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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스타라이프 │ 의미있는 공연

‘망국적인 지역감정’ 없애기 위한 공연 펼치는 ‘바위섬’ 가수 김원중

■ 글·임소영 ■ 사진·박성배

입력 2002.10.07 12:21:00

‘망국적 지역감정’을 없애기 위한 길거리 공연 ‘즐거운 장례식-잘가라, 지역감정’이 전국을 순회하고 있다. 이 공연은 ‘바위섬’ ‘직녀에게’로 알려진 통일가수 김원중씨가 기획, 공연지킴이로 나섰고 1백50여명의 가수와 문인들이 번갈아가며 동참하고 있다.
8월26일 제주도를 출발한 공연팀은 전라도·경상도·강원도·경기도 및 서울을 거쳐, 오는 10월13일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화개장터’에서 막을 내릴 예정이다.
가는 곳마다 시민들과 함께 ‘가라! 지역감정, 오라! 동서화합’을 외치는 화제의 공연 현장에 다녀왔다.
‘망국적인 지역감정’ 없애기 위한 공연 펼치는 ‘바위섬’ 가수 김원중
선거 때마다 악령처럼 되살아나는 지역감정. 그 ‘망국적 지역감정’을 없애기 위해 각 지역의 문인과 가수들 1백50여명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8월26일부터 전국 49개 도시를 돌며 시민들과 함께 지역감정 영구추방을 위한 ‘즐거운 장례식’ 공연을 펼치고 있다.
통일을 상징하는 노래 ‘직녀에게’로 유명한 가수 김원중씨(47)가 기획하고, 국민통합과 정치개혁을 위한 시민의 모임인 ‘국민의 힘’이 주최한 이번 공연은 제주공연을 시작으로 전라도·경상도·강원도·경기도 및 서울을 거쳐, 10월13일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화개장터’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특히 마지막 공연지인 화개에서는 8도의 흙을 합치는 합토식과 기념식수를 할 예정이다. 공연 지역을 49개 도시로 정한 것은 망국적 지역주의와 지역감정에 사망선고를 내리고 그에 대한 49제를 지내겠다는 의미. 이처럼 시와 노래로 호소하는 ‘잘 가라! 지역감정’ 공연은 지역감정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시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횟수를 더해 갈수록 활기를 띠었고, 9월6일 열린 부산공연에서도 그 열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2백여 시민과 함께 펼친 길거리 공연
9월6일 부산대학교 정문 앞에서 열린 공연은 2백여 명의 시민들과 함께 두 시간 동안 진행됐다. 최영철 시인의 ‘잘 가라 지역감정’이라는 시 낭송을 시작으로 정신대 할머니 돕기 공연을 펼치고 있는 홍순관씨, 통일노래패 ‘희망새’, 동요를 사랑하는 어른들 모임 ‘철부지’의 노래공연이 숨가쁘게 이어졌다. 또한 부산지역 어린이 동요단은 깜찍한 율동과 노래를 선보여 관객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고, 광주에서 초대된 로커 신포도씨(29)는 열정적인 노래솜씨로 인기를 모았다. 민족음악협의회 소속 박영은씨(35)의 팬플루트 연주, 노혜경·이인숙 씨의 자작시 낭송으로 길거리 공연은 무르익었고, 부산대 근처를 지나가던 시민들도 발길을 멈추고 공연을 지켜보았다.
이날 공연의 대미는 ‘공연 지킴이’ 김원중씨가 장식했다. 김씨는 ‘바위섬’ ‘직녀에게’ 등으로 잘 알려진 광주 출신 가수로 젊은이들 사이에선 ‘통일노래꾼’으로 통한다. 그는 “문병란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직녀에게’가 10년 전 남한 인기차트를 석권한 뒤 현재는 북한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며 ‘한반도 전체를 석권한 가수(?)’로 자신을 소개했다. 또한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꿈꾸는 자만이 세상을 가질 수 있어’ 등을 부를 때는 관객들이 미리 준비한 촛불을 켜고 함께 노래를 따라해 감동을 자아냈다.
지역감정을 타파하기 위한 15번째 부산공연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이날 무대에 올랐던 박영은씨는 “‘지역감정 철폐’라는 의미 있는 무대에 서게 돼서 영광”이라며 이번 공연이 중단 없이 화개까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광주에서 온 신포도씨 역시 “김원중씨와 개인적 친분 때문에 오게 됐지만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부산에서도 활동하고 싶다”고 피력했다.
가족과 함께 공연을 관람한 최병철(43)·문일혜(40) 부부는 “자라는 아이들만큼은 지역감정에서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며 “이런 공연이 자주 열려 백마디 말보다 스스로 느끼고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현장에서 자원봉사를 맡은 회사원 임희경씨(25)도 “인터넷에서 공연 소식을 보고 지역감정 없애는 데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고 싶어 자원봉사를 신청했다”며 “역사적 공연에 함께할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친구들과 부산대 앞을 지나다 공연을 보게 됐다는 허남호군(17·지산고 2년)은 “이번 공연으로 지역감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면서 “앞으로 투표권이 주어지면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정치인은 절대로 안 찍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망국적인 지역감정’ 없애기 위한 공연 펼치는 ‘바위섬’ 가수 김원중

‘잘가라, 지역감정’ 공연 모습

“이렇게 호응이 좋을 줄 미처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영호남 할 것 없이 시민들은 한결같이 지역감정을 혐오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공연이었습니다.”
부산공연을 성황리에 끝마친 김원중씨는 15일 동안 계속된 강행군에도 전혀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공연을 거듭할수록 더욱 힘이 생긴다”며 “49일이 아니라 내친김에 12월 대선까지 갈 걸 그랬다”고 여유를 부렸다.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지역감정이 괴물처럼 느껴졌어요. 평소에는 영호남 구분 없이 지내다가도 선거만 닥치면 ‘우리가 남이가!’ 해가며 편을 가르는 정치인들의 농간에 더 이상 놀아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죠.”
김씨가 이번 길거리 공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이유다. 전남 담양출신으로 전남대학교 농업경제학과를 나온 김씨는 85년 서정적인 멜로디에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은 ‘바위섬’이란 노래로 데뷔했다. 그리고 87년, ‘직녀에게’를 발표하며 통일을 노래하는 가수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후에도 김씨는 5·18 추모 거리공연, 전교조 탄압저지를 위한 공연,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공연, 범민족 통일노래 공연, 북한 돕기 모금공연 등 사회성이 짙은 무대에 주로 올랐다.
“노래에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내 자신이 변했듯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한때 자신도 “노래 좀 한답시고 폼만 잡고 허송세월한 적이 있었다”며 이런 불성실한 태도를 노래를 통해 바꿨다고 고백했다.
“노래를 하면 할수록, 노래에 대한 애정이 깊어질수록 ‘나를 위한 노래’보다 ‘우리를 위한 노래’가 부르고 싶더군요. 노래를 직업으로 하는 전업가수로서 책임감을 느낀 것이죠.”
그때부터 “노래가 전달하는 메시지에 신경을 쓰게 되고 공연에 초대받을 때도 가장 먼저 공연취지를 따져보는 습관이 생겼다”는 김씨는 “아무래도 누군가의 위로와 용기가 필요한 사람은 사회의 강자보다 약자이지 않겠냐”며 자신의 음악세계를 설명했다. 또한 자꾸 그런 무대에 오르다보니 생활습관이나 태도도 자연스럽게 변하더라는 것. 그는 자신의 노래가,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세상을 헤쳐나가는 무기가 되고 힘이 되기를 희망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공연의 산파 역할을 자청했다고 말했다.

“월드컵이 열리던 지난 6월 한달 동안 우리에겐 지역감정이 없었습니다. 동과 서도 없었고 ‘Again 1966’을 외칠 정도로 남과 북이 따로 없었죠. 그런데 정치판은 여전히 편가름과 분단이 주류였어요. 시민들의 의식수준을 정치인들이 따라오지 못한 것이죠. 이젠 그런 정치인들을 용서하지 말아야 합니다.”
월드컵 기간 중 열린 지방선거와 8·8 보선에서 나타난 지역구도에 크게 실망한 그는 21세기를 맞아 처음으로 치르는 대통령 선거만큼은 ‘지역감정 없이 치르자’는 캠페인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리고 평소 친분이 있는 문인과 동료 가수들에게 이같은 뜻을 전달했다. 안치환, 장사익, 유익종, 권진원, 신형원 등 50여명의 가수들과 김용택, 정호승, 도종환, 안도현 등 80여명의 문인들이 흔쾌히 합류의사를 밝혔다. 이들 모두 개런티 없이 번갈아 가며 출연하기로 뜻을 모았다. 여기에 탤런트 권해효, 명창 윤진철, 춤꾼 정은경 등도 힘을 보태주었다.
“지인들이 마련해준 쌈짓돈 2백만원 가지고 제주도로 출발했습니다.”
보통 길거리 공연 한번 하는데 드는 경비는 적게 잡아도 수천만원. 대형 장비구입과 공연 세트장 설치, 거기에 출연료까지 포함하면 액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치솟는다. 하지만 ‘잘 가라 지역감정’ 공연 팀이 마련한 금액은 2백만원이 전부였다. 그것만으로 전국 49개 지역을 순회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아무리 출연진들이 무료 출연을 약속했어도 2백만원은 최소한 숙식비조차 안되는 액수였다.
“무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죠. 우리 스태프들 힘이 아닌 국민들의 힘으로 전국을 순회하고 싶었거든요.”
지역감정이 사라지기를 원하는 국민이라면 당연히 이번 공연을 지역에서 지역으로 이동시켜줄 것이라고 확신했다는 김씨는 8월26일, 연출 기획을 맡은 김관수씨(38)와 가설무대로 사용할 5톤 트럭의 운전기사, 음향 엔지니어, 발전기사 등 총 7명의 소수 정예부대를 꾸려 제주도로 떠났다. 첫 공연이라 사전 홍보도 부족했고 태풍영향으로 기상상황도 안 좋았다. 막상 공연을 앞두니 마음의 부담도 컸다. 하지만 이 모든 걱정이 기우였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걱정했던 마음이 부끄러울 정도로 시민들 반응이 좋았습니다. 공연 내내 이들과 함께 노래하면서 ‘지역감정 죽이기’ 에 앞장서기로 모두들 의기투합했습니다.”
그들은 김씨의 예상대로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공연팀이 다음 공연 장소인 목포로 갈 수 있는 여비를 마련해주었다. 그 여비엔 ‘잘 가라, 지역감정’ 공연을 멈추지 말고 계속 하라는 절실한 소망이 담겨 있었다. 그 후 진행된 목포, 순천, 여수 그리고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이동한 사천, 통영, 진해 등에서 만난 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지역감정 철폐엔 전라도 사람이나 경상도 사람이나 이견이 없었다. 그런 마음들이 하나로 엮어졌기에 공연은 멈추지 않고 계속될 수 있었다.

김씨는 체육관이나 문화회관 등 특정장소에서 공연을 할 때 그곳으로 공연을 보러오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의식화된 시민’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정치인들이 ‘지역감정’으로 허튼 수작을 못 부리게 하려면 의식화된 사람만 만날 것이 아니라 정치에 무관심하고 평소 이런 공연을 접하지 못한 시민들과 함께 어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말 무심하게 지나치는 평범한 시민들을 만나고 싶어서 길거리 공연을 고집했습니다. 공연을 보고 어떤 분은 우리 스태프들에게 ‘고생한다’며 공짜로 식사를 대접해주기도 하고 공연 중간에 편지를 써서 전달해준 관객도 있었어요. 또 어떤 분은 공연 내용에 감동받았다고 제 손을 붙잡고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길거리 공연은 관객들의 힘으로 전국을 이동하면서 점점 유명세를 탔다. 이 공연이 언론과 방송매체에 소개되면서 ‘우리가 사는 곳에도 와달라’는 요청도 여기저기서 들어왔다. 공연이 거듭될수록 공연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숫자가 많아졌고 지역감정 추방을 약속하는 서명자도 늘어났다. ‘국민의 힘’ 홈페이지(www.pe oplespower.org)에서 진행하는 인터넷 서명도 꾸준하게 늘고 있다.
“일단 우리 문화예술인들이 씨를 뿌려놓았으니까 앞으로 그것을 관리하고 조직화하는 것은 시민단체가 나섰으면 좋겠어요.”
김씨는 공연할 때마다 펼치고 있는 ‘지역감정 영구추방을 기원하는 10만 국민서명운동’을 바탕으로 시민단체가 나서서 1백만, 1천만 서명운동까지 확대시켜 나가기를 바랐다. 현재 이 공연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힌 단체는 각 지역 YMCA를 비롯해 전교조, 환경연합, 민족작가회의, 경실련, 참교육 학부모회, 공무원 노조 등 50여개에 이른다. 그는 어떤 형태로 ‘지역감정 추방운동’이 조직화될 것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전국에 불길처럼 번지고 있는 ‘지역감정 추방을 위한 즐거운 장례식’ 분위기가 12월 대선까지 이어지기를 희망했다. 그래서 “21세기에 처음 치르는 대통령선거에서만큼은 지역감정이라는 악령이 부활하지 않기를 기대한다”며 다음 목적지인 울산으로 향했다.

여성동아 2002년 10월 4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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