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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전문가에게 해법을 묻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본 김길태 사건 & 유사 범죄 예방법

글 정혜연 기자 사진 조영철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10. 04. 16

꽃다운 나이의 여중생이 차가운 주검이 돼 돌아왔다. 경찰 수사 끝에 시신 발견 4일 후 한 동네에 살던 성폭행 전과 2범의 피의자 김길태가 잡혔다. 8년간의 교도소 복역을 마치고 나온 지 9개월 만에 또다시 범죄를 저지른 그를 막을 방법은 애초에 없었던 걸까.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로부터 그 답을 들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본 김길태 사건 & 유사 범죄 예방법


지난 3월 초, 부산 자신의 집에서 실종됐던 한 여중생이 11일 만에 이웃집 보일러용 물탱크 안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경찰 부검 결과 성폭행 흔적이 발견됐고, 용의자로 성폭행 전과 2범인 김길태(33)가 지목됐다. 나흘 후 김길태는 한 시민의 제보로 경찰에 쫓기다 격투 끝에 붙잡혔다. 계속해서 범행을 부인하던 그는 며칠 뒤 일부 혐의를 시인했다.
김길태는 78년 부산의 한 교회 앞에 버려져 있던 것을 현재의 부모가 거둬 함께 살게 됐다. 초등학교 때는 공부를 열심히 하기도 했으나 어릴 적 부모로부터 버려졌다는 사실을 알고 방황하다 절도 등 범죄를 저질러 소년원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부산의 한 상고에 진학했으나 결국 1학년 때 중퇴, 96년 폭력으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듬해부터 김씨는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97년 아홉 살 여자아이를 주택 옥상으로 끌고 가 돈을 빼앗고 성폭행을 시도했다가 미수에 그쳐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2001년 출소한 뒤에는 한 달 만에 30대 여성을 납치해 친구 집 등으로 10일 동안 끌고 다니며 성폭행해 8년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했다. 이때 정신질환 증세를 보여 진주치료교도소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
지난해 6월 만기 출소한 김씨는 출소 7개월 만인 지난 1월 귀가하던 여성을 부근 옥상으로 끌고 가 성폭행하고 감금한 혐의로 수배를 받았고, 부모의 집 옥탑방과 빈집을 떠돌아다니며 도피행각을 벌였다. 그러던 중 지난 2월 여중생을 성폭행한 뒤 살해하는 범행을 저질렀다.

반사회적 인격장애 겪는 사이코패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본 김길태 사건 & 유사 범죄 예방법

이수정 교수는 김길태가 상대와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사진은 김길태 검거 장면.



전문가들은 김길태가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김길태는 잠재돼 있던 사이코패스적 성향이 좋지 못한 환경으로 인해 표출됐다”고 분석했다.
“김길태는 인생행로가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표류한 케이스라 볼 수 있어요.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었고, 한 사람과 안정적인 이성관계를 맺지 못했으며, 정상적인 직업활동을 한 적이 없다는 점 등이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있었다는 걸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붙잡힌 후에도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않고, 공감 능력이 떨어져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 등에서 사이코패스임을 추측할 수 있죠.”
이 교수는 캐나다 범죄심리학자 로버트 헤어의 표현을 빌려 “사이코패스는 악보는 읽을 줄 아는데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평균 수준의 지능을 갖고 있지만 감정이 메말라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공포에 떨며 소리를 지르면 자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폭력과 피해자의 흥분이 없으면 성적 쾌감을 느끼지 못하는 등 일반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고체계를 갖고 있는 점도 특징이다. 이런 이들은 무조건 교도소에 보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본 김길태 사건 & 유사 범죄 예방법


“김길태는 11년 동안 복역했지만 사회에 나오자마자 더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어요. 교도소에서 여러 가지 교육을 실시하지만 그에게는 아무 효력이 없던 거죠. 사이코패스적 특징을 보이는 김길태 같은 이에게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양성평등 교육, 종교 교육은 무의미해요. 그가 교도소 내에서 폭력으로 7번의 징벌을 받았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증세가 악화되고 있었다는 뜻이죠.”
이 교수는 김길태가 수감생활 도중 정신질환 증세를 보여 2년여간 진주치료교도소로 보내졌던 것에 주목했다. 사회성이 떨어져 교도소 내부에서도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 내성적이고 제대로 된 교우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는 김길태의 상황은 교도소에서 더욱 악화됐고 출소할 때는 이미 은둔형 외톨이가 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 교수는 또 “성도착은 쉽게 고쳐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출소 후 절제하지 못하고 범행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과거에 성폭행만을 저질렀던 김길태가 이번에 살인을 저지른 데 대해서는 “교도소에 다시 들어가기 싫다는 본능이 우발적으로 표출된 결과”라고 추측했다. 피해자가 소리를 지르는 순간 이성을 잃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사실 사이코패스는 교화가 어렵습니다. 때문에 범죄를 막는 길은 이들을 계속적으로 사회와 분리하는 거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경찰에서 출소 후에도 지속적으로 감시를 하는 등 적절한 조치가 있어야 이번과 같은 범행을 막을 수 있습니다.”
김길태는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살던 동네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이 교수는 김길태의 지능지수가 중학교 1학년 때 80 정도로 기록된 것에 비춰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고, 성격도 내성적이다 보니 익숙한 곳을 떠났을 때 여러 종류의 어려움이 예견됐기 때문에 근거지를 떠날 수 없었다고 분석했다.
“김길태는 교도소를 들락날락하다보니 운전면허가 없었어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로 멀리 도망갈 수조차 없었던 거죠. 수배 중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대중교통도 이용하지 못했고요. 처한 상황에서 터득한 생활방식이 빈집을 드나들며 숙식을 해결하는 것이었죠.”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이번 사건을 통해 또 한번 성범죄 재범 우려자 감독과 예방책의 실효성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김길태는 두 번의 성폭행 전과가 있음에도 출소 후 아무런 감시도 받지 않았다. 경찰이 갖고 있는 ‘우범자 관리 매뉴얼’에는 살인·방화·강도·절도·강간·마약 등의 범죄를 저지르고 3회 이상 복역한 자에 대해서만 첩보수집 대상자로 분류해 2년 동안 정보를 기록한다. 성폭행 범죄 2건의 기록만 갖고 있는 김길태는 우범자가 아니었던 것. 이외에도 성범죄자를 비롯한 재범 가능성이 높은 범죄자에 한해 전자발찌를 채우는 규정은 2008년부터 시행됐기 때문에 2001년 범행을 저지른 그는 ‘형벌불소급 원칙’에 의해 위헌 시비가 있어 적용되지 않았다.

지역별 성범죄자의 개인정보 관리시스템 구축해야
정부에서 성범죄자 척결을 위해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했지만 여전히 구멍이 존재하고 있다. 이 교수는 “국가가 지원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를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지 않도록 신경써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 혼자 유치원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온다든가, 집에서 혼자 놀다가 잠을 자게 하는 건 위험해요. 부모가 맞벌이를 하는 등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지역사회에서 보호기능을 강화해야 합니다. 주민센터 차원에서 아이들을 파악해 도우미를 보내준다든가 방범시스템을 강화하는 등 적절한 대책을 갖추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문제점이 발견된다. 가까운 이웃에게 성범죄 피해를 당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이러한 이유로 성범죄자들의 정보는 철저하게 관리돼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인권보호 문제 때문에 특정 부서에서 성범죄자들의 정보를 관리하며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이를 공유하는 하나의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 일반시민 모두에게 공개할 수 없다면 지역사회에 권한을 가진 사람만이라도 이를 열람해 감시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범죄를 줄여나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에게 사람을 믿지 말라고 가르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성범죄자들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완동물이나 먹을거리로 유인해 범행을 저지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형사사법적으로 시스템을 구축하고 정부의 역할을 강화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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