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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아들이 준 특별한 선물

아들의 인터넷글 덕분에 하룻밤 새 유명해진 무명 개그맨 한상진

“처음에는 상의도 없이 글 올렸다고 아들 나무랐는데, 글을 읽은 후에는 ‘고맙다’고 했습니다”

글·강지남 기자 / 사진·지재만 기자

입력 2005.11.02 10:52:00

아들이 ‘아버지에게 팬레터를 생일선물로 드리고 싶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려 하룻밤 새 유명해진 개그맨 한상진씨. 잘못 선 보증 때문에 빚쟁이에 쫓겨 미국으로 떠났었고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는 시련을 겪고도 웃음을 선사하는 천직을 포기하지 않은 한씨와 그런 아버지가 누구보다도 자랑스럽다는 아들 재성씨를 만났다.
아들의 인터넷글 덕분에 하룻밤 새 유명해진 무명 개그맨 한상진

지난10월 중순, 잔잔한 감동을 주는 글 한 편 덕분에 인터넷 세상이 모처럼 훈훈해졌다. MBC 주간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에 단역으로 출연하고 있는 한상진씨(51)의 아들 재성씨(26)가 ‘오랜 세월 무명 개그맨으로 활동해온 아버지에게 생신 때 팬레터를 선물하고 싶다’며 한 포털사이트에 올린 글이 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린 것.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개그맨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온 한씨의 인생 여정에 많은 박수가 쏟아졌다. 재성씨가 만든 한씨의 미니홈피(www.cyworld.com/forevergag)에는 한씨 생일인 10월14일까지 8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방명록에 글을 남겼고 미니홈피 방문객은 무려 10만7천여 명에 달했다.
“아버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남긴 글 1백 개를 모아 선물하는 게 목표였는데, 이렇게 일이 커질 줄은 몰랐어요(웃음). 방문객이 30명으로 늘어나는 데 걸린 시간보다 1천 명으로 늘어나는 시간이 더 짧게 걸리더니 어느 순간 포털사이트 검색 1순위에 오르더라고요. 저도 무척 놀랐어요.”(한재성씨)
“영등포구치소에서 위문공연을 하고 있는데, 공연을 못할 정도로 방송국이며 기자들에게 전화가 걸려오더라고요. 그때서야 아들이 벌인 일을 알게 돼서 어안이 벙벙했어요. 혹시나 저에 대해 너무 불쌍하게 써서 동정심만 불러일으킨 건 아닌지 걱정도 됐고요. 전화로 제게 상의도 없이 글을 올린 아들을 나무랐는데, PC방에 가서 아들이 쓴 글을 보니 제 맘도 찡하더라고요. 나중에는 아들에게 ‘고맙다’고 했습니다.”(한상진씨)
아들 덕분에 한상진씨는 요즘 개그맨 데뷔 이후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기 때문. 11월27일에는 MBC ‘사과나무’의 후속 프로그램인 ‘가족의 재발견’ 첫 회에 그의 이야기가 방송될 예정이기도 하다. 길거리에서 자신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도 생겼다고 하니 아들에게 정말 잊지 못할 생일선물을 받은 셈. 한씨는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 한 여자분이 ‘생일 축하한다’면서 꽃다발을 전해주기도 했다”며 미소지었다.
한상진씨는 늦은 나이에 개그맨의 길에 들어섰다. 결혼 후 사우디아라비아로 건너가 일을 했고,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로에서 연극을 시작하며 개그맨의 꿈을 키웠다. 몇 번의 낙방 끝에 91년 그는 드디어 서른일곱이라는 나이에 KBS 공채 8기로 발탁됐다. 기쁨도 잠시, 열심히 방송일을 하던 그에게 그만 불운이 찾아오고 말았다. 아내가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 것. 살던 집을 처분하는 것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자 그는 아내와 아들, 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야반도주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엄마 잃은 후에도 속 한번 썩이지 않고 잘 자라준 아이들이 고마워
“중학교 배정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어요. 새벽에 아빠가 쿨쿨 자고 있는 절 깨우시더라고요. 이사가야 한다고요. 그렇게 친구들과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하고 쫓겨가듯 미국으로 떠났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요.”(한재성씨)
하지만 개그맨의 꿈을 접을 수 없었던 한상진씨는 미국에 가족을 남겨두고 홀로 한국에 돌아와 다시 방송 일을 시작했다. 공항에 내렸을 때 그의 주머니에는 고작 2만3천원밖에 없었다. 친구에게 중고차 한 대를 얻어 차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방송일에 뛰어들었고,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KBS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 코너인 ‘봉숭아 학당’에 수위 역으로 출연하게 됐다. 하지만 빚쟁이들이 찾아오면서 이 같은 호시절도 끝나버리고 말았다.
“어느 날 PD가 부르더니 투서 한 장을 보여주며 사실이냐고 묻더라고요. 빚을 갚지 않고 미국으로 도망가서 가족을 남겨놓고 혼자 돌아온 사람이 TV에 나와도 되는 거냐는 내용이었어요. 빚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브라운관에 설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방송일을 그만두고 여기저기 공연을 다니면서 돈을 모아 빚을 갚아나가기 시작했어요.”
좋지 않은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미국에서 식당일을 하던 아내가 새벽에 퇴근하다 그만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것. 당시 재성씨는 고등학교 2학년, 재성씨의 여동생은 중학교 2학년생이었다. 갑자기 미국으로 떠났듯 아이들은 다시 갑작스럽게 한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아들의 인터넷글 덕분에 하룻밤 새 유명해진 무명 개그맨 한상진

한상진씨는 MBC 주간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에 단역으로 출연하고 있다.



“아버지 없이 자란 아이들은 올바르게 크지만, 어머니 없이 자란 아이들은 삐뚤어지기 마련이라고들 하잖아요. 하지만 저희 아이들은 갑자기 엄마를 잃은 후에도 제 속 한번 썩이지 않고 잘 자라줬어요. 그게 참 고맙지요.”
꼬박 2년이 걸려 빚을 청산하고 다시 방송국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방송국은 젊고 능력 있는 후배들로 꽉 차 있었다. 그는 “나이 많은 내가 코미디 프로그램에 끼어들기는 참 어려웠다”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단역 배우로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MBC 주간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경찰, 의사, 형사 등의 단역으로 출연하고 있다.
재성씨는 “비록 유명한 개그맨은 아니지만 아버지가 그 누구보다 자랑스럽다”고 한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는 열정이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어릴 적, ‘너희 아버지는 무얼 하시는 분이니?’라는 질문을 받으면 “방송국에서 일하세요. 개그맨 한상진이라고 하는데 아세요?”라고 묻곤 했는데 아무도 아버지를 몰라줬다.
“그래도 한번도 아버지가 창피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무명배우와 스타는 백지 한 장 차이라고 생각해요. 천재가 되려면 1%의 운과 99%의 노력이 필요하다는데, 저희 아버지는 다만 1%의 운이 따르지 않았던 것뿐이니까요.”
재성씨는 7년 전 대학로의 개그콘서트 무대에 올랐던 아버지의 모습을 가장 자랑스럽고 뿌듯하게 생각한다. 무명배우의 공연이었지만 의외로 공연장이 관객들로 꽉 차 있었다고.
“아버지의 개그에 사람들이 자지러지게 웃고 모두들 행복한 표정으로 공연장을 나서는데, 그렇게도 아버지가 자랑스러울 수 없었어요. 다만 아버지가 상대역에게 맞는 장면이 있었는데, 관객들은 모두 웃었지만 전 마음이 찡했죠. ‘아버지가 저렇게 고생하시면서 우리 남매를 먹여 살리시는구나’ 싶어서요.”

“이번 일로 들뜨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 다할 겁니다”
아들의 인터넷글 덕분에 하룻밤 새 유명해진 무명 개그맨 한상진

한재성씨는 무명배우와 스타는 백지 한 장 차이라면서 자신의 아버지에게는 지금까지 운이 따르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평소에도 아드님이 효자 노릇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한상진씨는 “장난기가 많은 성격이라서 사람을 놀래주길 좋아한다”고 했다. 평소에도 종종 작은 선물을 마련해 아버지와 여동생을 기쁘게 해준다고.
“재성이는 가끔 제게 편지를 쓰곤 해요. 무슨 일이 있다거나 걱정할 일이 생겼다거나 할 때 얼굴 보면서 말하기는 좀 어려운 걸 편지로 써서 보내지요. 자기 마음을 표현하고 제게 용기를 주는 내용으로 문자메시지도 자주 보내요.”(한상진씨)
“그건 제가 효자라기보다는 아버지와 대화가 잘 통하기 때문이에요. 편지나 문자메시지에 꼬박꼬박 답장을 보내주려고 애쓰시거든요.”(한재성씨)
아들이 여느 해보다 특별한 생일선물을 준비했지만 한상진씨의 생일인 10월14일에는 정작 생일파티를 열 수 없었다. 전남 해남에서 열리는 노인들을 위한 자선공연에 출연하기 위해 새벽에 집을 나가 밤늦게 귀가했기 때문. 한씨는 20년 전 코미디언 손철씨가 만든 ‘새사랑 공연회’에 참여하는 것을 시작으로 불우이웃을 위한 자선공연에 참가해왔다. 현재는 한 달에 두어 차례씩 KBS 공채 동기인 동료 개그맨과 ‘오동광·오동피’란 이름으로 교도소나 양로원, 무의탁노인이나 결식아동을 위한 행사 등을 찾아다니고 있다고 한다. 덕분에 지금까지 받은 감사패와 표창이 마흔 개를 훌쩍 넘는다고 한다. 재성씨는 “미국에 건너갈 때 미처 다 챙기지 못한 것들까지 합치면 훨씬 많다”면서 “제대로 챙기지 못한 아빠의 생일파티는 이번 사태(?)가 마무리된 다음에 정식으로 할 예정”이라며 웃었다. 한상진씨는 “내 형편도 넉넉한 건 아니지만 개그를 보면서 시원하게 웃는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갑자기 주목받게 돼서 당황스러워요. 하지만 이 일에 들뜨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거예요. 지금부터는 아들의 글 덕분이 아니라 제 실력으로 알려져야죠. 관심 갖고 지켜봐주셨으면 합니다.”

여성동아 2005년 11월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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