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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가슴 찡한 사연

시를 통해 아픈 상처를 용서와 희망으로 승화시킨 여고생 김소연

“내 마음이 슬픔으로 미움으로 원망으로 물드는 게 싫어서 시를 씁니다”

기획·최호열 기자 / 글·백경선‘자유기고가’ / 사진·정경택 기자

입력 2005.11.02 11:07:00

선천성 척추장애를 앓는 고모와 단둘이 살면서 세상이 할퀸 상처를 아름다운 시로 승화시키는 문학소녀가 있다. MBC 프로 ‘사과나무’에 소개돼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준 김소연양이 그 주인공. 김양을 만나 그가 겪은 아픔과 상처를 딛고 살아온 가슴 찡한 사연을 들어보았다.
시를 통해 아픈 상처를 용서와 희망으로 승화시킨 여고생 김소연

‘예쁜내 마음이/ 슬픔으로 젖는 것이/ 너무 싫어서,/ 나는,/ 시를 씁니다// 미움으로/ 물드는/ 내 마음이 싫어서,/ 나는,/ 고운 시를 씁니다// 원망으로/ 검게 물드는/ 내 마음이 싫어서,/ 나는,/ 아름다운 시를 씁니다’ (김소연양의 시 ‘시와 나’ 중에서)
강원도 속초여고 1학년 김소연양(16)은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각종 글짓기 대회에서 받은 상이 1백52개나 될 정도로 유명한 문학소녀다. 그래서 별명이 ‘속초의 김소월’. 이뿐만이 아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2000년에는 이해인 수녀의 추천으로 시집 ‘작은 신부’를 내기도 했다. 이처럼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그는 지난 9월 말 MBC 프로그램 ‘사과나무’ 장학생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김소연양을 만나기 위해 그가 고모와 단둘이 살고 있는 속초의 작은 아파트를 찾았다. 갈래머리를 한 소연양과 선천성 척추장애를 가진 고모 김용주씨(50)가 세상의 어떤 아픔과 슬픔도 모두 녹여버릴 것 같은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맞아주었다. 조승우가 어느 CF에서 말했던가, “나는 오늘 춤추는 천사를 만났다”고. 두 사람의 순박한 미소를 보는 순간 “시를 쓰는 작은 천사와 그 작은 시인천사를 키우는 엄마 천사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연양은 “제가 고모고, 고모가 저예요”라는 말을 했다. 이처럼 두 사람은 영랑호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보금자리에서 고모와 조카보다는 엄마와 딸처럼 서로 의지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행복 뒤에는 남모르는 아픈 사연이 있다.

생후 2개월 만에 부모에게 버림받고 척추장애 고모에게 맡겨져
소연양은 생후 2개월 만에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사실, 소연양 아버지는 서울대 출신이고, 어머니 역시 일류대 음대 출신으로 둘 다 엘리트라고 한다. 그런데 결혼 16개월 만에 이혼하면서 서로 아이를 키우지 않겠다고 해 결국 몸이 불편한 고모가 맡게 된 것. 그렇게 해서 척추장애를 안고 태어나 세상을 등지고 살던 고모 김씨와 태어난 지 얼마 안돼 부모에게 버림받은 소연양이 함께 살게 되었다. 물론 소연양 부모와는 그 뒤 어떤 만남도 없었고, 어떤 경제적 지원도 없었다고 한다.
소연양이 자신이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처음 안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그때까지 소연이는 부모님이 서울에서 직장 다니고 있는 걸로 알고 있었어요. 엄마 아빠를 찾으면 바빠서 못 온다고 둘러대곤 했죠. 그러다 5학년 때 모든 사실을 얘기해줬어요. 큰 충격을 받더라고요. 그런 소연이를 보면서 가슴이 아팠지만 제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오로지 소연이의 몫이었죠.”
어린 소연양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벅찬 일이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그리움보다는 미움이 커져갔다. 그러다 미움을 넘어서서 체념을 배웠다고 한다.
“누군가를 미워하면 끝이 없더라고요. 부모님께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순간순간 밉고 속상했어요. 학년이 바뀔 때마다 가정환경 조사를 하는데, 그때마다 부모님이 밉고 원망스러웠어요. 하지만 제가 엄마 배 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도 없는 거고,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았죠.”
처음 부모 이야기를 들었을 때 “세상이 다시 보였다”는 소연양은 그 후 생각이 많아졌고, 그래서 친구들하고도 멀어졌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친구들의 놀림감이었어요. ‘왜 어머니 아버지랑 같이 안 사냐’면서 ‘고아 아니냐’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고모가 몸이 불편하니까 그걸 가지고도 아이들이 많이 놀렸고요. 고모 얘기 들을 때가 가장 속상했어요.”

시를 통해 아픈 상처를 용서와 희망으로 승화시킨 여고생 김소연

소연양이 초등학교 때 함께 사진을 찍으면서 인연을 맺은 소설가 박완서씨. 그는 소연양이 세상을 따뜻한 곳으로 느끼도록 도왔다.


그런 소연양을 보면서 김씨도 가슴 아프고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부모 없이 고모 밑에서 자라 버릇없다’는 소리 안 듣게 하려고 응석 한번 받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그는 늘 곁에서 세상 풍파에 쓰러지지 않도록 붙들어주었다.
소연양의 문학적 감수성을 처음 발견하고 키워낸 이도 김씨였다.
“소연이가 다섯 살 무렵이었을 거예요. 어느 날 베란다에서 하늘을 바라보던 소연이가 숟가락을 찾아요.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하얀 뭉게구름이 꼭 아이스크림 같아서 숟가락으로 떠먹고 싶다’는 거예요. 그때 이 아이 감성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꼈죠.”
김씨는 그때 소연양이 했던 말을 그대로 적어두었고, 그것이 소연양의 첫 작품 ‘뭉게구름’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 김씨는 소연양의 문학적 감수성을 계속 북돋워주었다. 그의 집 유리창엔 커튼이 없다. 소연양이 어떤 장애물도 없이 하늘을, 별을, 구름을 보며 아름다운 꿈을 꾸게 하기 위한 배려였다. 또한 소연양의 생각을 어느 틀에 가두어두지 않기 위해 책을 한 권 읽으면 책 읽은 시간의 2~3배 동안 열띤 대화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소연양은 “고모가 내 생각을 키워주신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친구들하고 이야기를 하면 세숫대야에서 첨벙거리는 것 같지만, 고모와 이야기를 하면 깊은 바다에 빠진 느낌”이라는 소연양은 50대인 고모와 이야기하며 세대 차이를 느낀 적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친구들과 생각의 차이를 느낀다고.
친구들은 생각이 많은 그를 ‘4차원에 사는 소녀’라고 부른다. 그러면서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꼭 소연양을 찾아온다고.
“놀러갈 땐 절 안 부르다가 어려운 일 있으면 저를 찾아요(웃음). 그래도 섭섭하지 않아요. 오히려 고맙죠. 필요할 때 저를 생각해주는 거니까요. 또한 친구들 고민을 들어주면서 제 생각이 더 깊어지니까 그것도 고맙고요.”
아직 어리건만 생각은 어른보다도 깊다. 그것이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론 안쓰러운 생각도 들었다.
소연양에게 친구는 고모뿐이다. 그리고 시를 쓰는 것이 유일한 놀이이자 위로다. 그가 시를 쓰면 첫 독자는 항상 김씨였고, 소연양의 시를 읽을 때 김씨는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소연양은 시를 씀으로써 사랑하는 고모에게 보답하고 있다.
김씨는 일을 못한다. 아니, 하고 싶어도 세상이 안 시켜준다. 그래서 두 사람은 정부보조금 30만원으로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비록 밥상 위에 반찬을 3가지 이상 올려놓지는 못해도 그들은 조금도 불행하지 않다. 오히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기에 “나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낡은 속옷을 입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낡은 잠옷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은/ 낡지 않은 사랑입니다// (중략)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입니다// 낡은 옷을 입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어느 곳에도/ 그런 사랑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사랑받는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합니다’ (김소연양의 시 ‘나는 행복합니다’ 중에서)
소연양이 초등학교 2학년 때, 김씨의 생일을 축하하며 선물로 쓴 시다. 이 시를 볼 때마다 김씨는 눈물이 난다고 한다.
“이 시를 통해 ‘내가 이렇게 살아야겠구나’ 하는 것을 배웠어요. 어려울 때마다 이 시를 보면 힘이 났어요. 이 시 한 편이 그동안 제가 소연이에게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만든 힘이 됐던 거예요.”
그는 자신이 최선을 다해도 친엄마가 아니어서, 그리고 몸이 불편해 항상 부족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소연양이 잘 자라줘서 고맙다며 “언젠가 소연이에게 ‘어머니였습니다’라는 말 한마디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고백했다.

눈오는 날 예쁜 겨울코트 보내온 박완서 할머니와의 아름다운 인연
시를 통해 아픈 상처를 용서와 희망으로 승화시킨 여고생 김소연

소연양을 생후 2개월 때부터 키워온 고모 김용주씨. 소연양은 고모 때문에 시심(詩心)을 키울 수 있었다며 고마워했다.


“소연이 키우면서 고마운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래서 가끔 소연이에게 우스갯소리로 ‘부모 잃고 대신 이렇게 고마운 분들 많이 만날 수 있다면 부모를 잃어도 괜찮겠다’고 말해요.”
김씨가 말한 고맙고 소중한 사람 중에는 소설가 박완서씨도 있다. 소연양이 초등학교 3학년 때 박완서씨가 속초로 문학강연을 온 적이 있는데, 그때 함께 사진을 찍으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처음엔 할머니가 소설가라는 것만 알았지 어떤 글을 썼는지도 몰랐어요. 그래서 서점에 가서 할머니 책을 한 권 사서 읽었는데, 아들을 잃은 아픔을 쓴 에세이였어요. 책을 다 읽고 나서 할머니에게 편지를 썼어요. 당신은 아들을 잃었지만, 저는 부모를 잃었다고요.”
얼마 후 박완서씨에게 전화가 왔고, 종종 서로의 안부를 묻는 전화를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고 한다. 그리고 그해 겨울 글짓기 대회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가면서 전화를 했더니 시상식이 있던 혜화동까지 직접 케이크를 사가지고 왔다고. 그 뒤로 박완서씨는 소연양이 서울에 올 때마다 맛있는 것도 사주고 원피스도 사줬다고 한다. 어느 겨울 눈 오는 날에는 “쇼핑하다 니 생각나서 샀다”며 예쁜 겨울코트를 보내온 적도 있다고.
세상이 소연양에게 상처를 줬지만 그 상처를 감싸준 것도 이처럼 세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연양은 시를 쓰면서 스스로 상처를 치유해갔다. 자신을 버린 부모에 대한 미움과 그리움이 실타래처럼 뒤엉킨 채 시를 썼고, 시를 쓰면서 용서하는 법을 배웠다는 소연양은 이제 세상의 그 어떤 잘못도 용서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김씨가 평소 소연양을 예뻐해주던 아랫집 아주머니에게 전 재산이던 1백만원을 빌려주었는데, 끝내 돈을 갚지 않고 이사를 간 것. 그런데 그날 아침, 소연양이 학교에 가기 전에 2만원을 봉투에 넣어 김씨에게 주었다고 한다.
“글짓기대회 상금으로 고이고이 가지고 있던 돈 2만원을 그 아줌마 갖다 주라는 거예요. 이사 가면 바로 밥을 해먹을 수 없으니까 그걸로 자장면 사먹으라고 하라면서요.”
믿었던 사람이 발등을 찍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고 하자 소연양은 “너무 미워서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는 게 진정한 용서”라며 “그렇게 해야 떠나는 사람도 편하고 보내는 저도 편할 것 같았다”고 이야기한다.
소연양은 그동안 자신도 모르게 자꾸 슬픈 시를 썼다며 이제는 상처와 아픔보다는 화해와 용서, 희망의 시를 쓰고 싶다고 했다. “사람들이 이기적이기보다는 양보하고, 화해를 먼저 청할 수 있고 희생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소연양. 그리고 그가 미움 대신 아름다운 마음을 품고 자랄 수 있도록 곁에서 보살펴준 고모 김용주씨. 그들 앞에 더 이상 아픔이 없기를, 희망만 가득하길 바란다.
‘사람들은/ 내게 말해요// 내 눈동자 속에는/ 맑은 호수가 있다고요// 사람들은/ 내게 말해요// 내 눈동자 속에는/ 별빛이 숨어 있다고요// 나는 알지요/ 너무 긴/ 기다림의 슬픔이,/ 호수가 된 것을요// 나는 알지요/ 그 눈물이/ 별이 된 것을요// 그러나/ 사람들은/ 못 본 것이 있어요// 슬픔의 호숫가에,/ 눈물의 별빛 속에,// 아름다운 빛,/ 무지개 희망이/ 떠오른다는 것을요’ (김소연양의 시 ‘눈동자’ 전문)

여성동아 2005년 11월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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