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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째 폐암 투병, 머리 깎고 항암 치료중인 탤런트 이미경

“비록 병은 얻었지만 예전에 몰랐던 일상의 행복감을 느껴요”

■ 기획·조득진 기자 ■ 글·조희숙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4.01.09 15:34:00

그는 씩씩하게 병마와 잘 싸우고 있었다. 파랗게 깎은 머리에 씌워진 검은 모자도 편안해 보였고, 요즘엔 밥도 잘 먹는다며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2차 항암 치료를 끝낸 탤런트 이미경을 어렵게 만났다.
두달째 폐암 투병, 머리 깎고 항암 치료중인 탤런트 이미경

“2차 항암 치료 끝나고는 컨디션이 좋은 편이에요. 얼마 전에는 영화도 보러 갔다니까요. 그런데 제가 그만 잠을 자버려서 보여준 사람한테 얼마나 미안하던지…. 4년 만에 가본 영화관이었는데 말이에요.”
하필 만나기로 한 날이 유난히 추워 미안한 마음이 가득한 기자를 달래듯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두달째 폐암 투병중인 탤런트 이미경(43). 따뜻한 커피가 나오자 그는 2차 항암 치료 후 근황을 쉬엄쉬엄 들려주었다.
“1차 때는 백혈구 수치가 아주 많이 떨어졌어요. 코피가 나면 지혈이 안될 정도였으니까. 근육통도 심하고 구토도 잦았어요. 그래서 2차 치료할 때는 의사선생님이 프로그램을 바꾸셨어요. 다행히 근육통이나 구토는 없어졌는데 조금만 걸어도 심장이 뛰고, 기침을 하면 피가 섞여 나와요. 폐렴기도 있어서 약을 먹고 있는 중이고. 그래도 부작용은 없는 편이라니 다행이죠.”
그의 갑작스러운 폐암 발병 소식이 들려온 것이 지난 10월 말. 그는 출연중이던 SBS ‘왕의 여자’에서 중도하차하고 두달 넘게 투병중이다. 폐암 진단을 받은 후 그에게는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독신인 그는 가족의 간호를 받기 위해 큰오빠 집으로 거처를 옮겼고, 항암제 부작용을 우려해 머리도 모두 깎았다. 그의 주변에 사람들이 부쩍 많아진 것도 예전에는 없었던 일이다.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많은 거 보면 헛살진 않았어요”
“친구들이 집으로 자주 찾아와요. 맛있는 음식을 싸오기도 하고 직접 해주겠다며 먹고 싶은 것을 묻기도 하고. 어떤 친구는 제가 부담스러워할까봐 병원으로 와서 잠깐 얼굴만 보고 가기도 해요. 며칠 전에는 미국에 사는 친구가 저 때문에 일부러 한국에 나오기도 했어요. 제가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편인데 아프고 나서 전에는 못 느껴봤던 따뜻함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 병은 얻었지만 매일매일 작은 일에도 행복해져요. 이런 감정을 느껴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발병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의 쾌유를 비는 위로와 격려가 곳곳에서 이어졌다. 네티즌들은 인터넷을 통해 그에게 힘내라며 용기를 북돋아주었고 방송국에는 암에 좋은 음식, 버섯, 각종 약재 등을 보내주겠다며 주소를 물어오는 문의전화가 쏟아졌다.
“주변에 암환자가 먹고 좋아졌다는 약재들을 보내주고 싶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제가 일일이 다 대답을 못해줄 정도죠. 너무 고마워요. 연기생활을 오래했지만 전 주연도 아니었잖아요. 그저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때문에 시골분들이 좋아해주는 정도였거든요. 이렇게 많은 분들이 위로해주고 걱정해주는 걸 보니까 제가 헛살진 않은 것 같아요. 가족들한테 면목도 서고. 처음에는 왜 하필 내가 이런 병에 걸렸을까 하는 원망스럽고 부정적인 감정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봄눈 녹듯 다 사라져버렸어요. 솔직히 말하면 몸은 힘들고 불안하고 두려워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병나기 전보다 훨씬 편안해요.”

두달째 폐암 투병, 머리 깎고 항암 치료중인 탤런트 이미경

방송 활동을 활발히 할 당시의 모습. 그는 개성있는 연기로 드라마의 재미를 살리는 연기자였다.


항암 치료 후 대부분 환자들이 식욕을 잃는다지만 다행히 그는 식사도 잘하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뭐든지 열심히 잘 먹으려고한다는 그의 말처럼 노력 때문일지도 모른다. 평소 편식이 심했다는 그는 근래에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 음식도 있다.
“태어나서 ‘버섯물’은 처음 먹어봤어요. 가족들이 몸에 좋다고 하니까 먹는 거죠. 예전에는 워낙 건강체질이라서 보약 같은 건 모르고 살았는데…. 나이 드신 분들이나 먹는 게 보약이라고 생각했죠. 지금 생각하면 몸에 좋다는 거 왜 챙겨 먹지 않았나 후회가 돼요. 괜히 커피 같은 것만 좋아해서….”
그의 식단은 주로 신선한 생선 위주다. 싱싱한 해산물이라면 다른 반찬은 필요없을 정도로 좋아했다는 그는, 그러나 병원에서 준비해준 식욕촉진제까지 챙겨 먹어보지만 예전만큼 식욕이 돌아오지는 않는다고 한다.
“아침을 먹지 않는 게 오랜 습관이었거든요. 치료하면서 입맛도 떨어지고 아침엔 입안도 깔깔하니까 뭘 먹기가 참 힘들어요. 정 힘들 때는 식욕촉진제를 먹으면서 일부러라도 먹으려고 노력해요. 그런데 먹고 싶은 음식이 생겼다가도 갑자기 식욕이 싹 가시는 게 꼭 입덧하는 사람 입맛 같다니까요. 그럴 때는 가족들한테 미안하죠.”
아침식사만큼 고역인 것이 잠자는 것이다. 평소 한번 잠들면 화장실도 안 갈 정도로 숙면했다는 그는 요즘에는 작은 소리에도 깨어났다가 다시 잠들기를 반복하느라 깊이 못 잔다고 한다.

새해 소망은 3차 항암 치료가 무사히 끝나는 것
믿어지지 않겠지만 그는 요즘 아주 바쁘다. 건강했을 때도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을 만난 적이 없었을 정도라고 한다. 발병 초기 한동안 그의 휴대전화는 동생이 대신 받곤 했지만 최근에는 전화도 직접 받기 시작했다. 그만큼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뜻. 그리고 약속이 생기면 미루지 않고 집을 나선다고 한다.
“갑자기 만나야 될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제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이 끊겼던 사람들이 찾아와 만나야 하고, 알고 지냈던 사람들은 지나가는 말로 ‘밥 한번 먹어야지’했던 약속들을 새삼 지키느라 바쁘죠. 그래서 가끔은 혼자 있고 싶어질 때가 있을 정도예요.”
그의 발병소식을 듣고 가족들 못지않게 안타까워한 사람들은 동료 연예인들이다. 그는 연예계 선후배들과 두루 친분을 유지해왔다. 탤런트 박성미와 함께 무작정 그의 집으로 찾아온 양희경은 “내가 암박사”라며 용기를 주었다고 한다. 중견 탤런트 김영옥 등 다른 선배 연기자들의 병문안도 이어졌다.
몇몇 후배와 동료 연기자들은 아예 그를 돕기 위해 발벗고 나서기도 했다. 특히 탤런트 이경호, 김원희, 정준호 등이 주축이 된 ‘따사모(따뜻한 사람들의 모임)’와 SBS ‘왕의 여자’팀에서도 그를 돕기 위해 모은 성금을 전달하고 ‘이미경 살리기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두달째 폐암 투병, 머리 깎고 항암 치료중인 탤런트 이미경

“꼭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요. 알고 보니까 김원희가 지금 다니는 병원의 홍보대사라고 하더군요. 그 친구 때문에 치료비도 할인받고, 원희가 속한 모임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요. 탤런트 최종환은 신인 때 저랑 같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친해졌는데 이번 ‘왕의 여자’ 때 다시 만났어요. 아마 이번 성금모금도 그 후배가 나서준 것 같아요. 정말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어요.”
사실 그의 경제 상황은 넉넉지 못한 편이다. 몇 차례에 걸친 사업실패로 현재 그는 출연료까지 차압당하는 상태. 그의 치료비도 가족들의 도움과 전달받은 성금으로 감당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3차 항암 치료를 앞두고 있다. 2차 항암 치료 결과에 대해 그는 “변화는 없어요. 다만 다른 곳으로 암이 퍼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죠” 하고 대답했다. 그에게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묻자 그는 “여행”이라고 대답했다.
“제 인생에 여행이 전부였을 정도로 좋아했어요. 할 수만 있다면 하와이 같은 공기 좋은 곳에 가서 쉬다 오고 싶어요. 태국 파타야 근처에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민박집이 있어요. 요즘엔 거기 공기가 자꾸 생각나요. 거기서 골프 좀 치다왔으면 좋겠는데 숨이 많이 차겠죠?”
그에게 의사가 내린 진단은 폐암 4기. 짧은 순간에 절망을 경험했을 테지만 그는 씩씩해 보였다. 그리고 너무 절망적이거나 관조적이지 않게 현재를 성실하게 대하고 있었다. 새해 소망을 물었더니 “그런 거 없어요. 3차 항암 치료나 부작용 없이 잘 지나갔으면 해요”하고 대답하는 이미경. 그의 빠른 쾌유를 빈다.

여성동아 2004년 1월 4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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