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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star #interview

유리정원에서 나온 문근영

editor 김지영 기자

2017. 12. 21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항상 멋있고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는 신념은 문근영을 오랫동안 가둬온 유리정원이었다. 올 들어 네 번의 수술 끝에 건강을 되찾은 그는 이제 스스로 쳐놓은 울타리를 뛰어 넘었다고 고백했다.

배우 문근영(30)을 떠올리면 2000년 ‘가을동화’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국민 여동생’으로 불리던, 청초한 소녀 시절의 모습이 먼저 아른거렸다. 여전히 앳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마음의 키가 훌쩍 자란 서른 살의 그를 마주하기 전까지는. 

영화 ‘유리정원’의 개봉(10월 25일)을 앞두고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의 얼굴에는 설렘 반, 긴장 반의 감정이 흐르고 있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던‘유리정원’은 숲속 유리정원에서 홀로 엽록체를 이용해 인공혈액을 연구하는 과학도 재연(문근영)과 재연을 훔쳐보며 초록 피가 흐르는 여인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무명작가 지훈(김태훈)이 엮어가는 미스터리 영화다. 이미 1년 6개월 전 영화 촬영이 끝나 개봉을 기다리던 지난 3월초, 그는 오른팔에서 느껴지는 갑작스러운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급성구획증후군(근육과 신경조직으로의 혈류가 일정수준 이하로 감소될 때 생기는 질환으로 괴사, 마비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이라는 진단을 받은 바 있다. 이 때문에 연극‘로미오와 줄리엣’의 지방 투어 일정을 취소하고 4회에 걸쳐 수술을 받았다. 그에게 경과를 물으니 “많이 좋아졌어요. 완치됐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예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건강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요.
최근까지 운동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어서 아무것도 못 하다가 얼마 전부터 가벼운 산책을 시작했어요. 

‘유리정원’을 재미있게 봤습니다. 이 영화에 출연한 동기가 뭔가요.
시나리오가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어요. 영화를 관통하는 독특한 분위기와 재연의 캐릭터도 흥미로웠어요. 재연이 어떤 상처를 받아 세상을 등지게 됐는지, 왜 하필 숲을 선택했는지, 유리정원에서 살게 된 연유가 뭔지도 궁금했고요. 그런 호기심이 영화에 출연하도록 저를 이끌었죠.

재연과의 싱크로율은 어느 정도였나요.
처음엔 저랑 닮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촬영이 끝난 뒤에는 제가 재연 같고, 재연이 저 같아서 뭐가 다른 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냥 제 자신을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머리로 그린 캐릭터를 몸에 담고 마음에 싣다 보면 어느 순간 구분이 안 되는 지점에 다다르게 되는 것 같아요.



배우 이병헌 씨는 모든 경험이 배우에게 좋은 자양분이 된다고 말하더군요. 정말 그런가요.
경험이 주는 힘은 엄청나지만,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그걸 받아들이고 발전시키는 정도는 사람마다 달라요. 그래서 어떤 경험을 하든 진지하게 돌아보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러려고 노력해요. 

올해 병치레를 하고 나서도 자신을 돌아봤나요.
그 일에 관한 생각 자체를 안 하려고 했어요. 건강 회복에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서요. ‘이참에 몸도, 마음도건강해져야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예전에는 ‘멋있게, 부끄럽지 않게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가짐을 늘 갖고 있었는데 그런 생각이 저를 더 괴롭히는 거더라고요. 지금은 집착하지 않으려고 해요.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편인가요.
시선을 많이 받는 직업이다 보니 의식하지 않을 순 없어요.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해도 안 될 때가 있거든요. 그렇다고 외출을 삼갈 수도 없어서 언행에 더 신중해진 면도 있는데 그렇게 살아온 시간이 억울하거나 후회되진 않아요.

‘가을동화’에서 아역을 너무 잘해서 대중이 거는 기대치가 항상 높은 것 같아요. 그로 인한 부담은 없나요.
저에 대한 기대가 저를 발전시키는 힘이 되는 거니까 부담이 되더라도 그게 힘들진 않아요. 오히려 그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해서 오는 괴로움이 더 크죠. 왜 난 이것밖에 안 될까, 싶거든요. 

어릴 때부터 기부를 많이 해서 ‘기부 천사’ ‘개념 배우’로 불렸어요.
그런 말을 듣는 게 부담스러웠고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드러내지 않고 기부하는 분도 많은데, 대단한 일들로 여겨서요. 저는 그저 좋은 배우이길 바라요. 저란 사람이 어떤지 드러나는게 조금 무서워요. 작품 속의 저는 실제 제가 아니니까 연기로 표현하는 건 재미있지만 인간 문근영을 온전히 보여주는 건 겁나요. 

인간 문근영을 스스로 평가한다면요.
자신감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과하게 좋은 평을 받는 것도, 안 좋은 지적을 받는 것도 저를 힘들게 하거든요. 그런 평가에 상처 받기도 하고, 위축될 때도 있고요. 

마음이 끌리는 이성을 만나면 어떻게 하나요. 
인연을 쉽게 맺는 편은 아니지만 이성이든, 동성이든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되게 적극적이에요.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시간을 두고 지켜봐요. 교제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죠. 

10대, 20대, 30대 연기는 다른가요.
예민하게 그 차이를 느끼진 못하지만, 연기는 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져요. 삶이 복잡하다는 것도 알게 되고, 배우로서의 부족함을 더 많이 인지하게 되고, 신경 쓸 부분도 늘어나서 그런 것 같아요. 연기 욕심이 많아서 그렇다는 얘기도 하던데, 제가 편하자고 고민해야 할 부분을 무시하는 건 더 못하겠어요. 

다작을 하는 배우는 아닌 것 같아요.
한 해 세 작품을 한 적도 있는데 후유증이 너무 크더라고요. 아무런 충전 없이 제 에너지를 다 써버린 느낌이었어요. 다작을 하려면 체력이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써야 하는데 그런면에서 서툴거든요. 그러면서 깨달았죠. 제게는 충분한 충전이 필요하다는 걸요. 

충전 기간에는 뭘 하나요.
생각을 많이 해요. 자연을 보고, 음악을 들으면서요. 뜨개질도 즐기고요. 그것도 지겨우면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요. 활동적인 편이라 레포츠도 좋아해요. 그러다 보면 충전이 돼요. 

생각을 많이 하는 이유는요.
연기는 의외성에서 나오는 게 많아요. 평소 생각과 고민을 많이 해둬야 온전히 의외성에 기대지 않을 수 있죠. 촬영 현장에서 감정에 깊이 빠져들 수도 있고요. 

판에 박힌 캐릭터를 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작품 선택의 기준이 뭔가요.
뻔한 건 재미없어요. 뻔한 캐릭터도 뻔하지 않게 연기할 수 있는 포인트가 생기면 작품에 도전하고요. 그렇다고 독특한 캐릭터만 고집하는 건 아니에요. 혼자 가만히 감정 정리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처음에는 흥미롭지 않았어도 캐릭터를 표현하면서 매력을 느끼기도 하거든요. 

도전을 좋아하나요.
새로운 시도나 모험을 좋아해요. 어릴 적 꿈이 모험가였어요(웃음). 

다음에 도전하고 싶은 작품은요.
따뜻함이 가득한 영화를 하고 싶어요. ‘유리정원’의 신수원 감독님이 추천한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영화처럼요. 슬프고 아픈 내용인데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작품이었어요. 

닮고 싶은 롤 모델이 있나요.
영화 ‘밀양’의 전도연 선배님요. 그 작품에서 선배님의 연기가 엄청 강렬해 뇌리에 박혔어요.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 뭘 하고 있을까요.
죽는 순간 가장 아쉬운 게 뭘까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세상에는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게 너무도 많은데 그걸 경험하지 못하고 세상을 뜨면 되게 속상할 것 같더라고요. 여한이 남지 않도록 여행가가 되어 지구촌 구석구석을 다니며 세상 구경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을 것 같아요.


designer 최정미
사진제공 리틀빅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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