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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성폭행한 남편 보석으로 풀려난 데 항의, 손가락 잘라 재판부에 보낸 김광례씨 사연

“손가락 없는 아픔보다 딸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더 고통스럽습니다”

■ 기획·최호열 기자 ■ 글·박주연 ■ 사진·김형우 기자, 뉴스메이커 제공

입력 2004.08.10 15:13:00

지난 6월22일 한 40대 여성이 “내 딸을 상습 성폭행한 남편을 처벌해달라”며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재판부에 보낸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손가락을 자른 김광례씨가 주장하는 ‘의붓딸 성폭행 사건’의 전말과 남편 노씨 측 입장을 취재했다.
딸 성폭행한 남편 보석으로 풀려난 데 항의, 손가락 잘라 재판부에 보낸 김광례씨 사연

지난 7월14일 오전 11시20분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403호 재판정 앞. 방금 공판을 마친 중년 남성이 법정을 나서자 여성 한 명이 삿대질을 하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는 청원경찰과 주위 사람들의 제지로 중년 남성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이 천벌 받을 놈아. 하늘이 두렵지 않느냐.”
그의 분노에 찬 고함소리에 중년 남성은 한번 쏘아보고는 말없이 사라졌다. 감정이 격해진 그의 눈에선 눈물이 흘렀고, 입에선 통곡이 터졌다. 이 여성이 지난 6월22일 일명 ‘단지 사건’으로 언론에 보도돼 충격을 주었던 김광례씨(42·일본명 히라사와 아사코)다.
그는 당시 자신의 딸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해온 혐의로 수감중이던 남편 노모씨(50)를 재판부가 6월22일 보석으로 풀어준 데 항의해 자신의 검지를 잘라 피로 범벅된 편지와 함께 재판장 앞으로 보냈다. 편지에는 ‘내 딸을 망친 자를 용서할 수 없다.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으면 분신자살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김씨가 노씨 보석에 자신의 손가락까지 자를 정도로 극한 반응을 보인 것은 노씨가 자신의 딸을 여섯 살 때부터 7년간 성폭행했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씨는 지난 2월 초 열린 1심 재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항소한 상태. 형사소송법상 구속피고인은 재판 기간 동안 최대 4개월까지만 구속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따라서 노씨는 6월26일이 구속만기로, 그 이전에 2심 판결이 선고되지 않아 보석으로 풀려나게 되었다.
재판부는 당초 6월25일 선고를 내릴 예정이었지만 성폭행 혐의와 관련해 새롭게 확인할 내용이 나타나 재판을 더 진행할 필요가 발생, 보석으로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7월14일 열린 공판에서 재판부는 노씨가 오랫동안 의붓딸을 성폭행했다는 근거로 김씨가 제출한 병원 진단서에 대해 확인할 게 있다며 진찰을 담당한 의사와 진단서를 끊어준 의사, 그리고 진단서가 성폭행의 증거자료가 될 수 없다는 견해를 제시한 산부인과 의사를 증인으로 채택해 8월20일 심문하겠다고 밝혔다.
김씨는 “범행을 입증할 많은 증거를 재판부에 제출했고, 피해당사자인 아이가 고통과 수치심을 견디며 두 번이나 직접 법정에 출석해 증언을 했다. 따라서 6월25일에 충분히 선고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판결을 미룬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의붓딸 여섯살 때부터 7년간 성폭행했다” 주장
이 사건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해 8월. 당시 서울 종로경찰서는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경제학박사 출신으로 홍콩 모 대학의 교수를 지낸 노씨를 7년간 어린 의붓딸을 성폭행해온 혐의로 구속한다고 밝혔다. 노씨는 구속 당시 국내에서 사업을 하며 여러 대학과 전경련 등에서 강의를 해온 저명인사였다.
그렇다면 김씨와 노씨의 ‘악연’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61년 전남 영암군에서 태어난 김씨는 어려서부터 몸이 아주 허약했다. 그래서 스님의 권유로 세 살 때 출가해 승려가 되었는데, 83년 비원 앞에 ‘성덕사 포교원’을 설립하고 포교활동을 하던 무렵 일본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 사람이 저에게 ‘나와 결혼을 해주면 앞으로 일본에서 재일한국인을 위한 포교활동을 할 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겠다’고 제안을 했어요. 조국을 떠나 외롭게 사는 사람들을 포교하는 것도 뜻 깊은 일이라고 판단해 그 제안을 수락했죠.”

딸 성폭행한 남편 보석으로 풀려난 데 항의, 손가락 잘라 재판부에 보낸 김광례씨 사연

손가락을 절단한 후 기자들에게 사건을 설명하는 김광례씨.


일본 남자는 약속대로 김씨와 따로 살며 그가 일본에서 포교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그러던 88년, 김씨는 병원에서 나팔관에 혹이 생겨 수술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담당 의사가 ‘수술을 하면 아이를 낳지 못하니, 출산을 생각해보라’고 권유했어요. 고심 끝에 전 남편을 찾아가 이틀간 함께 지냈어요. 그리고 기적처럼 임신을 했습니다.”
딸을 출산한 후 나팔관 한쪽을 제거한 김씨는 93년 나머지 한쪽 나팔관마저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퇴원 후 요양을 하던 중 동생의 카페에서 노씨를 만나게 되었다. 김씨는 “당시 노씨가 전처와 이혼 후 빚독촉 등을 피해 일본에 온 상태였다”고 했다.
“동생의 소개로 처음 만날 날, 그 남자는 새벽까지 저를 붙들고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희망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그리고 이튿날부터 5개월간 매일 저를 찾아와 자기를 도와달라고 매달렸어요. 세상에서 큰일을 하고 싶으니 자기가 박사논문을 무사히 끝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복잡한 채무 문제를 정리해달라고요. 그러면 크고 좋은 일 많이 한 다음 20년 후에는 부처님께 출가해 저와 함께 스님의 길을 걷겠다고 했어요.”
김씨가 자신의 딸을 노씨가 성폭행했다고 주장하는 시기는 95년 5월부터 지난해까지다. 94년 8월 노씨는 홍콩에 있는 한 대학의 교수가 돼 홍콩으로 가게 됐다. 이때 김씨는 다섯 살이던 딸을 함께 보냈다. 노씨가 딸에게 세계 최고의 교육을 가르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나는 어려서 불가에 입문해 초등학교를 비롯한 어떤 정규 교육도 받지 못했다”며 “내 딸만큼은 국제적 감각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을 시키고 싶어, 그가 홍콩에 갈 때 주택 구입비 등 한국 돈으로 6억원을 주었고, 이후 매달 1천만원씩 생활비를 보냈다”고 했다. 김씨는 노씨가 자신과 혼인 후 학비, 생활비, 사업비, 주식 투자, 가족 부양 등의 명목으로 모두 51억원의 돈을 가로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 돈은 자신이 사찰을 운영하면서 모은 것이라고 했다.
딸 성폭행한 남편 보석으로 풀려난 데 항의, 손가락 잘라 재판부에 보낸 김광례씨 사연

노씨가 딸을 성폭행한 사실은 2003년에야 딸의 고백을 통해 확연히 알게 됐다고 한다. 98년에도 산부인과 의사로부터 딸이 누군가에게 2~3년간 성폭행당한 것 같다는 진단을 받고 두 사람을 추궁했으나 노씨와 자신의 딸 모두 부인해 진실을 캐지 못했다고.
“몇 차례 홍콩에 갔을 때 딸아이가 삐쩍 말라 있고, 똥이 묻은 아이의 팬티 네다섯 장이 뒹굴고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아이가 강간을 당한 충격으로 배변 조절 장애를 겪었던 거예요.”
노씨와 딸은 노씨가 홍콩 대학과의 계약기간 3년이 끝난 97년 일본으로 돌아왔다. 김씨는 두 사람이 절에서 생활하기가 적절치 않은 것 같아 방을 얻어주었는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고 한다.
“딸이 어느 누구하고도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고 걸음걸이가 이상했어요. 그 후 1년이 지난 98년 여름 딸아이와 제가 함께 잠을 자게 됐는데 아이가 잠꼬대로 ‘아빠, 하지마’라고 헛소리를 하면서 땀을 뻘뻘 흘리며 발버둥을 치는 거예요. 며칠간 계속된 아이의 상태에서 뭔가 수상쩍은 느낌이 들어 남편을 추궁했지만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어요. 전 한국에서 급히 건너온 언니 내외와 함께 9살 된 딸을 병원으로 데리고 가 진단서를 받았어요.”
당시 병원 진단서에는 ‘처녀막 손상’이라고 기재돼 있다. 김씨는 “당시 딸아이의 음부에는 오랫동안 씻지 못해 쌓인 남성의 모근 뭉치와 염증, 출혈 등이 범벅돼 있었다”고 했다. 이를 증거로 추궁하자 노씨는 “아이를 성폭행한 사람이 홍콩에서 가정부로 부리던 여성의 애인이 한 짓일 것”이라고 둘러댔다고 한다. 김씨는 의심의 눈길을 완전히 거두지 못한 채 같은 해 9월 딸을 영국의 학교로 보냈다.
그 무렵부터 노씨는 사업을 한다면서 한국을 드나들기 시작하더니 서울에서 회사를 설립했다. 김씨는 “그 후에도 딸아이가 방학을 맞아 일본에 와 있으면 남편이 아이를 강제로 성폭행했다는 것을 딸을 통해 뒤늦게야 알게 됐다”며 원통해했다.




여성동아 2004년 8월 4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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