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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actor #interview

조진웅의 위트

EDITOR 김지영 기자

2018. 06. 11

카리스마로 주변을 압도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위트로 상대를 쥐락펴락했다. 범죄 스릴러 독전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영화로 만날 수 없는 그의 스크린 밖 일상까지 궁금하게 했다.

연극 무대에서 연기 내공을 다진 후 스크린으로 진출한 배우는 2004년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로 데뷔하며 크레딧에 부친의 함자를 올렸다. 외모와 잘 어울리고 힘이 넘치는 그 이름 덕일까. 그는 작은 배역으로도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우레 진(震), 수컷 웅(雄) 자를 쓰는 조진웅(42·본명 조원준) 얘기다. 

2016년에는 영화 ‘아가씨’와 드라마 ‘시그널’로 연예계 최강의 신 스틸러를 넘어 명실상부한 주연 배우로 거듭났다. 5월 22일 또 한 편의 주연작을 스크린에 내건 조진웅을 개봉 전에 만났다. 두기봉 감독의 홍콩 영화 ‘마약전쟁’을 모티프로 한 범죄 스릴러물 ‘독전’이 그것. 의문의 폭발 사고 후, 오랫동안 마약 조직을 추적해온 형사 원호로 등장하는 그는 조직의 후견인 오연옥(김성령)과 버림받은 조직원 락(류준열)의 도움으로 숨겨진 보스 ‘이 선생’을 쫓는다. 

‘시그널’과 2017년 우정 출연한 ‘범죄도시’에 이어 또다시 형사 역을 맡았네요. 

사실 저는 마냥 뛰어다니면 되는 영화인 줄 알았어요. 아무 생각 없이 쉽게 본 거죠. 영화 ‘아가씨’ 제작팀이 만드는 영화여서 일단 믿음이 갔고 김성령, 차승원, 김주혁, 류준열 씨와의 새로운 작업에 대한 기대감과 영화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를 함께 찍은 박해준 씨를 오랜만에 다시 만날 생각으로 들떠 있었죠. ‘이 멤버가 모이면 되게 재미있겠다. 다른 캐릭터들에 묻어갈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그렇게 생각했다가 된통 당했어요. 

영화에선 살이 많이 빠진 모습이더군요. 

본래 몸무게보다 10kg 이상 빠진 것 같아요. 일부러 다이어트를 한 건 아니에요. 한여름에 영화 촬영을 했는데 온몸이 땀으로 젖어 메이크업이 녹아내릴 정도였어요. 그럼에도 막 뛰어다녀야 하는 설정이라서 체력을 길러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더구나 원호는 넉살 좋고 후덕한 이미지와 안 맞을 것 같았어요. 샤프한 외형을 만들려고 액션 스쿨에 자발적으로 찾아가 감독에게 “저 좀 죽여주세요” 했죠. 하하하. 제가 굉장히 수동적인 인물이거든요. 집에 있으면 문밖에 나가는 것도 싫어서 웬만하면 사람들을 안으로 불러들여요. 유해진 선배는 산에 가고 매일 뛰는 걸 좋아하세요. 그게 하나도 안 부러워요. 저는 아예 그런 걸 못하니까요(웃음). 액션 스쿨 감독에게 정말 고마운 게, 하루에 서너 시간 자면서 모든 과정을 저와 함께했어요. 5개월은 그렇게 하고, 5개월은 촬영장 근처 헬스클럽에서 감독에게 배운 커리큘럼대로 운동을 했죠. 

살 빠졌을 때 되게 샤프하던데 다시 원상태로 복귀하셨네요(웃음). 

하하하. 살 빠졌을 때가 더 보기 좋으셨나요? 이게 제 본모습이에요. 10개월간 빡세게 운동한 걸로 족해요. 



자신의 영화를 본 소감은요. 

‘영화에서 얘기할 지점들은 짚었다. 말은 된다’는 생각은 드는데 관객들이 어떻게 보실지가 중요하죠. 저는 아직 “재밌게 봐주세요”라는 말을 못 하겠어요. 어떤 장면은 짜고, 어떤 장면은 싱겁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직은 완벽하게 자신 있는 작품이 없었어요. 

마음에 쏙 드는 장면이 없었나요. 

있었죠. 근데 편집 과정에서 잘렸어요. 엔딩을 살려야 해서 그 부분을 들어냈죠. 이해영 감독에게 간청했어요. 제 소장용으로라도 삭제된 부분을 붙여달라고요(웃음). 

원작을 참고했나요. 

처음엔 원작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원작을 봐야 하는지 물었더니 감독이 “우린 모티프만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안 봐도 될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류준열 씨와의 남남 케미가 돋보였어요. 촬영장에서 호흡이 잘 맞았나 봐요. 

준열이가 하는 짓이 예뻐요. 이번 작업을 함께하기 전에는 팬들을 몰고 다니는 아이돌 스타일인 줄 알았는데 건강한 에너지가 넘치더라고요. 저는 성질이 급하면서도 능동적이지 못한데 그 친구는 지치지 않아요. 같이 밤잠을 못 자도 혼자 멀쩡해요. 아침 일찍 조기 축구를 다녀오고 현장에서도 팔랑거리며 뛰어다니죠. 준열이는 촬영장에 축구복을 입고 오는 일도 많아요. 되게 유쾌한 타입이에요. 컷 하면 장난을 치지만 슛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진지해지고요. 한번은 호언장담을 하더라고요. 자기는 지금까지 “슛 들어간 뒤 웃은 적이 없다. 웃어서 NG 낸 적이 없다”고요. 근데 제가 준열이를 웃겼거든요. NG를 내더라고요. 하하하. 극에서 제가 의도치 않게 강도 높은 가학을 해도 이 친구에게 그런 여유로운 면이 있기 때문에 편안하게 촬영할 수 있었어요. 또 슛 들어가면 그 친구는 자기를 응시하게끔 만드는 에너지가 있으니까 여러모로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웠어요. 아마 그 친구도 대사가 많지 않아서 편했을 거예요. 하하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좀 들려주세요. 

마약을 들이마시는 장면에서 소품으로 소금을 갖다 놨어요. 소금 입자가 빛을 받으면 마약 입자랑 비슷해 보인대요. 그건 전시용이고 실제 흡입하는 장면을 찍을 땐 포카리스웨트나 코담배를 사용하는데, 감독님이 컷을 안 하기에 소금을 코로 쓰윽 흡입했다가 죽는 줄 알았어요. 바다에 거꾸로 처박힌 느낌이었어요. 입자들이 머리 뒤에 박혀 있는 것 같다고 할까요. 아무리 세수하고 코를 풀어도 그 느낌이 가시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거울에 비친 제 눈을 봤는데 완전히 맛이 간 상태였어요. 이걸 놓치면 안 되겠더라고요. 감독에게 달려가 이 눈 너무 좋지 않냐, 원상태로 돌아오기 전에 빨리 찍자고 했죠. 마약을 과다 섭취하면 사망할 수도 있는데 그런 긴급 상황을 보여주기에 더없이 좋은 눈이었죠. 정말 분장을 하나도 안 하고 실감 나게 찍었죠. 그 상태로 다른 각도에서 네 번을 찍었는데 더는 도무지 못 하겠더라고요. 소품 담당하는 친구가 미안해 어쩔 줄 모르더라고요. “덕분에 좋은 장면 건졌어. 고마워” 그랬죠(웃음). 

삶을 지탱하는 키워드가 뭔가요. 

제겐 사람이 전부인 것 같아요. 항상 제 곁에 있는 와이프, 같이 작업하는 동료들이 그런 사람이죠. 그들이 있어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하는 영화도 사람이 만드는 거예요. 영화는 작품에 대한 이해와 정서가 통하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야 시너지가 커지더라고요. 사람들과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재미있어요. 비록 소금 흡입 같은 괴로운 일을 직접 겪어야 하더라도 작품을 위해 필요하다면 감수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조진웅은 아내 김민아 씨와 7년 연애 끝에 2013년 결혼했다. 6세 연하인 김씨는 원래 그에게 연기 지도를 받던 제자였다.) 

아내는 조진웅 씨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더불어 행복하고 싶고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내 편이라고 할까요. 아내는 집안의 대소사와 경제적인 부분을 관장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죠. 제가 장남이거든요. 아내도 장녀인데 저보다 확실히 멘탈이 강해요. 제가 어떤 문제로 전전긍긍하면 “여기, 당신 편 하나 있어. 쫄지 마!” 그래요. 하하하. 

최고의 신 스틸러에서 이제 주연 배우로 자리매김했어요. 10년 뒤에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글쎄요. 그렇게 멀리까지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그때도 지금처럼 좋은 작업을 찾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극에서 원호는 실체를 알 수 없는 이 선생을 잡으려고 달려가요. 지금은 배우로서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나요. 

(5초쯤 생각하다가) 지금도 머뭇거려지네요. ‘독전’의 엔딩 신을 찍을 때처럼요.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은데 어떤 단어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요. 성숙해지기까지 아직 나이가 덜 차서 그런 것 같아요. 지금은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어요. 

‘독전’의 엔딩은 열린 결말이다. 배우들과 감독이 엔딩 신 촬영 현장 노르웨이에서 아이디어를 짜내 즉석으로 상황을 설정하고 대사를 만들었다. 처음부터 짜릿한 스릴과 반전이 이어지는 범죄 스럴러 장르였던 영화는 그로 인해 누아르 영화 같은 느낌으로 마무리된다. 조진웅은 왜 노르웨이까지 달려갔을까. 이해영 감독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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