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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병 앓는 아내와 30개국 배낭여행한 최오균씨의 감동 사랑

“아내가 낯선 곳에서 쓰러져 위기 겪기도 했지만 여행은 아내를 살리는 명약이었어요”

■ 기획·최호열 기자 ■ 글·박진숙 ■ 사진·지재만 기자

입력 2003.08.08 13:37:00

어느날 갑자기 사랑하는 아내에게 ‘유사 루푸스’라는 난치병이 찾아오자 ‘잘 나가던’ 은행 지점장 자리도 미련 없이 버리고 아내와 함께 세계여행을 떠나기 위해 짐을 꾸린 최오균씨.
이들 부부의 소박하지만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
난치병 앓는 아내와 30개국 배낭여행한 최오균씨의 감동 사랑

“갑자기 찾아온 병마 앞에서 절망의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하는 아내를 보면서 다짐했어요. 아내가 다시 일어나 문밖으로 걸어나갈 수만 있다면 어떤 소원이라도 다 들어주겠다고. 간신히 기력을 회복한 아내가 말한 소원은 ‘아주 멀고 긴 여행’이었어요. 그래서 망설이지 않고 바로 짐을 꾸리기 시작했죠.”
‘유사 루푸스’라는 난치병을 앓는 아내 박정희씨(56)를 위해 ‘잘 나가던’ 은행 지점장 자리를 미련 없이 내놓고 아내와 함께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행’을 시작한 남편 최오균씨(57). 아내와 함께 떠나는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비장한 각오로 시작한 것이 어느덧 4년 동안 세계 30여개국을 돌아보기에 이르렀다. 힘든 여행이 아내를 살린 ‘치유의 약’이 되었던 셈이다.
최근 최씨는 투병생활의 고통과 꺾이지 않는 아내에 대한 사랑, 그리고 아름다운 여행 이야기를 한권의 책으로 엮었다. ‘사랑할 때 떠나라’가 바로 그것. 부부라는 하늘이 맺어준 연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살아가는 최씨 부부를 만난 곳은 공교롭게도 병원이었다.
“이곳이 아내가 혼절해서 처음으로 실려왔던 응급실이에요. 벌써 몇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이곳에 오면 그때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아려요. 병원 곳곳에 아픈 기억이 배어 있거든요.”
며칠 전 아내가 받은 검사의 결과를 듣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는 최씨는 바람 앞의 촛불처럼 아내의 생명이 위태로웠던 그날이 떠오르는지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에게 95년 9월8일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고통의 서막이 시작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건강했던 아내는 친구의 배신으로 심한 충격을 받은 뒤 원형탈모증으로 병원을 출입하기 시작했다. 이어 눈의 근육이 무력해져 물체가 온통 두개로 보이는 ‘혈관염’이라는 증세가 찾아왔다. 여기에 우울증까지…. 하지만 이런 병들은 불행의 시작에 불과했다.
“어느날 아내가 갈증이 난다면서 연신 물을 찾더라고요. 계속 물만 마시는 것을 보다못해 포도주스를 사다 먹였어요. 그런 뒤 잠자리에 들었는데 갑자기 심한 고열과 함께 전신이 마비되는 증상을 보였어요. 그러더니 정신을 잃고는 죽은 사람처럼 축 늘어지는 거예요. 정신 없이 아내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죠.”
응급실에 도착할 때까지도 아내는 혼절상태 그대로였다. 의사는 혈당지수가 500까지 올라갔다며 “당뇨 환자에게 포도주스는 극약”이라며 그를 나무랐다. 당뇨병은 6개월 전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만 해도 전혀 들어보지 못한 병명이었다.
난치병 앓는 아내와 30개국 배낭여행한 최오균씨의 감동 사랑

치료가 시작됐지만 혈당은 계속 조절하기 힘든 수치에 머물렀고, 머리와 가슴의 고통이 뒤따랐다. 아내의 우울증은 더욱 증세가 심각해졌다. 정확한 병명도 밝히지 못한 채 병원에서도 박씨를 포기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앞이 캄캄해요. 절망 그 자체였죠. 매일 퇴근하면 병원으로 달려가 아내 곁을 지켰어요. 그러면서 내가 냉정해져야 한다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되새기며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아내를 살려달라고 기도를 했어요. 아내의 친구들이 병문안을 와도 아내는 우울증으로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어요.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아까운 친구 하나 잃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울컥하며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화장실로 도망치듯 달려가 참 많이 울었습니다.”
최씨가 아내의 병 때문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흘린 눈물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아내의 병을 고치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좋다는 명약을 찾아 한의사와 약재상을 뒤졌고, 신침(神針)을 놓는 스님을 찾아 예산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양방과 한방, 민간요법 할 것 없이 뭐든지 다 해보았지만 아내의 병은 차도가 없었다. 결국 마지막 방법으로 아내를 데리고 시골에 살면서 장기요양을 하기로 결심했다.

난치병 앓는 아내와 30개국 배낭여행한 최오균씨의 감동 사랑

아내를 위해 직장까지 그만두고 아내와 함께 해외여행을 다닌 최오균씨.


당시 조흥은행 지점장이던 최씨로서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시골의 이름 없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말단사원으로 입사해 30년 동안 성실하게 일해서 얻은, 피와 땀이 얼룩진 직책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더구나 두 딸이 대학생이라 아직 뒷바라지가 끝난 것도 아니었다. 또한 한창 일할 나이인 40대 후반에 일을 놓는다는 것도 두렵기만 했다.
그러나 아내를 살릴 수만 있다면 못할 것이 없었다. 98년초 IMF 한파가 몰아닥쳤을 때 그는 사표를 던졌다. 강직하기로 소문난 그가 사표를 내자 주변에서는 당혹스러워했다. 회사조차 아무런 문제도 없는 사람이 느닷없이 사표를 내자 무슨 의혹이 있는 것 아닌가 하고 감사까지 했을 정도다.
“아내를 살릴 수만 있다면 아까울 것이 없었어요. 제게 시집와서 온갖 어려움을 다 겪으면서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묵묵히 제 곁을 지켜줬죠. 제가 젊을 때 병으로 쓰러졌는데 혼신을 다해 나를 살려낸 사람이 바로 아내예요. 그러니 이젠 제가 평생 몸 바쳐서 봉사를 해야죠.”

해외여행 갈 때마다 아이들에게 유서 남겨
인터뷰 내내 틈만 나면 서로 얼굴을 마주보면서 행복한 웃음을 짓고, 꼭 잡은 두손을 한번도 놓지 않는 이 부부의 사랑은 72년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최씨는 은행에 입사한 지 1년 만에 폐렴으로 휴직을 한 상태였다. 다행히 몸이 빨리 좋아져 복직은 했지만 수중에 있던 돈을 모두 병원비로 날려 무일푼이나 다름없었다.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었지만 운명처럼 서로 끌린 두 사람에게 경제적인 문제는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부엌도 없는 5천원짜리 월셋방에서 시작한 신혼살림이었지만 두 사람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얼마후 첫번째 시련이 찾아왔다. 첫아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최씨의 폐렴이 재발해 몇년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그래도 박씨는 없는 살림을 꾸려가며 잘 걷지도 못하는 남편을 부축해 좋다는 한의원을 찾아다니는 등 지극정성으로 병수발을 했다.
“아내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겁니다. 제 생명의 은인인 셈이죠. 그 이후로도 제가 직장에 다니며 공부를 했기 때문에 살림하고 아이들 키우는 데 늘 쪼들렸을 거예요. 그래도 아내는 잔소리 한번 안하고 묵묵히 내조를 해주었어요. 꽃꽂이를 배워 강사로 활동하며 생활비를 벌기도 하고….”
이런 아내였기에 최씨가 모든 것을 다 버릴 수 있는 과감한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적처럼 그가 퇴직한 뒤 하나둘씩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가까운 사람에게 방송인 정미홍이 아내와 비슷한 증세를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당장 정씨를 찾아간 그는 정씨가 소개해준 병원에서 그동안 알 수 없었던 아내의 병명이 ‘갑상선 저하 증세’와 ‘유사 루푸스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루푸스 병은 쉽게 말하면 몸속에 있는 면역체가 너무 강해서 자기 몸에 이로운 세포까지 파괴하는 난치병이다. 박씨의 경우는 루푸스 병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증세를 보인다는 것. 그래서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과 갑상선 세포가 손상되어 호르몬 분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 심장에 물이 찼던 것이다. 병을 완치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을 순 없었지만 병의 원인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의 빛줄기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기적처럼 박씨의 병은 조금씩 호전되기 시작했다.
기운이 없어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혼자 밥도 못 먹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창 밖을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던 아내가 기력을 회복해 가벼운 일상생활을 할 정도가 되자 최씨는 시골로 내려갈 준비를 했다. 그때 아내는 “이렇게 걸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어디론가 떠나자”고 제안했다.
아내는 하루에 네번씩 인슐린 주사를 맞고 한움큼씩 되는 약을 복용하는 데다 기력을 회복한 듯 보이다가도 저혈당으로 인한 쇼크 때문에 병원 응급실을 오가는 신세였다. 그런 상태에서 긴 여행은 분명 무리였다. 행여 ‘지상에서의 마지막 동행’이 되면 어쩌나 걱정도 됐다. 담당 의사뿐 아니라 주변에서도 무모하다며 만류했다. 하지만 최씨 부부는 ‘여행이 기적과 같은 명약’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첫 유럽여행을 강행했다. 살던 집을 팔아 작은 집으로 전세를 얻어 옮기고, 퇴직금으로 받은 돈의 일부를 떼어 여행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떠나기 하루 전날 아이들에게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유서였다.
“첫 여행을 떠날 때는 비장한 마음이었어요. 여행중에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고…. 사람의 일이라는 게 모르는 거잖아요. 그래서 유서를 썼죠. 거창한 내용은 아니었어요. 재산과 빚은 얼마고, 우리가 죽으면 납골을 해서 어디에 뿌려달라, 사람은 언젠가 죽는 거니까 서러워 말고 너희의 길을 가라, 이런 당부의 말을 남겼어요. 지금도 여행을 갈 때마다 아이들에게 유서를 써놓고 가요.”

난치병 앓는 아내와 30개국 배낭여행한 최오균씨의 감동 사랑

유사 루푸스병을 앓던 박씨는 해외여행을 하면서 건강을 많이 회복했다고 한다.


첫 여행은 24일간의 중부유럽 코스였다. 꼭 결혼 25주년이 되던 해, 11월이었다.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서울을 떠나 무사히 런던에 도착, 도버해협을 지나 프랑스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로마 그리스 스페인 스코틀랜드를 두루 여행했다. 스위스에서 최씨는 아내에게 생애 처음으로 값비싼 시계를 선물했고, 로마의 트레비 분수 앞에서 던진 동전이 분수 안에 들어가 다시 로마에 올 수 있는 날을 기약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는 마지막날 밤에 영화 속 주인공처럼 멋진 ‘프렌치 키스’를 나누고, 호텔방에서 몰래 가져간 라면을 끓여 먹으며 어린아이처럼 낄낄거렸다.
마치 제2의 인생을 얻은 것 같았다. 그리고 여행은 요술처럼 투병생활로 지친 아내를 바꿔놓았다. 이들이 한번 여행을 갈 때마다 가져가는 인슐린 주사는 1백50개 정도. 그동안 자기 살에 주사를 놓지 못하는 아내를 대신해 최씨가 늘 주사를 놓아주었다. 그런데 베네치아에서 다른 여행객들과 함께 결혼 25주년 기념일을 보낸 다음날, 박씨는 아침 일찍 일어나 자기 허벅지에 주사바늘을 꽂았다. ‘생애 최고의 날’인 결혼기념일을 보내고 다시 세상과 싸워볼 용기가 생겼던 것이다. 그 뒤로 박씨는 지금까지 스스로 주사를 놓고 있다.
낯선 땅을 여행하다 보니 힘든 일도 많았다. 로마에서는 돈가방을 훔치려는 집시들의 공격을 받아 몸싸움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다급했던 일은 아내에게 응급상황이 벌어졌던 때다. 일행과 잠시 떨어져 오스트리아 다뉴브 강변을 걷다가 방향감각을 잃고 묵었던 호텔을 찾지 못해 헤매게 됐다. 그때 아내의 안색이 변하더니 급기야 맥없이 쓰러졌다. 저혈당이 온 것이다. 상비약으로 들고 다니던 초콜릿을 급히 먹이고 인슐린 주사를 놓았다. 그래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아내를 보고 당황한 최씨는 온몸을 주무르며 나쁜 생각을 떨쳐버리려 애를 썼다. 그렇게 20여분이 지나서야 박씨는 겨우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여행하면서 힘든 점은 조금만 관리를 못하면 저혈당이 와서 쓰러지는 거예요. 비엔나에서, 네팔의 정글에서, 그리고 미국의 로키산맥에서도 쓰러졌죠. 그럴 때마다 남편은 죽으러 여행을 왔나 하는 생각에 괴로워하기도 해요. 하지만 전 그 순간을 모면하고 나면 새로운 힘을 얻어 다음 여행지가 궁금해지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보려고 하죠. 어차피 한국에 있어도 이런 현상은 오는 거니까 연연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특히 박씨의 당뇨는 쉽게 조절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매시간 자신의 몸 상태를 스스로 진단해 적절한 양의 인슐린을 투여해야 한다. 그러니 언제 어느 때 쓰러질지 알 수 없다. 한마디로 피를 말리는 일이다.
여행중에 힘들었던 때를 이야기하면서 박씨가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바람에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고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최씨는 “괴롭긴 하지만 그저 오늘도 살아 있어서 감사하고, 죽음을 이겨내는 아내가 사랑스러울 따름”이라며 지긋한 눈길로 아내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빛만으로도 여행이 아픈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희망의 새살을 돋게 하는 명약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번째 여행을 무사히 마친 두 사람은 그후 지난 4년 동안 미국의 로키산맥, 네팔, 인도, 중국, 터키, 멕시코, 뉴질랜드에 이르기까지 30여개국을 달랑 배낭 하나 들고 돌아다녔다. 여행을 가지 않을 때는 그의 전문 분야인 회사 정리나 컨설팅 일을 하고 있지만 아내와 여행하는 데 방해가 된다면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떠났다.
“앞으로도 계속 여행을 갈 겁니다. 그것이 아내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요. 인생은 오십보, 백보인 것 같아요. 언제나 행복하게 살 수는 없죠. 비록 매일매일 병과 싸우고 있지만 아내가 지금 제 곁에서 같이 호흡하고, 같이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고 소중합니다.”
이보다 소중한 인연이 또 있을까. 남남으로 살다가 결혼이라는 질긴 끈 하나에 의지해 살아온 최씨 부부는 그들의 여생 또한 이 끈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란히 서로 의지하면서 걸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오랫동안 여운을 남겼다.

여성동아 2003년 8월 4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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