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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부딪히는 부당한 현실에 대한 해법 담은 책 펴낸 페미니스트 김신명숙

기획·김명희 기자 / 글·오진영‘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7.08.22 10:50:00

페미니즘 저널 ‘이프’ 편집인 김신명숙씨. 그는 한국 여성의 사회적인 지위가 예전보다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많은 여성이 결혼과 육아, 가정과 직장에서 부당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고 말한다. 그를 만나 여성이 일상적으로 부딪히는 부당한 현실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한 해법을 들었다.
여성이 부딪히는 부당한 현실에 대한  해법 담은 책 펴낸 페미니스트 김신명숙

여풍(女風)이 거세다. 외무고시·사법고시·행정고시 등 3대 고시에서 여성 합격자 비율이 절반을 육박하거나 이미 넘어섰다. 10년 내로 공무원 ‘여초시대’가 온다는 전망도 나왔다.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 리더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금까지보다 더욱 가파른 속도로 늘어날 추세다. 언론에는 남자보다 리더십 강한 차세대 여성을 뜻하는 신조어 ‘알파걸’이 자주 등장하고 ‘역차별’을 호소하는 남자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페미니즘 잡지 ‘이프’ 편집인 김신명숙씨(47)는 ‘여성들의 눈부신 활약’이 한국 사회의 모습을 바꿔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남성중심주의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그는 여성들의 현실을 주의 깊게 들여다본 결과 “오히려 이제부터가 대중적인 페미니즘이 필요한 시기”임을 느꼈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많이 찾는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 들어가면 고민거리, 속상한 이야기, 친구나 가족에게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글들이 많아요. 그런 글들을 읽으며 참 놀란 것이 세상이 많이 바뀐 것 같은데도 연애와 성, 결혼과 직장, 육아 문제로 부당한 현실에 시달리는 여자들의 하소연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거예요.”
결혼 후 식구들을 위한 일꾼이 있을 뿐 ‘나’는 없어진 현실이 서글픈 주부, 남편의 성매매 사실을 알고 분노하는 아내, 자신을 공짜 가사도우미쯤으로 여기는 시집 식구들과의 관계 때문에 가슴 앓는 며느리, 아이 돌볼 시간이 모자라 늘 죄책감에 시달리는 맞벌이 주부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 특히 수많은 여성이 저임금에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놓여 있으며 그나마 아이 때문에 직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또한 아이들 교육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예전보다 더한데 그럼에도 대부분의 여성이 분노하기보다 체념하고 순응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많은 여성이 부당한 현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시끄럽게 만들기보다 참고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싸우기에는 자존감이 너무 약하고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있는 거죠. 무엇보다 잃어버린 자신감의 회복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최근에 펴낸 ‘김신명숙의 선택’은 모든 여자의 문제를 ‘지금 내 문제’로 겪고 있는 여성들을 위해 ‘사랑하는 언니’가 들려주는 위로와 격려를 담은 조언집이다.
돌이켜보면 그 자신 역시 20대 초반에는 요즘 말하는 ‘알파걸’이었다고 한다.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82년 동아일보 출판국 기자로 입사할 때만 해도 능력만 있으면 여자도 원하는 대로 잘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여자라고 차별받은 경험도 없었고 페미니즘에는 관심도 없었다.

여성이 부딪히는 부당한 현실에 대한  해법 담은 책 펴낸 페미니스트 김신명숙

‘여자이기 때문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부당한 현실’을 처음 깨달은 것은 85년 결혼해 아이 엄마가 되면서였다.
“친정이나 시집에서 아이를 돌봐줄 수 없는 사정이어서 직장을 다니기 위해서는 아이 보는 사람을 계속 구해야 했어요. 야근과 주말 특근을 밥 먹듯 하는 월간지 기자였는데 아이 잠자는 얼굴만 겨우 보고 출근했다 퇴근하는 날들이었죠.”
주부의 역할도 직장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몇 년간 쌓인 갈등과 분노로 인해 이혼을 했고, 재혼 후 94년부터 1년간 독일에 체류하면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한국에서 여자로 사는 게 무척 힘들었기에 독일 여자들은 어떤지, 맞벌이 엄마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취재해봤어요. 여성운동을 통해 독일 여성이 많은 권리를 쟁취했음을 알게 됐고 한국에 돌아가면 페미니스트로 평생을 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독일에서 돌아와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를 펴냈을 당시 독자들로부터 “책 내용이 참 좋은데 제목이 너무 파격적이라 지하철 같은 곳에서 읽지 못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마음만 먹으면 주부도 충분히 세상을 바꿀 수 있어요”
‘나쁜 여자…’를 펴내면서 인연을 맺은 페미니스트 동지들과는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로 대표되는 페미니즘 문화운동을 10여 년째 펼쳐오고 있다. 97년에 시작된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에 참여해 지금의 이름으로 알려지게 됐다. 군가산점 제도에 위헌소송이 걸렸던 98년 당시에는 군가산점제에 반대하는 여성주의적 입장을 대변했다가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 집중포화를 맞기도 했다.
그는 ‘선택’을 집필하면서 그동안 자신을 비롯한 페미니스트들의 급진적인 주장들이 왜 소수의 마니아층을 넘어 일반 여성에게 공감을 얻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고 말했다. 불공평하고 불합리한 현실을 고발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내면의 상처로 고통받는 여성들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는 것이다.
“여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을 고발하고 공격하는 발언이 아니라 움츠러든 자아를 다독이며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위로의 목소리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자신을 믿어라. 당신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격려의 다독임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내일모레면 나이 마흔인데 그동안 해온 것은 집에서 식구들 밥 해준 것밖에 없어 스스로 위축된다는 주부에게 그는 자신의 잠재능력을 발견하고 자신감을 회복할 기회를 주위에서 찾아볼 것을 권한다.
“아이 둘을 키우는 평범한 주부가 있었는데 어느 날 둘째 아들로부터 학교 급식에서 바퀴벌레가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동료 학부형들과 급식 모니터링을 시작했대요. 그런데 열심히 하다 보니 나중에는 학교 급식에 안전한 국산 농산물을 쓰자는 전국적인 운동으로까지 발전했어요. 학교급식 전국네트워크 상임대표 배병옥씨의 이야기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주부도 충분히 세상을 바꿀 수 있어요.”
우리 사회에서는 같은 직장, 같은 경력이라 해도 남성이 여성보다 연봉을 더 받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부분의 남성은 그런 차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여성은 이를 수긍하는 경향이 있다. 그는 여성이 자신의 장점을 좀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기를 권했다.
“직장에서 남자는 우연히 얻은 성과도 자신의 능력 때문이라고 믿는 반면 여성은 그 반대의 태도를 보입니다. 성취보다는 실패에 연연하면서 자책하는 데 능하죠. 여성이 자기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때 외부의 평가도 더 좋아질 수 있습니다. ‘연봉을 결정짓는 건 능력보다 자부심’이라는 말도 있어요.”
그는 시집으로부터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당하며 살아왔는데도 남편에게 ‘네가 우리 집에 한 게 뭐 있느냐’는 힐난을 듣고 복장이 터진다는 며느리에게는 시집 식구들에 대한 개인적인 비난을 삼가고 한국의 결혼제도에 엮인 인권침해에 대해 남편과 대화해볼 것을 조언했다.

여성동아 2007년 8월 5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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