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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에서 인생의 길 찾기

정지철 김자경오페라단 예술감독

EDITOR 김명희 기자

입력 2019.07.15 17:00:01

돈·사랑·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 때문에 고민이라면 오페라를 보라고, 그 안에 답이 있다고 말하는 남자. 김자경오페라단의 정지철 예술감독을 만났다.
오페라에서 인생의 길 찾기
지난 5월 21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김자경오페라단 주최로 ‘더 디바스’ 갈라 콘서트가 열렸다. 국내 정상급 소프라노 강혜정·김수연·김순영·한경미로 구성된 ‘더 디바스’는 2018년 창단 이후 짧은 시간 안에 대한민국 성악계에 막강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이들은 테너 허영훈·이동명, 바리톤 박정민·이응광 등 남자 성악가들과 함께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 푸치니의 ‘라 보엠’, 베르디의 ‘리골레토’ 등에 나오는 주옥같은 아리아를 들려줘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내로라하는 성악가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관객들에게 큰 선물을 안긴 주인공은 김자경오페라단의 정지철 예술감독이다. 

정 감독은 경원대 음대을 거쳐 이탈리아 로비고 국립음악원을 졸업하고 바리톤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한편, 오페라 인구 저변 확대와 신인 음악가 발굴 및 데뷔를 위해 1968년 성악가 고(故) 김자경 선생이 주축이 돼 창단한 국내 최고 민간 오페라단인 김자경오페라단을 이끌고 있다. 오페라 해설가로도 활동 중인데 맛깔난 입담과 클래식 음악에 대한 풍부한 지식, 오페라가 제작된 시대의 배경까지 아우르는 재미있는 강의로 유명하다. 그의 해설을 듣고 오페라의 세계에 입문했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예전에 오페라 ‘라 보엠’에 쇼나르 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는데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 뒤로 VIP 좌석에 앉은 분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주무시더군요. 예술의전당이라는 최고의 무대에서 최고의 캐스팅으로 열리는 공연인데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해서 남자 화장실에 갔는데 다들 오페라 얘기는 안 하고 저녁은 뭐 먹을까, 어디 가서 한잔할까? 같은 이야기만 하더군요. 이렇게 좋은 공연을 우리들만의 잔치로 끝낼 게 아니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가 오페라 해설을 하고, 단원들과 함께 찾아가는 공연을 하는 이유다. 여전히 오페라 객석에서는 아리아에 울고 웃는 관객과 잠을 자는 관객이 공존하지만, 오페라의 즐거움을 알아가는 마니아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건 큰 보람이다.


인간을 위한 가장 완벽한 예술, 오페라

오페라는 지금의 영화가 그렇듯 음악과 미술, 문학이 망라된 종합 예술 장르다. 또한 오페라의 스토리에는 당대의 시대상과 인문학적 성찰이 녹아 있다. 정 감독은 현대인이 겪는 인생의 모든 문제에 관한 답도 오페라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이슈가 된 ‘미투운동’을 예로 들자면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은 미투운동을 희극적으로, 베르디의 ‘리골레토’는 비극으로 풀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죠. ‘피가로의 결혼’의 알마비바 백작은 초야권을 노리고 하인인 피가로의 약혼자 수잔나를 유혹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는 무릎 끓고 사과합니다. 반면 리골레토는 딸 질다가 공작에게 겁탈당했을 때 딸을 위로와 사랑으로 감싸주지 못하고 다그치며 복수를 다짐합니다. 그게 딸을 위한 복수인지 세상을 향한 원망인지 모를 정도로 극에 달해 공작을 죽이려다 결국은 딸이 죽게 됩니다. 위로받아야 할 때 위로받지 못한 딸이 결국은 공작을 대신해 죽음을 택한 것이죠. 복수가 불러일으킨 비극적인 결과입니다. 이처럼 오페라는 우리가 살면서 겪는 다양한 문제들을 보여주죠. 답을 제시해주는 사람도 없고, 각자 불안해하며 살아가는 외로운 사막 같은 세상에서 오페라는 훌륭한 삶의 동반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오페라의 매력은 알면 알수록 재미있다는 것이다. 정 감독은 과거 유럽에서 오페라가 유행할 당시 ‘오페라 과부’라는 말이 있었다고 말한다. 농부들이 농작물을 수확해 판매한 돈으로 오페라에 빠져 가정을 등한시한 탓에 유행한 말이다. 문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스토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10대 현지처의 출산(나비 부인), 출생의 비밀(일 트로바토레), 사랑하는 연인을 떼어놓으려는 부모(라 트라비아타) 등 막장 드라마와 비슷한 요소도 있다. 현대에 들어서는 영화 등의 장르에 오페라 아리아가 활용돼 감동을 더하는 사례도 많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는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갇힌 앤디(톰 로빈슨)가 교도관실에 잠입했다가 ‘피가로의 결혼’ LP판을 발견하고 모든 죄수들이 들을 수 있도록 음악을 방송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일로 앤디는 독방에 갇히는 신세가 되지만 앤디에게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은 그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이때 나오는 아리아가 수잔나와 백작 부인이 백작을 골탕 먹이기 위한 계획을 짜는 내용의 ‘편지 이중창’이다. 정 감독은 “이 영화를 자세히 보면 이때 앤디의 표정이 오페라에서 절대 권력인 백작에게 반기를 드는 피가로의 표정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보면 ‘편지 이중창’이 삽입된 장면은 훗날 앤디가 부당한 권력에 맞서 탈출을 감행하는 것을 암시하는 복선이기도 하다. 영화 ‘필라델피아’에서 에이즈로 투병 중인 변호사 앤드루(톰 행크스)가 고뇌하는 장면에 삽입된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의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영화 ‘대부3’에서 돈 콜레오네(알 파치노)가 총에 맞아 숨진 딸을 안고 절규하는 장면에서 흐르는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정지철 감독은 “오페라는 무궁무진한 자원이 숨겨져 있는 대륙붕과 같다. 같은 작품이라도 어떤 무대에서 누가 부르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고 다른 장르와 만났을 때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하기도 한다”며 “오페라의 저변이 확대돼 오늘은 영화를 볼까, 오페라를 볼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란다”고 말한다.


사진 홍중식 기자 디자인 김영화




여성동아 2019년 7월 6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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