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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유인경의 Happy Talk

진정한 가족의 의미 다시 생각해야 할 때

2004. 01. 05

진정한 가족의 의미 다시 생각해야 할 때

최근에 어머니를 잃어 고아가 되고 보니 새삼 가족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빈말이라도 나의 처지를 걱정하고 위로해주는 이들 덕분에 얼마나 많은 힘을 얻는지 모른다.
주변을 둘러보면 재혼 커플이 늘어나 성이 다른 아이들이 형제가 되고, ‘가족 공동체’란 이름으로 여러 가족이 한집에 모여 살기도 한다.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가 함께 사는 집도 있고, 과부끼리만 3대가 모여 사는 집도 있다. 이젠 정말 가족의 정의를 다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피를 나눴다고 해서 억지로 참고 살기보다는 정말 서로 원해서, 사랑해서 함께 둥지를 틀고 서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21세기형 가족이 아닐까. 그리고 이젠 내 가족만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이기주의에서 탈피해 다른 가족에게도 마음을 열고 정을 나눠야 하겠다.
일본의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인 기타노 타케시는 “누가 안 본다면 내다버리고 싶은 것이 가족”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내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누가 보더라도 버리고 싶을 때가 많은, 가장 비열하고 가장 상처를 많이 주는 이들이 가족”이라고.
사업자금을 주지 않는다고 부모를 살해한 패륜아, 친딸을 성폭행한 짐승만도 못한 아버지, 딸의 이름으로 카드를 발급받아 흥청망청 쓴 철없는 엄마 등 차라리 가족이 아니었으면 좋았을 이들도 많다.
반면 자식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부모가 있고, 형의 사업자금 대출 보증을 섰다가 자기 집까지 경매에 넘어가도 원망하지 않는 아우도 있다. 50여년 전에 헤어진 가족을 만나기 위해 통일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산가족, 얼굴도 모르는 부모를 애타게 찾는 해외 입양아, 가족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장기를 내주는 이들도 있다.
진정한 가족의 의미는 무엇이며 가족 사랑은 어떤 것일까. 세대간 단절, 피임과 인공수정에 따른 성애와 출산의 분리, 안방 깊숙이 들어온 텔레비전과 애완동물, 항상 외부와 접속시켜주는 휴대전화와 인터넷, 어머니 대신 식사를 챙겨주는 다양한 서비스, 갖가지 짝짓기를 도와주는 인터넷 사이트, 백살까지 수명 연장을 가능케 만드는 의료기술…. 이 모든 것들이 가족적인 삶에 커다란 균열을 내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시카고의 경우 자신을 낳아준 부모와 온전히 살고 있는 10대 청소년은 4명 중 1명뿐이라고 한다. 어떤 아이는 부모가 이혼해 엄마나 아빠 중 한사람과 살고, 어떤 아이는 엄마가 재혼해 의부와 살고, 어떤 아이는 입양되어 양부모와 살고…. 결국 우리가 가장 평범하고 정상적이라 믿고 있는 ‘가족’과 ‘가정’은 전혀 보편적이지 않고 결코 절대 다수가 아니다. 4분의 1이라니 말이다. 어쩌면 친부모와 피를 나눈 친형제 자매로 구성된 가족이란 그저 이상향일지도 모른다.

미국 시카고 10대 청소년 4명 중 1명만이 친부모와 살고 있어
최근에 어머니를 잃어 고아가 되고 보니 새삼 가족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 진심으로 나의 처지를 걱정하며 울어주고 한달이 넘은 지금까지도 위로 전화를 걸거나 먹을 것을 챙겨주는 이들이 있다.
“유인경씨, 우리 몇몇이 비상 대기조를 짰거든요. 유인경씨가 ‘외롭다, 속상하다, 슬프다’ 하고 전화를 걸어 ‘밥 사달라, 놀아달라’고 하면 언제라도 달려갈 당번들이 있다고요. 24시간 전화가 열려 있으니 언제라도 우리를 불러줘요.”

진정한 가족의 의미 다시 생각해야 할 때

빈말일지라도 이런 말을 해주는 이들 덕분에 얼마나 많은 힘을 얻는지 모른다. 반면 남들이 하면 하나도 상처 받지 않을 말이나 행동도 가족이 하면 비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누가 나보고 수다쟁이라고 한다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지만, 남편이 “당신은 너무 말이 많아” 하면 엄청난 비난으로 들린다. 치매를 앓은 엄마를 10년간 모신 내게 “직장 생활하면서 제대로 모셨겠어? 그냥 효녀 흉내만 냈겠지”하며 남들이 뒤에서 뭐라 하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하고 넘어가거나 ‘사실 100% 충실히 모시진 않았다’ 하고 반성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친형제가 “누가 너보고 엄마를 모시라고 강요했냐? 네가 좋아 모셔놓고 혼자 효녀인 것처럼 생색내지 마라”고 하면 “생색내서 미안하우” 하며 웃고 넘기기가 힘들다.
‘부모라면 당연히 나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 내가 목숨 걸고 낳은 자식이니 내 뜻을 당연히 따라야 한다. 나와 피를 나눈 형제자매이니 어떤 경우에도 내게 도움을 줄 것이다. 가장 사랑해서 만난 부부이기에 서로 지켜주며 그 사랑이 변치 않을 것이다.’
이런 막연한 기대 심리 때문에 가족 구성원 사이에 갈등이 더욱 커지는 게 아닐까. 기대가 크면 실망과 상처도 크게 마련이니 말이다.

꼭 피를 나눠야만, 결혼이란 제도로 엮여야만 가족은 아니다
이젠 정말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주변을 둘러봐도 그렇다. 재혼 커플이 늘어나 성이 다른 아이들이 형제가 되고, ‘가족 공동체’란 이름으로 여러 가족이 한집에서 살면서 따스한 정을 나눈다. 어떤 집은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가 함께 살기도 하고, 또 어떤 가족은 과부끼리 3대가 모여 사는 집도 있다. 동성애자끼리도 가족을 이룬다.
가족에 대한 개념이 달라지고 있음을 확연히 느낀다. 꼭 피를 나눠야만, 결혼이란 제도로 엮여야만 가족이 되는 게 아니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조형 교수는 이혼 후 아들을 혼자 키웠다. 그 아들이 결혼해 분가하자 현재는 혼자 살고 있다. 그러나 60세가 되면 친구와 함께 살 생각이다. 삶의 원형인 독거를 공동으로 하겠다는 것. 한 여성학자는 독신인데 이혼한 친구와 그 딸, 그리고 그 딸의 친구와 함께 살고 있다. 그들은 열린 가족이며 대안 가족이기도 하다. 얼마 전 세 아이를 둔 이혼녀가 아이 둘을 키우는 이혼남과 재혼을 했다. 성도 생김새도 전혀 다르지만 두 가족은 서로 “합병했다”고 주장하며 새로운 언니, 동생, 오빠의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다.
피를 나눴다고 해서 억지로 참고 살기보다는 정말 서로 원해서, 사랑해서 함께 둥지를 틀고 서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21세기형 가족이 아닐까. 그리고 이젠 내 가족만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 이기주의에서 탈피해 다른 가족에게도 마음을 열고 정을 나눠야 할 때다.
그나저나 앞으로 우리 딸도 결혼해 집을 떠나면 달랑 남편 하나 남는데 그 유일한 가족과 함께 남은 평생을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살려면 지금부터 잘 지내는 법을 연구해야겠다. 그런데 왜 벌써부터 한숨이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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