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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사랑한다’ 홍종현에게 궁금한 것들

editor 정희순

입력 2017.12.21 18:00:31

단 한순간에 스타덤에 오르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사람들 속으로 서서히 스며드는 배우가 있다. 모델 출신 배우로 드라마 ‘왕은 사랑한다’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인 홍종현은 후자에 속한다. 데뷔 10년을 맞아 배우라는 이름에 걸맞은 무게감을 갖게 된 그를 만났다.
늦은 가을 오후 무렵에 만난 홍종현(27)은 블랙 이너웨어에브라운 톤 가죽 재킷을 무심한 듯 시크하게 걸치고는 가만히 카메라를 응시했다. 그를 보며 이런 다짐을 했다. ‘화보를 찢고 나온’이라는 수식어는 오직 홍종현에게만 쓰기로. 

그는 모델 출신 배우다. 2007년 열린 2008 F/W 서울 컬렉션이 그의 첫 무대다. 이듬해부터 연기 경력을 쌓아온 홍종현은 어느덧 올해로 데뷔 10주년을 맞이했다. 그는 비슷한 나이 또래의 모델 출신 연기자인 김우빈, 김영광, 이수혁, 성준 등과 절친 사이로 알려져 있는데, 팬들은 이들을 두고 ‘모델 어벤저스’라 부른다. 최근에는 ‘고려 왕자’라는 별명도 얻었다. 

최근작인 ‘왕은 사랑한다’(이하 ‘왕사’)와 ‘달의 연인-보보경심려’의 시대적 배경이 고려인 데다, 그가 맡은 캐릭터가 왕족이었다는 공통점 때문이다. 두 작품의 시대 배경과 계급은 유사했지만, 홍종현이 연기한 캐릭터의 성격은 전혀 달랐다.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의 왕요가 섬뜩한 악역이었다면, ‘왕사’의 왕린은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애절한 순애보를 가진 캐릭터. 두 작품을 모두 보고 나면 그의 지난 10년이 얼마나 치열했을지 얼추 짐작이 가는 한편, 극 중 캐릭터 말고 20대 남자 홍종현의 진짜 모습이 새삼 궁금해진다. 

고백하자면, 만나본 적 없는 그에 대해 ‘무뚝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니컬하고 도회적인 외모 탓도 있겠지만, 지난 2014년 가상 결혼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에서 보여준 그의 모습 때문에 특히 그랬다. 당시 홍종현은 걸그룹 걸스데이의 멤버 유라와 함께 호흡을 맞췄는데, 그는 대부분 ‘철벽’을 치는 듯한 태도로 보는 이의 애를 태웠다. 인터뷰 때도 철벽을 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노심초사하고 있던 찰나, 인터뷰를 위해 카페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홍종현은 노트북이 아닌 휴대폰에 블루투스 키보드를 연동해 사용하는 에디터의 모습을 보고는 환호성(?)을 질렀다. “와! 이걸 쓰시는 분은 처음 봐요!”라고. 이리저리 살피는가 싶더니 자판이 듬성듬성 떨어져 나간 모양새를 보고 “시옷(ㅅ)은 어떻게 쳐요?”하고 해맑은 표정으로 물었다. 인터뷰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결국 함께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


‘왕은 사랑한다’ 홍종현에게 궁금한 것들
무뚝뚝한 상남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예요. 데뷔 10년의 내공일까요(웃음).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는 못하는 타입이에요. 개인적인 일로 언짢은 상황에 놓였을 때나, 마주한 상대가 불편할 때. 저는 그럴 때 얼굴에 티가 다 나거든요. 지금도 여전히 낯을 가리긴하는데, 데뷔 초에 많이 가렸다면 지금은 조금(웃음)? 

서른도 안 된 나이에 데뷔 10주년을 맞은 기분이 어때요.
실감이 안 나요.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해 벌써 10년이 됐네요. 원래 기념일을 잘 챙기는 편이 아니라 팬들이 이야기해주시지 않았다면 10주년인지도 모르고 지나갔을 거예요. 먼저 축하 인사를 건네주시는 팬들을 보면서 무척 감사하고 든든했어요. 나보다 더 나를 챙겨주시는 분들이 있구나, 하고요. 

데뷔 초와 비교했을 때, 지금 가장 많이 달라진 건 뭔가요. 혹시… 수입?
하하. 물론 수입도 많이 달라졌죠. 음, 전 웬만하면 달라지지 않으려고 해요. 보통 그런 말 많이 하잖아요. “너 나중에 잘됐다고 모르는 척하기 없기다?” 이런 말(웃음). 친구들이 그런 말을 하면 “내가 널 안 보게 된다면, 그건 내가 떠서 그러는게 아니야. 그냥 네가 싫어서야” 하고 대답했어요. 다행히 어릴 때부터 친했던 친구들이랑은 지금도 계속 친하게 지내고 있네요(웃음). 그런데도 달라진 게 있긴 해요. 아무래도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직업을 갖다 보니 매사에 조심하는 거요. 그러니까, 얌전해졌어요. 

원래는 얌전하지 않았나 보군요.
학창 시절에 얌전한 편은 아니었죠. 남들 시선에 대해 크게 신경을 안 썼어요. 

길에 쓰레기 막 버리고 그랬어요(웃음)?
하하. 그런 건 아니고요. 사람들이랑 술을 마시고 놀면 예전에는 장난도 치고 편하게 속 얘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내가 술을 마시고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서요. 소심해진 것 같다고나 할까요. 이런 변화가 불편한 건 아닌데 걱정스러워요. 친구와 멀어지는 건 쉬운 일인데,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 같거든요. 예를 들어 친구를 통해 새로운 친구를 소개받았다고 치면, 그 새로운 친구는 저를 ‘연예인 홍종현’으로 보게되잖아요. “우와, 연예인이다!” 하고 봐주는 게 고맙지만, 한편으론 씁쓸해요. ‘나도 그냥 서른을 앞둔 남자 홍종현일 뿐인데’ ‘나는 그저 친구이고 싶은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죠. 

연예인이 아닌 친구들이랑 자주 만나나 봐요.
그런데 요즘은 다들 바쁘대요(웃음). 제 또래가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시기라 막 신입사원이 된 친구도 있고, 가게를 오픈해서 사장님이 된 친구도 있고, 취업 준비하는 친구들도 있고 그래요. 이번에 ‘왕사’ 끝난 후에는 혼자 집에서 영화 보고, TV 보고,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하고 그랬어요.

전형적인 집돌이였네요(웃음). 연예인들은 보통 헬스장 가서 몸 만들고 그런다던데.
헬스는 저랑 안 맞는 것 같아요(웃음).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풀린다는데 저는 더 쌓이는 것 같거든요. 그보다는 자전거 타기나 축구 하는 걸 좋아해요.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끼리 축구 하는 모임이 있는데 시간만 맞으면 거기 나가요. 

축구할 때 포지션은 뭐예요.
동네 축구에 포지션이 어디 있어요. 그런 거 없어요. 그냥 뛰어다니는 거지(웃음). 

여행은 안 가나요.
아, ‘왕사’ 촬영 마친 직후에 친구들이랑 일본 여행 다녀왔구나. ‘왕사’에서 후라타이 역을 맡았던 김재운 형이랑 제 어릴 적친구, 그 친구의 또 다른 친구까지 넷이 바이크를 타고 부산에서 일본 시모노세키로 건너가 4일 동안 돌아다녔어요. 정해진 루트는 없었지만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잠시 멈춰서 경치도 즐기고, 배가 고프면 보이는 라멘집에 들어가 밥도 먹고 그랬죠. 진짜 오랜만에 여행다운 여행을 한 것 같아요. 저는 여행 계획을 잘 짜는 편이 못 되는데 제 어릴 적 친구가 그런걸  진짜 잘해요. 대신 전 의사소통을 담당했어요. 저도 일본어를 잘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넷 중에선 제일 낫더라고요(웃음). 

최근작인 ‘왕사’ 팀이랑은 되게 각별하다고 들었어요. 입대한 임시완 씨 면회도 다 같이 다녀왔다면서요.
‘왕사’는 사전 제작 드라마여서 서로 친해질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많았어요. 촬영 들어가기 전에 미팅도 자주 하고 회식 자리도 갖고 그랬죠. 촬영하면서 서로 신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줬다가 다 같이 밥 먹고 어울려 다니는게 자연스러웠어요. 그러면서 점점 친해진 거죠. 시완이 형이 입대한 후에 면회를 한번 가야겠다 싶어서 “면회 갈 사람모여라!” 했더니 열서너 명이 모인 거예요. 그런데 따로 가면 매니저분들까지 움직여야 하는 데다 차량도 여러 대를 이용해야 하니까 꽤 번거로울 것 같더라고요. 드라마 팀분위기가 워낙 좋았으니까 다 같이 놀러 갔다 오는 기분으로 가면 좋겠다 싶어서 미니 버스를 빌리게 됐어요. 제가 버스를 알아보러 갔는데, 빌린 사람만 운전할 수 있다고 해서 결국 제가 15인승 버스를 몰게 됐죠(웃음). 시완이 형은 그새 굉장히 늠름해졌던걸요. 

그러고 보니 ‘왕사’의 여주인공 윤아 씨도 소녀시대로 데뷔한지 꼭 10주년이네요. 서로 축하 인사는 나눴나요.
“생각해보니까 우리 데뷔를 같이했네” 하고 이야기는 나눴어요. 윤아가 팬 미팅 때 부르면 와주겠다고 했었는데, 생각해보니 제 팬들이 어쩌면 윤아를 별로 반겨주지 않으실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윤아도 “내가 가면 팬들이 싫어하실 것 같은데” 하면서 걱정했고요(웃음). 

지금 모습이 데뷔 전에 꿈꾸던 삶과 비슷한가요.
거의요. 그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10년 후에도 이 길을 포기하지 않고 차근차근 가고 있었으면 좋겠다’라고요. 운이 좋게도 비교적 일찍 목표를 이뤘고, 지금 꿈꾸던 일을 하고있는 데다 저는 여전히 이 일을 좋아해요. 그 시절에 그렸던 모습대로요. 

열일곱밖에 안 된 나이에 어떻게 진로를 정했나요.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나는 매일 같은 일을 하는 직업을 갖고 싶진 않아. 매일이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라고 얘기했어요. 그러다 청소년기에 갑자기 키가 쭉 커졌고, 그러면서 모델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죠. 원래는 공부를 꽤 잘하는 편이었는데, 모델 일을 하면서 학교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담임선생님이 되게 안타까워하시면서 “종현아, 일단 대학에 가자. 그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도 괜찮아”라면서 저를 설득하시더라고요. 보통 부모님들 같으면 “그래, 일단 수능부터 준비하자”라고 하셨겠지만, 저희 엄마는 달랐어요. “해보고 싶니? 그러면 해” 하고 말씀하셨으니까요. 

어머니께서 선견지명이 있으셨나 봐요. 지금은 “거 봐. 내가 밀어주길 잘했지?” 하시겠어요(웃음).
저는 엄마에게 받은 게 많다고 생각하는데, 부모님 마음은 그게 아닌가 봐요. 오히려 제게 고맙다고 하세요. 많이 도와주지 못했는데 알아서 잘 커줘 고맙다고요. 매달 용돈을 드리는 건아니지만 가끔씩 크게 드리는 편이에요. 예를 들면 집장만 같은 거요(웃음). 그래야 더 감동이 크잖아요.

지금껏 해온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뭔가요.
‘왕사’요. 최근작이기도 하고, 제가 맡았던 ‘왕린’이라는캐릭터가 배우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역할인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거예요. 드라마 들어가기 전부터 왕린이라는 친구에 굉장히 애착이 많았어요.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고민하다 결국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기꺼이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사람. 너무 멋있는 캐릭터죠. 실제 저와 닮은 부분도 있고, 또 닮고 싶은 인물이었어요.

가장 힘들었던 작품을 꼽아보자면요.
전부 힘들어요(웃음). 힘든 이유는 다 달라요. 체력적으로 버거운 작품도 있고, 정신적으로 힘든 작품을 만날 때도 있어요. 그런데 다행히 힘들고 짜증 났던 기억은 금방 잊어버리는 편이에요. 제가 원래 겨울을 되게 좋아했는데, 요즘 점점 싫어지고 있어요.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니 겨울에 단 한 번도 쉰 적이 없더라고요. 드라마나 영화를 항상 찍고 있었거든요. “아, 너무 춥다. 내년 겨울엔 하지 말아야지” 하는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해요. 그런데 그다음 해 겨울에 다른 촬영장에서 똑같은 말을 또 하고 있어요(웃음). 

놀랐거나 당황했던 기억은요.
음, ‘뱀파이어 아이돌’이라는 시트콤을 찍을 때 신동엽 형을 보고 되게 놀랐어요. 애드리브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체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재밌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거지?’하고 입이 ‘떡’ 벌어지더라고요. 

당황했던 기억으로 ‘우결’ 촬영 도중 다른 여자 연예인과 터졌던 열애설을 꼽으실 줄 알았는데 안 나오네요(웃음). 
아! 맞아요. 그때 진짜 당황했죠. 그래도 데뷔 10년 동안 열애설이 최고의 스캔들이면 선방한 거 아닌가요? 경찰서와 관련된 게 아니면 일단은 다행인 것 같은데(웃음). 

그런데 진짜, 솔직히, 10년 동안 연애 몇 번 해봤어요.
(망설이다가) 두 번요(웃음). 

역시…(웃음).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게 제대로 된 연애가 아닐 수도 있죠. 잘 모르겠어요. 어려워요. 

10년 동안 본인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음, 저는 제 20대보다 30대가 더 기대가 돼요. 지난 10년은 배우 홍종현이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보여주기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수확할 시기가 아니잖아요. 씨를 뿌리는 때지(웃음).

그럼 앞으로의 10년 동안 얻고 싶은 수확은 뭔가요(웃음).
가깝게는, 지난 2년간 사극을 해서 그런지 도시에서 촬영하고 싶어요. 로맨틱 코미디도 좋고, 남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장르물도 해보고 싶어요. 조금 멀리 본다면, 더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싶은 지금의 마음 언제나 잊지 않길 바라고, 슬럼프가와도 현명하게 이겨냈으면 좋겠어요. 제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으로 남고 싶고요.


‘왕은 사랑한다’ 홍종현에게 궁금한 것들
그에게 이런 질문도 했다. 지난 10년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하나만 꼽아달라고. 한참을 망설이던 그는 “좋은 작품을 만나 좋은 평가를 받았을 때도 물론 행복했지만,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꼽을 순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 때보다 돈을 쓸 때가 더 행복하다”는 아리송한 답변을 내놨다. 그에게 응수했다. “저도 그래요. 누구나 돈을 쓸 때가 행복하잖아요”라고.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맞받아쳤다. 

“저 말고요. 저한테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쓸 때요.” 

인터뷰 내내 질문을 받은 쪽은 홍종현이었다. 그런데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이번엔 나 스스로에게 그 질문들을 던져보고 싶어졌다. ‘홍종현’이라는 나무는 벌써 저만큼 큰 것 같은데, ‘나’라는 나무는 얼마만큼 자랐는지 궁금해서다.


photographer 홍태식 designer 김영화


여성동아 2017년 12월 6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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