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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동생 박보영의 성장기

EDITOR 김지은

입력 2018.09.13 17:00:02

158cm의 작은 체구지만 화면을 가득 채우는 연기력은 꾸준히 주연을 맡아온 그녀의 원동력이다. 아역 배우로 출발해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스타로 자리매김한 박보영을 만났다.
국민 여동생 박보영의 성장기
“저는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고 우유부단한 면도 있는데 승희는 그런 점에서 저와 많이 달라요. 자기 선택에 후회가 없고 자신의 생각과 의지대로 움직이는 사람. 그래서 더 멋있더라고요. 동경의 대상 같은 느낌이랄까요.”
 
박보영(28)이 주연한 영화 ‘너의 결혼식’이 8월 22일 개봉됐다. 이 영화는 배우 박보영과 김영광이 보여줄 케미스트리로 기대를 모은 작품이다. 두 사람은 4년 전 영화 ‘피끓는 청춘’에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연기 호흡을 보여준 바 있기 때문이다. 김영광은 ‘너의 결혼식’ 제작발표회에서 “박보영이 상대역이라는 점이 출연을 결정하는 데 100%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을 정도로 그녀에 대한 신뢰가 깊다. 박보영 역시 “김영광 씨 덕분에 어느 때보다 편안하게 연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고 만족감을 나타낸 바 있다. 

‘너의 결혼식’은 3초 만에 빠지는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승희’와 그녀만을 바라보는 ‘우연’이 어긋난 타이밍으로 서로에게 닿지 못하고 좌충우돌하는 과정을 담은 일종의 첫사랑 연대기다. 

두 배우는 작품에서 10대 시절부터 대학생, 취업준비생, 사회초년생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연기해냈다. 스토리도, 연기도 너무 현실적이어서 공감이 가는 영화다. 박보영 스스로도 “지금까지 제가 연기한 로맨스가 판타지에 가까웠다면 ‘너의 결혼식’은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어 출연 욕심을 냈다”고 털어놨다. 게다가 주인공 승희는 배우 박보영과 묘하게 닮은 듯하면서도 다른 인물이다. 승희가 사랑을 대하는 태도나 사랑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식이 평소 박보영이 마음 한편으로 동경하던 모습 그대로였다고 한다.


‘사랑’에 관해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국민 여동생 박보영의 성장기
박보영이 영화를 촬영하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승희가 우연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신이었다. 박보영은 ‘나는 네가 한 말 때문이 아니라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걸 못 잊는다’는 대사에 꽂혀 사랑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고 한다. 

“우연이 친구에게 하는 얘길 승희가 들었어요. 자신이 취업을 하지 못한 것이 승희 때문인 것만 같아 앞으로도 나쁜 일이 생기면 승희 탓을 하게 될 것 같다는 내용이었죠. 그 말을 듣고 승희는 이별을 결심하게 돼요. 신기하게도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여자들은 승희에게 공감하는데 남자들은 그게 뭐 대수라고 이별까지 생각하냐는 반응을 보이더군요.” 

박보영은 승희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자신 역시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이 들어 사람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와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고. 

“승희를 연기하면서 ‘아, 이런 걸 첫사랑이라고 하는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그러면서 ‘내게 첫사랑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을 수도 있겠다, 내가 지금까지 누군가를 좋아하고 만난 적이 있다고 해서 그게 첫사랑인 건 아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사연이 엄청 많은 이별을 했다거나, 

몇 날 며칠을 울고불며 식음을 전폐하고 그런 기억이 아직은 없어서 그런 거 같아요.”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데는 ‘조건’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박보영에게 사랑의 조건은 ‘시간’이었다. 오랜 시간 대화를 통해 자신과 잘 맞는 사람인지, 가치관은 올바른 사람인지, 취향이 비슷한 사람인지, 함께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사람인지,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사람인지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보는 식이다. 

“제게 사랑은 찰나에 빠져드는 것이 아닌, 서서히 물드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누군가에게 한눈에 반한 적은 없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금까지의 경험일 뿐 언젠가 제게도 영화 같은 사랑이 찾아올지 모르고요(웃음).”

사람들은 그녀에게 늘 새삼스레 나이를 되묻곤 한다. 딱히 나이를 숨겨온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배우 박보영은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온 것처럼 10년 전 영화 ‘과속스캔들’에서 철부지 미혼모를 연기하던 앳된 소녀의 모습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나름의 ‘변화’는 있었지만 거기에 ‘변신’이란 수식어까지 붙이기엔 무리가 있다. 여전히 사랑스럽고 귀엽다는 것은 그녀의 가장 큰 무기이자 핸디캡이다. 

“처음엔 왜 그런 모습으로만 봐주실까 하고 엄청 고민했어요.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었고, 그런 이유로 선택한 작품도 있었죠. 하지만 일을 하면서 깨달은 건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에요. 특히 배우는 하고 싶은 것만 고집하면 공백기가 너무 길어질 수도 있고, 그래서 오히려 일 욕심을 채울 수 없게 되기도 하더라고요. 이런 고민은 한두 해 안에 해결될 성격의 것은 아닌 듯해요. 그런 깨달음을 얻은 후에는 문제를 시간이 해결하도록 두고 제가 맞닥뜨리는 상황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됐죠.” 

데뷔 12년 차. 늘 대중에게 사랑받고 평가받는 삶을 살아왔기에 그녀는 오히려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잊고 산 적이 많다. 그 때문에 자신의 고민을 누군가에게 선뜻 털어놓지 못했다. 자신의 고민이 다른 사람에겐 ‘괜한 투정이나 ‘배부른 소리’로 들릴까 봐 속으로만 삼켰다. 

“어느 순간 제가 저를 미워하고 있더라고요. 스스로를 ‘난 이런 모습도 있어’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아, 나는 이런 게 잘못됐어’ ‘내가 이렇게 생긴 게 이상한 거야’ ‘이 부분이 뚱뚱한 거야’ ‘이런 발성이 문제야’라고 끊임없이 자책하면서 스스로를 못난이로 만들고 있더라고요. 실제로는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장점이 많은 사람일 수도 있는데 말이죠.” 

자신을 사랑하는 데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20대 후반의 박보영이 서른을 준비하는 시간은 이제야 스스로를 사랑하는 날들로 채워지는 중이다. 

“예전엔 인터뷰 공부를 엄청 많이 했어요.” 

사실 박보영과의 인터뷰는 물 흐르듯 순조로웠다. 그녀에게는 확실히 낯선 이에 대한 경계를 허물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런데 상대 배우들이 왜 그녀와 함께 연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어째서 그녀의 상대역이 된 배우들은 하나같이 물 만난 고기처럼 펄떡이고 반짝반짝 빛을 내는지 알 것 같다고 생각한 순간, 그녀는 마치 영화의 반전 같은 이야기를 ‘툭’ 하고 꺼냈다. 

“저 정말 말도 잘 못 하고, 툭하면 동문서답이었거든요. 인터뷰를 하기 전 미리 준비해둔 대답이 있는데 자꾸 예상에서 벗어난 질문들을 하시니까, 연습한 대로 답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질문에 대한 답과 가장 유사한 예상 답변을 얘기해버리기도 하고, 어떨 땐 너무 무섭고 긴장돼서 아예 질문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때도 있었어요.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혼날까 봐 다시 한 번 말해달란 소리도 못했죠. 사실 엄청 쫄보에 소심하기까지 해서 무대 공포증을 아직도 극복하지 못했어요. 카메라 앞에선 그나마 적응을 했지만요.” 

문득, 몇 해 전 영화제 시상식에서 유난히 떨리는 목소리로 큐 시트를 읽어나가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본인이 상을 받는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떨까 싶어 안쓰러우면서도 웃음이 났었다. 

“크랭크인 하는 날은 여전히 떨려요. 그런 날은 너무 긴장되고, 처음 호흡을 맞춰보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날이니까 그분들이 어떤 걸 좋아하실지,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이런저런 걱정에 숨이 멎을 것만 같아요.”


데뷔 12년 차, 연기에 대한 강박 내려놓는 중

국민 여동생 박보영의 성장기
그는 연기에 임할 때는 여전히 “하나도 여유가 없다”고 했다. 또 “작품을 하면서 연기가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면 초조함과 불안감에 사로잡히고, 예전만 못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 촬영 내내 헤어날 수 없이 힘들다”고도 털어놨다. ‘여유가 없다는 것’은 배우 박보영을 12년간 유령처럼 따라다닌 마음의 그림자 같은 것이었다. 

그녀가 강박에서 벗어나 안식을 찾은 것은 부모님이 계신 시골 농장에서였다. 마을 주민이라곤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 할머니 몇 분이 전부여서 정말 아무렇게나 입고 고무 장화를 신은 채 돌아다녀도 누구 하나 눈길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설마 하겠지만 정말 그가 누군지 아무도 몰라보는 마을이란다. 해가 지면 세상에 온통 빛이라곤 없는 듯 까만 어둠이 내려앉고 하늘엔 별이 쏟아질 듯 반짝인다. 지난여름엔 그곳 툇마루에 드러누워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자고, 농사를 지으며 한때를 보냈다. 물론 농사는 대실패였다. 텃밭에 상추를 잔뜩 심었는데 고라니가 내려와 다 먹어치워버렸다. 잠을 잘라 치면 모기장을 비집고 들어가야 하고, 아버지가 끓여 내주시지 않으면 따뜻한 물을 쓰는 것조차 불가능한 곳이지만 그녀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고 한다. 

“꿈을 실현한다는 건 꼭 무언가 거창한 것을 이뤄야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어느 부분에선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빨리 꿈을 이뤘다고 볼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매년 새로운 목표가 생기곤 해요. 한 해 한 해 그 목표를 이뤄나갈 수 있도록 스스로를 격려하고 대견해하기도 하죠. 대부분은 작품에 관한 것이었는데, 올해는 좀 달라요. 저를 많이 사랑하는 게 목표거든요. 덕분에 저를 좀 더 잘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실제로 만났을 때 더 예쁘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배우 박보영은 정말 그런 사람이었다. 사람의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것은 외면을 빛나게 하는 내면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되는 날이었다.


기획 김지영 기자 사진 지호영 기자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필름케이


여성동아 2018년 9월 6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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