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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영자의 전성시대

EDITOR 강일홍 더팩트 대중문화전문기자

입력 2019.02.07 17:00:01

지난 연말 KBS와 MBC 연예대상 2관왕을 차지하며 이 시대 최고의 방송인임을 증명한 개그우먼 이영자. 그의 성공 뒤에는 숱한 역경을 이겨낸 남다른 뚝심이 있다.
다시, 영자의 전성시대
“후배들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줬다.” 

개그우먼 송은이는 지난해 말 ‘2018 KBS 연예대상’과 ‘2018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연달아 대상을 차지한 선배 이영자(52)를 축하하며 이렇게 말했다. 송은이가 우회적으로 말한 ‘희망’과 ‘꿈’엔 이영자가 지금까지 없던 길을 새로 개척했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여자 연예인 중 연예대상 2관왕 수상자는 이영자가 처음이고, KBS에서 여성 예능인에게 연예대상을 안긴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개인적으로 그에게 이번 2관왕 수상은 1991년 데뷔 이후 27년 만에 처음 맛보는 감격의 순간이기도 했다. 

이영자는 수상 무대에서 대상 수상의 영광을 모두 동료들한테 돌리며 “힘들 때마다 저를 다독여준 김숙·송은이 후배가 고맙고, 데뷔 이후 늘 경쟁과 긴장 관계로 지낸 (신)동엽이 덕분에 교만해지지 않고 더 좋은 예능인이 된 것 같다”고 속내를 밝혔다. 연예계 데뷔 이후 누구보다 부침이 심했던 그로서는 힘들고 어려운 고비 때마다 속 얘기를 들어주고, 경쟁자인 듯 조력자로 그를 위로하고 격려해준 동료 예능인들이 더없이 고마운 존재일 터. 

MBC 방송연예대상의 경우 그의 대상 수상은 일찌감치 점쳐졌다. 이영자는 지난해 3월 방송을 시작한 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생활밀착형 ‘먹방 꿀팁’으로 먹방계를 평정했다. 휴게소에서 소떡소떡 하나를 먹어도 감칠맛 나게 먹는 법을 전수하는 마성의 먹방을 선보여 무엇이든 먹는 족족 품귀 현상을 빚었다. 

KBS에서도 이영자의 위상은 독보적이었다. 그가 활약한 KBS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는 2010년 방송을 시작한 이후 장기간 안정적인 예능 균형을 일궈냈다. ‘해피선데이-1박 2일 시즌3’를 이끄는 김준호와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 MC 신동엽이 경쟁자로 나섰지만 분위기만으로 대세는 이미 이영자로 기울었다. ‘상’이란 단순히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시청률 높낮이로만 비교될 수 없기 때문이다.




특유의 능청 이미지와 캐릭터로 승승장구

다시, 영자의 전성시대
이영자는 데뷔 전 거친 밤무대에서 쓴맛, 단맛을 먼저 맛봤다. 방송사 개그맨 공채 시험에서 수차례 떨어진 아픈 경험이 결과만 놓고 보면 되레 전화위복이 됐다. 이영자는 “개그 콘테스트에 떨어진 후 내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터널을 걷는 것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그런 과정이 하드 트레이닝이 됐다”고 털어놨다. 그래서일까. 밤무대에서 그의 활약은 대단했다. 선배 개그맨 전유성은 그 모습을 보고 첫눈에 ‘될성부른 나무’임을 직감했다. 통통한 몸집에 충청도 말투가 섞인 아줌마 이미지를 적절히 활용하면 금방 주목을 받을 것 같았다. 그때 번쩍 떠오른 게 1970년대 인기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였고, 이는 작명의 모티프가 됐다. 전유성은 그에게 ‘이영자’라는 예명을 지어주었다. 이후 이영자는 자신의 진짜 이름 이유미 대신 다소 촌스럽게 느껴질 법한 예명 ‘이영자’로 방송에 데뷔했다. 데뷔 무대는 1991년 MBC 예능 프로그램 ‘청춘행진곡’이었다. 전유성이 당시 MBC 예능국 주창만 PD에게 이영자를 추천했고, 한눈에 재능을 인정받아 ‘청춘행진곡’의 ‘신부교실’이라는 코너에 특채 출연했다. 

방송이라는 멍석을 깔아주자 이영자는 특유의 능청스러운 캐릭터로 승승장구한다. 문제는 개그 콘테스트를 거쳐 방송에 입문한 공채 출신 개그맨들의 견제였다. 훗날 이영자는 “난 원래 밤무대 체질이라 어디서든 웃기는 건 자신이 있었는데 방송에 적응해 인기를 얻은 뒤엔 이를 질투하는 일부 동료들 때문에 힘들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MBC에서 이영자는 ‘청춘행진곡’을 비롯해 ‘웃으면 복이 와요’ ‘일요일 일요일 밤에’(일요스타앨범·영자의 방·TV 인생극장 코너), ‘즐거운 세상’(영자야 울지 마라 코너), ‘오늘은 좋은 날’(한방에 두 가족·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떡장수·내일은 빛나리 코너), ‘도전 추리특급’ 등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맹활약한다. 

이영자가 MBC를 통해 3년간 실력을 인정받은 뒤 정작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오른 곳은 KBS다. 1994년 SBS ‘기쁜 우리 토요일’을 거쳐 KBS로 활동 무대를 옮긴 뒤 ‘톱스타 인생극장’을 시작으로 ‘슈퍼선데이’ ‘출발 토요대행진’ ‘토요일 전원출발’ 등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야말로 ‘영자의 전성시대’를 맞는다.


‘다이어트 거짓 해명 논란’으로 치명상

다시, 영자의 전성시대
이영자의 2관왕이 더 빛나는 것은 좌절을 딛고 일어선 인생 반전 스토리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끼와 재능을 앞세워 화려한 조명을 받는 개그계 스타로 부상했지만 데뷔 10년 만에 연예 활동을 위태롭게 하는 위기가 닥쳤다. 이영자에게 치명상을 안긴 사건은 다름 아닌 ‘다이어트 거짓 해명 논란’이었다.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이영자는 2001년 3월 원래 98kg이던 체중을 62kg으로 감량한다. 식이요법과 운동 등을 병행해 감량에 성공했다는 소식은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방송에서 이영자는 평소 알고 지내던 성형외과 의사 김모 씨가 만들어준 ‘밴드’를 이용해 처짐 없이 얼굴살을 뺄 수 있었다고 밝혔고, 이 제품은 홈쇼핑 채널에서 대박이 났다. 함께 출시된 ‘이영자 다이어트 비디오’도 한 달 만에 3만 개가 팔렸다. 

하지만 이런 폭발력은 병원 측과 갈등을 빚으며 비수가 되어 돌아왔다. 의사 김씨가 “이영자 씨는 우리 병원에서 세 차례에 걸쳐 턱선, 가슴, 팔, 배, 등, 허벅지 등 전신에 지방흡입 수술을 받았다”고 폭로하면서다. 파문은 연예계를 넘어 사회적 이슈로 일파만파 커졌다. 

급기야 이영자는 소속사를 통해 “3년 전 팔 부위에 지방흡입 수술을 한 차례 받았으나 2주 만에 원상태로 돌아와 그 후로는 시도하지 않았다”며 “최근 9개월 동안 체중을 뺀 것은 운동과 식이요법의 결과이고 지방흡입 수술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그리고 지방흡입 수술 등 자신의 진료 기록과 수술 내용이 담긴 사진 등을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한다. 

결국 이 사건은 법정 싸움으로 이어졌고 당시 검찰이 “(이영자가) 무엇으로 살을 뺐는지가 형사처벌의 판단 잣대가 될 수 있지만 (이영자의) ‘사기’ 혐의는 입증하기 힘들다”고 밝히면서 그의 억울함은 일부 해소됐다. 지방흡입 수술을 받은 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달리기’ 등 운동을 병행해 살을 뺐다면 사기 혐의로 기소할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반면 이영자는 환자의 진료기록을 공개하고 자신에게 “협박을 받고 있다”는 등의 허위 사실을 유포한 김씨 부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뮤지컬 무대서 내실 다지며 절치부심

스타의 생명력은 팬들의 신뢰와 믿음이다. 이 사건에 대해 이영자는 뒤늦게 사과를 하고 이해를 구했지만 한번 잃은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일부 네티즌들은 이영자를 ‘거짓말쟁이’로 낙인찍고 비난을 쏟아내기도 했다. 

잘나가다가도 한번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기 힘든 곳이 연예계다. 방송 트렌드가 워낙 빠르게 바뀌는 데다, 늘 대기 중인 대타가 그 자리를 금방 꿰차는 속성 때문이다. 이영자도 MBC 예능 프로그램 ‘이소라의 사랑할까요’를 끝으로 모든 방송 활동을 중단하고 ‘칠흑처럼 깜깜하고 긴 터널’을 걸어야 했다. 

그는 꼬박 2년의 공백기를 가진 후 예능 프로그램에 간간이 출연했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그렇게 절치부심하는 동안 그에게 위안을 준 것은 연극과 뮤지컬이었다. 특히 2005년 초연된 뮤지컬 ‘메노포즈’는 이영자에게 친정 같은 작품이다. 여러 차례 앙코르 공연을 가진 이 작품은 힘든 고비 때마다 스스로를 다지는 계기가 됐다. 관객들 역시 열정적인 춤과 노래, 탄탄한 연기력, 재치 있는 대사로 감동을 안기는 그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무대에서 다진 내공 덕분에 그는 2007년 tvN ‘현장 토크쇼 택시’를 진행하며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기존 토크쇼와는 차별화된 새로운 포맷의 이 프로그램은 이영자 특유의 소탈하면서도 재치 있는 진행과 현장감을 살린 인터뷰 덕분에 2017년까지 10년간 꾸준한 인기를 누렸다.


원조 먹방녀로 등극, 예능 방송인 평판 1위

이영자가 위기를 딛고 재기에 성공한 데는 먹방이 톡톡히 한몫했다. 그는 ‘현장 토크쇼 택시’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등에서 MC로 입지를 다지며 차원이 다른 ‘원조 먹방녀’의 저력을 발휘했다. ‘왜 러브를 남자랑 한다고 생각하오? 냉장고 안에 내 러브들이 들어 있소!’ ‘한 번 본 사람 잊어도 한 번 먹은 음식 못 잊는다!’ ‘첫 입은 설레고 마지막 입은 그립다!’ ‘눈으로 코로 입으로 세 번 먹는다!’ 등은 그가 ‘먹방’을 통해 남긴 대표적인 어록이다. 

이처럼 번뜩이는 애드리브와 맛에 대한 감각적인 묘사, 의성어와 의태어를 총동원해 음식을 설명하는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시청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가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또한 그가 다녀간 고속도로 휴게소는 ‘이영자’란 이름이 걸리는 순간 그냥 지나쳐선 안 될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고, 그에겐 ‘휴게소 완판녀’란 애칭이 따라다녔다. 백종원이 예능을 통해 골목 식당을 살렸다면 이영자는 지역 특성이 담긴 음식을 통해 전국 곳곳의 휴게소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패션지 ‘코스모폴리탄’은 지난해 마지막 커버 모델로 이영자를 선정해 그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케 했다. 늘씬한 미녀만이 장식하던 패션지 표지의 오랜 관행을 깬 이영자는 스스로 탈 코르셋과 자기 몸을 긍정하는 새로운 패션 트렌드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인기 상승세는 객관적 지표로도 입증됐다.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화수분 같은 긍정 에너지를 뿜어내는 그는 지난해 6월 실시된 예능 방송인 평판 조사에서 3위를 차지했고 7월엔 2위, 8월엔 1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연말엔 연예대상 2관왕을 양손에 거머쥐었다.


좌절 딛고 얻은 인간 승리에 무한 찬사

다시, 영자의 전성시대
이영자는 지금의 성공이나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앞으로 또다시 고비가 닥쳐도 자신의 고충을 앞세우기보다 주변 사람들을 챙기며 그 시간을 견딜 듯하다. 가족과 지인에겐 배려를 아끼지 않는 대신 스스로에게 엄격한 것은 어릴 때부터 몸에 밴 오랜 습성이기 때문이다. 

절친한 친구 최진실이 세상을 떠난 뒤 그가 환희·준희 남매에게 쏟은 애틋한 관심과 사랑은 두 아이의 외할머니인 정옥숙 씨가 감동할 만큼 눈물겹다. 최진실이 남긴 어린 두 자녀에게 ‘이모’를 자처하며 할머니가 할 수 없는 ‘엄마의 빈자리’를 챙겨왔다. 그는 환희·준희 남매를 데리고 매년 최진실이 묻힌 경기 양평 갑산공원을 찾는다. 가장 바빴던 지난해에도 직접 10주기 추모식을 이끌어 보는 이들을 찡하게 했다. 

연예계는 아무리 공들여 쌓은 이미지도 한순간의 실수로 산산이 부서지는 살얼음판 같은 곳이다. 사실 이영자는 2007년 ‘가짜 다이아몬드 반지 해프닝’으로도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지난해엔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빚’으로 흠집 내기에 또 한 번 좌절하기도 했다. ‘속 깊은 이영자’를 잘 아는 연예계 지인들은 그래서 이런 상처를 보듬어주길 주저하지 않는다. 

오래 가까이서 지켜본 필자의 눈에도 그가 장수하는 비결은 이처럼 착하게 살아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는 요즘 밀려드는 스케줄로 하루 5시간의 수면으로도 모자랄 만큼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틈틈이 스트레칭만으로 구슬땀을 흘리며 건강을 챙기고 있다. 

쓴것이 다하면 단것이 온다는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산증인인 이영자. 데뷔 27년 만에 다시 전성기를 맞은 그의 이야기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픈 청춘들에게 위로와 용기가 되길 바란다.


기획 김지영 기자 사진 동아일보 사진DB파트 뉴시스 뉴스1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KBS MBC 올리브




여성동아 2019년 2월 6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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