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권말부록|클릭! 인터넷 세상

맹인안내견 돌보며 자원봉사 활동하는 박성원 주부

“인터넷이 저에게 꼭 맞는 자원봉사활동과 직업을 찾아줬어요”

■ 글·박윤희 ■ 사진·정경택 기자

2003. 05. 13

누군가와 ‘정’을 교류하고 자신의 ‘재능’을 나누고 싶을 때는 인터넷을 뒤지는 것도 한 방법이 된다. 결혼과 함께 출산을 하며 전업주부로 지내던 박성원 주부는 인터넷을 통해 자신에게 딱 맞는 자원봉사 활동을 찾아냈는가 하면 사이버 주부대학에선 실력 있는 일본어 강사, 톡톡 튀는 미술강사로 활동하며 자칫 사장될 뻔했던 자신의 재능을 펼치고 있다.

맹인안내견 돌보며 자원봉사 활동하는 박성원 주부

맹인안내견이 될 파랑이를 돌보는 박성원 주부와 아들 한진희 정희 형제


경기도 화성시에 사는 주부 박성원씨(34)의 집을 찾아갔을 때,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송아지만한 ‘파랑이’가 ‘키스’인지 ‘박치기’ 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열렬한 환영인사를 건네며 달려든다. 파랑이는 12개월 된 리트리버종의 예비 안내견.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전혀 낯가림을 하지 않고 친밀감을 표현하는 파랑이는 지난해 9월부터 박씨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
“원래 자원봉사에 관심이 많아요. 길에서 시각장애인을 봐도 그냥 못 지나치죠. 그런데 몇년 전 우연히 길에서 시각장애인의 눈 노릇을 하는 안내견을 보게 됐어요. 의젓하게 길 안내를 하는 그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해 보였죠. 저도 그런 안내견을 한 번 키워보고 싶더라고요.”
그 무렵 박씨는 인터넷 서핑을 하다 우연히 삼성안내견학교 홈페이지(mydog.samsung.com)를 발견하고 ‘바로 이거다!’ 싶어 무릎을 탁 쳤다.
“이 사이트를 보니까 퍼피워킹(Puppy Walking)이라고 생후 7주된 안내견 후보 강아지를 1년 정도 일반 가정에서 보살펴주는 자원봉사 활동이 소개돼 있더군요. 망설일 이유가 없었죠.”
맹인안내견은 본격적으로 시각장애인 길 안내를 하기 전 1년 동안 일반 가정에서 ‘사랑’과 ‘예절’을 훈련받으며 사람들과 친해지는 기간을 갖는다. 이렇게 안내견을 1년 동안 도맡아 길러주는 박씨 같은 자원봉사자를 퍼피워커(Puppy Walker)라고 하는데, 1년 동안 퍼피워커의 보살핌을 받은 안내견은 다시 삼성안내견학교(경기도 용인시)로 보내져 시각장애인의 안전한 보행을 돕는 맹인안내견으로 체계적인 훈련을 받게 된다. 현재 영국, 프랑스, 일본 등 30여개국에 약 2만 마리의 안내견이 활동하고 있고, 국내에는 50여 마리가 활동중이다.
“파랑이를 돌보는 일이 아기 키우는 것보다 더 어려워요. 워낙 덩치가 크니까 목욕도 저 혼자 못 시키고 주말마다 남편과 함께 시켜요. 그래도 파랑이가 안내견으로 잘 자라야 시각장애인에게 꼭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으니까 파랑이를 키우는 데 좀더 정성을 기울이게 됩니다.”
평소 박씨는 다른 퍼피워커들과 안내견 훈련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삼성안내견학교 웹사이트에 자주 접속한다. 인터넷 삼성안내견학교는 안내견, 구조견, 치료견, 우리들세상, 애견문화 등의 코너가 있는데 훈련된 개들의 다양한 활약상을 엿볼 수 있어 이채롭다. 이 가운데 ‘우리들세상’ 코너는 퍼피워커와 일반인들을 위해 운영된다. 퍼피워커 게시판에서는 퍼피워커들의 커뮤니티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고, 애견상담 게시판은 주로 일반인들이 애견의 건강, 질병, 훈련방법 등에 관한 궁금증을 물어보고 답을 얻어 가는 곳이다.
박씨가 주로 찾는 코너는 ‘사진 올리기’로 다른 퍼피워커들이 매일 자신이 돌보는 안내견의 모습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전시하는 곳이다. 다른 집에 분양된 안내견의 귀여운 모습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박씨의 빼놓을 수 없는 하루 일과가 됐다. 박씨는 또 ‘안내견 게시판’에 파랑이의 소식을 전하기도 하고 다른 집에 분양된 강아지들의 소식을 묻기도 한다.
‘파랑이는 ^*^ 넘! 건강, 발랄, 순진해서 탈이라니까요^&^ 저희 집 막내 정희 말도 잘 듣는 파랑이…. 아이들, 어른들 모두모두 좋아하는 순둥이에요. 다만, 파랑이 흉을 보자면 아직 배변이 능숙하지 못하다는 것인데, 저는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파랑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 저질러놓곤 얌전히 와서 애교를 떠니 야단도 못 치고…’(올린이 박성원)
박씨는 한진희(8), 정희(6) 두 아이와 함께 파랑이를 통틀어 ‘세 아들’이라고 칭할 만큼 파랑이한테 각별한 애정을 표현하는데, 아이들 역시 파랑이를 형제처럼 대한다.
“퍼피워커를 하니까 제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기보다는 오히려 저희 가족이 얻는 게 더 많은 것 같아요. 아이들이 가끔 저한테 혼나면 슬며시 파랑이에게 다가가 파랑이를 꼭 끌어안고 울적한 마음을 달래요. 기쁨, 슬픔 모든 감정을 파랑이와 함께 공유하니까 아이들 정서가 훨씬 안정되고요. 5월에 삼성안내견학교로 파랑이를 다시 돌려보내야 하는데 헤어질 생각을 하니까 벌써부터 마음이 아파요.”
파랑이를 동생처럼 아끼는 진희도 파랑이가 보통 강아지가 아니란 사실을 잘 안다.

맹인안내견 돌보며 자원봉사 활동하는 박성원 주부

아들 진희와 정희는 파랑이가 형제 같다고 말한다


“파랑이가 안내견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면 장애인을 도와 줄 수 있어요. 그래서 파랑이가 좋아요.”
한 가정의 자원봉사 활동으로 잘 훈련된 안내견이 탄생하면 그만큼 시각장애인이 새로운 눈을 얻게 되고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게 되는데 그러기 위해선 안내견에게 사랑을 듬뿍 주는 것뿐만 아니라 절도 있는 예절 훈련이 꼭 필요하다.
“용변을 잘 가릴 수 있도록 훈련하고요. 항상 청결하도록 먹이를 준 다음에는 이빨을 닦아줘야 해요. 매일 규칙적으로 산책도 하는데 동네 사람들이 파랑이를 보면 모두 반가워하죠.”
박씨는 인터넷이 맺어준 소중한 인연인 파랑이를 위해 이미 은퇴견 신청도 해두었다.
“퍼피워킹을 마친 맹인안내견이 보통 10년 정도 활동을 한 후에는 은퇴를 해요. 워낙 많이 걷게 되니까 근육이 심하게 망가져서 힘들어한대요. 앞으로 우리 파랑이가 맹인안내견 활동을 마친 뒤에도 꼭 다시 데려다가 파랑이의 노후를 잘 보살펴주고 싶어요.”
박씨는 인터넷을 통해 자신이 할 만한 자원봉사 활동 정보를 꾸준히 찾는 것 이외에도 여성 포털사이트 드림미즈(www.dreammiz. com)에서 사이버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사이버 주부대학에서 ‘동경이 한눈에 보이는 여행 일본어’ ‘엄마와 미술감상’을 가르치고 있어요. 제가 집에서 강의 내용을 녹음해서 인터넷 파일로 보내면 수강생들이 인터넷으로 내려받아 강의를 듣게 되죠.”
결혼 전 일본 유학을 5년 동안 다녀왔다는 박성원 주부. 결혼과 동시에 출산과 양육의 책임을 지게 되면서 사회활동은 감히 꿈도 못 꾸었지만, 이젠 인터넷이란 ‘창’이 있어 넓은 세상과 만나는 일도 두렵지 않게 됐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