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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반가운 얼굴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로 연기 할동 재개한 김부선

‘대마초 사건, 미혼모로 산 골곡진 인생 솔직 고백’

■ 글·조득진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3.11.10 16:25:00

영화 ‘애마부인 3’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가 대마초 사건으로 사람들에게서 잊혀졌던 배우 김부선이 최근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통해 돌아왔다. 사건 이후 한 남자와 사랑에 빠져 그의 아이를 낳아 키우며 미혼모로 살아왔다는 그.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그는 어린 딸과 함께 ‘해피 엔드’를 준비중이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로 연기 할동 재개한 김부선

‘혼자서 이렇게 창 밖을 바라보며 많이도 울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잠겨 있는데 “이 옷 어때요?” 하며 그가 방안에서 나왔다. 뒤를 돌아보니 타이트한 검은색 티에 플레어 스커트, 얇은 숄까지 걸친 그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외모와 여배우로서의 농염함을 자랑하는 듯 활짝 웃고 있었다.
영화배우 김부선(42)이 활동을 재개했다. 모델로 활동하던 지난 83년 영화 ‘여자가 밤을 두려워하랴’로 데뷔, ‘애마부인 3’ ‘토요일은 밤이 없다’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며 80년대를 대표하는 섹시 스타였던 그가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신세대 스타 권상우와 ‘베드신’을 펼치며 영화계에 돌아온 것.
“사실 그동안 영화 ‘비트’ ‘H’와 연극 ‘라이방’에 출연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워낙 단역이어서 관객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거죠. 늘 연기 활동만은 접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제게 덧씌워진 섹시 이미지와 대마초 사건으로 출연 기회가 없었어요.”
그가 이번 영화에서 맡은 역할은 주인공 권상우의 동정을 빼앗는 떡볶이집 아줌마. 70년대 서울 변두리의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이소룡에 빠져 사는 한 고교생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에서 그는 관능적인 모습으로 고교생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연기를 했다.
“남자의 동정에 대한 아련한 기억을 끄집어내는 역할이죠. 권상우씨요? 함께 연기하는 저는 참 좋았죠. 베드신이 있었는데, 그 친구는 베드신이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선배 연기자로서 잘 리드(?)하려고 했는데 NG도 없이 한번에 끝나는 바람에 어찌나 아쉬웠는지(웃음).”
한창 때 이정길, 남궁원 등 연배가 높은 선배들과 베드신을 찍었던 그에게 젊고 파릇파릇한 권상우와 함께한 촬영은 신선한 자극이었다고. 맛보기로 한 번 해보고 두번째 좀더 리얼하게 연기할 참이었는데 감독이 만족스런 목소리로 ‘OK’를 외쳐 김이 새버렸다며 웃었다.
모델 출신으로 늘씬한 몸매, 고전적 외모로 80년대 남성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그는, 그러나 80년대 말 대마초 흡연 혐의로 옥살이를 하며 연예계를 떠나야 했다. 이후 ‘염해리’라는 또 다른 예명으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더 이상 스포트라이트는 그의 몫이 아니었다.
“당시 여배우들의 생활은 굉장히 고단했어요. 많은 유혹이 있어서 영화사나 매니저들에 의해 ‘관리’를 받았죠. 영화 촬영 외 시간엔 늘 집에만 처박혀 있어야 했어요. 그러니 바깥으로 뛰쳐나가려는 욕구가 강해졌고…. 그러다 ‘노는’ 친구들을 만나 대마초를 접하게 됐어요.”
옥살이를 마치고 나오자 그에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영화사로부터의 연락은 고사하고 그동안 ‘언니, 동생’ 하며 지냈던 동료 연기자들조차 그의 전화를 피했다고. 연예인에게 무덤과도 같았던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기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알기에 그들을 원망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로 연기 할동 재개한 김부선

오랜만의 인터뷰 탓일까? 그는 내내 함박 웃음을 지으며 사진 촬영을 ‘즐겼다’. 천생 배우인 그는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에 목말라 보였다.


“어린 나이에 갑자기 많은 것을 얻었고, 또 그만큼 많은 것을 잃었어요. 너무 힘들었죠. 무엇보다 대화를 나눌 친구가 필요했는데 아무도 제 말엔 귀 기울여 주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다 한 남자를 만나게 됐어요.”
그 남자는 그가 고향 제주도에서 올라와 모델활동을 막 시작할 즈음 한번 만난 적이 있었던 사람이다. 이후 이렇다할 만남이나 연락이 없다가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전화가 걸려왔는데 ‘혹시 나 기억해요?’ 하는 거예요. 순간 느꼈죠. 나를 사랑해줄 남자. 선배들이 연예계 활동 초기엔 절대 남자 함부로 만나지 말라고 했는데, 지금 이런 순간이 오기를 기다리라는 말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당시 그의 나이 스물여섯. 외롭다 보니 그 사람에게 금방 빠졌다. 5년 동안 자신을 기억하고 있었던 남자는 친절하고 따스했다.

힘겨울 때 따스한 남자 만났지만, 결국 상처만 남아
“늘 저를 닮은 딸을 낳고 싶다고 했어요. 정말 나를 사랑하는구나 생각했죠. 그러나 정작 아이가 들어서자 자꾸만 저를 피하는 거예요. 약속은 자꾸 미뤄지고 전화를 해도 반가운 기색이 아니었어요. 재회 당시 ‘이혼했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본처가 있는 유부남이었어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이었지만 그는 혼자라도 아이를 키우겠다며 제주도로 내려갔다. ‘성공해서 돌아오겠다’며 서울 갔던 처녀가 배가 불러 돌아왔으니 집안은 물론 온 동네가 술렁였다. 미혼모를 향한 차가운 시선 속에서 그는 아이를 낳고 길러야 했다.
“죽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아이를 보면서 이를 악물었어요. 다시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 제가 짊어져야 할 운명이라면 견뎌내자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 남자가 찾아와 “미안하다. 어머니가 아이를 보고 싶어한다”며 아이를 데려갔다. 그는 내심 “이제 우리 모녀를 인정해주려나 보다”는 생각을 했다고. 그러나 곧 연락을 주겠다던 남자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부랴부랴 서울 집으로 찾아갔지만 처음 본, 그 남자의 어머니는 “그런 아이 모른다”며 아이를 내주지 않았다.
“남자에게 버림받고 아이까지 빼앗겼으니 제 정신이 아니었죠. 자식을 하루라도 안 보면 미칠 것 같은 것이 어미의 마음이잖아요. 그땐 잠들면 차라리 깨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을 정도였어요. 매일같이 그 집을 찾아가 애원을 했죠. 그러다 15개월 만에 아이를 찾아왔지요.”
하지만 조건이 붙었다. 위자료와 아이 양육비를 요구하지 말 것, 딸 미소를 엄마의 호적에 올릴 것,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을 것. 그러나 아이를 되찾은 그에겐 아무것도 필요치 않았다. 이후 그의 생활은 미혼모로서 아이를 키우는 데 동반되는 경제 문제, 육아문제, 사회의 시선까지 겹쳐 힘겹기만 했다.
“제가 건강하지 못하고 독하지 못하면 아이를 망치게 된다는 생각으로 살았어요. 제주도 집과 서울 언니네 집을 오가며 아이를 맡겨두고 돈 벌러 다녔죠.”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로 연기 할동 재개한 김부선

연기활동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은 결국 그를 스크린으로 돌아오게 했다. 그는 요즘 제2의 연기인생을 살고 있다.


남대문에서 옷을 떼다가 지방 도시에 납품을 하거나 홍콩 일본 등지로 보따리 장사를 떠나기도 했다. 그렇게 돈을 버는 중에도 연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데뷔 당시 감독의 도움으로 틈틈이 몇 편의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섹시 스타, 대마초 사건, 미혼모라는 꼬리표가 붙은 그에게 맡겨진 배역은 늘 단역에, 밑바닥 인생 역할뿐이었다.
“그렇게 15년을 살았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늘 가족과 딸 미소에게 미안해요. 제게 기대가 많았던 가족들인데 그들의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한 것 같아요. 5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못한 것이 너무 안타까워요. 딸을 키우다 보니 어머니가 겪었을 마음고생을 이제야 알 것 같은데….”

딸이 유일한 희망, 본격적인 스크린 복귀 꿈꿔
올해 중학교 3학년인 딸 미소는 엄마를 닮아 키가 크고(168cm), 예쁘장한 외모를 지녔다. 미소가 ‘우리 엄마는 미혼모’라는 사실을 인식한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 그동안 “아빠는 미국에 공부하러 갔다”고만 했던 그는 아이에게도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아이를 키우면서 미혼모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감당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어요.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나니 다른 아이들이 편견을 갖고 대할까봐 덜컥 겁이 나더군요. 그래서 사실을 이야기했죠. 힘들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아이가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로 연기 할동 재개한 김부선

전쟁 반대 시위에 참가한 모습. 엄마를 닮아 훤칠한 키에 예쁜 얼굴을 가진 미소는 ‘끼’까지 물려받았는지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는 것이 꿈이다.


그는 미소의 학년이 바뀔 때마다 학교에 찾아가 담임 선생님에게 자신의 처지를 밝히고, 아이에 대한 관심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것이 아이에게 또 다른 편견을 줄지도 모르지만 당시로서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돈 벌러 다니느라 미소를 언니 집에 맡겨놓을 때가 많았어요. 이따금 전화를 하면 울음이 담긴 목소리로 ‘엄마 보고 싶어’ 하는데 정말 가슴이 찢어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겠더군요. 미소가 이불 속에서 흐느끼더라는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 또 얼마나 미안하고 안타깝던지….”
헤어져 있는 시간 동안 미소는 엄마에게 편지를 보냈고, 엄마는 아이를 향한 그리움을 일기장에 빼곡하게 담았다. 요즘도 가끔 모녀 사이에 다툼이 생기면 그 편지와 일기장을 꺼내 보며 함께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되새기곤 한다.
“중학교 1학년 때 제 아빠와 처음 만났어요. 만나면 욕을 해 줄 거라고 벼르더니 핏줄은 어쩔 수 없는지 금세 품에 안기더군요. ‘발가락이 닮았네, 코가 똑같네’ 하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 아이에게 못할 짓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미소가 어느덧 열다섯살 소녀가 되어 요즘은 엄마를 위로하기도 하고, 다그치기도 한다. 아빠와의 만남 후 근 1년 동안 알코올중독에 빠져 지낸 엄마에게 충격요법을 주기 위해 가출을 하기도 했던 미소는 요즘도 “아빠 안 돌아오니 꿈 깨라” “그렇게 궁상떨지 말고 어디 가서 좋은 남자친구 좀 만들어라”며 마치 언니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로 연기 할동 재개한 김부선

미소는 엄마의 끼도 닮았는지 문학과 노래에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한 음악 전문 케이블 방송에서 진행한 가요콘테스트에 참가, 2천명 중 3위에 입상하기도 했다. 당시 상금으로 받은 1백만원 중 70만원을 “좋은 화장품 사서 예뻐지라”며 엄마에게 건넨 효녀이기도 하다.
“연예인 되는 게 꿈이래요. 제가 연예활동을 하며 힘겨운 일도 많이 겪었지만 굳이 말릴 생각은 없어요. 자신의 생각이 가장 중요하고, 또 재능도 있는 것 같아 원한다면 응원해주고 싶어요.”
그의 휴대전화 단축키 1번은 바로 딸 미소의 휴대전화 번호. 얼마나 많이 눌렀는지 그 ‘1번’ 자리만 숫자가 거의 닳아 없어졌을 정도다. 그에겐 미소가 유일한 희망이며, 살아가는 이유다.
“영화 ‘애마부인’ 때문인지 저를 섹시 스타나 에로 스타로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사실 전 섹시보다는 코믹에 가까운데…. 전성기가 다시 오지는 않겠지만 제2의 연기인생을 시작하고 싶어요. 시트콤도 좋고 영화 조연도 좋고, 단 몇 장면밖에 안되더라도 그 작품에 악센트를 줄 수 있는 역이라면 반갑게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
한때 뭇 남성의 가슴을 떨리게 하며 스타덤에 올랐던 그. 등산 등 꾸준한 운동으로 몸매를 가꾸며 ‘재기’의 날을 기다렸다는 그는 ‘천생 배우’였다. 젊은 날의 풋내는 가셨지만 그에겐 인생의 질곡을 견뎌온 여인의 여유와 원숙함이 느껴졌다.

여성동아 2003년 11월 4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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