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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개발원 김원홍 박사의 평등 부부생활 & 여성관

“결혼한 후에는 아내 말만 잘 들으면 뭐든지 잘 되더군요”

■ 글·박진숙 ■ 사진·김성남 기자

입력 2003.08.08 11:26:00

한국여성개발원에서 20년 동안 한결같이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해 외길을 걸어온 남성, 김원홍 박사.
대한민국에서 자신만큼 많은 여자를 만난 남자도 없을 것이라며 여성문제라면 발벗고 나서는 보기 드문 남자를 만나보았다.
한국여성개발원 김원홍 박사의 평등 부부생활 & 여성관

“대한민국 남성 중에 저만큼 여성을 많이 만난 남자도 드물 겁니다. 사회에서 인정받아 잘 나가는 여자, 여성들을 위해 앞장서 싸우는 여자, 소외당해 힘들게 사는 여자 등 참 많은 여성들을 만나왔죠. 이렇게 많은 여성들을 20년 동안 만나면서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가부장적인 낡은 틀이 여성이나 남성에게 모두 손해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이젠 여성들을 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파트너로 바라봐요.”
여자보다 여자들이 처한 현실을 더 잘 알고 이해하는 남자, 여자를 옭아매는 사회적 제약들을 제거하기 위해 여자보다 더 애쓰는 보기 드문 남자가 있다. 한국여성개발원 법·정치연구부장 김원홍 박사(46)가 바로 그 주인공. 그는 20년 전 한국여성개발원(이하 여성개발원)에 발을 들인 이후 줄곧 여성문제에 젊음을 바쳐왔고, 여자들을 위한 일이라면 맨발로라도 뛰어나갈 정도로 열심인 사람이다.
그가 20년 동안 매달려온 일은 여성들의 정치참여를 높이기 위한 정책 연구. 지난해 광역의원 비례대표 여성 50% 할당과 지역구 공천 여성 할당 30% 권고 조항 등을 담은 정당법 조항 개정이 그의 최근 작품이다. 관계 논문만 1백여편을 펴냈을 정도로 여성 유권자 연구나 정당의 여성 지원 문제, 각종 정치관련법의 초안들 중 김박사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저 혼자만의 힘으로 된 것은 아니지만 제가 연구한 정책이 법으로 채택되면 보람을 느껴요. 국회에 여성 관련 법안에 대한 아이디어와 자료를 제공할 때도 신이 나죠. 여성들의 지위 향상에 일조하는 것이니까요. 이 맛에 고된 줄 모르고 해왔는데 어느새 20년이 훌쩍 가버렸네요.”
김박사가 여성개발원에 입사하지 않았더라면 그 역시 여느 남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말끝마다 ‘여자가 어디 감히…’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삼형제의 장남으로 남중·남고를 졸업한 뒤 남학생 40명 중에 여학생이 둘뿐인 학과에서 공부한 정치학도다. 한마디로 가부장적인 사고를 가질 만한 조건을 두루 갖춘 남자였던 것.
이런 그가 여성개발원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은 여성문제에 대해 트인 시각을 갖고 있는 아버지 덕분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이화여자대학교 인사과장으로 재직중인 아버지의 일터에서 당당하게 일하는 여성들을 보며 자랐다. 이처럼 여자들이 사회에서 남자 못지않게 인정받으며 살아가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게 된 덕분에 여자도 남자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일찍이 장모를 모시고 살 정도로 가부장적인 사고와는 거리가 먼 아버지는 그가 대학원을 졸업하던 83년, 일해볼 만한 분야라며 여성개발원에 들어갈 것을 권유했다.
“마침 부모님에게 의지하지 않고 박사학위를 위한 공부를 계속 할 참이었는데 좋은 기회였죠. 여성문제를 연구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입사해서 여자들과 일하니 당황스러운 적도 많았어요. 삼형제 틈에서 자라온데다 여자동료들과 일하는 것이 처음이라서 여자를 신성하게 보는 면이 없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여자동료들은 화장실에도 안갈 것 같았고, 음식도 다르게 먹을 줄 알았죠. 하지만 지내보니 남자인 저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더군요(웃음).”

한국여성개발원 김원홍 박사의 평등 부부생활 & 여성관

최근 국제세미나를 다녀오면서 유럽여행을 다녀온 김원홍 박사 부부.


여성개발원은 김박사에게 여성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준 곳이다. 그러나 입사 이래 10년 동안 연구원 중 유일한 청일점으로 지내면서 힘든 일도 많았다. 처음 북창동 여성복지회관 건물을 빌려 여성개발원이 들어섰을 때다. 여성회관이다 보니 건물 전체에 남자화장실이 한군데뿐이어서 같은 층의 여자화장실을 공용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된통 꾸지람을 들었던 경험은 시작에 불과했다. 남자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술문화가 없다 보니 여자 직원들과 의사소통을 할 창구가 부족했다. 때문에 단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여성 직원들에 비해 모든 정보입수가 늦을 수밖에 없었다. 때론 직장 돌아가는 사정을 알 수 없어 운신의 폭이 좁게 느껴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승진도 늦었다. 연구직인 만큼 승진에 민감한 부서는 아니었지만 입사한 지 13년 만에 연구위원으로 첫 승진한 것은 입사 동기인 여성동료들과 비교했을 때 차별이라 할 만했다. 남자로 태어나 소수 입장이 된 적이 한번도 없었던 김박사에게 이런 경험들은 오히려 여자가 겪는 소수의 설움을 피부로 느끼게 해준 좋은 계기가 됐다. 소수라는 것은 정보나 기회 등 무슨 일에서든지 차별받게 된다는 것을 절감한 것.
반면 여성개발원을 벗어나 남성중심의 사회 속에 발을 디디면 이번엔 같은 남자들이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학교 은사와 동창끼리 가진 술자리에서 사회가 변해야 하고 여자들의 지휘가 향상돼야 한다는 말을 꺼냈다가 “남자 맞느냐? 그것 떼라”는 농담 섞인 말을 듣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그렇게 놀렸던 은사와 친구들이 이젠 그를 만나면 오히려 “한수 가르쳐달라”며 진지하게 여성문제를 바라본다고.
“승진에서 누락될 때는 실력이 부족해서 그렇겠지 하면서도 그 당시에는 차별받는다는 생각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죠. 지금은 빨리 승진하면 그만큼 빨리 퇴사해야 하니까 결과적으로 제게 좋은 일이 됐지만요(웃음). 여성개발원은 일반 사회와 정반대잖아요. 이곳에선 남자가 소수고, 반대로 사회 속에선 여자가 소수니까요. 다수는 소수의 아픔을 잘 몰라요. 저는 양쪽을 다 겪다 보니까 모든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박사는 최근 스웨덴에서 개최된 국제세미나에 초청을 받아 다녀왔다. 여성 할당제를 실시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대해 일본, 필리핀 등 여러 나라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참에 휴가를 앞당겨 아내와 유럽 7개국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틈틈이 아내와 여행을 자주 다닌다는 김박사는 아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살짝 미소를 머금고 여자들이 수다를 떨 듯 자근자근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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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성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쉼없이 강의를 한다.


그는 매우 가정적인 남편이다. 8평 남짓한 그의 사무실 한쪽 벽을 빼곡히 메운 책장 한가운데 걸려있는 다정한 부부 사진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는 퇴근하면 아내와 손잡고 집 근처 대학가의 싼 음식점을 찾아다니며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거나 산책하는 것이 취미. 현재 서예 강의를 하는 부인 김정숙씨(47)와 자녀 없이 단출하게 사는 김박사는 아내도 당연히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 부부는 20년 전 나란히 여성개발원 입사 시험을 치렀지만 아쉽게도 그의 아내는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 그러나 김박사가 가는 길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기 때문에 늘 든든한 후원자 노릇을 해주고 있다.
“아기를 안 낳으려고 한 건 아닌데 결혼 초기에는 아기보다 공부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사공부를 시작한 85년부터 학위를 받은 92년까지 하루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다 보니 아기를 가질 엄두도 내지 못했죠. 장남인데 아기가 없으니까 아버님께서 조금 아쉬워하셨지만 다른 집안처럼 난리가 나진 않았어요. 조카들을 내 자식처럼 생각하면서 함께 여행도 다니고 살갑게 지내죠. 지금은 아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서 오히려 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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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홍 박사 부부는 집안일은 함께 하고 수입은 각자 관리한다.


이들은 집안일을 내 일, 네 일을 가리지 않고 서로 도와가며 한다. 김박사는 한밤중에 퇴근할 때도 많지만 아내가 일을 가졌기 때문에 남편만 바라보며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한결 편하다고 한다. 생활비를 제외하고 각자의 수입은 각자 관리하며, 같이 써야 할 경우엔 뭉쳐서 낸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내뱉는 그. 여성의 입장에 서서 일하기 때문일까. 김박사는 확실히 또래의 다른 남편들과는 많이 달라 보였다. 쉬는 남편을 두고 일요일마다 꼬박꼬박 인근 구청으로 강의를 나가는 아내에게 눈살 한번 찌푸린 적도 없고, 아내가 하겠다는 공부를 말린 적도 없다. 그래서 꽃꽂이 사범으로 20년 동안 활동하던 아내가 붓글씨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자 격려하며 앞으로 붓글씨로 박사공부를 하길 원하는 아내의 뒷바라지도 마다하지 않을 작정이라고 한다.
“저도 결혼 직후엔 보수적인 남편이었어요. 하지만 살다 보니까 아내 말을 잘 들으면 뭐든지 잘 되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었죠(웃음). 83년이던가? 처녀 때 모아둔 돈으로 아내가 집을 사겠다고 하면서 명의를 자기 이름으로 하겠다고 하대요. 그러라고 했죠. 아내 돈으로 사는 건데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어느 날 부부싸움을 하다 제가 화가 나서 아내에게 ‘나가라’고 했더니 아내는 당당하게 ‘내 집이니까 당신이 나가라’고 해서 쫓겨난 적도 있어요(웃음).”
김박사의 ‘가부장제 뒤집기’는 아들 형제만 있는 집안 곳곳에서도 묻어났다. 중풍을 앓는 어머니를 여건이 되는 자식이 돌보면서 병원비와 생활비 일체를 형제들이 똑같이 분담해 내고 있다. 장남이냐, 차남이냐는 그의 가족에게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가족뿐 아니라 처가의 형제를 배려하는 것도 마찬가지. 가정 내의 작은 실천이 나아가 여성에게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바꾸게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10년 전부터 대학에서 정치학과 여성학을 강의해온 김박사는 그래도 요즘은 사회 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을 느낀다고 한다. 여성학 강의에 남학생이 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관심이 확대됐다는 것. 건국대학교 야간학부 여성학 강의를 할 당시 인원이 너무 적어 폐강을 할까 하고 망설이던 참에 한 여학생이 여성학 강의 덕분에 직장에서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감사의 말을 전해온 적이 있다. 그는 그 한마디에 망설임 없이 강의를 지속했다고 한다. 이처럼 바쁜 와중에도 김박사가 강의에서 손을 떼지 않는 이유는 여성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의료가 나오지 않더라도 고등학생부터 아줌마, 공무원 가릴 것 없이 불러주기만 하면 장소를 불문하고 뛰어간다.
“한국에 딸자식 안둔 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가부장제로 인한 희생은 여자뿐 아니라 남자들에게도 고스란히 돌아오게 되어 있어요.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여성문제가 자기 문제라는 인식을 하게 만들어야 해요. 아내를 인생의 파트너로 인정하면서 함께 일하고 가사도 나눠서 해야 함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돼요. 강의할 때 여자들에게는 사기를 북돋워주고, 남자들에게는 자기 문제임을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제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해요. 그런 면에서 여성 연구자에 비해 오히려 남성 연구자가 유리하죠(웃음).”
여성문제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흥분하며 앞장서는 김박사는 퇴직하는 날까지 여성개발원에서 아직 이루지 못한 일들을 해나갈 것이라고 한다. 지방의회에 여성들이 어떻게 하면 많이 진출하게 할까, 국회의원 경선제가 여성에게 불리한데 어떻게 유리하게 만들 것인가, 사각지대인 여성경찰, 여군들의 지위향상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등등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일들은 산더미 같았다. “이런 여성문제들이 다 해결돼서 여성개발원이 없어지는 것”이 자신의 마지막 꿈이라고 말하는 김박사. 자신만큼 정치 전문가가 된 아내를 지방의회에 내보내고 어느 남자보다 더 각별한 외조를 해보겠다는 그의 페미니스트다운 포부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여성동아 2003년 8월 4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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