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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정의 JAZZ&FRIENDS

닿을 수 없는 그리움에 순정을 바치다

글 · 김명희 기자 | 사진 · 조영철 기자, 민영주포토 JK 제공

입력 2015.07.16 14:29:00

흑인이 만들고 백인이 키운 음악, 재즈가 한국에서 대중화한 데는 ‘한국 재즈의 대모’라 불리는 윤희정의 지분도 적지 않다. 그 공을 인정받아 최근 2015 럭셔리 브랜드 모델 시상식에서 공연예술 대상을 받은 그녀의 재즈를 향한 꽃 같은 순정과 탱크 같은 열정.
윤희정의 JAZZ&FRIENDS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재즈 마니아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젊은 시절 ‘피터 캣’이라는 재즈 바를 운영했고, 무엇보다 여러 소설과 에세이에서 재즈에 대한 편애를 공공연하게 드러내기도 했던 그는 “내게 있어 재즈 레코드 한 장 한 장은 보물이었으며,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귀중한 입장권 같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재즈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입장권이라면 하루키는 자신의 작품을 읽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그 티켓을 공중에 살포한 사람쯤 될 것이다.

윤희정(62)은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그 문 앞에 서서 망설이는 이들에게 재즈의 맛을 살짝 보여주고는 결국은 사랑에 빠지고야 말게 만드는 인물이다. 1997년부터 2백50여 명의 정 · 재계 인사와 스타들에게 재즈를 가르쳐 ‘윤희정 · 프렌즈’라는 타이틀로 정동극장과 재즈 클럽 빅애플, 문화일보홀에서 2011년까지 200회 공연을 펼쳤으며, 이를 마무리하고는 ‘이 노래, 아세요?’라는 책을 펴내 베스트셀러에 올려놓았다. 2013년부터는 재즈를 통한 힐링을 테마로 ‘재즈 프렌즈 파티’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빅쇼를 열고 있다. 2001년 워커힐 호텔에서 시작한 이 공연은 5년 전부터 조선호텔로 자리를 옮겨 ‘재즈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올해는 12월 21일 · 22일에 공연될 예정이다. 그녀가 국내에서 재즈를 대중화한 대표적인 인물이라는 점에 딴죽을 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5월 말 2015 럭셔리 브랜드 모델 시상식에서 공연예술 대상을 수상했다. 시상식 며칠 후 윤희정과 마주 앉았다.

“지금껏 재즈에 빠져 살았는데, 그 마음 변치 말라고 주는 상 같아요. 재즈가 원래 그래요. 일주일 전까지 같이 트럼펫을 풀던 폴이 오늘 갑자기 안 보여서 ‘폴 어디 갔니?’라고 물어보면, ‘어제 죽었어요’ 하는 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영원한 잡(일)을 갖는 거죠. 재즈의 여왕이라 불리는 엘라 피츠제럴드도 녹내장에 말년에는 당뇨로 다리까지 절단했지만 그 몸으로 끝까지 노래를 불렀어요.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어요.”

원조 오디션 스타에서 재즈 대모 되기까지

요즘 노래 좀 부른다는 사람들이 ‘슈퍼스타K’나 ‘K팝스타’ 같은 프로그램에 나가는 것처럼, 1970년대에 노래 깨나 한다는 젊은이들에겐 ‘KBS배 쟁탈 전국노래자랑’이 꿈의 무대였다.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이 심사를 하는 이 대회 우승자에게는 엄청난 상품과 함께 KBS 전속 가수의 특전이 주어졌는데, 그 첫 회(1971) 그랑프리 수상자가 윤희정이다. 중 · 고등학교 6년 동안 음악반장을 지내며, 노래 잘한다는 칭찬을 달고 지냈던 그녀는 이 일로 하루아침에 전국구 스타가 됐다.



“다음 날 아침에 보니까 잡지 가판대에 내 얼굴이 쫙 깔려 있더라고요. 당황스러웠지만 싫지는 않았어요. 부상으로 받은 TV며 전축, 냉장고를 트럭에 바리바리 싣고 고향인 인천으로 내려갔더니, 마침 서울대 법대에 다니던 오빠가 고등고시에 최연소로 합격해 집안이 온통 잔칫집 같았어요. 그 분위기를 틈타 아버지께 가수가 되겠다고 했더니, 우리 집안에 딴따라가 웬말이냐며 펄쩍 뛰셨죠.”

평안도 출신인 그의 아버지는 6 · 25전쟁 때 월남해 인천에서 전자제품 판매점을 꽤 크게 하고 있었는데, 그 시절 피란 내려와 온갖 고생 끝에 이남에 자리 잡은 이북 사람들이 그렇듯 자녀들에 대한 사랑과 교육열이 대단했다. 6남매 중 다른 형제들은 이런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해 모두 공부에서 두각을 드러냈고, 장성해서는 모두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책상머리에 앉아 공부만 하는 다른 형제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공부보다는 노래가 좋았다. 이 또한 아버지로부터 울림통이 큰 성대와 엔터테이너 기질을 물려받은 덕분이다. 기타를 세 번이나 부쉈을 정도로 극심했던 아버지의 반대는, 고등고시에 합격한 오빠의 설득으로 가까스로 극복했다. 이렇게 해서 스무 살에 ‘세노야’라는 음반을 내고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한 그녀가 재즈와 인연을 맺은 건, 그 후로도 20년이나 지난 마흔 무렵이 돼서였다.

“20대 중반에 결혼해 아이들을 낳아 키우면서 한동안은 음악을 못했고, 그 후로는 가스펠을 부르며 해외 선교를 많이 다녔어요. 그런데 왠지 공허했어요. 뭔가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손에 잘 잡히지 않는 기분이었죠. 그때 어떤 분이 저를 이판근 선생에게 소개시켜주더군요. 선생님 댁에 들어서니 도도 아니고 레도 아닌 이상한 사운드가 들리는데, 가슴이 막 뛰는 게 ‘그동안 내가 찾아 헤맸던 게 바로 이거구나’ 싶더군요.”

이판근 선생은 한국 재즈계의 선구자로 불리는 이론가이자 작곡가다. 정원영 · 김광민 · 이정식 · 강태환 등 숱한 뮤지션들이 그에게서 배워 각자의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윤희정이 찾아가자 이판근 선생의 첫마디는 “부잣집 안주인처럼 생긴 사람이 왜 배고프고 고생스러운 재즈를 하려고 해?”였다. 뜻하지 않은 냉대에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던 윤희정은 여기에 자극을 받아 재즈를 시작한 이후 15년 동안 연습을 걸러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렇게 해도 음악이 나에게 착 달라붙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어요. 선생님께 15년을 배웠지만 5년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했고, 조금 알아들은 게 10년이에요. 저는 지금도 제가 재즈를 잘하는 가수라고는 생각지 않아요. 재즈를 알면서 짝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가슴이 뛰었고, 잘하고 싶어졌지만 능력이 부족했고, 늘 너무 어려웠어요. 어느 날은 이제 좀 알 것 같다 싶게 다가온 듯하다가도, 다음 날이 되면 저만큼 멀어져 있었죠. 포기하려고 하면, 거짓말처럼 제 몸에 음악이 들어와 있기도 하고…. 그래서 저는 재즈를 열정이 아닌 연민이라고 표현해요.”

열정은 시간이 지나면 식을 수도 있지만, 연민은 식지 않는다. 그녀에게 재즈란 미워하고 싶어도 미워할 수 없는, 하지만 다가가면 그만큼 더 멀어지는 아득한 그리움 같은 것이다.

“그건 아마 재즈를 하는 뮤지션들이 다 똑같이 느끼는 감정일 거예요. 평생 만족할 수도 없고, 듣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죠. 엘라 피츠제럴드와 30년 동안 호흡을 맞춘 피아니스트 토미 플라나건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디바는 누구냐’고 묻자 그가 ‘재즈는 빌리(빌리 홀리데이)지. 빌리는 영혼을 울리잖아’ 그랬다잖아요.”

재즈가 만들어준 인연

그녀가 한창 재즈의 묘미를 알아가던 1997년 서울 덕수궁길에 있는 정동극장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한 달에 한 번 재즈 공연을 하고, 수익금의 60%를 가져가는 거였다. 연인을 사랑하지만 거절당할 게 두려워 고백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망설이다가 결국 못 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판근 선생의 불벼락이 떨어졌다. “처음부터 호랑이를 그리면 못해도 고양이는 되지만, 고양이부터 그리면 쥐밖에 더 되겠느냐”고. 스승의 호통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찾아가서 하겠다고 했을 땐, 그의 몫이 40%로 줄어 있었다. 기회를 놓친 대가였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공연에서 그녀는 매회 새로운 인물에게 재즈를 가르쳐 무대에 세웠다. 그래서 공연 타이틀이 ‘윤희정 · 프렌즈’가 됐다.

“나는 재즈를 해보니까 너무 좋은데, 사람들은 재즈 하면 다들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 편견을 깨고 같이 한번 즐겨보자는 취지에서, 프렌즈 공연을 시작했죠. 처음엔 재즈 한번 해보자고 하면 다들 무섭다며 도망을 갔어요. 음식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알듯 재즈도 자꾸 듣고 불러서 익숙해져야 그 맛을 알게 되거든요.”

이렇게 무대를 거쳐간 사람이 2백50명 가까이 된다. 남경필 경기도지사 · 홍사덕 전 의원 등 정치인, 김영혜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 송인준 변호사 등 법조인, 박의승 삼성물산 부사장 · 변보경 코엑스 사장 등 재계 인사, 배우 박상원 · 유준상 · 송일국 · 소유진 · 이하늬 · 이유리 · 김효진 · 김사랑, 가수 유열 · 옥주현 등 면면도 화려하다. 그녀가 게스트를 섭외하는 기준은 ‘직관’이다. TV를 보거나 라디오를 듣다가 ‘목소리가 괜찮다’ 싶은 사람에겐 무작정 전화를 걸어 “재즈 한번 배워보실래요?” 하는 거다. 그에게 ‘탱크’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재즈를 배우고 싶다며 직접 찾아온 경우도 있다. 대부분 배우나 가수들로, 작품이나 공연에 필요해서지만 노주현처럼 ‘외롭거나 기쁠 때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 한 구절이 있다면 인생이 얼마나 풍요로워질까’ 하는 마음으로 배우러 오는 이들도 있다. 방송인 김미화도 그렇게 시작해 남편까지 재즈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국회의원 시절 ‘윤희정 · 프렌즈’ 무대에 섰던 남경필 지사는 그녀에게 재즈를 배우는 걸,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와의 라운딩에 비유했다. 노래 실력이 출중하지 않아도 윤희정의 도움을 받으면 재즈 한 곡쯤은 웬만큼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경림 씨 같은 경우에도 갈라지는 목소리가 재즈에 어울릴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평범한 것보다 그런 목소리가 오히려 재즈에 잘 맞을 수 있어요. 8개월 동안 얼마나 성실하게 연습했는지 몰라요. 공연 때 ‘Bei mir bist du scho¨n’과 ‘Misty’ 를 자신의 스타일대로 정말 멋지게 소화해내서 가르친 보람이 있었죠.”

윤희정의 JAZZ&FRIENDS
윤희정의 JAZZ&FRIENDS


윤희정의 JAZZ&FRIENDS
아무리 유명한 제자도 일정한 수준이 되지 않으면 무대에 세우지 않았다. 공연이 초등학교 학예회 수준이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 원칙에 따라 열심히 했지만 결국 무대에 서지 못한 제자도 있다.

“아유, 정말 가르치다 죽을 뻔한 사람도 있어요. 그분은 박자를 못 맞추더라고요(웃음).”

무대에 서지는 않았지만 그의 노래를 사랑해서 공연마다 꼭 찾는 이들도 있다. 고 앙드레 김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객석 앞자리 단골 관객이었고, 대한적십자사 총재이기도 한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도 윤희정 재즈 마니아다. 김성주 회장도 게스트로 한번 초청하지 그랬냐고 묻자 그가 큰 소리로 웃었다.

“제 직관으로는 그분은 큰일을 하시는게 더 어울릴 것 같은데요. 하하하.”

‘윤희정 · 프렌즈’가 셀레브러티들에게 재즈를 가르쳐 무대에 세우는 공연이었다면, 2년 전 시작한 ‘재즈 프렌즈 파티’는 재즈를 통한 소통과 힐링을 테마로 한 일반인 대상 프로그램이다.

“누군가가 재즈를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음악’이라고 했듯, 재즈는 보통 사람들이 삶에서 겪은 애환을 표현하면서 생겨난 음악이에요.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삶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죠. ‘재즈 프렌즈 파티’는 그것을 함께 노래하며 공감하고 바쁜 일상에서 느끼기 힘든 여유와 배려를 찾자는 취지로 시작했는데 현재 1, 2, 3기를 거쳐 4기를 준비 중이에요.”

I am a fool to want JAZZ

‘젊었을 때는 꽤나 빌리 홀리데이를 들었다. 그 나름으로 감동도 하였다. 하지만 빌리 홀리데이가 얼마나 멋진 가수인가를 정말로 알게 된 것은 훨씬 훗날의 일이다. 그러니 나이를 먹는다는 것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요즘은 어딜 가나 재즈 음악이 흘러나온다.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선 특히. 흑인 특유의 영혼이 살아 있는 올드 재즈부터, 말쑥하고 댄디한 외모의 젊은이들이 연주하는 모던 재즈까지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그녀 역시 재즈가 대세가 된 걸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재래시장에 자주 가는 편인데, 예전엔 상인들이 절 보고 ‘성악 하는 분?’ 그랬어요. 그때도 싫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재즈하시는 분이잖아요?’ 하고 다들 알아보세요. ‘그동안 재즈라는 이름을 붙여 이런저런 일들을 해왔던 게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그녀가 재즈의 바다에서 건져올린 또 다른 큰 보석은 딸 김수연이다. 2003년 그룹 버블시스터즈로 데뷔한 김수연은 현재 작곡, 편곡, 드라마 OST 작업, 대학 강의 등과 함께 연예 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의 보컬 트레이너로 활동하며 아이돌 스타들을 키워내고 있다. 그는 앞으로 딸과 소통하고 의지하며 만들어갈 음악 세계에 대한 기대도 크다.

“수연이는 나보다 더 독한 음악적 DNA를 갖고 태어난 거 같아요. 엄마 배 속에서부터 음악을 듣고 자랐으니 그럴 수밖에요. 어릴 때 교회에서 성가대를 했는데, 자기 혼자 3도 화음을 넣더라고요. 윤복희 언니가 그때부터 신기하다 그랬죠. 그러고 나서 10년도 더 지나 버블시스터즈로 TV에 나온 걸 보고 복희 언니가 전화를 걸어 ‘거기 얼굴 까만 애 네 딸 수연이 아니니? 음을 밀고 당기는 게 예사롭지 않다’ 라며 금방 알아보더라고요. 그리고 요즘 아이라 확실히 아이디어가 많아요. 음악 속에서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도 많고 그쪽으로 최적화된 거죠. 우리 때는 악보 하나, 음반 한 장도 얼마나 귀했던지, 다른 사람이 빌려달라고 하면 원본은 잃어버릴까 봐 겁나서 못 주고 복사해주곤 했죠. 물론 지금이 그때보다 환경이 나아진 건 사실이지만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순정을 잃어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도 있어요. 수연이가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낫다는 걸 인정하지만 열정만큼은 나를 따라오지 못할걸요(웃음).”

재즈 컬렉터이기도 한 아들은 미국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하다가 요리로 전공을 바꿔 현재는 푸드 비즈니스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

“멀쩡하게 공학을 공부하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요리를 공부하겠다니, 처음엔 기절하는 줄 알았죠. 그땐 몰랐어요. 요리가 지금처럼 대세가 될 줄. 재즈의 장점은 요리든 미술이든 패션이든 어떤 장르와도 콜래보레이션을 할 수 있다는 점이죠. 아들은 지금 푸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데, 어릴 때부터 재즈를 좋아해서 즐겨 들은 게 어떻게든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수많은 재즈 가운데, 그녀가 특히 좋아하는 곡이 있다. ‘I am a fool to want you(당신을 원하는 나는 바보입니다)’다. 이 곡은 원래 프랭크 시나트라가 불렀지만 1958년 빌리 홀리데이가 자신의 앨범 ‘Lady in satin’에 수록하면서 그녀를 상징하는 곡이 됐다. 빌리 홀리데이가 입안 가득 마른 나뭇잎을 머금은 듯 거칠고 갈라진 목소리로 이 노래를 부르는 걸 듣노라면, 뜨거운 사랑의 감정과 생의 허무가 동시에 밀려온다. 하루키가 나이가 들수록 빌리 홀리데이의 음악이 멋지게 다가왔다고 한 건, 그 역시 빌리 홀리데이의 목소리에 담긴 생의 처연함에 공감하게 됐다는 걸 의미한다.

“굉장히 유명한 곡이지만 무겁고 부르기 까다로운 탓인지 ‘윤희정 · 프렌즈’ 게스트로 오셨던 분 중 그 누구도 이 노래에 도전하지 않았어요. 제 나름으로는 인연이 깊죠. 빌리 홀리데이가 부른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밤을 새우며 수십, 수백 번을 들었죠. 그리고 지금까지 수없이 이 노래를 불렀지만, 매번 그 느낌이 달라요. 부를수록 그 매력에 빠지게 되는 노래라고 할까요? 또한 제겐 음악적인 방향을 제시해주는 노래이기도 하죠. ‘흔들리지 않고 너만의 길을 가라’고요. 재즈에서는 넘버원이 있을 수 없어요. 온리원이 있을 뿐이죠. 앞으로도 저만의 색깔이 녹아든 재즈를 찾는 탐험을 계속해나갈 겁니다.”

디자인 · 최진이 기자

의상&소품협찬 · 비비·리 LINE(한만순) CHANLUU 이안옵틱

장소협조 · 핀치카페(02-517-5031)

여성동아 2015년 7월 6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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