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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속 시원한 이야기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해야 한다’ 주장하는 서울대 최재천 교수

“꽃미남 열풍도 여성시대가 가까이 왔다는 증거죠”

■ 글·최호열 기자 ■ 사진·지재만 기자

입력 2003.06.10 15:21:00

한국 최고의 사회생물학자로 인정받는 서울대 최재천 교수.
사회생물학적으로 볼 때 ‘여성시대’의 도래는 필연이고 그때가 되면 남성들도 여성에게 간택받기 위해 화장을 하고 몸을 가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가 동물사회와 비교하며 재미있게 풀어놓은 남성과 여성 이야기.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해야 한다’  주장하는 서울대 최재천 교수

흔히 ‘21세기는 여성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선진국의 경우 이미 여성 대통령, 여성총리가 등장했다. 보수 성향이 강한 우리나라에서도 여성 법무장관이 탄생했고 군, 경찰, 사법부 등 금녀의 영역에 여성의 진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수긍이 가는 이야기다.
그런데 “여성의 시대가 오는 건 생물학적 필연”이고 “그때가 되면 여성들에게 간택받기 위해 남자도 화장을 할 것”이라고 강변하는 사람이 있다. 서울대 최재천 교수다. 심지어 그는 “여성이 바람을 피우는 것은 필연(?)”이라는 파격적인 주장까지 하고 있다.
사회생물학자인 그가 이런 주장을 하는 게 언뜻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회생물학은 이제까지 수컷의 바람기를 두둔하며 남성우월주의와 가부장제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학문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지 않아요. 초기에 일부 학자들이 그런 주장을 하기는 했지만 사회생물학은 근본적으로 페미니즘과 맞닿아 있어요. 사회생물학을 연구하면 할수록 여성이 중심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그런 점에서 인간사회는 동물들이 볼 때 ‘도대체 저런 동물이 어디 있나’ 싶을 정도로 남녀관계가 상당히 왜곡되어 있어요.”
그는 2000년 5월 교육방송 ‘세상보기’ 프로그램에서 ‘여성의 세기가 밝았다’는 제목으로 사회생물학적 관점에서 본 남성과 여성을 주제로 강의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최근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는 책을 출간했다.
“처음엔 단순하게 생각하고 방송을 시작했는데 예상외로 반응이 뜨거웠어요. 특히 남성들의 비난이 엄청났죠. 제 이메일로 비난 글이 들어왔는데, ‘병신’이라고 욕을 하거나 ‘남자 망신 도매상을 차렸다’고 비난하는 건 약과였어요. ‘텔레비전에 처음 나올 때부터 어딘지 모르게 여성호르몬을 많이 가진 것처럼 보였다’며 저를 동성애자로 몰아 협박하는 사람도 있었죠. 처음엔 그 사람에게도 충실하게 제 생각을 써서 답장을 보냈는데, 그게 안 통하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엔 ‘당신 글을 보니까 남성적인 매력이 느껴져 마음에 든다. 사귀고 싶다’고 답장을 보냈더니 비난 메일이 딱 끊어지더군요(웃음).”

자식이 기업이라면 아빠는 소액주주 엄마는 대주주
그는 사회생물학적으로 볼 때 호주제만큼 치명적인 모순이 있는 제도도 없다고 강조한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2세가 잉태될 때의 유전자만 비교해도 암컷의 기여도가 훨씬 큰데 어떻게 2세가 수컷의 소유물이 될 수 있냐는 것이다.
“수컷은 정자를 제공하고, 암컷은 난자를 제공하니까 핵 DNA는 절반씩 투자를 하는 셈이죠. 하지만 핵을 제외한 세포질은 암컷만이 제공해요. 이렇듯 암컷과 수컷은 2세에 대한 투자 규모부터가 달라요.”
그에 따르면 수컷은 한번 사정할 때 천문학적 숫자의 정자를 쏟아낸다. 그리고 하루에도 여러 차례, 매일매일 사정이 가능하다. 주식에 비교하면 값싼 주식을 여러 종목 구입해 그중에서 운 좋게 몇개라도 성공하기를 바라는 ‘양의 전략’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암컷은 정기적으로 한개의 난자만을 생성시킨다. 따라서 확실한 황금주에 집중 투자하는 ‘질의 전략’을 사용한다는 것.
“주주총회를 할 때 소액주주보다는 대주주의 발언권이 당연히 더 큰 법이잖아요. 암수 사이에도 투자를 더 많이 한 쪽이 선택권을 행사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죠. 그런데 인간사회는 지금까지 남성이 경제권을 쥐고 있어 남성이 소유권을 행사하니 잘못된 거죠.”
또한 최교수는 잠자리를 누가 주도하느냐 하는 ‘성 결정권’도 원래는 암컷이 가지고 있는데, 인간의 경우 경제권 때문에 남성이 가지게 되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자연계의 거의 모든 생물에서 수컷들이 암컷들보다 훨씬 더 화려한 외모를 갖고 있고, 노래와 춤도 더 잘 하고 끊임없이 경쟁하며 사는 것은 성 결정권이 암컷에게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해야 한다’  주장하는 서울대 최재천 교수

최재천 교수는 남자일과 여자일을 구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최교수를 변화시킨 아내 채현경씨와 함께.


“수컷들이 암컷에게 선택받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대개 둘 중 하나예요. 첫째는 암컷들에게 필요한 자원을 독점하여 자신을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거죠. 북방코끼리바다표범 수컷들은 산란기가 되면 처절한 혈투를 벌여 최종 승자가 넓은 모래사장을 독점해요. 그러면 그곳에 새끼를 낳아야 하는 암컷들은 어쩔 수 없이 그의 부인들이 되지요. 인간에게 경제력이 중요한 결혼조건이 되는 것도 같은 이치죠. 하지만 여성들에게 경제권이 생기면 상황이 달라지겠죠.”
여성에게 경제력이 생겨 자립이 가능하고, 애를 낳고 싶으면 정자은행을 통해 정자를 살 수 있고, 국가에서 아이의 양육을 책임져준다면 굳이 한 남자에 종속돼 아웅다웅하며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독신여성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렇게 되면 결혼을 하려는 여성들에 비해 결혼하려는 남성들이 상대적으로 많아지고, 자연 남성들은 여성에게 선택받기 위해 공작새들처럼 화장을 하고, 몸을 가꾸겠죠. 그게 바로 수컷이 암컷에게 선택받기 위한 또 다른 방법이에요. 전 그런 점에서 꽃미남 열풍도 여성시대가 가까이왔다는 징후라고 생각해요.”

바람기는 암컷의 본능, 질투는 수컷의 속성
그는 또한 ‘바람기’가 수컷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암컷의 본능이기도 하다고 주장한다. 수컷들은 암컷과 짝짓기를 할 기회가 많으면 많을수록 번식 성공도가 높기 때문에 바람을 피우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은 많았지만 암컷도 바람기가 많다는 건 의외다.
“암컷도 바람을 피워야 할 이유가 있어요. 2세를 낳아야 한다는 본능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불임성 수컷에게 묶일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유전자를 가진 2세를 낳기 위해, 그리고 유전적으로 더 뛰어난 2세를 얻기 위해 바람을 피우는 거죠.”
최교수는 워싱턴대학 연구원들이 밝혀낸 재미있는 실험 결과를 들려주었다. 암컷들이 우두머리 수컷하고만 교미를 하는 것으로 알려진 새 집단의 수컷 우두머리를 거세했는데도 암컷들이 모두 알을 낳았다고 한다. 암컷들이 우두머리 수컷 몰래 부하 수컷들과도 교미를 했던 것이다. 또한 일부일처제를 고수하는 검은머리박새의 암컷들도 다른 수컷들과 은밀히 외도를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생물학자들은 오랫동안 새의 95%가 일부일처제를 유지한다고 믿어왔어요. 그런데 최근 유전자 감식법을 사용하여 한 둥지에서 자라는 새끼들의 유전자를 조사해보았더니 평균 30%, 심한 경우 70%에 이르는 새끼들이 그 둥지에 함께 사는 수컷의 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어요. 재미있는 건 오래 전 보스턴의 한 병원에서 실시한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는 거예요. 그해 병원에서 출생한 아이들의 약 30%가 법적인 아빠의 자식이 아닌 걸로 나타났거든요.”
더 나아가 그는 질투는 암컷의 본능이 아닌 수컷의 속성이라고 주장했다. 그 증거로 수컷들은 암컷이 확실하게 자기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2세를 낳게 하기 위해 암컷을 다른 수컷들로부터 보호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개발했다는 것. 예를 들어 쥐같은 설치류 동물은 점도가 특별히 높은 정액을 분비해 짝짓기가 끝난 후 암컷의 생식기를 틀어막는다고 한다. 중세 유럽 남성이 전쟁터로 가면서 아내에게 정조대를 채운 것도 이런 심리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암컷들도 나름대로 수컷의 눈을 피해 바람을 피우는 방법을 개발했어요. 그 중에서 가장 절묘한 방법은 역시 자신이 배란기에 있다는 사실을 노출하지 않는 거죠. 암컷의 배란기를 모르는 상황에서 수컷이 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전략은 한명이라도 확실하게 감시하며 자주 섹스를 갖는 방법뿐이고, 그래서 생겨난 게 일부일처제죠. 전 결혼은 원래 남자가 원해 생겨난 제도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흔히 원앙이 부부금실이 좋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신혼부부의 이불에 원앙을 수놓는다. 하지만 최교수에 따르면 원앙은 수컷이 바람을 잘 피우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결국 원앙은 금실 좋은 부부의 상징이 아니라 아내를 자기 옆에 붙잡아놓고 바람을 피우려는 한국 남자들의 속셈을 보여주는 상징이라는 것이다.
‘여성의 시대에 이상적인 부부 유형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질문에 그는 코뿔새와 갈매기를 예로 들었다. 코뿔새는 전통적인 우리네 부부관계처럼 암컷은 둥지에서 새끼를 기르는 일에 열중하고, 수컷이 가족을 먹여 살린다고 한다. 반면 갈매기는 맞벌이 부부처럼 암컷과 수컷이 똑같이 육아와 생계를 나누어 책임진다고.
“어느 쪽이 좋다 나쁘다고 따질 수는 없어요. 갈매기는 너무 똑같이 나누려고 하다 보니까 서로 양보를 안해서 많이 싸워요. 그래서 이혼율이 절반을 넘어요. 현실적으로 코뿔새가 효율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수컷이 밖에서 사고를 당하면 둥지에 남은 새끼와 암컷은 굶어죽고 말아요. 문제는 왜 꼭 암컷과 수컷의 역할이 고정되어 있어야 하냐는 거죠. 상황에 따라 수컷이 양육을 하고 암컷이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게 자연스러울 때 이상적인 부부라고 할 수 있겠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성이냐 여성이냐 하는 성에 의해 역할을 구분하지 않을 때 바람직한 부부관계가 형성될 수 있고, 그것을 사회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때 여성의 시대가 된다는 이야기다.
“제가 지금 집에서 애를 보고 있으면 사람들이 ‘저 남자는 서울대 교수인데 집에서 애도 본다’고 칭찬해요. 그런데 제가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 들어앉으면 당장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수군거릴 거예요. 그런 편견이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거죠.”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해야 한다’  주장하는 서울대 최재천 교수

세계적인 침팬지연구가인 제인 구달 박사와 함께한 최교수


그러면 그의 부부생활은 어떨까. 두 사람은 미국 유학중에 만나 81년에 결혼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학생들 중에서 결혼 적령기의 유일한 암컷인 아내가 20명이 넘는 수컷들 중에서 자신을 간택했다”고 한다. 화제가 부부생활로 이어지자 아내 채현경씨(울산대 음대 대학장)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우리의 결혼생활은 한마디로 투쟁의 역사였어요. 심지어 남편이 저에게 ‘체념의 미’를 아느냐고 한 적이 있어요. 제가 계속 남편에게 변화를 요구하니까 자기에 대해 포기해달라고 하는 거예요. 남편은 다른 한국 남자들에 비해 괜찮은 사람이지만 ‘아내는 남편에게 속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가부장적 사고를 깨고 마음으로 진정 ‘아내도 하나의 인격체’라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더라고요.”
최교수 역시 이 부분을 인정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모습이 싫어 결혼하면 그런 남편은 안되리라 생각했고, 결혼한 후에도 스스로 가부장적이 아니라고 믿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 역시 가부장적 사고에 빠져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군인이어서 그랬는지 가부장적 윤리관이 확고한 가정에서 자랐어요. 아내는 정반대로 지극히 개방적인 가정에서 컸고요. 연애시절에는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 야릇한 매력으로 다가왔지만 막상 한 가정을 꾸리니까 ‘다름’이 너무 크더라고요. 아내는 마치 저와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그래서 의식구조 자체가 다른, 어느 이름 모를 행성에서 온 외계인 같았어요. 그런 아내의 시각에 제가 차츰 가깝게 다가설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아내의 올곧은 신념과 저에 대한 끝없는 사랑 때문이었죠.”
그는 “오래 전부터 남자의 일과 여자의 일을 구분해선 안된다는 것을 머리로는 받아들였지만 가슴으로 이해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라고 고백했다.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해야 한다’  주장하는 서울대 최재천 교수

이미 여성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독일 녹색당 포스터


“텔레비전에서 흔히 ‘남편이 잘해주세요’ 하고 묻는 게 왜 잘못된 건지를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잘해준다는 것은 그게 원래 여자의 일인데 남자가 도와준다는 거잖아요. 그 자체가 집안일의 주인은 아내고 남편은 객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거죠. 저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내와 숱하게 토론(?)을 했죠(웃음).”
그래도 최교수는 우리네 보통 남편들과는 다른 ‘평등 남편’이었다. 미국에서 대학교수가 되자마자 그동안 학업을 중단한 채 아이를 키우던 아내의 등을 떠밀어 학교에 보내고 자신이 아이의 양육을 책임졌다. 그리고 96년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아내가 울산대학 교수로 부임해 지방에 내려가자 지금까지 4년째 파출부도 없이 혼자 집안살림을 하며 아이의 양육을 책임지고 있다.
“저 혼자 아이를 키운 건 아니에요. 아내도 몸이 서울에 없다 뿐이지 매일 신경을 쓰죠. 지금도 아이는 저보다 아내와 더 친한 걸요.”
그 말에 채학장도 한마디 거들었다.
“사람들이 ‘채학장님은 아이를 안 키우고 최교수님이 다 키우셨네요’ 그러는데 저는 항상 ‘저도 아이 키우는 일에 열심히 참여합니다’하고 말해요. 화가 날 때가 그런 때예요. 남자가 여자의 일을 조금만 하면 화제가 되는데 여자가 집안일과 사회 일을 다 잘해도 이슈가 안돼요. 사실 양쪽을 다 하기가 더 어려운 건 여자인데도 말이에요. 그저 ‘저 여자 정말 좋겠다. 여자가 학장인데다 남편이 교수고 애도 잘 본대’하고 말을 하잖아요.”
이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진정한 부부평등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수록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성동아 2003년 6월 4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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