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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추락하던 뜨개 사업을 MZ 놀이 문화로 탈바꿈” 뜨개 전문 인플루언서 ‘김대리’

정세영 기자

2024. 04. 02

하락세를 이어가던 어머니의 뜨개 사업을 몇 십억 원대로 끌어올린 MZ 세대 CEO가 있다. ‘바늘이야기’ 송영예 대표의 딸 인플루언서 ‘김대리’다. 김 대표에게 가업을 물려 받아 제2의 전성기를 일군 비결을 들었다.

뜨개 전문 인플루언서 ‘김대리’ 김보겸 대표

뜨개 전문 인플루언서 ‘김대리’ 김보겸 대표

책 ‘부의 대물림’의 저자 제임스 휴즈는 “1대가 재산을 형성하고, 2대는 그걸 유지만 하다 3대가 탕진한다”고 했다. 1대가 성공해 일군 재산이 3대까지 이어지긴 쉽지 않다는 의미다. 최근 국내 대기업 손주들의 갑질, 마약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것만 봐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예외는 분명 존재한다. 남다른 감각과 책임감으로 가업을 물려받아 제2의 전성기를 일군 젊은 CEO가 그 주인공.



뜨개질 회사 바늘이야기를 물려받은 ‘김대리’도 그중 하나다. 바늘이야기는 송영예 대표가 1998년 창업한 뜨개질 키트 전문 쇼핑몰이다. 태교로 뜨개질을 시작한 송 대표는 주부 동호회에서 손뜨개 강사로 활약하며 공방을 운영했다. 솜씨가 좋은 그의 옷은 입소문이 났고, 작은 공방이었던 바늘이야기는 연매출 91억 원을 기록한 국내 최대 규모의 뜨개 전문 기업이 됐다.

오프라인에 사활을 걸었던 바늘이야기가 SNS에 집중하기 시작한 건 약 7년 전이다. 유통, 홍보, 판매 등이 온라인으로 이뤄지며 SNS 중요성을 체감했기 때문. 핫하다는 브랜드는 이미 SNS를 통한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당시 바늘이야기의 직원은 40~50대가 대부분이었다. 젊은 감각이 필요했던 송 대표는 취업 준비 중인 둘째 딸 김대리에게 바늘이야기 SNS 관리를 제안했다. 정식 직원이 아닌,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딱 1년만 부탁한 것. 김대리는 취업 경력에 도움이 될 것 같아 흔쾌히 허락하며 바늘이야기에 첫발을 내디뎠다.

“제가 알던 바늘이야기는 뜨개질 업계 1위였는데 순위가 많이 밀려나 있더라고요.” 당시 어머니의 인생이 담긴 회사가 침체돼가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던 그는 물심양면으로 재기를 도왔다. 가장 문제였던 유튜브, 디자인 등을 과감하게 바꾸고 SNS 소통에 집중했다. 콘텐츠를 올릴수록 20~30대 고객 유입이 눈에 띄게 늘고, 주춤하던 매출도 껑충 뛰었다. 김대리의 톡톡 튀는 마케팅 전략이 통한 것이다.



대기업에 취직해 목에는 사원증, 한 손에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들고 출근하는 것이 꿈이었던 그가 바늘이야기의 정식 직원이 된 지 7년째다. 시간이 지날수록 뜨개가 더욱 재미있다는 김대리에게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지 않냐”고 묻자 “이제는 대기업에 가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바늘이야기(연희점)는 손뜨개에 필요한 모든 재료를 직접 보고 구매할 수 있는 뜨개 복합 문화 공간이다.

바늘이야기(연희점)는 손뜨개에 필요한 모든 재료를 직접 보고 구매할 수 있는 뜨개 복합 문화 공간이다.

바늘이야기에서 김대리 님과 어머님이 하는 일이 명확히 구분돼 있나요.
어머니는 파주점에서 물류 관리를 하시고, 저는 연희점에서 제품 기획과 디자인, 마케팅 업무를 하고 있어요. 사실 처음에 뜨개질 관련 동영상만 제작했을 때는 어머니와 갈등이 많았어요. 당시에는 어머니께서 제품 출시와 디자인에도 관여하셨거든요. 지금은 서로의 일이 명확히 구분돼 있어서 잘 터치하지 않는 것 같아요. 오히려 ‘내가 너무 일을 안 도와드리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어머니는 주말에도 쉬지 않고 파주에 출근하시는데, 저는 토·일요일은 무조건 쉬어야 하는 MZ 직원이거든요. 어머니도 “젊을 땐 놀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제가 주말에 휴업하는 걸 존중해주세요. 서로 일하는 스타일을 인정해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수년간 바늘이야기를 경영해온 어머님의 노하우와 감은 무시 못 할 것 같아요. 어떤 점이 가장 존경스럽나요.
빠른 결단력과 실행 속도요. 잘 모르는 분야라도 여기저기 묻고 공부해서 어떻게든 성공시키는 능력이 존경스러워요. 어머니는 저희 가족 모두가 혀를 내두를 만큼 결심하면 바로 밀어붙이는 성격이에요. 바늘이야기가 파주에 자리했을 때 어머니는 꼭 서울로 다시 나가야 한다고 하시며 2019년 겨울 연희동 부지를 매입하셨어요. 모든 직원과 가족의 만류에도 강행하셨죠. 공사 중에 코로나19가 터져서 수입 자재 수급이 어려워지고, 인력 충원이 안 돼서 완공 일정이 계속 미뤄졌었어요. 자금이 예상보다 3배나 더 들었지만 어머니는 매일 현장을 방문하시며 어떻게든 공사를 이어나가셨죠. 그렇게 2021년 3월에 연희점을 오픈했고, 바늘이야기는 지금 제2의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어머니는 저에게 “사업은 머물러 있으면 도태된다”고 말씀하시며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라고 하세요.

처음 바늘이야기에 입사했을 때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었나요.
디자인이요. 뜨개는 습득한 현란한 기술을 작품에 적용할 수밖에 없어요. 디자이너에게는 실력을 뽐낼 수 있는 기회고, 뜨는 사람에게는 다양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거든요. 하지만 뜨개 테크닉이 가미될수록 디자인은 촌스러워져요. 고등학생 때 용돈을 벌려고 바늘이야기 모델 일을 했는데, 사진을 찍다가 옷이 너무 촌스러워서 울기도 했었어요. 돈을 벌어야 하니 억지로 웃으며 사진을 찍었죠. 바늘이야기에서 정식으로 일한 때가 24세, 고등학교 졸업 후 5년이 지난 시점이었는데도 디자인은 여전히 촌스러웠어요. 또래 친구들이 사고 싶을 만한 디자인은 하나도 없었죠. 게다가 뜨개법을 담은 도안은 너무 간단했고요. 뜨개 초보자인 젊은 소비자와 멀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또 SNS 홍보 능력은 거의 ‘제로’였어요. 온라인 쇼핑몰에서 캡처한 사진을 올리고 해시태그도 엉망이었거든요.

‘젊은 층 공략’이 마케팅 전략이었네요.
멀어진 젊은 층을 타깃으로 무언가를 만들면 20~30대 고객이 늘며 매출이 상승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SNS 관리는 당시 0에 가까운 상태여서 잘하고 있는 기업들만 쫓아가도 승산이 있다고 봤거든요. 처음에는 당시 제 또래였던 20대부터 공략했어요. ‘내 친구들도 사고 싶은 제품을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임했고요.

당시 젊은 층은 어떤 제품을 선호했나요.
무늬 없고 깔끔한 제품이요. 당시 뜨개에는 그런 스타일이 거의 없었어요. 미니멀리즘이 트렌드였는데, 뜨개 디자인은 맥시멀리즘에 가까웠죠. 한마디로 시대를 역행한 거예요. 그래서 기본에 충실한 심플한 디자인은 무조건 뜬다고 생각했어요. 또 당시 해외에 젊은 뜨개 작가들이 늘어나는 추세였어요. 그 작가들 역시 심플한 디자인에 주력했죠. 그들의 콘텐츠를 보고 연구하면서 우리나라 젊은 층이 좋아할 만한 요소들을 접목했습니다. 오버사이즈 니트를 최대한 심플한 디자인으로 풀어내거나, 톤앤톤 컬러 배합을 활용하는 식으로요. 당시 직원들이 “뭐라도 한 줄 더 넣어라” “너무 심심하다” “이런 게 팔리겠냐”고 지적하셨어요. 이런 질타들을 꿋꿋이 이겨내고 오직 기본에 충실한 제품들로 밀고 나갔죠.

심플한 디자인, 유튜브 소통으로 MZ 뜨개 문화 일으켜

김대리는 유튜브, 책 출간, 원데이 클래스 등 다양한 활동으로 뜨개 문화 부흥에 앞장서고 있다.

김대리는 유튜브, 책 출간, 원데이 클래스 등 다양한 활동으로 뜨개 문화 부흥에 앞장서고 있다.

뜨개는 실로 직접 떠서 제품을 만드는 작업이에요.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만큼 젊은 층에게 어필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엄마한테 요리 방법을 물어보면 “소금 약간, 국간장 적당히, 휘리릭 볶아” 이렇게 감으로 설명해줄 때가 많잖아요. 뜨개도 마찬가지예요. 이미 해본 분들은 대충 말해도 알아듣지만, 뜨개 초보자들은 한 땀도 뜨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최대한 디테일한 튜토리얼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직접 동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업로드했어요. 당시 저도 뜨개 초보였기 때문에 입문자들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었거든요. 가끔 영상에서 “지금 이 부분 실수하셨죠? 원래 다 그래요~” 할 때 구독자분들이 자기 마음을 읽는 것 같아서 소름이 돋는다고 하시더라고요.

초보자 입장에 100% 동화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네요.
맞아요. 상세한 튜토리얼이 초보자에게 사랑받으면서 젊은 층이 빠르게 유입됐죠. 그들이 떠나지 않도록 눈높이에 맞춘 콘텐츠를 다양하게 제공하니 충성 고객이 되더라고요. 구독자들이 SNS 등에 바늘이야기, 김대리를 언급해주신 덕에 입소문도 났고요. 또 ‘젊은 아이가 뜨개질을 하네?’라는 호기심에 유튜브를 시청해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유튜브의 효과가 실제 판매로도 이어지나요.
유튜브에 공개 동영상을 올리면 직원들이 “영상만 보고 실은 다른 데서 사면 어떡하냐”고 걱정하세요. 하지만 영상에 나오는 똑같은 걸 구매하고, 눈에 들어온 걸 선택하는 것이 사람 심리인 것 같아요. 저희가 선택한 실과 뜨는 방법을 일종의 ‘정답’이라고 여기는 분이 많거든요. 유튜브 공개 영상에 소개된 실들은 다른 실들에 비해 약 10배 정도 많이 판매돼요. 판매량을 보면 유튜브에 올린 상품이 압도적이고요. 유튜브 하기 전과 비교하면 연 매출이 7배 정도 늘었어요.

유튜브를 운영한 김대리 님은 인플루언서가 됐어요. 마케팅 전략이었나요.
맞아요. 유튜브 시작하기 전에 조회수 높은 영상들을 분석해보니 섬네일에 얼굴이 나와 있고 애칭도 있더라고요. ‘회사 매출에 도움이 된다면 내 얼굴쯤 팔 수 있지’라는 생각에 얼굴을 공개하고 이름도 바늘이야기가 아닌 ‘바늘이야기 김대리’로 바꿨어요. 처음부터 개인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건 아니에요. 하다 보니 브이로그에 대한 욕심이 생겨 야심 차게 올려봤는데 조회수가 처참했거든요. 그 후 뜨개질로 옷 하나를 완성하는 영상 위주로 업로드하자 반응이 좋더라고요. 뜨개질을 일상에서 틈틈이 하는 모습을 담으니 하루 일상이 자연스럽게 공개되면서 브이로그 느낌도 났고요. 젊은 친구가 뜨개질하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2019년부터는 뜨개질 과정을 보여주는 브이로그 영상 조회수가 늘기 시작했어요. 그 영향으로 많은 분이 김대리를 더욱 관심 있게 봐주셨고요. 저로 인해 뜨개질을 접하고 좋아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케팅에 확실히 도움이 된 것 같아 뿌듯해요.

인플루언서에게 악플은 숙명이나 다름없어요. 마음고생도 많았을 것 같은데 마인드컨트롤은 어떻게 하나요.
스스로 유명인이 아닌 일개 회사 직원이라고 생각해서 더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악플을 다는 사람들에게는 제가 부모 잘 만난 뜨수저 인플루언서로 보이겠죠. 단지 그 이유로 뜨개 문화 부흥을 위해 노력했던 모든 것이 가려지는 것 같아 속상해요. 사실 너무 힘들어서 심리 상담을 받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최근에도 억울한 일이 있었는데 주위에서 “무시해라, 어쩔 수 없는 거다” 조언해줘서 끝까지 참았어요. 그러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대면해서 싸운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마인드컨트롤이 바로 되더라고요. 그때 ‘나는 정면 돌파해야 마인드컨트롤이 되는 사람이구나’라는 걸 깨달았죠. 힘든 일도 제 방식대로 해결하는 거죠.

요즘 최대 고민은 뭔가요.
‘어떻게 하면 일을 적게 하면서 행복하게 출근할 수 있을까?’ ‘직원 모두 만족하면서 다닐 수 있는 회사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회사 경영에 참여해보니 사업이 잘 풀려야 개인적으로도 행복하더라고요. 예전에는 일과 삶이 분리가 안 돼서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는 회사도 제 삶의 큰 일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어요. 또 직원의 행복이 곧 제 행복이라는 걸 깨달았죠. 직원들이 바늘이야기에 애착을 갖고 임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기거든요. 직원들이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필요할 땐 서로 도우며 각자의 일을 잘해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사업하는 모습을 본 주위 친구들 반응은 어떤가요.
“정말 열심히 산다” “대단하다”고 말해줘요. 하루 24시간 바늘이야기 일에만 매달려 있고, 친구들을 만나도 일 이야기가 주를 이루거든요. 또 친구 대부분은 기업에 취직해 회사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저처럼 브랜드를 운영하거나 인플루언서 활동을 하는 친구는 없죠. 그래서 더 신기해하는 것 같고요. 한 친구가 저를 보며 “1995년생 최대 아웃풋”이라는 말을 해줬는데 너무 기분이 좋더라고요. 성실하게 잘 살고 있다고 인정해주는 느낌이었거든요.

뜨개실은 저렴한 대체품이 많아요.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 고민이 많을 것 같아요.
어머니께서는 요즘 초저가 중국 사이트 테무, 알리를 의식하시는데 저는 전혀 걱정되지 않아요. 바늘이야기에는 ‘콘텐츠’가 있거든요. 콘텐츠만으로도 충분한 수익을 창출하고 있고요. 또 저희는 초저가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상품군보다는 직접 개발한 도구와 실, 콘텐츠 개발에 힘쓰고 있어요. 이 부분만큼은 저가 시장에 밀리지 않을 자신도 있고요. 사실 모든 건 고객의 선택에 달렸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지금 할 수 있는 것, 자신 있는 것에 집중하며 최선을 다할 뿐이고요.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일단은 올해 제가 새로 출시한 디지털 PDF 도안 거래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론칭하고, 5월에 캐나다 아티스트 레지던스에 가서 11월에 나올 4번째 도안집에 담을 도안을 만들어오는 거예요. 제가 5년 전쯤 어느 인터뷰에서 바늘이야기를 수백억대 매출 회사로 키우겠다고 말했는데, 올해 이룰 것 같은 기대감도 있습니다. 또 디지털 노마드로 세계 각국에서 일하거나, 육아맘과 거동이 불편한 분들이 집에서도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10년 후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때도 지금처럼 바쁘게, 행복하게 일하고 있으면 좋겠네요.

#김대리 #바늘이야기 #MZ뜨개 #뜨개질 #여성동아

사진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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