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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미·황성재의 ‘따로 또 같이’

EDITOR 김지영 기자

2019. 11. 03

같은 길을 걷는 엄마 박해미와 아들 황성재가 뮤지컬 감독과 주연으로 뭉쳤다. 아픔을 딛고 홀로서기에 나선 박해미의 심경, 엄마의 재능과 강단 있는 기질을 닮은 훈남 배우 황성재의 성장통, 그리고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하지 못했던 속 깊은 이야기를 들었다.

배우 박해미(55)가 고향 같은 뮤지컬 무대로 돌아왔다. 8월 말 서울 대학로에서 막을 올린 ‘SO WHAT?’(이하 ‘쏘 왓’)이 그것. 박해미가 운영하는 공연기획사 해미뮤지컬컴퍼니에서 제작한 이 작품은 독일 극작가 프랑크 베데킨트의 희곡 ‘사춘기’를 기반으로 했다. 성적 호기심이 왕성한 사춘기 청소년들의 고민과 갈망을 그들의 시선으로 노래하는 랩 뮤지컬이다. 

이 작품의 기획과 제작, 총감독을 맡은 박해미는 모든 배우를 오디션을 거쳐 선발했다. 그중 주인공 멜키오 역을 맡은 황성재(19)가 그녀의 차남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으고 있다. 명지대 뮤지컬학과에 재학 중인 황성재는 한림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할 당시 체중 120kg의 거구였으나 혹독한 다이어트로 40kg 감량에 성공하면서 실력과 외모를 겸비한 훈남으로 거듭났다. 

박해미 역시 지난 1년간의 아픔을 딛고 일어섰다. 지난해 8월 남편 황모 씨의 음주 운전 사고로 박해미는 자신이 운영하는 해미뮤지컬컴퍼니의 단원 둘을 잃었다. 연예계에서 ‘열일’ 하는 배우로 유명하지만 그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속죄의 시간을 보냈다. 연예 활동을 잠정 중단하고 세상을 떠난 제자들을 위해 진혼굿을 하기도 했다. 또한 황씨의 죄를 감싸주기보다 “남편은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강경한 태도로 일관했다. 황씨는 이 사고로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들 부부는 지난 5월 합의이혼으로 25년 결혼 생활을 마감했다. 

아픔을 딛고 활동을 재개한 박해미와 이제 청년 배우로 새로운 행보를 시작한 황성재를 ‘여성동아’가 단독으로 만났다. 이들 모자의 화보 인터뷰 콘셉트는 연상연하 커플로 정했다. 어릴 때는 엄마의 보살핌을 받았던 아들이 지금은 누구보다 든든하게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어서다. 

아들이 사진 촬영을 하는 동안 먼저 엄마에게 물었다. 그녀만이 답할 수 있는 이야기에 대해.



#1. 박해미의 홀로서기

전남편의 사고 이후 속죄의 의미로 오랜 공백기를 가졌습니다. 

1년 동안 일을 하지 않았어요. 일부러 모든 활동을 중단했어요.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그 아픔을 저도 같이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죄를 함께 짊어져야 한다고 여겼어요. 그래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지난 1년 동안은 저도 같이 힘겨워했어요. 그건 제가 당연히 짊어져야 할 몫이었기에 누구를 원망하기보다 스스로 참선하는 계기가 됐어요. 다시 한 번 제 안의 감정을 비워내고 다 내려놓으니 어느 순간 마음이 평온해지더라고요. 경제적으로는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치는 상황에서도요.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니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가 생기더군요. ‘힘들다’는 생각은 사치인 것 같아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20대 때의 초심으로 미래를 설계하기 시작했죠. 그러다 보니 두려움이 앞서기보다 열심히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이제는 아빠 몫까지 해야 하는 상황인데 힘들지 않나요. 

힘들 때도 있지만 저는 아들 앞에서 눈물을 보인 적이 없어요. 혼자 있을 때도 울지 않아요. 울어서 해결될 일이면 울지만, 울어봤자 해결되지 않을 일로는 안 울어요. 큰일이 닥치면 오히려 더 침착하고 냉정하게 생각하면서 감정을 누르고 이성에 호소하게 돼요. 

그런 경지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걸렸을 텐데요. 

사고가 난 후 처음 한두 달은 몹시 괴로웠고 힘들었는데 그러고만 있을 수는 없었어요. 제가 부양해야 할 자식이 있고, 눈앞에 마구 불어나는 빚이 있었거든요. 이걸 누가 해결해주나 싶어 차츰 냉정을 찾아갈 때 저를 캐스팅했던 뮤지컬 ‘오! 캐롤’(2018년 12월 22일~2019년 1월 20일 공연) 팀에서 연락이 왔어요. 제가 출연 결정을 번복하면 여러 사람이 힘들어진다며 다시 무대에 서야 한다고 설득하더군요. 무대 위에서 웃으며 노래하기가 정말 싫었지만 저로 인해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는 건 더 견딜 수 없었어요. 출연 약속을 지키는 것이 당연한 도리기도 했고요. 이왕 하는 거 잘하자, 하며 마음을 다잡았죠. 

살다 보면 방향키를 잃고 헤맬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해주는 좌우명이 있나요. 

‘항상 진실하자’요. 제 삶의 멘토는 엄마예요. 엄마는 저한테 “너무 넘치지도 말고, 오만하지 말라”는 말씀을 자주 하세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얘기를 귀담아듣지 않고 제 마음 가는 대로 행동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잔소리를 하신 적이 없어요. 제가 시행착오를 겪는 걸 계속 지켜보시다가 한마디씩 툭툭 던지시죠. 근데 그 한마디가 늘 저를 정신이 번쩍 들게 해요. 이번에는 “다 내려놔라. 다 비워라” 하셨어요. 저도 그럴 생각이었는데 엄마가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이게 진리지!’ 하게 되더군요. 

어머니와 함께 살고 계신가요. 

어머니는 캐나다에 계세요. 이민 가신 지는 20~30년 됐어요.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 엄마, 동생들과 매일 연락해요. 딸만 다섯인데 다들 의리가 있어요. 어릴 때부터 저는 막내 같은 큰딸이었어요. 차분하게 책만 보는 동생들과 달리 호기심이 너무 많아서 청개구리처럼 튀었거든요. 항상 매는 제가 제일 많이 맞았어요. 부모 입장에서 안 때릴 수가 없었을 거예요. 그렇게 맞으면서도 하고 싶은 걸 포기하지 못했거든요. 성인이 된 후에도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했고, 온갖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며 부모한테 통보만 하고 살았어요. 저를 보면서 부모님은 도를 닦았을 거예요. 동생들은 난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했을 것 같아요. “언니 보니 결혼 안 할래!” 하면서 혼자 사는 동생도 있어요. 

그동안 힘든 일을 다 견뎌냈을 것 같은데 이혼을 결정한 이유가 있나요. 

어떤 부부든 힘든 건 다 있어요. 서로 물고 빨고 하는 건 2~3년이면 끝이에요. 그 시기를 지나면 상대에게 소원해질 수밖에 없어요. 저 같은 경우는 일에 미쳐 있었어요. 그래서 (전남편은) 술에 의존하고 외부 친구들을 더 많이 만나는 것으로 외로움을 달래더라고요. 그걸 지켜보고 있었지만 다 큰 사람에게 잔소리한다고 고쳐지나요. 그러다 사고가 났는데 마지막 사건 처리할 때 너무 자기 생각만 하더라고요. 그 모습이 엄청 실망스러웠어요. 저 같으면 두말 않고 3년이든, 5년이든 죗값을 치르려고 했을 거예요. 안 그래도 아이 아빠니까 맞추며 살려고 노력했는데 더는 못 견디겠다 싶었어요. 만약 (전남편이) “내 잘못이 크다. 죗값을 달게 받겠다”고 했으면 이혼까지는 안 갔을 거예요. 한편으로 ‘내가 사랑했던 남잔데 왜 저렇게 됐지?’ 생각하면 내 잘못도 크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나도 죗값을 받아야지, 싶어 공백기를 가졌고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어요. 전 그 남자가 너무 안 됐어요. 

원만하게 합의 이혼했나요. 

(전남편은) 이혼을 안 하려고 했죠. 근데 제가 너무 완강하니까 맞춰줄 수밖에 없었죠. 성재하고도 상의해서 결정한 일이에요. 성재가 엄마 뜻대로 하라고 이야기해줬어요. 참 안타까워요. 아들은 (아빠가) 보고 싶대요. 근데 너무 밉대요. 아직 용서를 못 하는 거죠. 예전에는 전남편을 생각하면 안타까워서 눈물이 났는데 지금은 마음을 다잡아요. 

홀로서기를 시작하며 세상에 선보인 뮤지컬 ‘쏘 왓’은 어떤 작품인가요. 

성장기 청소년들의 성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사항이 사실은 원초적인 본능이거든요. 제 아들이 아직 사춘기다 보니 자식과 성에 대한 의문들, 또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뮤지컬로 표현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멀쩡한 직업과 외모를 가진 사람들도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키잖아요. 그런 면에서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요. 어떤 경우든 여자에게 상처 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사춘기’라는 작품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을 만들게 됐죠. 

오늘 보니 황성재 씨가 나이에 비해 듬직해요. ‘쏘 왓’의 주인공으로 성재 씨를 낙점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엄격한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거예요. 본인은 누구의 아들인 것을 달가워하지 않아요. 저 역시 아들보다 뛰어난 배우가 오길 바랐고요. 근데 춤 실력과 가창력을 갖추고 멜키오와 이미지가 흡사한 배우를 찾는 데 어려움이 있었어요. 꼭 의도한 건 아니지만 아들이 배역을 맡아 제작비가 절감됐고요. 다른 배우들과 달리 성재에겐 출연료를 안 주거든요. 남의 속도 모르면서 엄마가 하는 작품에 아들을 주인공으로 출연시켰다고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더라고요. 재벌 회장들도 자기 자식을 말단 직원부터 시킨다면서요. 근데 재벌 회장은 돈이라도 많잖아요. 저는 돈이 없어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매니저도 두지 않고 직접 몸으로 뛰는데 자식한테까지 어떻게 출연료를 주겠어요. 

매니저 없이 일하는 건 힘들지 않나요. 

제가 워낙 활동 반경이 넓고 지금은 무엇보다 긴축재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매니저를 쓸 여력도 없어요. 혼자 일하는 게 편하기도 하고요. 아들은 이렇게 혼자 모든 걸 다 하는 제가 걱정되는지 계속 매니저를 두라고 하지만요. 

9월 말 방송을 시작한 드라마 ‘사랑은 뷰티풀 인생은 원더풀’에도 출연 중인데, 그 작품에서 맡은 ‘홍화영’이 안하무인에 아들 바보 캐릭터더군요. 본인과 싱크로율은 어느 정도인가요. 

50%라고 생각해요.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은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니까요. 하지만 홍화영처럼 갑질을 하진 않아요. 저는 악역을 밉지 않게 표현하는 걸 잘해요. 연출자도 악역이면서 귀여운 면도 있고 다양한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를 찾다 보니 저밖에 떠오르지 않았대요. 악역이라고 너무 으르렁거리기만 하면 안 돼요. 깨갱 하는 모습을 보여야 연민의 정이 생겨요. 그게 다 테크닉이거든요. 근데 우리 아들은 100%래요. 연기가 아니라 생활이라고요. 그래서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연기하는 줄 아냐고 했더니 엄살 부린다고 놀리더라고요. 하하.

#2. 황성재의 성장통

가까이서 지켜본 황성재는 나이에 비해 어른스럽고 예의가 바른 청년이었다. 박해미가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동안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쏘 왓’에서 맡은 주인공 멜키오는 어떤 캐릭터인가요. 

17세의 고등학생이에요. 사회 규제와 억압에서 탈출하고 싶어하고 생각이 깊은 아이예요. 어른들이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알려주기보다 항상 돌려서 이야기하거나 포장해버리는 교육 방식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어떻게 하면 이 사회를 더 나아지게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죠. 

본인과 성향이 흡사한가요. 

많이 달라요. 저는 매사에 긍정적이거든요. 긍정 마인드를 가지면 인생을 살아가기가 훨씬 편하더라고요. 

사춘기가 지났다고 생각하나요. 

아직도 사춘기인 것 같긴 한데 중2 때는 정도가 심했어요. 그때 겉멋이 들어서 엄마가 때리려고 할 때 손목을 잡았어요. 그 바람에 엄마한테 더 맞아서 쌍코피가 터진 적도 있어요. 저는 사춘기가 건강한 성장을 위한 과도기라고 생각해요. 반항심이 커지긴 하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제가 중2병을 혹독하게 앓았지만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진 않았어요. 물론 부모님에게 대든 게 잘한 일은 아니지만 그때 쓸데없는 생각을 한 건 아니거든요. 

왜 반항을 심하게 했나요. 

만사에 짜증이 났어요. 짜증의 원인은 비만이었어요. 제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체중이 120kg이었어요. 엄마가 비만이라며 제게 너무 심한 인신공격을 해서 그 스트레스 때문에 더 많이 먹었던 기억이 나요. 그때는 기분이 상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은 자극이 되기도 했어요. 지금은 80kg의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거든요. 

40kg 감량 비결이 궁금해요. 

고1 때 지독하게 다이어트를 했어요. 3개월 동안 매일 한 끼만 먹었어요. 오후 2~3시에 현미 햇반 반 공기짜리와 닭가슴살 100g으로 때우며 버텼죠. 그리고 저녁에 운동한 후 물배를 채우고 잠자리에 들었어요. 그랬더니 엄마가 갑자기 태세를 전환해 “제발 좀 먹어라” 하다가 저와 함께 다이어트를 하셨죠. 

기사가 나가면 많은 분들이 따라 할 것 같아요. 

다른 분들에게 권하고 싶지는 않아요. 건강에 안 좋아요. 그렇게 살을 뺀 후 빈혈이 생겼거든요. 종합 비타민, 오메가3 같은 영양제와 다양한 채소류를 같이 섭취했어야 하는데 그걸 간과했어요. 

살을 빼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한림예고에 입학했는데 아이들이 너무 잘생긴 거예요. 다 걸어 다니는 모델 같았어요. 특히 모델과 학생들은 평균 키가 185cm가 넘어서 보고 있으면 입이 딱 벌어져요. 당시는 XXXL 사이즈를 입었는데 제 앞을 지나다니는 백마 탄 왕자님과 엄청 예쁜 애들을 보니 이러다간 여자 친구도 한 명 못 사귀겠구나, 싶었어요. 계속 비만인 채로 지내면 배우로서 입지도 좁아질 게 뻔했고요. 그런 위기감이 들어 절박한 심정으로 다이어트에 돌입했죠. 

고등학교 때 매일 다른 친구들보다 1시간 일찍 등교해 발성 연습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면서요. 

그때는 아침 7시 반까지 등교해 온몸에서 땀이 날 때까지 발성 연습을 해야 직성이 풀렸어요. 호흡을 가다듬고 수업에 들어가면 몸이 개운한데 그걸 안 하면 졸려서 못 버텨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연습한 것이 실력이 느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엄마의 뒤를 이어 뮤지컬 배우를 꿈꾸게 게 된 계기가 뭔가요. 

어릴 때부터 색소폰과 베이스 기타를 다루며 늘 음악을 가까이했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좋아해요. 체중이 120kg일 때도 그 몸으로 팝핀댄스를 췄거든요. 그 모든 걸 아우르는 것이 뮤지컬이라서 뮤지컬과가 있는 한림예고에 들어간 거예요. 한림예고가 저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예고거든요. 무엇보다 초등학교 때 관람한 엄마의 ‘캣츠’ 공연이 결정적인 동기를 부여했어요. 지금도 그때의 감동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찰 정도예요. 엄마가 그 공연에서 ‘메모리’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그 어린 나이에 눈물을 펑펑 흘렸어요. 너무 슬퍼서요. 그때 뮤지컬에 매료됐어요. 무대에 서면 늘 행복해요. 

엄마에게 닮고 싶은 점을 꼽는다면요. 

엄마가 올 초 ‘오! 캐롤’에 출연하실 때 공연을 보러 갔어요.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는데, 오프닝 무대에 엄마가 등장해 특유의 에너지로 그 큰 극장을 가득 채우셨어요. 그 아우라에 관객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어요. 그런 파워풀한 에너지와 연기나 노래할 때의 모습은 정말 찬사가 아깝지 않을 정도예요. 연습을 진짜 안 하시는데도 주어진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시거든요. 연기력과 가창력과 아우라는 정말 타고나신 것 같아요. 

공연을 하면서 엄마의 끼를 물려받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물려받은 게 전혀 없어요, 저는 노력파예요. 굳이 하나를 꼽으라면 고음을 남들보다 잘 내는 거랄까요. 음역대가 다른 남성에 비해 높은 편이에요. 엄마가 톤이 낮은 소프라노인데, 저도 톤이 가장 낮은 테너거나 가장 높은 바리톤인 것 같아요. 

현재 출연 중인 ‘쏘 왓’이 엄마가 만든 작품이라 오디션을 보는 게 부담이 됐을 법한데요. 

당연히 부담스러웠죠. 오디션을 보기 싫어서 끝까지 안 하겠다고 했어요. 이미 다른 뮤지컬의 오디션에 합격한 상태이기도 했고요. 근데 엄마가 계속 권유해 오디션을 봤는데 붙었어요. 합격하고 나서도 엄마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빡세게 연습했고요. 엄마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배우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요. 지금 저는 노 개런티로 출연 중이에요. 해미뮤지컬컴퍼니의 다른 일들까지 맡아 봉사 활동을 하다시피 하고 있어요. 너무 억울해요. 저는 계약서도 안 썼어요. 이게 제 운명인 것 같아요.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가장 바라는 점은 하나에만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공연이라는 시스템과 우리 가정이 돌아가려면 엄마가 일을 많이 하실 수밖에 없는 입장인 건 알지만 그러다 건강을 해칠까 걱정돼요. 집에 들어오시면 힘들어하시거든요. 매니저 없이 혼자 다 해내시는 모습이 멋져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해요. 엄마가 운전할 때마다 전화가 계속 오니까 안 받을 수가 없거든요. 그런 부분은 남의 도움을 받았으면 해요.

두 사람을 따로 인터뷰하고 나니 사춘기의 성장통을 건강하게 극복한 아들 황성재와 생애 가장 힘든 시간을 견뎌낸 엄마 박해미가 의기투합해 선보이는 뮤지컬 ‘쏘 왓’이 더욱 궁금해졌다. “이 작품을 어떤 사람이 보면 좋을 것 같으냐”고 묻자 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지만 자녀를 둔 부모나 청소년은 공감하는 부분이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사춘기 자녀와의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박해미는 ‘어릴 때부터 모든 걸 열어놓고 대화하는 소통 방식’을, 황성재는 ‘자녀의 이야기를 친구처럼 들어주며 공감하려는 노력’을 추천했다. 이런 두 사람은 10년 후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저는 무대 위에만 있으면 돼요. 그것만 바라요.”(황성재) 

“그때는 뮤지컬을 만들진 않고 우리 아들이 콘텐츠를 재생산하고 확대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계속 배우 생활을 하면서 동네 합창단을 지휘하고 있지 않을까요. 하하하.”(박해미)

사진 홍중식 기자 디자인 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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