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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그녀의 명품 연기

욕망의 불꽃 다 태운 신은경에게 남은 것은…

글·정혜연 기자 사진·장승윤 기자

2011. 05. 17

연기자라면 누구나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명작에 출연하길 원한다. 평생 그런 작품을 만나지 못하는 이도 있고, 몇 차례 그 기회를 잡는 이도 있다. 신은경은 후자에 속하는 복 받은 배우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욕망의 불꽃’은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으로 호평을 받았고, 그 중심에 신은경이 있었다.

욕망의 불꽃 다 태운 신은경에게 남은 것은…


매주 토·일요일 밤 10시경이면 표독스런 눈빛과 묘한 웃음으로 악녀 본성을 드러냈던 신은경(38). 드라마 ‘욕망의 불꽃’은 끝났지만 주인공 윤나영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지난해 10월 시작해 5개월 동안 재벌가의 숨 막히는 암투와 한 여자의 극에 치달은 욕망을 그린 이 작품은 호평과 비판을 동시에 받으며 숱한 화제를 낳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종방연에서 만난 신은경은 이 작품을 자신의 인생에서 잊지 못할 소중한 작품으로 꼽았다.
“아직까지도 윤나영을 떠나보내기가 힘들어요. 배우들은 자기 캐릭터에 집중해서 연기하다 보면 어느 순간 빙의랄까 완전히 그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이번 작품은 특히 그런 순간이 많아 인간 신은경은 완전히 잊고 살았을 정도예요. 첫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대본을 보면서 ‘이렇게 격정적인 작품의 주연을 맡았으니 항상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일해보자’라고 독하게 마음먹었는데, 촬영하면서 힘든 적도 많았지만 그 덕분에 정신력으로 버텨낼 수 있었어요.”
홀가분한 마음으로 웃음 짓는 신은경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지만 드라마 시작 전보다 눈에 띄게 체중이 줄어든 모습이었다. 주인공 윤나영의 고향인 울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장면이 절반을 넘었던 탓에 서울과 울산을 오가야 했고, 가을에 시작해 한겨울 내내 촬영한 터라 살을 에는 추위와 싸워야 했다. 또한 몸을 사리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동상에 걸려 지금까지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드라마 중반부 때였나, 손끝이 계속 아픈 거예요. 맞은 적도 없고 부딪힌 적도 없는데 이상하다 싶어 병원을 찾았어요. 의사가 동상이라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증상이라 놀랐어요. 보통 차가운 물에 손을 오래 담그고 있거나 하면 동상에 걸리잖아요. 제 경우에는 추운 날씨에 바깥에 오래 있다 보니 심장에서 피를 돌게 하는 기능에 이상이 생겨 손끝이 저릿저릿한 거라고 설명하더군요. 촬영이 끝난 지 꽤 됐는데 아직까지도 증세가 남아 한동안 푹 쉬어야 할 것 같아요.”
몸이 힘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실신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촬영하면서 밥을 제일 잘 챙겨 먹은 작품이 ‘욕망의 불꽃’이다. 특히 울산 촬영장 인근 함바집은 잊을 수가 없다”며 ‘밥심’으로 버텼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일까.
“육체적으로 힘든 것보다 연기를 하는 데 힘든 점이 많았어요. 촬영 내내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건 ‘어떻게 하면 윤나영을 좀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어요. 감정의 기복이 심한 캐릭터였는데 한 장면에도 감정이 몇 번씩 변해서 따라가기 힘들기도 했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게 인간이더라고요. 슬픈 순간에도 불현듯 기뻤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기쁜 순간에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인간의 자연스러운 일면인데 그런 감정의 기복을 매번 연기해야 하는 것이 벅찼어요. 마음을 비우면 편히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연기에 대한 욕심이 커서 더 힘들었다고 생각해요.”

오늘을 마지막인 것처럼, 드라마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욕망의 불꽃 다 태운 신은경에게 남은 것은…

3월 말 드라마 ‘욕망의 불꽃’ 종방연에 모인 출연진. 왼쪽부터 이효춘, 조민기, 신은경, 김희정, 조성하.



신은경은 이번 작품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라고 재차 말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함께 출연한 배우들과 이렇게 정이 많이 들기는 처음이라고. 이효춘과는 신은경이 고등학교 3학년일 때 출연한 작품에서 모녀로 등장했는데 20년이 흐른 뒤 이번에는 시어머니와 며느리로 만나 더욱 가까워졌고, 남편 역을 맡은 조민기와는 부딪치는 장면이 많아 오히려 친해졌다. 신은경은 또 아들과 딸로 나온 유승호, 서우와도 친근한 사이로 발전해 이번 작품을 하면서 촬영 현장으로 가는 길이 즐거웠다고 한다.
“드라마 끝나고도 각각 세 번씩 따로 만나 밥 먹자고 했을 만큼 헤어지는 게 아쉽더라고요. 특히 이순재 선생님은 각별하게 느껴져요. ‘엄마가 뿔났다’에서 할아버지로 출연하셨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아버지로 만나니 더 반가웠죠. 후반부로 갈수록 감정이 격해지는 부분이 많아 이순재 선생님께서 조언도 많이 해주셨어요. 마지막에 이순재 선생님과 대화를 하며 숨겨왔던 비밀을 폭로하고 해묵은 감정을 해소하는 장면을 찍으면서 많은 걸 배웠어요. 장면이 길고 한 번에 가야 하는 데다 대사도 많아서 몇 번씩 NG를 냈는데 그때마다 ‘괜찮다’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끔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촬영에만 몰두하던 신은경은 예상치 못하게 드라마 종영을 한 달 앞두고 소송에 휘말렸다. 한 대부업체로부터 2억원을 갚지 않았다며 피소를 당한 것. 4년 전 이혼한 남편이 소속사 대표이던 시절 두 사람의 이름으로 돈을 빌렸는데, 이를 갚지 못한 전 남편은 지난 2월 사기 혐의가 인정돼 법원으로부터 구속 판결을 받아 현재 수감 중이다. 신은경도 이 중 일부 금액에 대한 변제 의무가 있어 소송을 피할 수 없는 상태였다. 소송에 대해 묻자 그는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소송은 다 저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가려서 맞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피할 생각도 없고 다 제 일이니까 하나씩 차근히 처리해나갈 거예요.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건 그저 신은경이란 사람을 믿어주길 바란다는 것뿐이에요. 저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닙니다.”
인터뷰가 있은 후 신은경은 소송에서 패소했다. 법원은 신은경에게 대부업자가 빌려준 금액 중 3천4백여 만원을 갚으라고 판결했다.
그에게는 또 하나의 아픔이 있다. 2004년 낳은 아들이 뇌수종을 앓고 있는 것. 2008년 아침드라마 ‘하얀 거짓말’ 제작보고회 당시 어렵게 그 사실을 고백한 신은경은 이후 아들에 대해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어렵사리 아들의 상태를 묻자 그는 “아들과 관련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그것만큼은 정말 아픈 부분이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 이해해달라”고 답했다.
한겨울 고행과 같았던 촬영을 마친 신은경은 모든 걸 잊고 휴식을 취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따뜻한 나라로 가서 푹 쉬고 싶어요. 담당 의사도 동상 후유증을 없애려면 따뜻한 곳에서 피를 돌게 하라고 했거든요. 그리고 그동안 촬영하느라 못 만난 지인들과 술 한잔 기울이고 싶네요. 갑자기 드라마 속 대사가 떠올라요. 윤나영이 아들에게 해준 말인데 ‘남들처럼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살면 꿈을 이룰 수 있겠냐’는 것이었어요. 그 대사 때문에 ‘오늘을 마지막인 것처럼 살자’는 생각이 들었죠. 기억 남는 대사가 많은데 이 대사만큼은 오래도록 가슴속에 남겨두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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