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렉산더맥퀸은 로맨틱 고딕 무드의 선두 주자답게, 나풀거리는 헴라인의 붉은 레이스 드레스에 레이스 스타킹과 가죽 부츠를 더해 고딕 소설에서 막 걸어 나온 듯한 강렬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발렌티노는 동화적인 판타지를 폭발시켰다. 빈티지풍 레이스 드레스에 헤드 스카프와 주얼 장식으로 관능과 낭만이 뒤섞인 레이어드의 미학을 보여줬다. 또 시몬로샤는 섬세한 레이스 슬립 드레스에 두꺼운 퍼 머플러를 둘러 질감의 대비를 강조하며 특유의 로맨티시즘을 완성했다. 소녀다움과 반항심이 공존하는 브랜드 미학이 고스란히 드러난 장면이다. 한편 루이비통은 레이스와 러플을 겹겹이 쌓아 올린 풍성한 빈티지 드레스를 선보이며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드라마틱한 신을 연출했다. 레이스가 여름 소재라는 통념을 과감히 깬 순간이었다.

새로운 클래식으로 진화
레이스의 부흥은 단순한 복고에 머물지 않는다. 현대적 테일러링과 결합해 완전히 새로운 클래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랄프로렌은 레이스 소재의 푸시 보 블라우스를 컬렉션 전면에 내세워 네오 부르주아 룩을 완성했고, 생로랑은 어깨를 강조한 레이스 보디슈트와 미디스커트 셋업으로 고전적인 우아함과 남성적인 힘을 동시에 드러냈다. 지방시는 아예 빅토리아 여왕의 웨딩드레스를 재해석한 순백의 풍성한 벨라인 레이스 드레스를 선보였다. 왕실 예복을 연상시키는 압도적인 우아함에 마이크로미니 기장으로 잘라낸 파격이 더해져 전통과 현대를 자유롭게 조화시켰다는 평이다.이번 시즌 레이스가 유독 인상적인 이유는 여성성과 남성성이 공존하는 강인한 여성상을 완벽히 구현했다는 점에 있다. 가브리엘라허스트는 도톰하게 짠 블랙 레이스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한 벌로 연출해 특유의 관능을 살리면서 균형 잡힌 무게감을 더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샤넬 역시 마찬가지. 퍼와 레이스 소재를 믹스한 장인정신 가득한 아우터 피스들로 레이스 소재의 한계를 넘어섰다. 발렌시아가의 접근법은 더욱 도발적이다. 얇은 블랙 레이스 타이츠 위에 볼륨감 있는 드레스나 오버사이즈 아우터를 걸치고 미래적인 선글라스를 착용해 레이스가 그저 ‘예쁘기만 한 소재’라는 편견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부드럽고 투명한 레이스와 거친 아우터의 대비 속에서 피어나는 긴장감이야말로 2025년식 레이스 스타일링의 핵심 미학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시즌 레이스는 가죽, 모피, 울 같은 묵직한 소재들과 어깨를 나란히 견준다. 부드러움 속에 깃든 강인함은 오늘날 여성들이 지향하는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 젠더 경계가 허물어진 지금, 레이스는 여성복을 넘어 남성복까지 스며들며 자기표현의 도구로 수용되고 있다. 한때 왕후와 귀부인들의 전유물이었던 레이스는 이제 밀레니얼과 Z세대의 갑옷이 됐다. 계절과 성별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들며, 우아함과 반항 그리고 자유의 언어로 새롭게 거듭나는 중이다.
#레이스패션 #겨울레이스 #여성동아
기획 강현숙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가브리엘라허스트 지방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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