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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없는 사람들을 위해‘사랑의 집짓기’운동 펴온 신형우 허명숙 부부

■ 기획·정지연 기자(alimi@donga.com) ■ 글·이서영 ■ 사진·박성배

입력 2003.01.14 15:27:00

평생 자신의 집이라곤 가져본 일 없는 가난한 이들에게 매년 집을 지어주는 신형우 허명숙 부부.
나무와 흙을 이용해 지은 이들의 ‘사랑의 집’은 벌써 6년째 가난한 이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고 있다.
뜻을 함께 하는 송죽원 가족들과 함께 ‘사랑의 집짓기’운동을 펴고 있는 이들 부부가 털어놓은 ‘사랑의 집짓기’에 나선 이유.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해‘사랑의 집짓기’운동 펴온 신형우 허명숙 부부

청바지 차림으로 망치를 들고 무주택 서민들의 집을 짓는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 그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지난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카터 전 대통령이 선정됐다는 소식에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을 법하다. 각박한 세상을 그래도 살 만하게 바꿔놓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고, 그런 마음들이 쌓여 세상의 평화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지미 카터가 아니더라도 지구촌 곳곳에는 그렇게 세상의 빛을 밝혀 가고 있는 이들이 많다.
신형우(42, 순천제일대학 토목공학과 교수), 허명숙(42, 순천 송죽평생문화원 원장) 부부와 송죽원 가족들 또한 그렇다. 신교수 부부는 98년부터 매년 제자들과 함께 집 없는 이들을 위해 집을 짓고 있다.
송죽원 사랑의 집짓기는 우연하게 시작됐다. 태풍이 남녘땅을 휩쓸어 그 피해가 적지 않았던 98년 여름. 신교수는 출근길에 TV를 통해 안타까운 사연을 접했다. 홀로 사는 노인이 태풍으로 집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신교수는 그 보도를 보자마자 전남 순천시 해룡면 선학리 가장마을에 있는 노인의 집으로 달려갔다.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달려가 직접 눈으로 본 노인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집은 폭삭 내려앉아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었고 겨우 난리를 피한 채 염소우리에서 살고 있는 노인은 너무도 가련해보였다. 무너져 내린 집을 보자 신교수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한다. 앞뒤 잴 것 없이 ‘일단 집을 짓자’고 생각했다.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 몇몇을 불러 집을 짓기 시작했다.
“제가 집 없는 사람들의 아픔을 겪어봤기 때문에 그 고통을 잘 알아요. 우리집이 그랬거든요. 군대를 막 제대하고 집에 들어섰는데 집의 뒤안이랑 담장이 무너져 폐가가 돼 있더라고요.”
신교수의 본가는 순천시 해룡면 평화리에서 남부러울 것 없는 집안이었다. 살림도 넉넉했고 시골에서는 드물게 삼형제 모두를 도시로 유학 보내 마을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신교수 역시 ‘도련님’ 소리를 들으며 유복하게 자랐다. 하지만 큰형이 젊은 나이에 시름시름 앓으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신교수가 군대생활을 하는 동안 형과 아버지가 연이어 돌아가시면서 형편이 더욱 어려워져 제대할 무렵에는 어린 조카들과 노모만 남아 그저 끼니만 때울 지경이었다.
암담한 현실 속에서 신교수는 제일 먼저 집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려울수록 생활의 근거가 든든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대학에서 수자원공학을 전공한 신교수는 집을 지어본 경험이 없었다. 하지만 동네 어르신들을 찾아 다니고 토목공학 책을 뒤적이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집을 고치고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신교수는 차츰 생활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염소우리에서 사는 어르신을 보는 순간 무너져가는 집에서 힘겹게 저를 기다리시던 노모가 생각이 났지요. 저 어르신의 모습이 바로 우리 부모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발을 뗄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게 시작한 사랑의 집짓기는 그후로도 매년 이어졌다. 물론 30번 이상의 공정을 거쳐야 하고 밤낮으로 지어도 한달 이상이 걸리는 집짓기가 신교수 부부만의 힘으로 가능할 리는 없다. 제자들의 참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송죽헌’으로 인연을 맺은 제자들과 신교수의 사이는 참 각별하다. 83년 본가를 수리한 후 신교수는 뒷산에 자신의 공부방을 지었다. 소나무와 황토흙으로 지은 그 집을 스스로 송죽헌(松竹軒)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신교수는 89년 순천제일대 교수로 임용됐다.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해‘사랑의 집짓기’운동 펴온 신형우 허명숙 부부

신씨 부부와 제자들로부터 시작된 ‘사랑의 집짓기’는 지역사회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제자들의 처지가 마음에 걸렸다. 자신이 어렵게 견뎠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망설임 없이 송죽헌을 내어주었다. 그곳에서 공부하고 신교수의 집에서 식사를 해결하도록 배려했다. 그렇게 송죽헌의 제자가 된 학생들은 신교수가 하는 일에 든든한 일꾼이 됐다. 송죽헌에서 생활하면서 장작을 패고 산 일도 해본 제자들이라 집 짓는 현장에서도 야무지게 일꾼 몫을 해냈다.
마침내 지붕을 올리던 날, 지붕 위에 사제가 빙 둘러앉았다. 그곳에서 이른바 ‘지붕결의’를 했다. 송죽헌을 떠나더라도 모두들 사랑의 집을 짓는 일만은 계속 이어가자는 다짐이었다. 송죽헌 사제가 열세 사람이니 한사람이 한채씩만 지어도 13채가 될 것이고 그것이 세상으로 퍼져가면 집이 없어 서러운 사람들이 줄어들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는 물론 신교수의 아내 허명숙씨도 있었다. 간호사였던 허씨는 어려운 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다. 신교수의 집안이 어려웠을 때 허씨가 따뜻하게 가족들을 돌봤고 그것이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을 키운 계기가 됐을 정도. 두 사람은 결혼하면서 나이가 들면 이웃을 위해 좋은 일을 하며 살자고 약속까지 했던 터라 어려운 이웃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저 신이 났다.
제자들과 스승 부부가 지붕에서 맺은 약속은 매년 여름, 어김없이 사랑의 집을 탄생시켰다. 남편은 손발이 썩어 들어가는 병을 앓고 아내는 한쪽 팔을 쓰지 못하는 장애인 부부, 50대의 정신지체 장애인 부부,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등이 집의 주인들이었다.
하지만 집을 짓기 위해서는 만만치 않은 시간과 돈이 필요했다. 서민들에게 집을 마련해주고 입주자들이 15∼18년간 11만∼13만원씩 매달 상환하는 방식으로 다음 건축의 일부재원을 확보하는 해비타트 운동과 달리 송죽원 사랑의 집짓기는 입주자들이 부담해야 할 부분이 없다. 아니, 부담할 처지가 못된다고 말하는 것이 나으리라. 그렇다 보니 사비를 털어 집을 지어야 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신교수 부부에게도 한계가 왔다. 좀더 오랫동안 많은 이들에게 집을 지어주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재정과 근거가 필요했다. 허씨는 2000년 병원을 접고 ‘송죽평생문화원’의 문을 여는 결단을 내렸다. 송죽평생문화원의 개원으로 허원장과 송교수는 할 일이 한 보따리 더 늘었다. 하지만 지역사회로 사랑의 집짓기에 대한 관심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돼 두 사람은 일을 잘 벌였다 싶다. 좋은 뜻이 알려지면서 후원자들이 하나둘 생기고 건축관련 기업들의 참여와 행정지원도 활발해진 것이 그 증거. 올해에는 7개 업체에서 기와, 시멘트, 벽돌 등의 자재와 보일러 시공기술을 지원했다. 인터넷 사이트 다음에 개설한 ‘송죽원 사랑의 집짓기 카페(cafe.daum.net/sjwlovehouse)’ 회원들도 6개월여 만에 1백70여명으로 늘어났다. 카페 회원들은 올해 집짓기에 십시일반으로 정성을 보태 송죽원 가족들을 감동시켰다.
올해 송죽원 가족들은 두 손자와 함께 비가 새는 집에서 어렵게 생활을 꾸리는 황외심 할머니(전남 순천시)의 집을 지었다. 찻집을 열어 마련한 수익금과 카페회원들의 십시일반, 각계의 성금을 모아 자재를 구입했다. 전국각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신교수의 제자 13명이 여름휴가를 내고 다른 송죽원 가족들도 짬을 내 일손을 보탰다. 평생 처음으로 자기 소유의 집을 갖게 된 황외심 할머니는 뜨뜻하고 편안한 황토방까지 있는 네칸 기와집이 자신의 집이란 것이 실감나지 않는다는 듯 집 기둥을 만지고 또 만졌다. “돈이 없을수록 건강해야한다고 생각하기에 몸에 좋은 한옥을 고집한다”고 쑥스럽게 웃는 송교수. 이런 이가 있어 세상은 그래도 살 만 한 것 아니겠는가.(송죽원 사랑의 집짓기 운동은 뜻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문의 063-724-9941)

여성동아 2003년 1월 4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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