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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그곳에 가다

아비규환의 현장, 아이티 다녀온 아리랑TV 김나리 기자 취재기

글 정혜연 기자 사진 조영철 기자, 김나리 제공

입력 2010.03.16 12:05:00

최악의 지진으로 모든 것을 잃은 아이티 국민은 망연자실한 채 원조받은 빵과 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지진 발생 직후 그곳으로 건너가 일주일 동안 현장을 취재하고 돌아온 아리랑TV 김나리 기자는 “지금도 그곳 사람들의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비규환의 현장, 아이티 다녀온 아리랑TV 김나리 기자 취재기


지난 1월12일, 중남미 최빈국 아이티에서 리히터 규모 7.0 이상의 강진이 발생했다는 외신이 실시간으로 퍼졌다. 지진 피해가 알려지자 유엔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는 아이티 사람들을 돕기 위해 구조대를 파견했다. 각국 취재진도 현장의 참혹함을 알리기 위해 카메라를 챙겨들고 앞다퉈 아이티로 향했다.
국내에서도 119 해외구조대원 서른다섯 명이 파견됐고, 취재진도 발빠르게 그곳으로 건너갔다. 그중 유일하게 여자의 몸으로 망설임 없이 아이티로 향한 아리랑TV 김나리 기자(29). 그는 누군가에게 떠밀려 간 것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갔기 때문에 몸 사리지 않고 취재에 임했다고 한다.
“아이티에 도착했을 때 마치 할리우드 영화 세트장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길 양옆으로 모든 빌딩이 다 무너져 있었고,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라고는 한군데도 남아 있지 않았죠. 그걸 보고도 한참 동안 실감이 나지 않다가 길가에 쌓인 시체를 보고서야 제가 아이티에 왔다는 걸 깨달았어요.”
김나리 기자는 2008년 아리랑TV에 입사했다. 2005년 미국 앨라배마주 어번대 인류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에서 외교안보 석사 학위를 받았다. 당초 그는 유엔에서 일하기를 꿈꿨지만 석사과정을 밟던 중 유엔에서 인턴으로 일하다보니 생각과 달리 사무적인 분위기가 맞지 않아 기자로 전향했다. 그는 아리랑TV의 아침 뉴스인 ‘아리랑 투데이’ 전담 기자로 일하던 중 아이티에 가게 됐다.
아이티 취재를 다녀온 지 한 달이 지났지만 그는 아직도 그곳의 참혹한 광경이 잊히지 않는다고 한다. 길거리에 널려 있는 시체 더미는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고, 시체가 썩는 고약한 냄새도 일생 맡아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열 살쯤 돼 보이는 어린 남자아이의 살점 뜯긴 시체를 본 것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 모습이 자꾸 꿈에 나타나 고통스럽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아이티, 참혹함에 할 말 잃어

아비규환의 현장, 아이티 다녀온 아리랑TV 김나리 기자 취재기


아이티에 지진이 나고 3일 후, 김 기자는 그때까지 회사에서 아이티로 기자를 파견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직접 나서서 가고 싶다는 뜻을 피력했다. 내부적으로 논의에 들어갔고 몇 시간 후 취재 지시가 떨어졌다. 그의 부모는 좋은 기회이니 잘 다녀오라며 격려해줬다고 한다. 그는 입을 옷 몇 가지와 비상식량을 챙겨 카메라 기자와 함께 아이티로 향했다.
“다행히 두 사람 모두 미국 비자가 있어서 미국행 비행기에 탈 수 있었어요. 미국을 경유해서 들어가는 게 가장 빠른 길이었죠. 그날 우연히 공항에서 만난 119 구조대원은 비자가 없는 사람이 있어서 유럽을 경유해 아이티로 간다고 하더라고요.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하고 출발했어요.”
미국에 도착해 아이티의 이웃 국가인 도미니카공화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그런데 그곳에 도착했을 때 문제가 생겼다. 함께 간 카메라 기자가 복통을 호소한 것. 하루를 기다려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결국 김 기자 홀로 차를 타고 아이티로 향했다.
“먼저 가서 취재를 하며 기다렸는데 한국에서 만난 119 구조대원들이 뒤늦게 아이티에 도착해 저희 카메라 기자가 맹장이 터져 도미니카공화국의 수도인 산토도밍고에서 수술을 받고 입원 중이라고 전해주더라고요. 아이티의 모든 통신시설이 망가진 탓에 연락할 수 없어서 발만 구르고 있었는데 소식을 듣게 돼 다행이었죠. 문제는 카메라도 없이 혼자 갔기 때문에 기사를 보내기 어려워졌다는 거였어요. 다행히 국내 타 방송사의 장비를 빌려 기사를 내보낼 수 있었어요.”
그곳에서 홀로 취재하면서 김 기자는 많은 이의 가슴 아픈 사연을 접했다고 한다. 소위 말하는 지식인 계층의 사람들은 그나마 영어를 할 수 있어서 취재진이나 구조요원을 보면 10달러만 줘도 좋으니 자신을 통역가로 써달라고 사정했다. 길거리에 멍하니 앉아 있는 아이들을 붙잡고 어떻게 된 영문인지 물어보면 무덤덤한 표정으로 가족 모두가 죽고 자기 혼자 살았다고 말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아비규환의 현장, 아이티 다녀온 아리랑TV 김나리 기자 취재기


병원을 찾아갔을 때는 더욱 참혹한 광경이 펼쳐졌다고 한다. 그가 팔다리를 다쳐서 몸을 가눌 수 없는 사람들에게 말을 붙이면 엄마가 벽돌에 깔려 죽었다거나 오빠가 다리를 잃었다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가장 가슴 아팠던 사람이 있었냐고 묻자 그는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의 상황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고 말했다.
“대체로 자신을 지키려 한 부모 덕택에 살아남은 아이들인지라 고아가 된 경우가 많았죠. 그런데 살아남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언제 또 지진이 날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제가 머물렀던 일주일 동안에만 여진이 세 번이나 일어났거든요. 그래서 미국으로 가려고 대사관 앞에 길게 줄을 선 사람이 많았는데 나오는 이를 붙잡고 물어보면 입국허가를 받았다는 경우가 거의 없었죠.”
무법천지가 됐던 터라 치안도 문제였다. 특히 여자의 몸으로 취재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밤이 되면 언제 일어날지 모를 지진 때문에 모두가 거리로 나와 잠을 청했는데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행히 한인 선교사가 배려를 해줘 그가 몰고 다니던 차 안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비상식량이 다 떨어져서 구호품으로 지급된 초코파이 한 상자로 일주일을 버텼어요. 그래도 전 그나마 나은 편이었어요. 아이티 사람들은 식량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벌이는 경우가 허다했으니까요. 어느 날은 미군이 4천 명분의 과자와 물을 나눠줬는데 뒤로 갈수록 식량이 떨어져가는 걸 본 사람들이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질렀어요. 그때는 미군도 방어 태세를 갖췄죠.”
그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유엔군의 식량을 아이티 사람들이 폭력을 휘둘러 훔쳐가기도 했다고 한다. 어느 날은 식량을 지급하는 곳에서 총 소리가 나기도 했다고. 그는 자신도 아찔한 상황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사탕 두 봉지를 사들고 갔는데 안쓰러운 마음에 아이들에게 사탕 몇 알을 쥐어줬더니 갑자기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위험에 처했던 것. 먹을 것이 너무 없어 사탕 한 알에도 쉬이 동요하는 사람들을 보며 안타깝기만 했다고 한다.

아이티 돕는 유일한 방법은 지속적인 관심뿐
아이티가 재건되려면 10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지진 발생 이후 급파됐던 세계 각국의 구조대원들은 한 달여 시간이 지난 후 더 이상의 생존자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하나둘 본국으로 돌아갔다. 이제는 유엔을 비롯해 비정부기구(NGO) 등 국제기구와 자원봉사자들이 아이티 사람들과 힘을 합쳐 부서진 건물 잔해를 철거하고 다시금 삶의 터전을 만들어 보려 애쓰고 있다.
“지금은 일차적으로 건축물 잔해를 치우는 것부터 하고 있어요. 구호 물품도 지속적으로 들어오고 있어서 한동안은 괜찮겠지만 그보다 생존자 개개인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인프라를 구축해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봐요.”
취재를 하는 일주일 동안 그는 아이티 아이들과 어울리며 정이 들었다고 한다. 불어 사용국가인 아이티에서 불어를 할 줄 아는 그가 아이들에게 말을 건네자 반가워하며 이것저것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고. 더욱이 아시아인을 처음 본 아이들은 ‘불어를 쓰는 동양 여자’에 대해 소문을 퍼뜨려 돌아갈 때쯤에는 많은 아이들이 그를 알아봤다고 한다.
그는 또 한국에서 건너간 119 구조대원들의 활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서른다섯 명의 구조대원은 중국에서 쓰촨성 지진이 났을 때도 구조작업을 했던 이들이었다고. 때문에 세계구조대원협회에서는 한국 구조대를 높이 평가한다. 그들은 지진 발생 후 발빠르게 움직였으나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많은 이를 구하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그에게 아이티를 돕는 최선의 방법에 대해 묻자 “지속적인 관심”을 우선으로 꼽았다. 아이티가 바로 서려면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는 것.
“한 달 동안 세계 각국의 많은 이가 관심을 가지고 안타까운 마음에 기부를 많이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간간이 후속 보도만 나가고 있기에 벌써 지진 발생 사실을 잊은 사람들도 많죠. 아이티 사람들이 예전처럼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재정적인 지원도 물론 중요하지만 계속 관심을 갖고 꾸준히 도움을 줘야 해요. 저도 기회가 된다면 후속 보도를 위해 다시 한번 아이티로 가고 싶어요. 그때는 저도 도움을 받기보다는 많은 도움이 못 되더라도 최대한 돕고 오려고요.”

여성동아 2010년 3월 5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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