데 지금 둘로 분리된 거지? 나 헛갈리니까 빨리 합체해’ 이런 말씀도 하시고.”
지금도 그의 머릿속에는 아버지가 죽음을 앞두고 탄식처럼 내뱉던 말씀이 자꾸 떠오른다고 한다.
“공자나 석가모니 같은 유명한 사람들이나 위대한 죽음을 맞이하는 거지, 왜 나처럼 평범한 사람한테 이런 죽음이 찾아왔을까?”
그는 쉽게 눈물을 떨구지도 않았고 입가에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그의 눈에는 커다란 상실이 담겨 있는 듯했다.
그를 아끼는 한 문인은 ‘요염한 제비꽃’이란 말로 그를 표현한 적이 있다. 연보랏빛의 제비꽃은 향기가 좋아 향수의 원료로 쓰이는가 하면 불면증 치료제로도 그만이고 살균작용까지 강해 이파리를 짓찧어 상처에 바르면 부스럼과 타박상이 잘 낫는다고 한다.
앞으로도 작가 전경린의 소설이 시대의 물살을 헤쳐 가느라 산란기 연어처럼 상처받고 때론 불면증에도 시달리는 여성들에게 유익한 처방이 되길 소망한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